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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민주야 사랑해
산 좋고 물 좋은 곳
정선 구미정계곡과 덕산기계곡
정선은 오지가 많은 지방이지만 그 중 정선 주민들이 아끼는 곳이 바로 신기계곡과 물한계곡이다. 도로포장도 돼있지 않고 화전민들이 살던 집 몇 채가 남아 있을 뿐인 이곳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부에서 405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맨 처음 나타나는 ‘신기’ 푯말을 따라 들어가면 신기리와 유천리 방면으로 난 410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양 쪽의 물줄기가 합쳐져 어우러진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아우라지
그러나 이정표가 제대로 없어 자가 운전으로는 찾아가기 어려우므로 길 찾기에 자신이 없다면 아우라지강에서 찾아들어가도 된다.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있는 아우라지강은 북쪽 구절리에서 흘러내리는 구절천과 남동쪽 임계에서 흘러내리는 골지천이 어우러진 나루. 강 언덕 소나무 숲속에 서 있는 댕기머리 처녀상에 얽힌 전설 한토막을 듣노라면 정선 아라리의 구슬픈 가락이 절로 가슴에 와닿는다.
가족과 함께 아우라지강을 찾는다면 따로 숙박지를 정할 것 없이 널찍한 강가에서 야영을 해도 좋다. 아우라지강을 보고 난 후에는 안쪽 구절리로 코스를 잡는다. 구절리 방면으로 곧장 들어가면 바로 신기계곡과 물한계곡이 만나는 지점이 나오고 노추산폭포도 찾을 수 있다.
노추산 가는 길은 아직 탄광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계곡 건너편으로 쏟아져 내리는 노추산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구절리의 오장폭포 오장폭포는 물줄기의 높이가 127m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라 한다.
또 여랑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구미정(0398-62-4724)도 빼놓지 말아야 할 코스. 구미정에서 내려다보는 특색있는 9가지 절경과 4km에 이르는 계곡이 볼 만하다. 이곳에서 42번 도로를 타고 백봉령을 넘으면 삼척 무릉계곡이 나타난다.
면 소재지에서 6km 떨어진 봉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구미정은 조선 숙종 때 공조 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생활 중 휴양하던 곳으로 주변에는 9가지 특색의 절경과 4km 정도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고, 구미 정자에 앉아 언덕 아래의 9가지 자연 경관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구미정은 단층 목조건물로 팔작기와지붕이다. 자연석 주초석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장 마루를 설치하였다. 고적대를 바라보는 암석 위에 주변의 경치를 전망할 수 있게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건축하였으며, 정자 내부에는 2칸에 걸쳐서 온돌 바닥의 벽체가 있는 방을 둔 보기 드문 양식이나 지금은 벽체가 없고 기둥만 남아있다. 아궁이와 굴뚝이 측면에 설치 되어 있었다. 온돌방은 천장이 고미반자이고 그 이외 부분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반자이다. 방의 출입문 위 상인방에 구미정 현판이 걸려있고 방 외부 우측에 구미 십팔경(九美 十八景)의 목록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구미정은 자연을 벗 삼으며 공부하기 위하여 온돌방을 배치한 특이한 예이며, 1946년 중수하였다.
▲구미정 전경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는 흔히 말해 산 좋고 물 좋은 곳들이 많다. 정선 소금강과 광대곡, 별어곡등과 곳곳에 마을 휴양지들이 절경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알려진 명성에 견주어 가장 산좋고 물좋을 곳은 구미정 계곡이 아닌가 싶다. 아우라지에서 멀지 않아 연계여행지로 딱 좋은 곳이다. 특히 야영을 겸한 정선여행을 준비한다면, 베이스 캠프로 구미정을 택하라고 반드시 권한다.
