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8일 스리랑카 Galle 마리나 1일차
어제 저녁, 내 에이전트 사인 G.A.C. 사의 에이전트 Nuwan (+94 77 771 007) 과 저녁식사를 했다. 툭툭을 타고 Galle의 강남 같은 곳을 간 거다. 멋진 레스토랑이다. 식사 중에도 유럽인들과 딱 보기에 부유층처럼 보이는 가족들이 들어온다. 두 사람이 퓨전 요리와 음료를 마셨는데, 한국 돈 30,000원이다. 1인 15,000원인 거다. 스리랑카의 평균 급여가 우리돈 93,000 원이라고 하니 대단히 비싼 거지만, 여기 레스토랑의 격을 생각하면 한국에선 이 돈으로 먹을 수 없는 가격이다.
에이전트 비용 100달러, 1달 마리나 사용료 100달러, 입국비용 20 달러, 총 220 달러. 가격은 좋은데, 마리나가 비좁고 배가 많이 흔들린다. 또 검은 타이어 고무로 펜더를 대놔서 배에 검정 칠을 하는 중이다. 나중에 한국 가서 어떻게든 지우는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가까운 대형 마트에 가서 선풍기 한 대를 샀다. 이건 한국보다 비싸다. 8만 원 정도 한다. 30G 데이터 SIM 카드가 1,750 루피 (7,272원) 이다. 이제 인터넷 편하게 쓰겠다. 핫도그 두 개와 커피, 콜라 1병이 모두 2,452원이다. 우리에겐 싸지만 여기 물가로는 살인적인 거다. 점심으로는 여기서 간단하게 뭘 사먹는 것을 고려해 본다. 한 끼에 1,200원 이면 그게 더 나은 것 같다.
2개월 만에 이발을 했다. 면도까지 1,500루피, (6,233원) 이다. 사람이 깨끗해지긴 했는데, 염색이 다 사라지니 완전 백발이다. 리나와 통화하니 못 알아보는 것 같다. 아빠가 비쩍 마른 백발노인이 됐으니.
툭툭을 하루 종일 타는데, 10달러 (13,100원) 이라니, 마리나에만 있기 지겨우면 Galle의 구경할만한 데나, 마트에서 무거운 물건 사올 때 이용해야겠다.
이따 오후 4시경 전기와 물이 공급된다니 오늘 저녁은 선풍기 틀고 잘 수 있다. 어째 진즉 이 생각을 못했을까? 아하... 지부티 까지는 앵커리지 였구나. 전기가 공급되는 마리나에서만 선풍기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모기약과 바르는 모기 기피제를 샀다. 모기가 극성이다. 그런데 여기는 스프레이 형식이 없고, 그냥 분무기 스타일 모기약이다.
일단 4시 전에 배에 기름을 다시 채우자. 그래야 디젤유를 얼마나 더 사야 하는지 파악이 되겠지. 자 일하자.
오후 2시 38분. 150 리터를 넣으니 어느 정도 탱크가 찬다. 360+150 = 510리터만 더 사면된다. 스리랑카인들과 네고를 잘해서 사자. 시간이 있으니 너무 서둘 필요도 없다.
날씨도 더운데 비가 계속 오락가락한다. 배에 해치를 열수 없으니 그냥 푹 삶는 더위다. 전기가 들어와야 선풍기라도 켜는데, 갑갑하다. 선풍기를 살 생각을 못했을 때는 무조건 참아야 하니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선풍기를 사고 나니 빨리 선풍기 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에 더 더운 것 같다. 인간이란 진짜...
지금도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원 참 나, 뭔 날씨가?
자 4시가 넘었다. 그런데 폭우가 쏟아진다. 전기와 물 책임자는 오지 않는다. 엇!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제네시스가 계류된 곳은 파도가 정면으로 오는 곳이다. 만조와 파도가 겹치니 배가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옆에 있던 스리랑카인들의 도움을 받아 배를 파도가 들이 치지 않는 쪽으로 옮기려고 한다. 그런데!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셀 모터도 잘 돌아 가는데 엔진이 안 걸려? 그러면 연료 계통이다. 내일 오전 중 연료 필터를 갈고 다시 시동 시험 해보고, 만약 안 되면 엔지니어를 불러야 한다. 또는 마리나 안의 쓰레기 때문에 해수 흡입구가 막혔을 수도 있다, 그것도 같이 점검 해야 한다. 마리나 안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 오히려 다행이다. 만약 인도양을 건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휴.
