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때의 선배가 와병 중인 친구를 함께 찾아보자고 했다. 만나서 점심을 먹고 난 선배는
“혹시 파크골프란 말 들어봤느냐”고 물었다. 평소 골프에 관심이 적었던 터라 ‘그라운드골프’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처가 식구들과 가고시마에서 경험했던 그라운드 골프를 떠올려
재미있더라고 덧붙였다.
선배는 파크골프와 그라운드골프가 서로 다르다는 말은 해주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의
파크골프장까지 매일 새벽에 찾아와 운동을 한다는 얘길 털어놨다.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린데
매일 새벽에 찾는다니 보통 열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날더러 “이제 맡았던 단체장 일도 끝났으니 파크골프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집 가까이에 골프장이 있고 노년의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라 권한다고 했다. 젊은
날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으로 부를 쌓은 선배는 그동안 전국의 골프장을 돌면서 골프를 즐겼고
그때 고급승용차와 외제오토바이를 몰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서로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생활이 편한 아파트보다 앞을 내다보고 시민도서관이 들어설 자리 바로
앞의 허름한 주택을 사서 재테크를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러한 애정과 관심은 여전해서 6년 전 내가 은퇴자 단체를 맡았을
때도 사무실 비품 제1호에 드는 책걸상을 두 세트나 새것으로 사주기도 했다. 가고시마에선 여행의
색다른 추억을 남기게 해주려고 그랬던지 초청인이 그라운드 골프경기를 제안했고 자매 중 맏
언니인 아내가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해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었다. 아내도 나처럼 운동신경이
무뎌서 그러한 결과가 나오자 본인도 적이 놀라면서 재미있어 했다. 그러한 추억이 되살아났던지
파크골프장을 찾아가는 날에는 아내도 덩달아 신나서 따라나섰다.
유장한 낙동강을 끼고 있는 부산은 축복받은 도시가 아닐 수 없다. 한강 고수부지보다 몇 배나
넓고 긴 공원이 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비닐하우스단지로 지내
오면서 홍수 때마다 쓰레기가 쌓였던 강의 둔치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품 생태공원으로 태어났다.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삼락수변공원
잔디구장. 평일 오전이지만 파크골프장을 찾은 실버들 숫자는 상상을 초월했다. 9홀 경기장
4개는 모두 경기 중이었다. 경기를 끝내고 쉬는 팀들도 보였다.
옆에다 그만한 크기의 경기장을 더 늘이고 있는데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파크골프가
인기가 높은 것은 경기장의 크기가 정식 골프장의 50분의 1에서 100분의 1정도로 작아서
힘없는 노인이라도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 선배가 파크골프를 시작하게 된 것도 병원에서
대사증후군 진단을 내리면서 의사가 하루에 만 보를 걸으라는 처방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도 전혀 짜증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린에 나온 실버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밝았고 주고받는 대화들도 청춘들과 다름없었다.
정작 지역에 살면서도 몰랐던 가산수변공원 파크골프장을 뒤늦게 찾게 되었다. 그것도 순전히
선배가 위치까지 그려가면서 열심히 안내해준 덕분이었다. 공원 들머리에서 막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중년 사내를 만나서 골프장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다. 젊어보이던 그는 땀을 훔치느라
모자를 벗자 대머리가 드러나면서 딴 얼굴로 보였다. 정감이 가는 충청도 말씨로 계속 미소 띤
얼굴로 그는 답했다. 골프장은 외지 부산에서 온 사람들을 홀대하고 있는데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지 충청도 양반이라 그런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다 그런 거지유 뭐. 괜찮아유. 함 해보세유. 아주 재밌어유” 그러면서 골프채까지 꺼내 보여
주었다. 기초단체에서 만든 골프장이라 해당 주민들은 주차장도 가깝고 조경도 더 좋은 골프장을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조건이 좀 못한 곳을 외지인들에게 개방했다는 것이다. 멀리서 봐도 외지인
들은 많이 찾아와 골프를 즐기고 있는데 잘 꾸며놓은 지역민 골프장은 텅 비어 있었다. 골프장
바닥의 잔디는 제대로 착근을 못한 채 겨울을 나면서 말라 죽은 것들도 보였다.
파크골프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치는 골프다. 그러니 멀리 갈 필요가 없는데다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아서 특히 수입이 없는 은퇴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30여 년 전 일본 홋카이도에서 시작
되어 현재 홋카이도엔 600여 개의 골프장이 있을 정도로 성황이고 하와이 호주 중국 미주 등지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여든에 가까운 선배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라도 파크골프를 서둘러 시작하리라
생각했다. 골프채를 구입하고자 인터넷을 열었다.
노인 아버지가 파크골프를 먼저 시작한 후 아내에게 권하려고 아들에게 골프채를 사오라고 요청한
체험담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아들은 웹서핑을 통해 일본에 주문하여 채를 사드리면서 아버지
것까지 미리 알아서 못 사드린 걸 후회하고 있었다. 부모 자식 간에 폐륜까지 벌어지는 각박한
세태인지라 그 효자 아들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제 며칠 후면 5월이다. 5월은 본격적인 파크골프 시즌이라니 골프채 주문부터 서둘러야 했다.
채를 주문하고 나자 수변공원 파크골프장 그린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