남한강의 상류인 골지천에서 최고의 경승지로 손꼽히는 곳. 9곳의 절경이 있다하여 구미동이라 이름 여졌으며, 그중에서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에 작은 정자를 짓고 구미정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구미정 에는 강을 가로질러 작은 철교가 놓여져 있는데, 그 아래로 시퍼렇게 흘러가는 계곡물이 바위와 어울려 이루어내는 경치가 일품일뿐 뿐만 아니라 물소리가 시름을 잊게 한다. 100여미터가 넘을 성 싶은 절벽을 그늘삼아 깊지도 얖지도 않은 물이 조약돌 강변을 흐르며 곳곳에 작은 호수를 만들고 있어 계곡 물놀이를하기에도 그만이다.
강변에서의 천렵과 강낚시가 잘 되는 곳일 뿐 아니라 정선 최고의 야영장이 설치되어 있어 오토 캠핑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우라지에서 차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어 아리랑의 고장을 찾아가는 연계여행지로 꼭 한번 들러볼만한 곳이다. 또한 구미정은 조선 숙종때 사정 공조참의를 역임하던 이자가 당시 노론파로 사색당파 싸움에 실망과 회의를 느껴 관직을 사직하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를 하면서 구미정을 짓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문화유적답사 코스로서도 가치가 높은 곳이다.
구미정의 이 괴암에서 추노, 선덕여왕 등 대박을 친 드라마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임계 봉산리에 있는 구미정
조선 숙종 때 공조 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생활 중 휴양하던 곳이다.
▲구미정은 주변에는 9가지 특색의 절경과 4km 정도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고, 구미 정자에 앉아 언덕 아래의 9가지 자연 경관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다.
◈9가지 美 ※ 어량, 전주, 반서, 층대, 평암, 등담, 취벽, 열수, 석지
♣어량: 폭포에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 위에 삿갓(통발)을 놓아 잡는 경치
♣ 전주: 밭두둑 (전원경치)
♣ 반서: 넓고 평평하게 된 큰 돌
♣ 층대: 층층이 된 절벽
♣석지: 구미정 뒷편 반석위에 생긴 작은 연못의 경치
♣평암 넓고 큰 바위
♣등담: 정자에 등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
♣ 취벽: 구미정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
♣열수: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는 듯이 뚫려 있는 바위구멍의 아름다움
◈덕산계곡(예림골) 강원도 정선. 이름만 들어도 아스라이 떠오르는 노스탤지어. 지그시 눈을 감아 턱 베개하면 산그림자 드리운 강가 자갈밭에 진을 치고 벌거숭이 무자맥질로 강 건너 콩, 감자 서리하여 삼굿을 하고 숯검정 칠갑한 얼굴로 강물에 원산폭격하여 물을 실컷 들이키면 '통통' 오동나무 소리나는 배꼽, 모래 둑 줄지어 선 뽕나무 가지 휘어 오디로 허기를 달래고 푸르죽죽한 입술로 까르르 웃던 그때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고향같은 덕우리 마을이 있다.
▲덕산기계곡 전경
우후죽순 석림을 에두른 덕우리 사이를 상모를 돌리듯 흐르는 동대천 어름에 피리 부는 산. 취적봉(728.3m)이 일필휘지로 거드름을 피운 모양새 또한 장관이다. 연산군의 네 세자가 이곳 버드내(유천리)에 유배되어 감자로 목숨을 연명하고, 피리를 불며 고향생각을 달래다가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여 취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취적봉 주위에는 빼어난 경치를 노래한 동계 12경 또는 덕우 8경이 있다.
낙모암은 덕우리 1반 백평마을 삼합수 강변에 모자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고, 제월대는 덕우리 1반 백평마을 강변에 암봉 사이로 달이 건너다니는 깎아지른 석봉을 이룬다. 구운병은 덕우리 1반 대촌마을 강변에 아홉 폭 병풍을 세워 놓은 듯한 기암이며, 옥순봉은 덕우리 대촌마을 강변에 상투를 틀어 올린 듯한 석봉이다. 이 봉우리를 옛날 마고할멈이 신을 삼아 신었다는 전설이 있다.
