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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잘되는 축복을 사모하라(2229.2023.12.31. 송구영신예배)
요삼1:1-4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민6:24-27절‘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축복을 받을까요?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다.
요삼1:3-4절에 가이오가 얼마나 요한의 기쁨이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만이 아닙니다. 모두가 축복했습니다. 모두가 아낌없는 축복을 합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늘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가이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랑의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편지인데 ‘가이오’라는 이름은 ‘기쁨, 환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가이오는 후에 요한에 의해서 버가모지방에 첫 번째 감독으로 임명이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 가이오는 바울과 함께 복음 전도여행 중에 바울의 모든 전도 비용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의 종들을 잘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는 순회 전도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가이오는 교회를 방문하는 주의 종들을 혼자서 도맡아 대접을 했으며 그는 예수 안에서 ‘믿음 충만,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가이오에게 하나님의 종 요한이 복을 비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목회자와 장로님들 간에 불편한 관계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주변에도 목회자와 성도들간에 불편한 교회가 눈에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새해에도 목회자와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자랑하고 싶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사님이 어디를 가던지 우리 심은아장로님, 송덕구장로님, 주석기장로님 그리고 우리 권사님들과 성도들을 축복도 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관계가 형성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이 축복을 2024년도에 우리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1.요한이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싶은 가이오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 본문의 요한은 진심으로 가이오를 축복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지 않습니까? 가이오는 주의 종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이오만 보면 너무 사랑스런운 것입니다. 1절‘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 2절‘사랑하는 자여’ 3절‘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절‘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이 가이오만 보면은 너무 사랑스럽고,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이런 동역자 관계, 얼마나 부럽습니까? 사도요한이 축복하고 싶은 사람, 자랑하고 싶은 사람 가이오, 아마 이 마음은 비단 요한의 마음뿐 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복내려주기 원하는 사람 가이오, 오늘은 우리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도에게 사랑 받는 것은 주님께 사랑 받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사랑받는 성도는 주님께 사랑을 받습니다. 주님께 세우심을 받은 사도가 주님의 권위를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장으로 성도를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도의 사랑을 받고 나아가서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상주감리교회 성도의 행복이요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주님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몸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도 주님의 심장으로 성도를 사랑합니다. 사도는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의 권한을 가진 목사도 성도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어느 교인 하나 귀하지 않은 교인이 없습니다. 자신의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을 것이 없는 거와 같이, 목사에게는 어느 교인 하나 깨물어서 아프지 않는 교인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열 자식이 귀하지 않는 자식이 없는 거와 같이, 목사에게는 어느 교인 하나 귀하지 않는 교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관심을 끄는 교인이 있습니다. 목사에게 사랑 받을 짓을 하는 예쁜 교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사랑하고픈 교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교인이 목사의 사랑을 받는 교인인줄 아십니까? 매 시간 드리는 예배에 안 빠지고, 기도생활 잘하고, 말없이 봉사 잘하고 주님과 주님의 종을 섬기는 교인입니다. 목사는 그런 교인을 더욱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이 마음에 걸리는 분이 있다면 용서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사랑을 받는 교인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교인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새해에는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므로 주님과 주의 종에게 사랑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이오는 성도들에게도 칭송을 받는 자입니다. 3절‘형제들이 와서’그 당시 성도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의 사람됨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는 진리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이오는 내면적으로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내적으로 자기 관리를 잘 한 성도입니다. 성도의 신앙의 깊이는 ‘진리 안에,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음을 깨달아질 때 그 신앙은 외적으로 발산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외적인 행함을 봅시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라고 한 것은 내면적으로 소유한 믿음이 외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언행 일치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가이오는 사도 요한의 가슴에, 주의 종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양이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안에도 가이오와 같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나올 줄 믿습니다.
