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겨울 ‘천리먼길’로 데뷔한 박우철은 이듬해 ‘돌아와’와 ‘정답게 가는 길’로 대박을 터뜨렸다. 1973년부터 1974년 8월에 입영하기까지 채 2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박우철은 폭발적인 반짝 인기를 누렸다.
1977년 제대 후 지금까지는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한 마디로 스타로서의 생명력이 짧았다. 흥미롭게도 스타덤에 오른 기간이 이토록 짧은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한다. 적어도 나이 50대 이상이면 박우철을 다 안다. 당시의 돌풍 같았던 인기가 세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까닭이고 또 노래가 좋았다.
‘돌아와’는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던 때에 당시로선 드물게 장조와 단조를 오가며 가사를 읊조리는 듯한 세련된 음악이다. 이게 대중에게 널리 통했다.
가수 박우철은 현재 포항에 거주하며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장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전 무대를 누비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래 전 한 차례의 이혼을 경험했다. 이후 착실한 내조를 하는 좋은 연분을 만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70년대 초 나훈아, 남진의 아성을 넘보는 신예 3인방은 김상진, 이현, 박우철이 있었다. 이들 셋은 각기 다른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다. 그 중에서 박우철은 다이내믹한 창법으로 '천리먼길'을 발판으로 '돌아와', '정답게 가는 길', '우연히 정들었네' 등 일련의 히트작을 내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가수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그는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광주로 내려가 사업에 매진했다. 한동안 노래를 잊고 살던 그는 지금의 조항조를 만든 '남자라는 이유로'를 먼저 취입하여 방송했다. 그러나 그 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나 보다. 그가 중단한 곡을 조항조는 기세 좋게 히트시켜 존재를 알렸고, 박우철은 부산으로 내려 갔다.
절치부심의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20년이 지난 2014년 모 작곡가에게 재기곡을 주문했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연모'를 대중들에게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