반선정은 덕우리 대촌마을 강변에 있는 정자터로 주변을 경치를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약 120여 년 전 일제 때 의병 이해남이 반선정을 헐고 그 자리에 자기 조상의 묘를 이장하니 대촌마을 사람들은 그의 서슬에 눌려 이를 제지하지 못하였다. 그후 대촌마을의 개들이 밤마다 반선정을 바라보며 짖어대니 기와집 9동이 불에 타고 이해남 일가도 패가망신 하였다고 전한다. 현재는 빈터에 묘를 썼던 흔적만 남아 있다.
운금장은 덕우리 2반 유천마을 남향에 있는 산으로 구름이 산봉우리 위로 피어 오르는 모습이 황홀하다. 백오담은 덕우리 유천마을 중앙에 있는 연못자리로 엣날 연못에 흰 까마귀가 서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욕심 많은 이가 명당이라 탐욕하여 이 연못을 메우고 그 터에 집을 지은 후 가세가 기울었고, 그후 아니 지금도 그집으로 이사가는 사람마다 집안이 패가 망신한다. 지금도 문짝이 떨어져 나간 폐가만 남아 있다.
취적대는 덕우리 유천마을 강변에 있는 석벽이다. 이 석벽 아래에 연산군의 네 세자가 피리를 불던 곳이라 취적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행들머리가 되는 424번과 429번 지방도가 만나는 덕우삼거리에 화암8경 안내푯말은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많이 붙어 있건만 이보다 더 멋진 덕우8경을 알리는 글씨는 글귀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으니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삼거리쉼터를 떠나 동대천에 걸친 하돌목교를 건너 제방을 따라 동대천을 거슬러 올라 붉은 벽돌 단층 슬라브집 마당을 지나 집 뒤 소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취적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낙맥이 길쭉하게 이어져 여기를 지나 동대천에 끝을 맺는 곳에는 음습한 협곡(석곡리)이 크게 입을 벌리고, 이쪽을 겨냥한 모양새는 풍수지리에 문외한 일지라도 으양의 형국에 무릎을 펴고 탄복하겠다. 용틀임하는 소나무에는 두루미가 서식하고 숲 속 넓은 터에는 무덤들이 즐비하다.
묘를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잠시 오르니 흡사 군사 방호벽처럼 산줄기를 파 놓은 곳이 나온다. 이곳 명당에 인재가 날 것이 두려워 일제가 바위를 깨고 흙을 퍼낸 만행의 흔적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 오르면 오를수록 또아리를 틀며 사행하는 동대천의 흐름이 잘 보인다.
사모바우, 일명 시계바우벽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간다. 덕우리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모자처럼 생겼는데 이 바위에 바위그림자가 없어지면 정각 12시가 된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이 바위가 정오를 알려주어 시계바우란 이름이 붙었다.
어디선가 끊어질 듯 흐르는 애잔한 피리소리가 저녁 연기 봄바람을 타고 들려 오는 듯하다.
덕우8경을 정선 5일장(2일,7일)과 연계하면 좋겠다. 덕우리 망루에서는 여름철 성수기에 쓰레기 수거비로 1인당 이천원씩 입장료를 받는다. 급수시설과 학습체험장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노인회에서 찰옥수수 메밀부침 감자부침 메밀전병 등의 먹거리도 성수기 때 판매한다.
마을, 산, 계곡, 강, 도로들에는 저마다 어울리는 지명을 갖고 있다. 덕산기 지명은 이들 중 어느 곳과도 연결되지 않는 신비로운 지명이다. 고양산을 끼고 도는 덕산기는 수량의 변화에 따라 고립된 오지마을로 산, 강, 계곡 ,도로가 시시각각 그 모습을 변화시킨다 .덕산기가 태고의 신비를 가진 신령스러운곳이라는 말은 태초부터의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볼수있기 때문인것 같다.
