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11~23절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는 성령의 임재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에 맞춰 예배에 깊이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성도입니다. 이끄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의 영혼을 맡기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손을 들고 방언을 말하고 방언 찬양하기도 한다. 이 모습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이상한 집단으로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같은 크리스천이면서도 그런다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젊고 믿음이 없을 때는 그랬습니다. ㅎ
두 번째로는 이성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방언은커녕 눈 감고 손을 들고 예배하는 것조차도 이상한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그런 모습까지 멈춰 세우려고 합니다. 말씀으로 가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설득하고 성령은 성경 시대에 끝났다고 말하며 논리를 앞세워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만이 진리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모습의 예배는 인정하지도 세워주지도 않습니다. '다 잘못되었다.' 성경 말씀의 진리라는 사건 위에 더 이상의 성령은 없다는 말로 정리하고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시대가 끝났다면 여러분은 뭐하러 지금 이곳 예배당에 앉아 있으며 뭐하러 신앙생활을 합니까? 참 한심하기 짝이 없고 답답하며 안타깝고 이렇게 재미없는 신앙생활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겁니다.
이러니 그들에게는 성령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고 마귀가 떠나가지 않으며 믿음과는 거리가 먼 굳건한 신념을 가진 자로 변한 자기 모습이 절대 선이라 여기며 타협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시대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바로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은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다윗의 성으로 금의환향하는 장면입니다.
온 민족이 환호하며 열광하며 예배하는 그 자리에서 다윗은 기뻐서 춤추며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품행이 방정맞아 보였을 정도로 자신의 이성을 놓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긴 춤추는 다윗을 본 사울의 딸 미갈의 마음이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서 뛰놀며 춤추는데, 사울의 딸 미갈은 창으로 내다보기만 했다는 겁니다. 예배하는 그 자리에서 함께 예배해야 하는 왕의 아내가 그냥 구경했다는 말입니다.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데, 마중은커녕 창밖으로 무관심하게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총을 깨닫고 소리높여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자기 남편이고 나라의 왕이 기뻐하는데 미갈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며 방정맞아 보이는 다윗을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을 마음껏 축복하기 위해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미갈이 다윗을 맞으며 한 말입니다. 20절 후반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직역하면
"왕이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오늘 방정맞기가 그지없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몸까지 드러내셨네요." 미갈이 다윗에게 이렇게 비아냥거렸습니다.
아니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던 사람이 예배하는 사람들을 볼 때 '미쳤구나'하는 그 마음이 다윗을 향해 마음껏 비아냥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다윗이 이야기합니다.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다. 네가 뭐라 해도 나는 여호와 앞에서 계속해서 뛰놀며 내가 아무리 낮아져 천하게 보이더라도 계집종이 나를 무시하지는 않으리라."
그 후 미갈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다윗이 한번도 미갈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을 무시하고 예배하는 자들을 비아냥거리는 자들은 하나님이 만나주지 않습니다.
예배는 구경하는 게 아닙니다. 예배는 내가 그 안에 기뻐 참여하고 함께 빠져들어야 하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우리는 미갈의 모습을 하며 구경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뭐 하나 보자. 너희가 뭘 준비했나 보자. 설교는 어떻게 하는지 보자. 찬양은 잘하나? 기도하는 사람은 준비가 되었나? 저 사람은 왜 도를 넘으면서 손을 들고 찬양하냐? 눈물은 왜 흘리지? 다 지나치는 사람들 뿐이구나.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다윗처럼 기뻐하면서 뛰놀며 춤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예배에 내가 참석해 준 게 대단한 것이라 착각까지 합니다. 아무도 이런 착각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미쳐 보일 수 있지만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를 것을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미갈의 삶은 마무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한때는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울 왕에게 죽을 뻔한 다윗을 구해주었는데, 지금은 남편 된 다윗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내겐 예배의 감격이 있는가? 형식적인 예배에 그냥그냥 참석하는가? 다시 뜨거워지도록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해 깊이 빠지시길 소망합니다.
예배에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제대로 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춤추고 뛰놀며 찬양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예배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뻐 뛰며 감사함으로 찬양하길 바랍니다. 수련회 때만 그럴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게 온전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워주시는 근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우리도 그런 예배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잊지 않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