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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Bhayabheravasutta(M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바라문 자닛쏘니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3. 한 쪽으로 물러앉아 바라문 자닛쏘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바라문] “존자 고따마여,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존자 고따마께 귀의하여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자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안내하는 자입니까? 또한 그 사람들은 존자 고따마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까?”
4.[세존]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은 나에게 귀의하여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자이며, 나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나는 그들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은 나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다.”
5.[바라문] “존자 고따마여, 숲 속 우거진 숲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여읨[paviveka]을 실천하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6.[세존]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숲 속 우거진 숲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실천하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7. 바라문이여, 내가 아직 깨닫기 전에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새김을 확립하고 이와 같이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실천하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즐기기 어렵다. 생각하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Mayhampi kho, brāhmaṇ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durabhisambhavāni hi kh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8.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신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isuddhakāyakamman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parisuddhakāyakamman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aparisuddhakāyakamman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parisuddhakāyakammantohamasmi. Ye hi vo ariyā parisuddhakāyakamman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parisuddhakāyakamm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9.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aparisuddhavacīkammantā]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언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0.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aparisuddhamanokammantā]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정신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생활[생계]을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생활[생계]을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aparisuddhājīv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생활[생계]을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생활[생계]을 청정하게 한다. 나는 생활[생계]을 청정하게 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생활[생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단은 번역에 누락되어 있는 부분을 채워 넣었습니다.)
11.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탐욕스럽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탐하여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탐욕스럽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탐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abhijjhālukāmesutibbasārāgasandosahetu]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탐욕스럽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탐하며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탐욕을 여읜다[anabhijjhālūhamasmi]. 나는 탐욕을 여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탐욕을 여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2.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분노의 마음과 증오의 의도를 가지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분노의 마음과 증오의 의도를 가진 것이 원인이 되어[byāpannacittapaduṭṭhamanasaṅkappasandosahetu]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분노의 마음과 증오의 의도를 가지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애의 마음을 지닌다[mettacittohamasmi]. 나는 자애의 마음을 지니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애로운 마음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3.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것이 원인이 되어[thinamiddhapariyuṭṭhānasandosahetu]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해태와 혼침을 떨쳐버린다[vigatathinamiddhohamasmi]. 나는 해태와 혼침을 떨쳐버리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해태와 혼침을 떨쳐버린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4.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흥분하여 마음이 불안정하게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흥분하고 마음이 불안정한 것이 원인이 되어[uddhataavūpasantacittasandosahetu]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흥분하여 마음이 불안정하게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성취한다[vūpasantacittohamasmi]. 나는 마음의 안정을 성취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마음의 안정을 성취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5.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의혹을 갖고 의심으로 가득 차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의혹을 갖고 의심으로 가득찬 것이 원인이 되어[kaṅkhivicikicchisandosahetu]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의혹을 갖고 의심으로 가득 차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의심을 떨쳐버린다[tiṇṇavicikicchohamasmi]. 나는 의심을 떨쳐버리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의심을 떨쳐버린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6.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한 것이 원인이 되어[attukkaṃsanaparavambhan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다[anattukkaṃsako aparavambhīhamasmi].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7.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전율하여 두려워하며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전율하여 두려워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chambhibhīrukajātik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전율하여 두려워하며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두려움을 여읜다[vigatalomahaṃsohamasmi]. 나는 두려움을 여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겁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8.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바라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바란 것이 원인이 되어[lābhasakkārasilokanikāman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바라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바램을 여읜다[appicchohamasmi]. 나는 바램을 여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바램을 여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9.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게을러 정진 없이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게을러 정진 없는 것이 원인이 되어[kusītahīnavīriy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게을러 정진 없이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정진한다[āraddhavīriyohamasmi]. 나는 열심히 정진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20.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면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muṭṭhassatiasampajān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면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새김을 확립한다[upaṭṭhitassatihamasmi]. 나는 새김을 확립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새김이 확립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21.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채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것이 원인이 되어[asamāhitavibbhantacitt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채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집중을 성취한다[samādhisampannohamasmi]. 나는 집중을 성취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집중을 성취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22.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되어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된 것이 원인이 되어[duppaññaeḷamūgasandosahetu]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되어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지혜를 갖춘다[paññāsampannohamasmi]. 나는 지혜를 갖추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지혜를 갖춘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23.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내가 특정한 밤, 즉 달이 떠있는 14일, 15일 내지 8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면 어떨까? 아마도 그 두려움과 공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그 후 특정한 밤, 달이 떠있는 십사 일, 십오 일 내지 팔 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냈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그 곳에서 지낼 때에 맹수가 접근하고 공작새가 나뭇조각을 떨어뜨리고 바람이 낙엽더미를 흩날려 보냈습니다. 그 때 나는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마침 나에게 ‘왜 내가 반드시 두려움을 기대해야 하는가?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4. 바라문이여, 내가 걷고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걸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서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서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서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앉아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앉아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누워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누워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습니다.