덕산기는 총연장 12km로 100m이상되는 층암절벽(뼝대)병풍으로 둘러싸여있으며, 중간부에 은둔의 땅인 덕산기마을, 대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있는 상류를 100m이상 되는 울창한 낙엽송지대와 바위너래지대를 형성하며, 옥빛자갈 위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덕산기 총연장 12km로 100m이상 되는 층암절벽(뼝대)병풍으로 둘러싸여있으며“ 레포츠의 천국 덕산기계곡 한여름 계곡을 가득 메운 눈이 부시도록 투명한 계곡물이서 족대질과 물놀이 여름날의 추억을 쌓다보면 어느새 계곡에 물이 줄어드는 가을, 겨울이 돌아온다. 덕산기는 거대한 자갈밭을 형성하여 황량한 사막으로 옷을 갈아입고 트레킹, MTB, 야생을 외치는 메니아들을 유혹한다. 봄: 작은 배낭을 둘러메고 가볍게 트래킹을 떠나자!! 산천에 널려있는 야생화가 우릴 맞이한다~ 여름: 세상 이보다 더 맑은 물이 있을까? 대자연이 내린 고귀한 선물을 맘껏 즐겨보자 가을: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면 조약돌 위를 MTB로 거침없이 달려보자!! 겨울: 조용히 세상을 내리는 함박눈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절벽마저 삼켜버린다
길은 없다. 협곡이라 계곡이 길이다. 흰색과 회색 자갈이 골의 여백을 메우고, 미녀의 목선을 완성하는 보석의 빛깔을 가진 물살이 흐른다. 그저 흐르지 않고 유치원 아이들마냥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빛이 풍부하게 드는 골이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다. 걸어 들어갈수록 길이 없어 더 좋은 골임을 느낀다. 골짜기로 드는 것은 사람인데 열리기는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낯선 곳에 온 긴장이나 두려움, 도시의 스트레스와 닫힌 마음이 걸을수록 스르르 열린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 덕산기계곡. TV 오락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정선읍내에서 10km가 안 될 정도로 가깝지만 TV에 소개되기 전에는 정선 사람들도 모를 정도로 숨겨진 오지였다. 여전히 오지란 말이 통하는 건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어서다.
이미 어두워졌지만 개의치 않고 덕산기로 간다. 국도에서 ‘덕산기계곡’ 간판을 따라 2km를 들어가자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 끝난다. 순도 100%의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도시의 불빛에 익숙한 이에게 공포감을 줄 정도로 순수한 어둠 속을 물소리가 가득 메웠다. 덕산기에선 물살을 여러 번 건너야 한다. 4월 말까지 남아 있던 지독한 잔설이 빗물에 녹아 내려오고 있다. 발을 담그면 뼈가 발가락부터 얼어붙어 올라왔다. 결국 원초적인 자연의 공세에 후퇴한다.
다음날 아침 덕산기로 간다. 골 입구의 콘크리트길은 평범한 시골풍경이다. 1.3km를 들어가자 1박2일을 촬영했다는 간판이 있는 민박집이다. 일반인들은 여기까지 왔다 간다. 그러나 덕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콘크리트길이 나있는 곳도 계곡을 지나는 곳은 다리 형태가 아니라 길 위로 물이 지나도록 되어 있다. 폭우에는 차도 사람도 고립된다. 길은 산으로 이어지지만 덕산기로 가려면 여기 차를 세우고 골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 강호동의 “1박2일”촬영지 -
2007년 여름“ 강호동의 1박2일”촬영지로 덕산기 유일의 민박집(물맑은 집)이 방영되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훈훈한 인심과 토종닭백숙의 진미를 맛볼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석탄수송의 거점에서 사계절 레포츠의 관문으로◈ -고한역(古汗驛)-
언제나 상쾌한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대는 만행재 고갯마루에서는 함백산과 태백산이 지척이다. 이 고갯마루와 함백산 사이의 고원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종류의 야생화가 철따라 피고 지는 산상화원이 펼쳐져 있다.
