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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The Lord's discipline)에 대해: 히 12:5-13
할렐루야! 의로우신 하나님! 우리의 잘못을 그냥 보시지 않으시고 때에 따라 징계를 하심으로 우리가 고난을 극복하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믿으면서 징계 중에 있는 모든 주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그 고난을 잘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도울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또 무난히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될 것을 굳게 믿습니다. 어렵고 힘든 형제를 품고 서로 사랑하며 모든 시련을 함께 극복하게 우리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샬롬! 오늘은 모든 신앙인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징계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에게 닥친 알 수 없는 고난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지혜와 힘을 얻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선 징계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다번역 성경 찬송에서 검색란에 징계를 치니 히브리서에 가장 징계에 대한 세밀한 말씀이 있고 다른 성경에도 있어서 일부를 뽑았습니다. 성경 본문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징계에 대한 이해가 되는데 이도 징계를 받아 본 사람이 더욱 실감 나게 이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징계를 받아 보지 못하신 분은 징계가 올 때 견디기 어렵습니다. 특히 욥과 같이 불시에 내가 잘 하고 있다고 믿는데 징계가 올 때는 그 의미를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징계를 대하는 태도도 올바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징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고린도전서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욥기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욥기 33:19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욥의 고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설교를 통해서 혹은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라 그리하면 축복이 온다. 교회에 헌신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는다. 의롭게 살라라 그리하면 형통하게 된다 이렇게 믿고 대부분의 성도가 신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고 열심이 충성하고 헌금하고 그리고 착하게 살고자 하다가 고난이 오면 이를 이해하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욥기의 욥의 고난에 대해서 너무나 잘 배웁니다. 의인의 고난과 이를 극복하면 더 큰 축복이 있다 이렇게 배웁니다. 그러나 이는 욥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닥친 고난과 낭패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입니다. 특별히 너무나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오는 고난은 우선은 어렵습니다. 고난이 오면 누구나 어렵습니다. 어려움이 아니면 고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에게? 왜 나에게? 이 부분이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배워서 고난이 있음을 알지만 하필이면 나에게 모두가 부자로 살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이 징계로 올 수가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내가 죄를 짓거나 불순종할 때 올 수도 있지만 그냥 잘하고 있는데 올 수도 있음이 욥기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징계로 고난이 올 때 이를 바로 이해하는 것도 너무나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스스로 잘 믿고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드린 잘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이 너무나 강합니다. 복과 모든 신앙의 열심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과 무관하고 복과 다른 대조가 되는 불행한 일이 생기면 이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모든 이보다 더 열심이 많고 더 잘하고 있다고 믿는 이에게 오는 불행은 이 불행을 겪는 이가 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를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를 달게 받는 일이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욥의 경우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마귀의 도발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의롭게 사는 자에 대한 고난입니다. 징계로 볼 수가 있느냐 할 것이지만 이 고난으로 욥은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의 의롭다고 한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의를 행하면서도 겸손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즉 욥은 고난을 통해서 이 고난을 잘 극복하고 더욱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에 합당한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는 크리스천을 많이 봅니다. 대부분 불순종과 그리고 죄로 인해서 징계가 옴이 분명한데 당사자는 이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대로 징계 이전의 삶을 고집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니다. 혹은 어떤 문제로 자신에게 그러한 고난이 왔는지 이해도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명기의 복과 저주의 장을 보면 어떤 경우에 어떤 저주가 임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오늘도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우리는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신학의 가르침으로 마치 우리에게 이미 복이 임했고 어떤 저주도 들어올 틈이 없게 되었다고 열변을 토하는 부흥사나 목자의 설교에 익숙해서 고난이 들어올 틈도 없이 단호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또 고난이 오는 것은 잘못된 신앙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정말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을 때 이유를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의롭게 살고자는 하는 고난이 또 있습니다. 