25. 바라문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낮을 밤으로 인식하고 밤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그들 성직자들이나 수행자들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나는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합니다[Ahaṃ kho pana, brāhmaṇa, rattiṃyeva samānaṃ rattīti sañjānāmi, divāyeva samānaṃ divāti sañjānāmi.]. 바라문이여, 누군가에 대해 ‘미혹을 여읜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라고 올바로 말한다면 바라문이여, ‘미혹을 여읜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고 말하는 그것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26. 참으로 바라문이여, 나는 나태하지 않게 열심히 정진을 도모했고, 혼란스럽지 않게 새김을 확립했고, 격동하지 않게 몸을 고요히 했고, 마음을 하나로 집중했습니다.
27. 바라문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28. 바라문이여, 나는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29. 바라문이여,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sati를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sati있는 행복한 삶이라고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30. 바라문이여,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sati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31.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117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관하여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고, 나는 그 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고 기억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자신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했습니다.
32.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야에 도달한 첫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33.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뭇삶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삶들에 관하여 ‘어떤 뭇삶들은 신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뭇삶들은 신체적으로 선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선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해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삶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34.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야에 도달한 두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35.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고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36.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되었고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는 앎이 일어났으며, 나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37.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야에 도달한 세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38. 그런데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아직까지도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바라문이여, 그대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는 것은 거기에서 두 가지 유익한 점을 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자신의 현세의 행복한 삶을 보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느낍니다[attano ca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ṃ sampassamāno, pacchimañca janataṃ anukampamāno].
39.[바라문] “세존이신 고따마께서 거룩한 님이시고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시므로 참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해피스님글 펌-----
M119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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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이익
28. “수행승들이여, 또한 누구든지 몸에 대한 새김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닦고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만들고 확립하고 구현시켜 훌륭하게 성취하면, 이와 같은 열 가지 공덕을 기대할 수 있다.
열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159.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dasānisaṃsā pāṭikaṅkhā.
32.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반복해서 실천하고 닦고 거듭거듭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확립하고 강화하고 노력할 때 이 열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1) 쾌와 불쾌를 극복한다. 불쾌가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게 하고 불쾌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한다.
Aratiratisaho hoti, na ca taṃ arati sahati, uppannaṃ aratiṃ abhibhuyya viharati.
33. (1) "그는 싫어함과 좋아함을 극복한다.
싫어함이 그를 사로 잡지 못하며, 싫어함이 일어나는 족족 이를 극복하여 머문다."
2)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한다.
두려움과 공포가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게 하고,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한다.
‘‘Bhayabheravasaho hoti, na ca taṃ bhayabheravaṃ sahati, uppannaṃ bhayabheravaṃ abhibhuyya viharati.
34. (2) "그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한다.
두려움이나 공포가 그를 사로 잡지 못하며, 두려움이나 공포가 일어나는 족족 이를 극복하여 머문다."
3)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등에, 모기, 바람, 열기, 밤과의 접촉을 견디어내고,
잘못 표현되고 악의적으로 표현된 말을 견디어 낼 수 있고,
괴롭고 아프고 저리고 찌르고 불쾌하고 치명적인 신체적인 느낌이 생겨난 것을 참아낸다.
‘‘Khamo hoti sītassa uṇhassa jighacchāya pipāsāya ḍaṃ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ānaṃ
duruttānaṃ durāgatānaṃ vacanapathānaṃ,
uppannānaṃ sārīrikānaṃ vedanānaṃ dukkhānaṃ tibbānaṃ kharānaṃ
kaṭukānaṃ asātānaṃ amanāpānaṃ pāṇaharānaṃ adhivāsakajātiko hoti.
35. (3) "그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품과 목마름과, 날파리 ‧ 모기 ‧ 바람 ‧ 뙤약볕 ‧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쟎은 말들과, 몸에서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M125http://cafe.daum.net/pali-study/9akK/277>
4)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난관이나 어려움이 없이 보다 높은 마음을 구성하는
네 가지 선정을 얻어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Catunnaṃ jhānānaṃ ābhicetasikānaṃ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ṃ nikāmalābhī hoti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36. (4) "그는 바로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禪을 원한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게 된다."