길이 103.8km의 태백선은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철도이다. 중앙선 제천역에서 갈라져 나와 영월, 함백, 고한, 태백 등을 거 쳐 백산역에서 영동선에 합류된다. 오늘날 중앙선, 영동선과 연결된 태백선은 고리 모양의 환상선을 이루지만, 처음 개통된 1955년 12월 31일에는 제천에서 영월까지 38.1km에 이르는 영월선만 완공되었다. 그 이후 1957년 3월에는 영월에서 함백까지의 22.6km, 1966년 1월에는 예미에서 고한까지의 30km, 1973년 10월에는 고한에서 태백까지의 15km, 그리고 1975년 12월에 태백에서 백산까지 9.3 km 구간이 완공됨에 따라 제천에서 백산까지 태백선의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태백선의 19개 역 중 하나인 고한역은 해발 705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기차역 가운데 추전역(해발 855m)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한역과 추전역 사이에는 백두대간의 굵은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정암터널이 뚫려 있다. 길이 4505m의 이 터널은 경부고속철도의 황학터널(9970m)과 전라선의 슬치터널(6128m)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철도터널로 유명했다.
이처럼 해발고도가 높고 평지도 거의 없는 강원도 내륙의 첩첩산중에 태백선 기찻길을 부설한 것은 오로지 무연탄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서였다. 고한읍 일대의 자연부락인 고토일, 물한, 소두문동, 두문동, 만항, 갈래 등의 마을에는 탄광개발 직전인 1950년대 중반까지도 총 780여 가구의 화전민들만 살던 오지였다. 그러다 태백선의 개통과 함께 본격적으로 탄광촌이 조성되자 외부로부터 유입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마침내 사북읍으로부터 분리되었던 1985년 당시의 고한읍 인구는 무려 3만2800여 명으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탄광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부터 고한읍의 인구와 고한역의 석탄수송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그리고 고한역에서는 2001년 12월 이후로 더 이상 석탄수송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한역 자체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강원도 첩첩산중을 헤치며 달리는 태백선 열차에 몸을 싣고 고한역을 오가는 길에 만나는 창 밖 풍광은 꿈결처럼 아름답다. 아찔할 정도로 깊은 골짜기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자락이 연이어 나타난다. 이처럼 하늘과 가까운 고지대의 철로를 달리는 태백선 열차는 ‘하늘열차’라고도 불린다.
고한역 앞에는 ‘가정의 행복까지 배팅하진 마십시오’라는 경구가 적힌 시계탑이 서 있다. 역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국내 유일의 내국인 전용카지노가 자리 잡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경구이다. 이곳 고한역은 폐광 이후 썰렁하거나 황량해진 태백선의 많은 역들과는 달리, 제법 활기가 느껴진다. 2001년에 개축했다는 역사 건물도 깔끔한데다가 하루에 상·하행선 각각 7~8회씩 정차하는 열차 이용객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는 덕택이다.
고한역 근처에는 하이원리조트, 만항재와 함백산, 정암사 등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여행명소가 많다. 그 중 하이원리조트는 폐광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강원랜드에서 조성했다는 대규모 종합리조트이다. 내국인 전용카지노뿐만 아니라 해발 1000m대에 위치한 골프장, 해발 1426m의 백운산 정상에서 하강하는 스키장,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음악분수, 360도로 회전하는 레스토랑 등의 다양한 레저, 위락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옛 탄광지대에 들어선 하이원리조트 주변에는 총길이 84km의 운탄길(석탄운반도로)이 사통팔달로 연결돼 있다. 울창한 숲을 지나고 전망 좋은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이 길은 MTB 하이킹, 트레킹, 산악마라톤, ATV(4륜오토바이) 등의 산악레포츠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한 해발1100m대의 하이원호텔에서 백운산 정상(1426m)까지는 1시간 30분(편도) 가량 소요되는 등산코스도 개설돼 있다.
