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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못 보면 거지왕 된다>의 줄거리:
세상은 온통 거지왕들로 들끓고 있습니다. 거지왕이란 거지중에 우두머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거지로서 구걸하는 내용이 왕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시각장애인 모두가 바로 거지왕들입니다. 이 세상가치들로 굶주린 마음을 채우려는 모든 재벌들과 대통령들 조차 모두 거지왕입니다. 천국 못보면 맹인이고 맹인 되면 세상에서 구걸합니다.
못 보면 거지 왕 된다
(마20:29~34)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못 보면 거지 왕 된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못 보면 거지 왕 된다’
오늘이 27일입니다 여러분, 이제 2011년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지요.
주일날이 성탄절이었는데, 24일 토요일 저녁때 중국의 무한 시의 중앙로인 한강로에 한 남자분이 등장을 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켰습니다.
머리에는 빨간 염색을 하고 그리고 귀는 아주 휘황찬란하고 커다란 귀걸이로 번쩍거리고 있고 그리고 전신은 유명 브랜드의 정장으로 옷을 입은 한 신사가 명찰을 크게 가슴팍에 달고 있었습니다.
그 명찰에는 뭐라고 쓰여 있느냐 하면 ‘호북거지왕’, 거지 왕이라는 거예요.
무한 시, 중국 무한 시에서 장기를 두는 기사 분인데, 장기를 두기 위해 중국 전국을 돌아다닐 때, 이동하기 위해서 드는 교통비를 다 구걸해서 충당하는 사람입니다.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때도 무한 시 한강로에 등장한 이유가 뭐냐 하면, 해남도. 해남도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어요. 해남도로 가기 위한 비행기 값을 구걸하기 위해서 ‘호북거지왕’ 이라고 하는 명찰을 달고 등장을 했습니다.
이게 무한완보라는 신문에 나왔는데, 그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니까, 거지왕이라고 해서 무리들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거지들로 이루어진 무리들을 끌고 다니는 분이 아니고, 혼자 있는데 거지왕이라 그래요.
그래서 제가 추측하기에는, 아! 이분이 당신 자신을 거지왕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구걸의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걸의 스케일이 달라요. 비행기 티켓을 구걸합니다.
대단한 구걸 이지요, 거지왕이라고 할 만하지요.
무리를 끌고 다녀서 거지왕이 될 수도 있지만, 구걸하는 그 구걸의 스케일이 하도 크니까 거지왕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회 속에 살고 있고 세상 속에 살고 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안에 살고 있고, 뭐 미국의 뉴욕사회 아니면 미국의 LA라고 하는 사회 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 가치라 그러지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돈 아닙니까?
건강이고 돈이고 그리고 승진이고 멋진 남자와 여자와 결혼하는 것, 자식들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거… 이거 다 세상에서 좋은 것들입니다.
이런 세상의 좋은 것들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경주를 뛴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경주를 의식한 주님의 말씀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말이에요.
이러한 경주, 이게 바로 ‘거지왕 경주’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얻어서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내 마음의 배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그러한 삶의 태도, 거지왕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스케일이 크니까, 단순히 한 끼 먹으려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스케일이 비행기 티켓만큼 커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상 가치들을 향해서 대통령 노릇을 한다, 왕중왕이지요. 거지왕 중 왕입니다.
재벌들, 거지왕들 중에 왕입니다. 왕족, King of Kings 에요.
여러분! 오늘 본문은 두 맹인의 치유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 사건을 단순히 ‘시각장애인들이 시각을 회복했다’라고만 본다면 너무 생뚱맞은 이해에요.
지금 예수님께서는 앞뒤전후 맥락 전체가 천국을 주제로 하고 있는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더군다나 이때는 어떤 때냐,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클라이맥스에 접어듭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시는 때입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에요.
예루살렘을 향해 가서 그 다음 장 21장에 보면은, 나귀를 타고 종려나무가지로 환영을 하고 호산나라고 부르는 군중들을 뚫고 예루살렘을 입성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대혁명적인 그 당시 유대사회가 발칵 뒤집어질 만한 일을 행하십니다. 성전 정화사건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 때에, 천국을 가져오셨고, 천국 가는 길을 여시기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수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을 때에 두 맹인을 고친 사건을, 단순히 ‘맹인들이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고 나무라는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강청했기 때문에 이들은 치유의 기적을 은혜로 맛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은 진짜 어폐가 있는 거지요.
두 맹인이 당신을 향하여 소리 지르며 고쳐달라고 다가오는 그 현실 속에서, 주님이 보고 계시는 것이 있었기에 마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 글을 지금 이 맥락 안에 집어넣고 있는 겁니다.
모든 복음서가 다 기록하고 있는 게 조금씩 조금씩 달라요, 내용이.