주의 종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다. 4절‘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목자의 즐거움은 자신의 양육을 받은 양무리가 이웃에게 사랑과 칭찬과 귀염을 받을 때 목자로서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주의 종을 섬기고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5절‘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여기 ‘나그네’는 그냥 단순한 표현이 아니고 초대 교회 당시에 베드로나 바울이나 바나바나 빌립과 같은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 다른 지역의 교회나 믿는 성도들의 가정에 가서 그 가정에서 묶고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교회가 조직화되어서 교회에서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규칙적이고 조직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의 사도들이 추천서를 써줍니다. 고후3:1절‘천거서를 가지고 다녔다’고 나오는데 소위 말하는 추천서를 써 가지고 어느 지역에 가서 믿는 사람에게 추천서를 보이면 그 지역에 있는 교인들이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온 복음 전도자들의 생활과 거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다 뒷받침했습니다. 지금 가이오는 이런 중요한 역할을 잘 감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이 복입니다.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야 합니다. 가이오를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진단한 가장 큰 이유는 가이오가 ‘진리 안에 서있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오는 참 성도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요즘 진짜보다 가짜들이 더 진짜 같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가짜 같은 진짜가 있고, 진짜 같은 가짜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아니 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찰리 채플린’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그가 시골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날 때에 그곳에서는 마침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채플린은 인기가 있고 유명했습니다. 채플린은 그 현수막을 보고 흥미를 느끼며 그 대회에 참관을 했습니다. 모두들 외모부터 진짜 채플린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채플린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그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평소에 하던 그대로 그곳에서도 했습니다. 그런데 심사결과는 재미있게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채플린은 3등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대회에서는 진짜 채플린보다 더 실감나게 연기를 한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셈입니다. 때로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십니다. 가짜와 진짜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한 것은 무엇인가? 요한의 축복 속에 보면 3개의 동사가 나오는데 ‘잘되다’라는 동사 2개와 ‘강건하다’라는 동사 하나가 그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다’에서‘잘되다’라는 동사는 현재형 수동태이고, ‘범사가 잘되다’와 ‘강건하다’라는 동사는 미래형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오의 영혼은 미래에 잘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 ‘잘되다’는 말은 ‘번영하다, 번창하다, 사업이 성공하다’라는 의미이며, 때로는 ‘좋은 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 된다’는 말은 ‘영혼이 좋은 길을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인생의 행로가 좋은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축복이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모두에게 동일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내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됨을 축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건강과 사업의 형통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창2:7절‘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생령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지으셨고, 영혼은 하나님의 영으로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것을 가리켜 본향이라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도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혼은 생명입니다. 영혼이 떠나가면 죽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더욱 풍성하게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영혼이 잘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깊은 교재가 이루어질 때 영혼은 빛이 납니다. 본문의 ‘영혼이 잘된다’는 말은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영혼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영혼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육신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먹으면 건강하고 잘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됨 같은‘영혼의 평안함’, 범사에 잘 되는 ‘형통함’, 강건, 즉 육신의‘건강’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삶의 내용들인데 얼마나 매력적인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 시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3가지 축복의 내용인 ‘평안함’,‘형통함’,‘건강함’은 세상이 말하는 평안함, 세상이 바라는 형통함, 세상에 속한 건강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깊은 이 땅에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평안함, 영적 형통함, 영적 건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성숙이라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통해서 얻게 되는 영적 평안함, 영적 형통함, 영적 건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그의 영혼이 잘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잘되었습니까? 사도 요한이 사람들 편에 가이오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가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한은 내가 심히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가이오가 진리이신 주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포도나무 가지였습니다. 즉 영혼이 잘되어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 사도들을 통해 증거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거짓 교사들에 의해 왜곡되고 거짓으로 전파되어 비진리가 교회 안으로 침투해 올 때 가이오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뿐 아니라 순회 복음전도자들을 사랑으로 영접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껏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협력함으로 진리 전파에 동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가이오의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기뻐하고 그를 축복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의 첫 번째 기도는 사랑하는 성도의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영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혼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영혼이 떠나가면 죽게 됩니다. 그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잘 살고 잘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 고통을 안 받고 편안하게 잘 죽으려면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잘 죽게 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갈 자신이 없으면 죽음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죽음이 무서우면 안 죽으려고 몸부림치며 고통을 합니다. 보약이며 좋다는 것 다 먹고 살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잘 죽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잘 죽어야 천국에 갑니다. 