폭우를 맞으며 배를 사람들과 함께 끌기로 한다. 내가 앞에 서서 끈다. 만약 힘에 부치면 바로 클리트에 묶으라고 주의를 준다. 힘으로 버티다간 쉽사리 끌려간다. 열심히 끌고 가는데 지정 자리에 가려니까, 앞배를 하나 지나가야 한다. 내가 올라가 어찌어찌 다 잘지나 갔는데, 앞배의 로프에 러더가 걸렸다. 배를 밖으로 밀고, 장대로 로프를 밀어 간신히 러더에서 빼낸다. 드디어 제대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파도가 정면이 아니라 배 흔들림도 덜하고 일단 위아래로 출렁임도 덜하다. 처음부터 여기로 자리를 주지.
배 옮기는 것을 도와주다가 스리랑카 인이 핸드폰을 빠뜨렸단다. 이걸 어떻게 한다? 일단 에이전트에게 말은 해두었다.
5시가 되도 수도와 전기 연결 관리자는 안 온다. 에이전트 Nuwan에게 전화 한다. 안 받는다. 아마 어디서 한잔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도 저녁에 술 냄새 풍기며 왔다. 곁에 있던 경비 아저씨가 Nuwan은 불성실한 사람이라며 본인이 관리자에게 전화해 준다. 5시 20분에 수도와 전기 연결 관리자가 왔다. 전기는 한참 회로를 뜯어 고치다가 결국 잘 들어온다. 수도는 연결 구가 맞지 않아, 철사를 가지고 호스를 묶는다. 물도 해결 됐다.
포트 관리자가 왔다. 배를 옮긴 것을 묻는다. 설명하니 이해는 한단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자신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는데 Nuwan이 말을 안 한 모양이다. 밧줄을 하나 더 묶어 주고 갔다. 혹시 야간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건물 2층으로 와 도움을 청하란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마트에서 산 선풍기를 얼른 조립한다. 잘 돌아간다. 이제 찜통더위에 잠 못 들지는 않겠다. 역시 문명이 좋다. 선풍기 하나 사놓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이제 전기가 들어오니 전자렌지도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엔진 시동이 안 걸리는, 한 가지 문제만(?) 남기고 편히 잠 들 수 있겠다. 이정도로 배짱이 늘었나 보다. 그나저나 진짜 아슬아슬했다. 마리나에 들어 와서 시동이 안 걸리다니, 그리고 그 와중에 사람들과 배를 끌어서 옮기고! 대단한 하루였다.
오후 6시에 Nuwan 이 왔다. 역시 술 냄새가 팍팍 난다. 오늘 위험한 상황을 말해주고 내일 내가 엔진 테스트 해보고 안 되면 엔지니어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이야기 중에 아까 그 경비 아저씨가 와서 Nuwan에게 막 뭐라 한다. Nuwan이 말대꾸 하려니까, 경비 아저씨 눈썹이 확 올라간다. 내가 경비 아저씨가 오늘 많이 도와줬고 너무 감사한 분이라고 막 치켜 올려서 대략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Nuwan 이 사람 직장 생활 오래 못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거 두가지
하나는 내가 사우스코리아라고 하면 곧장 한국 가서 일하는 방법을 묻는다. 괜히 친한 척 접근한다. 하긴 일반 월급이 9만원이고 잘 받는 사람이 14만원이라고 하니.. 한국가면 10배도 더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두 번째는 제네시스에서 일하고 있으면 지나는 사람마다 시원한 맥주 있냐고 묻는다. 아주 맡겨 놓은 것처럼 당당하다. 나는 담배도 술도 안한다고 하면 또 OK 하고 가던 길 간다. 희안하다.
5월 30일 쯤 임대균 선장 일행이 랑카위로 온다고 한다. 그럼 여기서 서두를 필요 없다. 여기가 마리나 중에 제일 저렴하다. 전기와 물도 잘 공급되고 이제 선풍기도 있다! 미리 랑카위 가는 것보다 사이클론이 지날 때까지 여기서 배 점검 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약 Galle에서 오일 교환용 썩션 펌프를 못 구하면, 샴푸 꼭지 신공을 써야겠다. 뭐든 방법은 있다. 당황하지 말고. 오늘도 일용할 고생 할 만큼 했다. 여기까지 하고 좀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