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뉘른 베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도하는 손"은 화가이자 조각가인 [알브레이트 뒤러]의 대표작이다.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 그림을 그릴수 없는 어느 가난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바라보며 즉석에서 [뒤러]가 연필로 스켓치를 한 불후의 명작이다 .
기도는 감동이 있는 삶에서 토吐해 내는 고백이다. 기도는 열열히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알아내고 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거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실존을 설명할 때 회중들에게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 우리 인간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특히 공기도나 대표기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된 기도 가운데 기도자가 오히려 하나님께 무엇을 가르치려는 듯 사자후를 토하는 거친 방법이나 건방진 기도자의 태도는 우리 하나님을 슬픔과 실망에 빠져 들게 한다.
당신이 무릎을 꿇고 겸손히 기도한다면 함부로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설교하듯 기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교회학교의 순진한 어린이는 어른 장로의 대표기도보다 훨씬 순결하고 겸손했다.
"오 사랑의 주님, 사람들을 순純하게 해 주시고,
선善한 사람들은 더욱 착하게 해 주세요."
우리에게 날마다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을 계속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말만 계속한다면 끊임 없는 기도는 불가능할 것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데살전 5:17>란 말속에는 입을 닫고 침묵으로 기도하는 것도 좋다는 뜻이다.
기도는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기도란 항상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의 반복이며 그와 교통하는 것이다. 이렇듯 [끊임없는 기도]란 주님의 존재를 계속해서 알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결코 단절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ㅡ 이것이 바로 기도하는 방법이다. Waren Wiebe는 "주님 당신이 계심을 알게 되었나이다" 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왜? 우리는 항상 주님 속에 있으며,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당신은 <기도하기 좋은 시간>을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거나 낭비해 버릴 때가 많은가?
가령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특히 혼자서 운전한다면 그것은 주님과 가장 대화하기 좋은 챤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을 뜨고 운전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분명 색다른 경험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보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다. 나는 먼 강연 길을 운전할 때 찬양과 기도로 결코 지루하지 않은 커다란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기도는 과연 <길어냐 하는가, 짧아야 하는가?> [무디] 목사님은 기도가 굳이 길어서 하품이 나올 정도면, 하나님도 졸릴 것이라고 말했다. S 교회 K 목사님과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장로의 절절한 食식기도가 끝나자 K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밥 주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될 기도를, 왜 장로님은 그렇게 길게 하시냐며 웃는다.
기도는 길어야 2, 3분을 넘지 않는게 좋다. 나는 기도가 [하나님께 전보를 치는 것]과 같다고 믿기 때문에 짧은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신학자 역시 "기도의 길이와 기도의 효과는 반비례한다" 라고 말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성경 안의 대부분의 기도는 짧고 요점적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가장 긴 기도는 성전을 봉납하며 [솔로몬] 왕이 드린 기도이다. 이 기도 역시 5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밖의 대부분의 기도는 짧게 단순하게 명료하게 끝난다.
때때로 우리는 [나의 의지를 실행하는 벙법]을 기도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기도는 그런 수단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의지가 실행된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도는 우리의 의지보다 더 높고 더 위대하며 더 순결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나의 의지가 아닌 주님의 의지]를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자.
기도는 거룩한 하나님게 올리는 읊조림이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여러가지 몸가짐이나 자세]에 관해 여러 가지 논란이나 의견이 분분하다.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두손을 맞잡거나 하늘을 향해 벌여야 하는가? 등 시비를 벌인다. 사실 기도에 관한 이런 시비들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영웅들은 [어떤 자세로 기도]했는가?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기도했다<수5:14>.
[솔로몬 왕]은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기도했다.<왕상 8:22>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했다.<다6:10>
기도는 어떤 정형화된 기도의 특별한 자세나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의자에 앉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할 수 있다. 나처럼 숲속이나 둘레길을 산책하거나 걸어면서 기도하는 것도 좋다. 문제는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 하는 <몸의 자세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자세>이다.
우리는 때로 그리고 자주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것]에만 너무 집착하거나 익숙해지고 있다. 즉 욕심 많은 기도이다. "허락해 주시옵소서"로 시작하여, "풍성히 내려주시옵소서"로 끝난다. 물론 주님께 간청하는 기도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주님도 분명히 우리에게 "구하라. 얻을것이다. 나의 이름을 부르라.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요구를 들어 줄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주님께서도 직접 우리에게 용기를 주셨다 .
하지만 소원을 먼저 말하기보다 찬양과 노래로 기도의 문을 여는 것은 어떨까? [빌립보서] 에서는 "찬양의 문을 열라"고 강조하고 있다.<1:3;4:4,6> 이 4장의 지극히 짧은 서신 속에서 "기뻐하라"는 말이 무려 10번 되풀이 되고 있다. 기도는 말의 문보다 먼저 찬양의 문을 열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 찬양을 게을리함으로써 우리의 삶 속에 능력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찬양은 믿음의 문을 연다. 찬양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거룩한 기도의 前 순서이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이 기르쳐주신 기도처럼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복음주의자 필립 브룩스[Philips Brooks]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편히 살기위해 기도하지 말고 더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아울러 나는 "여러분에게 능력에 적당한 일만 구하지 마시고, 하고자 하는 일에 알맞은 능력을 구하십시요"라고 부탁 드리고 싶다.
우리가 지금까지 드려 온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직한 기도]는 과연 얼마나 될까? 솔직히 [잘못된 기도]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보일려고 기도한 적이 더 많다. 이러한 기도의 목적은 자신이 하는 기도가 주변 사람들로 부터 얼마나 주목을 받는가 이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일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마태 6;5.] 특히 우리의 잘못된 기도의 자세 가운데는 이방인과 같이 "증언부언 하지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어실 줄 생각한다"[마태 6:7]처럼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밖에도 우리가 [잘못 드리는 기도]가 과연 무엇일까?
1, 뚜렷한 목적없이 이것저것 구하는 기도이다. [마태 6;7]]
2, 마음에 惡 악한 독을 품고 드리는 기도이다. [시편 66:18]
3, 지극히 형식적으로 의심하며 드리는 기도이다. [마태 6:54,]
4, 교만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누가 18:10.11]
5,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온 기도이다. [야고보서 4;2,3]
6,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이다. [예례레미아 17:7]
7, 걱정과 근심속에서 혹시나 행여나 하고 드리는 기도이다.[빌립4:6]
기도란 과연 무엇인가? 신앙인에게 기도는 숨쉬는 것, 호흡,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표현하는 신호음 같은 것이다. 즉 영적 [VITAL SIGN] 이다. 가슴을 따뜻하게 고동치게 하는ㅡ HEART RATE 이다 . 단 한 순간도 체험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하나님과 나] 두사람만의 연속적 대화이다.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불타는 열정이며, 진실한 삶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배우는 가늘면서도 연약한 갸날픔이며, 천국을 향한 영혼의 진정한 소망이며, 회개하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달콤한 향기다.
聖 [어거스틴]은 이렇게 기도한다.
"오 주님이시여!
제가 당신의 뜻을 저의 뜻으로 행하게 하시고,
저의 뜻이 곧 당신의 뜻으로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ㅡ
'네, 과연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알림*****************************
다음 칼럼은 2023년 6월 11일에 이어집니다
2023년 3월 11일
金 英 穆
김 영 목
수유제일교회 원로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