여러분, 모두 잘 죽어 천국에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이 잘 되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말씀을 잘 들으려면 예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안 나오면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잘 안 들으면 영혼이 쇠약해집니다. 영혼이 병듭니다. 영혼이 병들면 죽을 수 있습니다. 마4:4절‘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명심하시고 말씀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성도의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본인이 말씀 듣기를 게을리 하거나 거절하면, 그리고 그 들은 말씀을 생활 속에 실천하지 않으면 그 영혼은 잘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목사는 성도들의 영혼이 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는 성도는 ‘아멘’합시다. ‘아멘’ 하신 대로 영혼이 잘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이 잘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떠난 하나님을 다시 찾아 돌아 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믿고 살도록 지었기 때문에 이 삶의 근본적인 자세를 떠나가면 인간은 잘못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 올수 있는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랑에 심취하여 교만해 지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사단은 원래 하나님이 만든 아름다운 천사였지만은 그가 자기의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그만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고 하고 하나님 보좌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쫓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눈을 들어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우리 생사 화목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흠모하고 자랑하면 그는 벌써 파멸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늘 주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활을 하게 해 주시는 우리 주님을 자랑해야 됩니다. 자기를 낮추고 언제나 주님께만 복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늘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려고 애를 쓰며 열심히 기도하는 그런 삶을 살때 우리 영혼이 잘되는 삶을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은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며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명을 저버리고 부패하고 부정 하고 교만해 질까봐 우리를 시험하고 연단해서 깨뜨리고 난 다음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결정적인 행위는 예배입니다. 믿음 생활은 예배에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제일 먼저 출생예배를 드립니다. 백일 되면 백일 예배, 돌이 되면 돌 예배를 드립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입학 예배, 졸업하면 졸업예배, 개업하면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취직하면 취직 감사예배, 회갑이면 회갑 예배, 진갑이면 진갑 예배, 고희가 되면 고희 예배, 돌아가시기 직전에 임종 예배, 죽으면 영결예배, 땅에 묻을 때 하관예배 그리고 그 사람의 일생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지나면 추도 예배를 드립니다. 죽고 나서도 그 사람 때문에 예배가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성도는 예배에서 시작하여 예배로 이어지다가 예배로 끝나는 것 같지만 천국에 가서도 계속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같이 평생이 아니라 영원히 드려야 하는 예배는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의 요소입니다.
3.여러분의 범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성도는 ‘아멘’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은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 됨을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범사에 잘 된다고 하는 말은 고난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오고 실패가 옵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실패 때문에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그릇을 만드시려고 고난과 실패를 허용하십니다. 요셉을 보면 너무나 잘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크게 쓰시려고 젊어서 큰 고난을 받게 하셨습니다. 형들의 배신과 종살이, 옥살이,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축복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범사에 잘 된다는 것은 어떤 실패도 고난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도 실패도 하나님 안에서 허용된 것이므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고난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실패가 오면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일이 잘되고 형통할 때만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믿습니다. 고난과 실패할 때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함께 하셔서 피할 길을 내 주시고 감당할 믿음을 조건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강퍅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먼저 버리고 배신해도 하나님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범사에 형통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또 영육 간에 강건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고난도 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시며 나를 사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신 예수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셨는데 나는 고난을 못이겨낸다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잘 관리하고 범사가 잘 되는 만사형통의 복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입춘이 되면 집 대문에 ‘立春大吉’이라고 써 붙입니다. 새봄을 맞으면서 한 해 동안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주문입니다. 그런 글을 써 붙인다고 모든 일이 다 잘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난 일년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건사고를 당하고, 병들어 죽었습니까.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만사형통 하신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괴롭고 힘든 한해를 살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성도 여러분에게 만사형통의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기 전에, 혹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해결하려고 애쓰기 전에 주님에게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친절하게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하기만 하면 안 될 일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물어 보느냐고요?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주님이 모든 문제의 답을 가르쳐주십니다. 주님께 기도로 물어보아도 해답을 안 주시면 성경을 보세요. 성경 속에 만사형통의 길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성경을 읽어도 모르겠거든 그 다음은 어떡하겠습니까? 목사에게 물어보십시오. 목사가 상담을 통해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가르쳐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필요한 거지, 목사를 두었다가 뭐에 써먹으려고 하십니까? 목사를 많이 무릎끓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을 어렵게 힘들게 살지 마세요. 신앙생활을 고통스럽게 하지 마세요. 쉽고 즐겁게 만복을 누리며 하세요. 왜 그렇게 힘들게 인생을 사십니까? 왜 그렇게 징징 울면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은혜를 넘치게 받으며 웃으며 하세요. 만사형통의 비결을 배우세요. 범사가 잘 됩니다. 목사는 새벽마다 성도의 믿음생활과 가정과 생업이 잘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서로 기도의 교통이 안 이루어집니다. 왜요? 당사자가 기도를 안 하니까 서로 연결이 안 되고 연결이 안 되니까 응답이 안 옵니다. 전화를 보세요. 