5) 여러 가지 신통의 종류를 체험한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ānubhoti.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ṃ…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37. (5) "그는 여러가지 신통변화를 얻는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를 발한다[神足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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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 역『맛지마 니까야』 제1장 근본법문의 품 -
M004.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Bhayabheravasutta)
MN 4
Bhayabherava
MN i 16
♦ 34.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tha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sārāṇīyaṃ (sī. syā. pī.)}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yeme, bho gotama, kulaputtā bhavantaṃ got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bhavaṃ tesaṃ gotamo pubbaṅgamo, bhavaṃ tesaṃ gotamo bahukāro, bhavaṃ tesaṃ gotamo samādapetā {samādāpetā (?)}; bhoto ca pana gotamassa sā janatā diṭṭhānugatiṃ āpajjatī”ti.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바라문 자눗쏘니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3. 한 쪽으로 물러앉아 바라문 자눗쏘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존자 고따마여,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존자 고따마께 귀의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돕는 사람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입니까? 또한 그 사람들은 존자 고따마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까?”
“evametaṃ, brāhmaṇa, evametaṃ, brāhmaṇa! ye te, brāhmaṇa,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ahaṃ tesaṃ pubbaṅgamo, ahaṃ tesaṃ bahukāro, ahaṃ tesaṃ samādapetā; mama ca pana sā janatā diṭṭhānugatiṃ āpajjatī”ti.
4.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은 나에게 귀의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며, 나는 그들을 돕는 사람이며, 나는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은 나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다.”
“durabhisambhavāni hi kho, bho gotama,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5. “존자 고따마여, 우거진 숲의 숲 속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숲에서의 수행은 집중을 얻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evametaṃ, brāhmaṇa, evametaṃ, brāhmaṇa! durabhisambhavāni hi kho, brāhmaṇa,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 35. “mayhampi kho, brāhmaṇ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durabhisambhavāni hi kh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6.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숲속 우거진 숲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숲에서의 수행은 집중을 얻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아직 깨닫기 전에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새김을 확립하고 이와 같이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숲에서의 수행은 집중을 얻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isuddhakāyakamman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parisuddhakāyakamman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aparisuddhakāyakamman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parisuddhakāyakammantohamasmi. ye hi vo ariyā parisuddhakāyakamman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parisuddhakāyakamm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7.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신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신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 36.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isuddhavacīkammantā ... pe ... aparisuddhamanokammantā ... pe ... aparisuddhājīv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parisuddhājīv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aparisuddhājīv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parisuddhājīvohamasmi. ye hi vo ariyā parisuddhājīv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parisuddhājīv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8.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언어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언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9.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정신적 행위를 청정하게 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정신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0. +~ 두루 청정한 삶으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두루 청정한 삶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37.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bhijjhālū kāmesu tibbasārāg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bhijjhālukāmesutibbasārāg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abhijjhālu kāmesu tibbasārāg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anabhijjhālūhamasmi. ye hi vo ariyā anabhijjhāl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anabhijjhālu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38.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byāpannacittā paduṭṭhamanasaṅkapp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byāpannacittapaduṭṭhamanasaṅkapp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byāpannacitto paduṭṭhamanasaṅkapp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mettacittohamasmi. ye hi vo ariyā met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mettacitt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11.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탐욕스럽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탐하며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탐욕스럽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탐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탐욕스럽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탐하며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탐욕을 버리고 멀리 떠난다. 나는 탐욕을 버리고 멀리 떠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탐욕을 버리고 멀리 떠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2.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분노의 마음과 증오의 의도를 가지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분노의 마음과 증오의 의도를 가진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분노의 마음과 증오의 의도를 가지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애의 마음을 지닌다. 나는 자애의 마음을 지니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비스러운 마음때문에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39.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thīnamiddhapariyuṭṭhi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hīnamiddhapariyuṭṭhān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thīnamiddhapariyuṭṭhi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vigatathīnamiddhohamasmi. ye hi vo ariyā vigatathīnamiddh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vigatathīnamiddh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40.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uddhatā avūpasan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uddhatāvūpasantacit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uddhato avūpasantacit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vūpasantacittohamasmi. ye hi vo ariyā vūpasan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vūpasantacitt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13.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해태와 혼침을 떨쳐버린다. 나는 해태와 혼침을 떨쳐버리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해태와 혼침을 떨쳐버린 것으로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4.