그러나 그 다른 것은 그때 가서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 이 마태가 이 글을 이 맥락 속에 집어넣은 것은,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 것을 성령의 감동을 통해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뭘 보고 계신다는 겁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물어 보세요,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제자들이 사람들이 막 꾸짖습니다, ‘지금 왕의 대관식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가고 있는데, 아니 맹인들이 다 무엇이냐? 왜 너희들이 이 판에 끼어들어 소란을 피우느냐’ 하고 꾸짖었던 것 같아요.
이때 주님께서 그들이 아무리 사람들이 꾸짖어도 그칠 줄 모르니까 그들을 불러 세우고 물어 보십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참, 이 질문이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불필요한 질문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시각장애인들이지만은 이들이 원하는 게, 눈 뜨는 게 아닌 경우가 더 많다는 얘깁니다.
이 당시 유대사회에서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의 생계유지의 유일한 방법은 구걸이었습니다, 구걸.
요즘처럼 시각장애인들도 시각이 정상인들 못지않게 자신의 인격과 자신의 어떤 장점과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가면서 어엿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곧 운명적으로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거지가 되어서 구걸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강하게 부르며 도움을 요청할 때에 얼마든지 유대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돈을 얻겠다고 구걸하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르시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 시키시며 던지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 그럽니다. 이 두 맹인에게서 무엇을 보고 계셨을까요?
방금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가 와서 예수님의 이종 사촌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께서 나라를 회복해서 왕으로 등극하실 때에, 영의정 좌의정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른 제자들이 화가 나고 분을 냅니다. 그래서 서로 싸웁니다.
이 모~든 모습 그리고 두 맹인의 현실, 주님께서는 그 사실이 오버랩 되는 거예요.
세베대의 아들들도 그렇고 세베대의 아내 당신의 이모인 살로메도 그렇고 그들과 싸우는 제자들도 그렇고,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계급, 높은 자리 그것을 놓고 서로 아옹다옹하며 싸우는 그 모습들이, 이 세상의 가치를 구걸하고 있는 천국을 못 보는, 천국에 대해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천국을 못 보기 때문에 구걸해야만 하는, 유대사회에서 그렇지 않습니까? 맹인들은 구걸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을 못 보는 맹인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하는 거지왕들로 보였다는 거예요.
왜 거지왕들로 보입니까?
그 구걸의 규모가 달라요, 구걸의 스케일이 달라요. 한 나라의 영의정과 좌의정이 되겠다는 겁니다, 그 자리를 놓고 12제자가 싸웁니다,
그 자리를 놓고 이모가 선수 칩니다.
그러한 모~든 상태가, 두 맹인의 상태와 똑같이 여겨지고 오버랩 되고 있다는 겁니다.
눈앞에 다가온 천국, 코앞에 놓여 진 천국, 이 천국을 못 봤기 때문에 돈이라고 하는 것을 구걸하고 있고, 높은 자리라는 것을 구걸하고 있고, 명문대학을 구걸하고 있고, 건강을 구걸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로 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하는 구걸하는 맹인들이 되어 버렸다고 주님께서 보시면서 불쌍하게 여기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최근에 나온 책이 한 권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라고 하는 책인데,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이거 누가 쓴 거냐 하면, 중국 3대 명문대학 중에 하나인 상하이 푸단 대학이 있어요. 그 곳에 약관 30세로 교수가 된 위지안이라고 하는 여자 분이 쓴 책이에요.
그 책이 나온 게 금년인데, 최근에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금년 4월에.
2009년에 암 말기 판정으로 1년 6개월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생을 선고 받고 살다가 금년 4월에 돌아가셨어요.
이 분이 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 6개월 동안에 금년 4월 돌아가시기까지 자기의 블로그에다가 자기가 30년 동안 앞만 보고 전력질주 해 왔던 인생에서 놓친 것들에 대해서 인생의 종점에 서서 그 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 생각해 내며 올린 글들을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그 분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여러분.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그리고 이분은 삶을 경주마로 비유 합니다, 눈을 가리고 앞만 보고 뛰는 경주마.
그래서 ‘앞을 보고 전력질주 하는 대신에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
자! 이게 다 무슨 말일 수 있을까요?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을 갖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며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계신 하늘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를 얻으려고 하는 거지왕들이 되기 위한 경주에서 일등하기 위해 전력질주하지 말고 내 눈앞에 내 코앞에 와 있는 천국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거예요.
이 분의 말을 우리의 맥락으로 가져오면 그렇다는 겁니다.
천국은 나중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는 것이고 지금 소유하는 것입니다.
근데 주님이 보실 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어 버렸어요, 천국에 대해맹인이 되어 버렸어요.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면 유대사회에서 맹인 인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구걸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면, 이 세상에서 구걸하며 사는 사람 밖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 세상의 가치들을 가지고 배를 채우려고 하는, 그런 거지왕들이 된다는 겁니다.