서로 통해야 말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기도의 줄만 연결되면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목사는 성도의 범사가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범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성도는 ‘아멘’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범사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사업이나 국가 사회가 어지럽고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범사에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나오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벌써 우리 가난을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말3:8-12절에 나타난대로 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나의 모든 하는 일에 하나님 같이 하사 성공과 형통이 나를 따른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시와 엉겅퀴가 꽉들어 차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수 없다, 나는 망한다, 나는 가난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 할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으로 태어나서 사는 것이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고난 속에 삽니다. 이 가시와 엉겅퀴와 저주와 고난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창3:17-18절‘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인생에 눈에 안 보이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수고해야 소산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고 안한 사람이 있습니까? 다 인생이 수고롭습니다. 사는 것이 수고하지 않고 사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보고 손을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생각을 형통과 긍정적인 성공의식으로 채워 넣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이번달보다 나아진다는 그런 긍정적인 꿈과 환상을 가지고 희망에 차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민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가 잘 되도록 신앙생활 멋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4.몸과 영혼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성도는 ‘아멘’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강건한 축복이 따라옵니다. 건강은 육신의 건강보다 먼저 영혼의 건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영혼은 우리의 속 사람입니다. 속 사람이 건강해지려면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엡3:16절‘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여기서 ‘강건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말로‘육신적이고 신체적인 건강’을 가리키는 말로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일에 정상적인 사람, 건강한 시민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리의 시간과 물질 모든 것을 건전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으며 ‘하나님의 고귀한 자녀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강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으면 또 건강해집니다. 원래 죽음이 없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영혼이 죽고 따라서 육체도 죽게 된 것입니다. 창3:6절‘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19절‘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별도리 없이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다 흙으로 다 돌아가요.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때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건강합니다. 병에서 치료함 받고 건강하고 육신이 무너져도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았을때는 병이 없었고 죽음도 없었습니다. 병과 죽음이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생겨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딸에 구주로 오셨을 때 주님께서는 바로 지은 죄와 병은 한 가지에서 나온 열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고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의 세계 속에서 분명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곳에 가나 죄를 용서하는 사역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병은 바로 죄의 가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죄 사함을 주실때는 주께서 병도 고치시고 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보게 되면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당할 때 반드시 죄와 함께 우리의 질병도 대신 짊어지고 가신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사63:4절‘그는 실제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10절‘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재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 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근복적으로 우리가 병 앓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기를 원치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근복적인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죄를 미워하고 병을 미워합니다. 얼마나 미워했기에 예수님을 통해서 그 병을 다 짊어지게 하고 그 죄를 다 짊어지게 하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까지 하셨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가 강건하기를 기도합니다. 강건하다든 말씀은 건강하다는 다른 말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의 대부분이 건강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은 몸만이 아닙니다. 저는 목회 하면서 ‘교인들이 참 어리석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교인들이 육신의 건강만 챙길 줄 알았지 영혼의 건강, 생활의 건강은 안 챙깁니다. 영혼이 병들고, 생활이 병들어 있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몸이 조금만 아프면 교회에 안 나오면서도 병원에는 부지런히 쫓아갑니다. 이건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교회에 먼저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낫습니다.
몸이 아프지요. 그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 치료를 합니다. 그런데 쉽게 안 났습니다. 또 나았다가 또 아픕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어느 병원 로비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시고, 우리는 봉사합니다’ 병을 의사가 고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불신자들의 생각입니다.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조수일 뿐입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기 전에 교회에 먼저 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병원에 가야 좋은 의사, 자기 병에 맞는 명의를 만나게 되고, 약을 쓰고 주사를 맞아도 효과를 100%이상 볼 수 있습니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몸이 건강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이 건강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영혼이 건강하고, 생활이 건강하고, 몸까지 건강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몸과 영혼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성도는 ‘아멘’하십시오. 예, 여러분 모두가 건강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몸도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고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주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셨도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 말씀들을 생각하고 이 말씀대로 건강해진 것을 바라보고 그리고 이 말씀대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이 말씀대로 입으로 늘 시인하고 믿음으로 살면 건강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꾸짖고 믿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이 잘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오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면 어떻게 할뻔 했습니까?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 고난 때에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바로 이 민족에게, 이 나라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