고한역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만항재(1,330m)는 함백산(1,573m)에서 태백산(1,567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우람한 등줄기를 타고 넘는 고개이다. 하이원리조트 골프장에서 운탄길을 타고 동쪽으로 40여 분쯤 달려도 만항재 정상에 당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운탄길은 전구간이 비포장 흙길인데다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한 벼랑 구간도 있으므로 지프형 승용차가 아니면 진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언제나 상쾌한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대는 만행재 고갯마루에서는 함백산과 태백산이 지척이다. 이 고갯마루와 함백산 사이의 고원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종류의 야생화가 철따라 피고 지는 산상화원이 펼쳐져 있다. 특히 만항재 일대에는 오붓한 화원탐방로가 조성돼 있어서 느긋하게 소요하며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함백산 정상 아래의 산등성이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간다는 주목의 군락지도 있다.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고 서 있는 아름드리 주목의 자태가 불끈불끈 치솟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만큼이나 우람하고 당당해 보인다. 사방으로 시야가 훤히 트인 함백산 정상은 천혜의 전망대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영월, 정선, 태백의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시야를 가득 채운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조차도 굽어보일 정도로 눈맛이 시원하다. 고한역과 고한읍내, 하이원리조트까지도 또렷이 보이고, 운이 좋으면 장엄한 해돋이와 화려한 일몰까지도 감상할 수 있다.
함백산의 북동쪽 기슭에는 천년고찰 정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정암사는 오대산 중대,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불전으로 이곳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두는 대신에 밖에다 계단(戒壇)을 설치하거나 사리탑을 세운다.
정암사 적멸보궁 뒤쪽의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진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도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높이 9m의 칠층모전석탑인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갖고 온 마노석으로 쌓았다고 한다. 건축 수법도 정교하고 전체적인 조형미와 단아한 기품이 두드러져 보이는 탑이다. 게다가 이 탑이 위치한 산중턱에서는 정암사 주변의 비좁은 골짜기와 육중한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마다 단풍잎을 모두 떨군 만추에도 절집 주변의 숲은 여전히 짙은 초록빛을 띤다. 사시사철 푸른 전나무 고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잠시 두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전나무숲 특유의 청징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정선 아리랑의 유래 우리나라 영서·영동지방에 분포(分布)되어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 고장 민요 정선아리랑은 일명 아라리라 부르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이 고장에 널리 불리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인 조선 초기라 전한다. 당시 고려 왕조를 섬기던 선비들 가운데 불사이군 (不事二君)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던 72현 가운데 7현은 정선 (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어 일생 동안 산 나물을 뜯어 먹고 생활하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을 사모하고 충절(忠節)을 맹세하였다. 그들이 입지 시절의 회상과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心 情)을 한시로 읊은 것 중 정선 아리랑 가사로 인용된 것이 많다.
7현들이 이러한 비통(悲痛)한 심정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알려 주면서 지방에 구전되던 토착요에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지고 있는 아리랑 가락이며. 그 후 사화(士禍)로 낙향한 선비들과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애창하였고 전란과 폭정시(暴政時)에 고달픈 민성(民聲)을 푸념하며 내려오다가 『아리랑. 아리랑』하는 음율(후렴구)을 붙여 부르 게 된 것은 조선조 후기 (또는 경복궁 중수시)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라없는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실어 스스로를 달래 왔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사상(思想)이 담긴 노래는 탄압(彈壓)됨에 따라 애정과 남·여 관계의 정한(情恨)을 소재로 한 새로운 노래가 많이 불리어 졌으며. 예로부터 전하여 지는 노래와 함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독특한 가락을 지닌 민요(民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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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이용시
1.정선에서 임계행 버스를 타고 송원 삼거리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아야 한다. 2.임계에서 봉정리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해 구미정 입구에서 내리면된다.
* 자가용 이용시
1.영동고속도로->진부ic->정선방향->오대천->나전삼거리->동해임계방향으로 좌회전-> 북평->여량교->아우라지->큰너그미재->송원동 삼거리->우회전-> 송원분교와 마을 통과->바로 만나는 강입구의 작은 삼거리에서 외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면 율곡서당보임-> 구미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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