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인든 바라문들이든 흥분하여 마음이 불안정하게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들뜨고 안고요한 마음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흥분하여 마음이 불안정하게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성취한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성취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마음의 안정을 성취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41.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aṅkhī vicikicc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kaṅkhivicikicchi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kaṅkhī vicikicc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tiṇṇavicikicchohamasmi. ye hi vo ariyā tiṇṇavicikicch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tiṇṇavicikicch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42.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ttukkaṃsakā paravamb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ttukkaṃsanaparavambhan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attukkaṃsako paravamb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anattukkaṃsako aparavambhīhamasmi. ye hi vo ariyā anattukkaṃsakā aparavamb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anattukkaṃsakataṃ aparavambhi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15.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의혹을 갖고 의심으로 가득찬 채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의혹을 갖고 의심으로 가득 찬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의혹을 갖고 의심으로 가득 찬 채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의심을 떨쳐버린다. 나는 의심을 떨쳐버리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의심을 떨쳐버린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6.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은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43.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chambhī bhīrukajātik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chambhibhīrukajātik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chambhī bhīrukajātik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vigatalomahaṃsohamasmi. ye hi vo ariyā vigatalomahaṃs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vigatalomahaṃs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44.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lābhasakkārasilokaṃ nikāmayamā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lābhasakkārasilokanikāmana {nikāmayamāna (sī. syā.)} 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lābhasakkārasilokaṃ nikāmayam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appicchohamasmi. ye hi vo ariyā appicch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appicch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17.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전율하여 무서워하며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전율하여 무서워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전율하여 두려워하며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두려움을 버리고 멀리 떠난다. 나는 두려움을 버리고 멀리 떠나는 한, 성스러운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겁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18.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든 바라문들이든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바라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바라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이득과 칭송과 명성을 바라고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바램을 버리고 멀리 떠난다. 나는 바램을 버리고 멀리 떠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바램을 버리고 멀리 떠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45.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usītā hīnavīriy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kusītahīnavīriy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kusīto hīnavīriy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āraddhavīriyohamasmi. ye hi vo ariyā āraddhavīriy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āraddhavīriy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46.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muṭṭhassatī asampajā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muṭṭhassatiasampajān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muṭṭhassati asampaj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upaṭṭhitassatihamasmi. ye hi vo ariyā upaṭṭhitassat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upaṭṭhitassati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19.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게을러 정진 없이 한적한 숲의 외딴 처소로 가면, 게을러 정진 없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게을러 정진 없이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정진하다. 나는 열심히 정진하는 한, 고귀한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20.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면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면서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새김을 확립한다. 나는 새김을 확립하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새김이 확립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47.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samāhitā vibbhan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samāhitavibbhantacit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asamāhito vibbhantacit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samādhisampannohamasmi. ye hi vo ariyā samādhisampan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samādhisampad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21.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채,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것을 원인으로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채,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집중을 성취한다. 나는 집중을 성취하는 한, 서스러운 님들 가운데서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집중을 성취한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 48.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duppaññā eḷamūg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duppaññaeḷamūg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na kho panāhaṃ duppañño eḷamūg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paññāsampannohamasmi. ye hi vo ariyā paññāsampan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etamahaṃ, brāhmaṇa, paññāsampad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 soḷasapariyāyaṃ niṭṭhitaṃ.
