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면 오수리
영조(英祖) 45年(1769)읍내면(邑內面) 동부(東部) 오수항방(梧樹項坊)이었으나, 고종(高宗) 26年(1889)서부(西部)에 편입(編入)하고 봉곡리(鳳谷里)라 개칭(改稱)한 지명은 알 수 없으며 고종(高宗) 32年(1895)죽림(竹林)과 오수리(烏首里)로 분리하면서 바꾸고 1915年 오수리(烏首里)로 법정(法定)하였으며 1942年 구제실시(區制實施)로 죽림(竹林)과 오수(烏首)의 2區를 1961年 10月 1日 행정리(行政里)가 되었고 선창(船艙)마을이 분리되었다.
본래 오수항(梧樹項)은 죽리반도(竹林半島)가 뻗어 목을 이룩하였고 오동(梧桐)나무가 많았다는 것은 알길 이 없고 오수(烏樹)는 뒷산의모양이 까마귀 머리 같다는 뜻이고 ,거제도(巨濟島)의 서쪽에 오량(烏良),북쪽에 오비(烏飛)로 삼오(三烏)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지명(地名)이라 하겠다.
오수(烏首)마을
본래 오수목의 본마을 거제평야(巨濟平野)를 바라보는 평지마을이다.
죽림(竹林)마을
영조(英祖) 45年(1769) 읍내면(邑內面) 서부(西部) 죽림포방(竹林浦坊)이었고 숙종(肅宗) 37年(1711) 거제도호부겸(巨濟都護府兼) 김해진관(金海鎭管)의 관방(關防)으로 어해정(禦海亭)을 건립(建立)하고 전선대장(戰船代將)을 두었으며 고종(高宗) 26年(1889)죽림리(竹林里)로 개편(改編)되었다가 1915年 법정(法定) 오수리(烏首里)에 편입(編入)되었다.
선창(船艙)마을
오수목의 동쪽 바닷가에 거제평야(巨濟平野)에서 생산된 곡물을 육지의 통영(統營)으로 운송하던 선창이 있었다.
목넘개
오수목에서 대숲개로 넘어가는 바닷가로 바다건너 북쪽에 읍내를 바라보는 개다.
미륵불당(彌勒佛堂)
죽림포(竹林浦)의 남쪽 바닷가에 미륵돌부처를 모시는 당집이 있고 주민들이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는 고종(高宗) 22年(1885) 을유년(乙酉年) 흉년때 곤발(困발)네 할머니가 아침마다 풍년오기를 기원하였다는 전설의 불당이다.
붉은등
대숲개 앞 찬샘이보가 있고 그 들판위에 상여집이 있었다.
해끝
죽림포의 서쪽끝에 있는 산의 높이 41m삼각점(三角点)이 있고 바다로 뻗어 저녁노을을 보는 곳으로 옛날 수군의 탄약창고가 있었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