대통령입니까? 근데 그 대통령이 이 세상의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자라면 그건 거지왕입니다.
재벌입니까? 근데 그 재벌이 결국은 돈이라고 하는 가치로 내 배의 만족을 채우려고 한다 그러면 거지왕입니다.
주님의 재정적인 측면에서만 그 형편, 주님의 형편을 살펴보면 두 맹인이 구걸하면서 먹고 사는 형편과 별 다를 바가 없어요, 주님께서 이들을 불쌍하게 여길 처지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불쌍히 여기는 이유는, 두 맹인의 형편에서 인류전체의 형편을 오버랩하며 보고 계시는 것이에요.
천국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들을 길거리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인 줄 모르고, 그것이 오물인줄 모르고, 불량식품인줄 모르고 그것들을 구걸하며 그것들로 배 채우려 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 어제 그런 얘기 했습니다, 물과 기름 얘기.
섬김이라는 것이 섬김을 가르친다고 섬김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천국을 마음이 갖게 되면 이 세상의 가치들이 내 마음에 물과 기름 같은 관계가 되어서 더 이상 갖고 싶은 게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로 인해서 이 세상에서 얻고 싶고 도움 받고 싶은 게 없게 되기 때문에 그를 섬기는 자의 자리가 되고, 거꾸로 이 세상을 먼저 머금게 되어 버리면 천국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기름과 물처럼 겉돌고 허탄한 얘기로 들릴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억압하고 속이고 꾀고 아첨해서라도 그 사람을 이용해서 이 세상의 가치들로 나를 채우려는 거지왕들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왜 천국과 세상의 가치는 서로 물과 기름 같을까요.
물은 밀도가 1이에요, 기름은 밀도가 0.8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장력이 달라요.
물은 물끼리 서로 1이라는 힘으로 끌어들이고 붙어있다 그러면, 기름은 서로 붙어있는 힘이 0.8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섞이지 않는 거예요.
천국을 마음에 갖게 되면 천국의 밀도와 이 세상에 좋다고 하는 것들, 건강이나 돈이나 출세나 이런 것의 밀도가 달라요.
그러므로 천국으로 마음이 지배돼 있는 사람은 이걸 빨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두 맹인처럼 천국을 못 볼 때, 이 세상의 것들을 배를 채워서, 구걸해서 배를 채우려고 하는…
한 가지 보여주는 게 있어요, 본문이.
모두가 다 그러한 맹인들의 처지에서 출발하는데, ‘무엇을 네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물어보십니다,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돈 좀 벌기를 원합니다’ 또 구걸하는 거에요,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또 구걸하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또 구걸하는 겁니다.
왜 거지근성을 못 버리는 겁니까, 주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천국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좀 대답하자 이겁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그 천국, 보좌를 보기를 원합니다.’
위지안의 말대로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이다 미루지를 말고, 지금 천국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 이게 사랑 아닙니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여러분 대답하세요! 빨리 대답하세요!.
내년에는 돈 잘 벌기를 원한다, 내년에는 건강하기를 원한다, 맨~날 새해 소원을 물어보면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 잘 되기를 원한다, 화목하기를 원한다, 이런 것만 얘기하는 거예요.
전부 거지왕들이에요 거지왕들.
구걸하는 스케일이 남달라요, 사업이 잘되기를 원한다, 이게 거지가 원하는 겁니까?
거지왕이나 원하는 것이지.
주님의 십자가로 순간순간 고개를 들고 치밀어 올라오는 거지근성을 죽입시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거예요, 이 세상의 가치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소원이 생길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이 거지 근성을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소원하는 힘을 환전해요.
이 맹인들이 옆의 사람들이 아무리 꾸짖어도 굴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여’ 부르고 결국은 뭘 원하느냐 할 때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아무리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천국을 보기를 원한다는 소원을 강렬하게 소망으로 표현하면서 기다리자 이겁니다, 외치자 이겁니다 천국보기를 원한다고.
천국을 본 자라야만이,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도 바르게 볼 수 있고, 바르게 눈을 뜰 수 있고 내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현실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천국을 보고 난 뒤에라야 바르게 깨닫고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로 세상의 가치들을 탐하는 모든 거지근성을 죽이고, 하늘만을 보기를 소망하다가 기어코 은혜를 입어 하늘을 보고, 이 땅의 모든 현실도 진짜로 보고 살아갈 수 있는 천국백성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천국을 못 봤기 때문에 거지왕이 되어 이 세상의 가치를 구걸하는 삶을 중단케 하시고 천국보고 배불러 섬기며 하늘의 복을 나눠주며 사는 복의 근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천국을 안다면 하나님만이 줄수있느 최고의것을 구하는 거지왕이 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