22.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지혜가 없이 무지한 자가 되어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면, 지혜가 없이 무지한 자가 된 것을 원인으로 이 수행자, 바라문들은 이롭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지혜가 없이 주지한 자가 되어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가지 않는다. 나는 지혜를 갖춘다. 나는 지혜를 갖추는 한, 성스러운 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적한 숲속 외딴 처소로 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지혜를 갖춘 것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 49.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yaṃnūnāhaṃ yā tā rattiyo abhiññātā abhilakkhitā — cātuddasī pañcadasī aṭṭhamī ca pakkhassa — tathārūpāsu rattīsu yāni tāni ārāmacetiyāni vanacetiyāni rukkhacetiyāni bhiṃsanakāni salomahaṃsāni tathārūpesu senāsanesu vihareyyaṃ appeva nāmāhaṃ bhayabheravaṃ passeyyan’ti. so kho ahaṃ, brāhmaṇa, aparena samayena yā tā rattiyo abhiññātā abhilakkhitā — cātuddasī pañcadasī aṭṭhamī ca pakkhassa — tathārūpāsu rattīsu yāni tāni ārāmacetiyāni vanacetiyāni rukkhacetiyāni bhiṃsanakāni salomahaṃsāni tathārūpesu senāsanesu viharāmi. tattha ca me, brāhmaṇa, viharato mago vā āgacchati, moro vā kaṭṭhaṃ pāteti, vāto vā paṇṇakasaṭaṃ {paṇṇasaṭaṃ (sī. pī.)} ereti;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tassa mayhaṃ evaṃ hoti (sī. syā.)} — ‘etaṃ nūn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ī’ti.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kiṃ nu kho ahaṃ aññadatthu bhayapaṭikaṅkhī {bhayapāṭikaṅkhī (sī.)} viharāmi? yaṃnūnāhaṃ yathābhūtaṃ yathābhūtassa {yathābhūtassa yathābhūtassa (sī. syā.)} me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tathābhūtaṃ tathābhūtova {yathābhūto yathābhūtova (sī. syā.)}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yyan’ti. tassa mayhaṃ, brāhmaṇa, caṅkamant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tiṭṭhāmi na nisīdāmi na nipajjāmi, yāva caṅkamant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tassa mayhaṃ, brāhmaṇa, ṭhit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caṅkamāmi na nisīdāmi na nipajjāmi. yāva ṭhit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tassa mayhaṃ, brāhmaṇa, nisinn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nipajjāmi na tiṭṭhāmi na caṅkamāmi, yāva nisinn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tassa mayhaṃ, brāhmaṇa, nipann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nisīdāmi na tiṭṭhāmi na caṅkamāmi, yāva nipann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23. 바라문이여, 그 때 나는 ‘내가 특정한 밤, 즉 달이 떠있는 14일, 15일 내지 8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면 어떨가? 아마도 그 두려움과 공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그 후 특정한 밤, 달이 떠있는 십사 일, 십오 일 내지 팔 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이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냈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그 곳에서 지낼 때에 맹수가 접근하고 공작새가 나뭇조각을 떨어뜨리고 바람이 낙옆더미를 흩날려 보냈습니다. 그 때 나는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마침 나에게 ‘왜 내가 반드시 두려움을 생각해야 하는가?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4. 바라문이여, 내가 걷고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걸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서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서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서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앉아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앉아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누워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누워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습니다.
50. “santi kho pana, brāhmaṇa, eke samaṇabrāhmaṇā rattiṃyeva samānaṃ divāti sañjānanti, divāyeva samānaṃ rattīti sañjānanti. idamahaṃ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mmohavihārasmiṃ vadāmi. ahaṃ kho pana, brāhmaṇa, rattiṃyeva samānaṃ rattīti sañjānāmi, divāyeva samānaṃ divāti sañjānāmi. yaṃ kho taṃ, brāhmaṇa, sammā vadamāno vadeyya —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mameva taṃ sammā vadamāno vadeyya —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25. 바라문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바라문들은 낮을 밤으로 인식하고, 밤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그들 바라문들이나 수행자들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나는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바라문이여, 누군가에 대해 ‘미혹을 벗어난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라고 올바로 말한다면 바라문이여, ‘미혹을 벗어난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고 말하는 그것은 나늘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 51. “āraddhaṃ kho pana me, brāhmaṇa, vīriyaṃ ahos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appammuṭṭhā (sy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so kho ahaṃ, brāhmaṇ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āsiṃ,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siṃ;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26. 참으로 바라문이여, 나는 나태하지 않게 열심히 정진을 도모했고, 혼란스럽지 않게 새김을 확립했고, 격동하지 않게 몸을 고요히 했고, 마음을 하나로 집중했습니다.
27. 바라문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벗어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28. 바라문이여, 나는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29. 바라문이여,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성스러운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30. 바라문이여,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 뛰어넘고 즐거움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 52.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31.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의 기억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관하여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소멸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소멸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생명을 지녔었고, 나는 그 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생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기억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했습니다.
32.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야에 도달한 첫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 53.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33.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중생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 눈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선한 곳이나 독한 곳이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중생들에 관하여 ‘어떤 중생들은 신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중생들은 신체적으로 선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선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 눈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선한 곳이나 독한 곳이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중생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34.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야에 도달한 두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 54.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35.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36.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는 앎이 일어났으며, 나는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37.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야에 도달한 세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 55. “siyā kho pana te, brāhmaṇa, evamassa — ‘ajjāpi nūna samaṇo gotamo avītarāgo avītadoso avītamoho, tasm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tī’ti. na kho panetaṃ, brāhmaṇa, evaṃ daṭṭhabbaṃ. dve kho ahaṃ, brāhmaṇa, atthavase sampassam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 attano ca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ṃ sampassamāno, pacchimañca janataṃ anukampamāno”ti.
38. 그런데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아직까지도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바라문이여, 그대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한적한 숲의 숲속 외딴 처소로 가는 것은 거기에서 두 가지 유익한 점을 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자신의 현세에 행복한 삶을 보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지닙니다.”
♦ 56. “anukampitarūpā vatāyaṃ bhotā gotamena pacchimā janatā, yathā taṃ arahatā sammāsambuddhena.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 bhayabherav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
39. “세존이신 고따마께서 거룩한 님이시고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시므로 참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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