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79.2% 월드컵 보던 새벽…신사동 단란주점서 벌어진 참혹한 칼부림[뉴스속오늘]
김미루 기자별 스토리 • 22분 전
시청률 79.2% 월드컵 보던 새벽…신사동 단란주점서 벌어진 참혹한 칼부림[뉴스속오늘]© MoneyToday
1998년 6월14일 오전 2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을 지나가던 모범택시기사가 한 건물 지하 1층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피를 흘리며 기어 나오는 여성을 목격했다.
여성이 빠져나온 곳은 '사바이 단란주점'. 술을 마시던 남성 3명이 강도로 돌변해 주점 주인 A씨(41·여)와 손님 B싸(38·택시기사), 손님 C씨(41·여) 등 3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여성도 중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죽은 체해 살아남았다.
현장에는 수많은 지문과 발자국, 혈흔은 물론 목격자까지 있었지만 남성 3명의 행방을 끝내 찾지 못했다. 법의학자들은 가장 잔인한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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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 안 결박된 채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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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를 받고 주점으로 출동한 경찰들은 주점의 불을 켜고 경악했다. 화장실 세면대는 배수구를 막은 흔적과 함께 물이 틀어져 있었다. 세면대에서 넘친 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다량의 혈흔과 섞여 흥건했다.
한 방에는 30~40대 남녀가 결박된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곳 여주인과 각각 온 두 명의 손님이었다. 택시기사 B씨의 시신에는 칼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이 17군데 발견됐다. 여주인 A씨는 허벅지와 등이 깊게 찔렸으며 입 오른쪽이 귀까지 찢어져 13㎝나 되는 상처가 있었다.
또 여자 손님 C씨는 목이 반쯤 잘려서 사망했다. 이마에는 발로 짓밟힌 듯한 신발 자국이 선명했다. 당시 피해자들의 모습은 수많은 시신을 봐온 법의학자 눈에도 지나치게 잔인하게 훼손된 모습이었다고 전해졌다.
경찰 수사 결과 피해자들의 금목걸이와 금팔찌,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이 없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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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생존자가 들은 말 "퇴직당해 같은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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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79.2% 월드컵 보던 새벽…신사동 단란주점서 벌어진 참혹한 칼부림[뉴스속오늘]© MoneyToday
살해된 여자 손님의 일행이었던 생존자 D씨(41·여)는 흉기에 목을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다만 택시기사에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돼 살아남았다.
이 생존자는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갑자기 옆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들이 여주인을 끌고 들어와 모두 엎드리게 한 뒤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자기 혼자 식구를 부양한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남성 일행이 '우리도 퇴직당해 같은 처지다'란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들은 주점에서 노래방 기계로 '흔적' '장난감 병정' '문밖에 있는 그대' '준비 없는 이별' '하나의 사랑'을 불렀다.
범인들은 현장에 칼집을 흘리고 갔는데 보통 특수부대 요원들이나 간첩들이 이용했던 단도 중 하나라고 알려졌다. 사건 현장 바닥에는 고무 골무도 떨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전자제품 제조 공장이나 제본소 노동자로 추정되기도 했다.
또 의아한 부분은 바닥에 떨어진 피해자들의 머리카락 뭉치였다. 금품을 훔쳐 빨리 달아나야 할 범인들이 시간을 들여 다량의 머리카락을 자른 것. 흉기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감정적 범행의 흔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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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중계방송 도중…1시간 동안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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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사건 전날 밤까지 주점에 있었다가 3명의 범인을 손님으로 받은 주점 여주인의 언니 E씨였다. E씨는 사고 당시에는 현장에 없었다.
E씨의 증언에 따르면 19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 경기 시작을 2시간여 앞둔 6월13일 밤 10시쯤 3명의 20대 남성이 주점을 찾았다.
이어 밤 10시20분쯤 인근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C씨가 지인 D씨와 함께 두 번째 손님으로 주점에 왔다. 밤 11시50분쯤 동생인 여주인 A씨가 출근했다. 6월14일 오전 0시쯤 동생 여주인의 지인이자 택시기사인 B씨가 월드컵 축구중계를 보기 위해 주점에 들렀다.
월드컵 경기 전반전이 끝난 6월14일 오전 1시30분쯤, 언니는 퇴근 후 가게로 전화를 걸어 동생과 통화했다. 범행은 1998년 6월14일 오전 1시30분에서 경찰이 사건 신고를 접수한 2시30분 사이 일어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도주로를 파악했다. 다른 목격자도 찾아 나섰지만 월드컵 경기 중이어서 행인 자체가 없었다. 이날 멕시코전은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79.2%)을 기록한 경기로 전해진다.
주점에서는 39개나 되는 지문이 발견됐지만 감정이 불가능한 지문이 대부분이었다. 지문이 묻었을 만한 컵과 접시들은 범인들이 도주 전 이미 산산조각 냈다. 경찰력 2만여명을 이 사건에 투입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고 2013년 6월14일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들은 이미 퇴직했지만 공소시효가 끝난 이 사건을 여전히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수사에 참여했던 이삼재 전 총경은 "그 이후로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