분명하게 신앙생활을 성경의 말씀대로 하고자 하면 불의한 세상에서 늘 고난을 달고 살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정리하면 고난은 불순종의 고난은 자신이 아끼는 부분의 강도대로 옵니다.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늦게 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약한 것부터 경고를 보내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고가 있고 그리고 교회와 신앙은 공동체의 것이기에 공동체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많은 저주가 나열이 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나의 몸과 관련이 없는 귀한 것 즉 재산에 대한 손실이 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한 몸의 건강에 대한 경고가 옵니다. 그다음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자녀의 생명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종의 길로 인도하고자 어떤 불손종에 대해서 징계의 강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도는 자신에게 의도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바로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작은 잘못부터 바로잡아나가야 큰 징계로 인한 고난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신명기의 율법은 그대로 살아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아니고 행위가 아니고 믿음이다 하면서 율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 한국의 모든 교인에게 율법에 따라서 저주가 임합니다. 그리고 믿으면 의롭게 되었으니 이제 축복만 있을 것이라는 모든 한국의 성도에게 저주가 있습니다. 즉 징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단순한 바람 즉 형통만 하기를 바라는 바램을 성경의 진리로 설명하면 절대로 자신에게 생기는 불행의 원인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래로 회개하지 않고 불순종하고 또 이를 통해서 더 큰 징계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잘 하는 분의 너무나 큰 고난을 압니다. 자신만 남고 남편도 죽고 아들까지 죽는 성도들을 봅니다. 그리고 목사나 장로의 아들이 결혼을 못 하고 스스로 세상에서 홀로 서지 못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리고 목사나 장로의 건강할 때의 갑작스러운 질병을 봅니다. 그리고 일찍 죽는 크리스천도 봅니다. 너무나 성경에 기록된 축복과 다른 저주가 임한 것을 모든 교회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늘 축복을 강조하고 예수 믿고 형통을 강조하는 목자에게 암이 생기고 아들이 장가를 못 가서 대가 끊어지게 되었으며 장가를 가도 자녀를 낳지 못하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고 그리고 이런 현실이 어느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젊은이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을 하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한국인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저주가 임하고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인에 예수 믿는 천만 명이 있는 나라의 현실이 이러하니 성경대로라면 대부분의 성도가 목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상태에 있음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또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서 회개를 하는 사람도 없고 이를 바로잡고자 애를 쓰는 사람도 드물고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성경적으로 제시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재산을 과도하게 가지고서 자녀가 결혼을 못 해도 자녀가 아들을 낳지 못해도 그냥 그렇게 우리는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행복보다 자식의 대를 잇는 일보다 내가 가진 재산이 더 중요하기에 재산을 움켜쥐고 자녀의 불행도 함께 잡고서 그냥 그렇게 지금의 세상을 차도 비싼차고 집도 서울에 고가 아파트로 그리고 또 오늘도 돈을 밝히면서 재물을 늘리려는 생각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성도를 온 한국에 키워내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귀한 것이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대를 잇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축복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건강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었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결혼을 또 했습니까? 그리고 내 대를 이어 줍니까? 그리고 나는 건강합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주시고자 하는 복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픕니다. 그리고 내 자녀는 결혼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자녀도 없고 아들도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도 잘 결혼하고 건강하고 잘 살고 있는 것이 한국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백세를 노래하는데 내 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물질을 붙잡고 있습니다. 어찌 물질이 몸보다 귀하고 자식보다 귀하고 남편보다 귀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은 할 틈이 없습니다.
온 한국이 잘못된 신학과 잘못된 가르침으로 징계 중에 있음을 저주 중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더 가다간 공동체에 대한 징계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일본의 압제를 36년 겪었고 그리고 이미 6.25로 수백만의 동족이 죽은 경험이 있는 우리입니다. 북한에 핵이 있고 남쪽엔 지진이 있고 일본은 재무장하고 중국은 팽창하고 미국은 이런 중국과 큰 대립을 하고 있으니 이 가운데 있는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를 무시하고 오늘도 땅을 찾아서 광명으로 시흥으로 세종으로 분주하고 그리고 오늘도 아파트 청약을 위해서 이리저리 분주한 우리가 아닙니까? 예언자 역할을 해야 되는 높은 곳에 앉으신 목자들은 너무나 평안하고 너무나 안일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자리가 얼마나 달고 얼마나 수천수만의 우러러봄이 좋기에 자신의 자녀를 죽을 힘을 다해서 앉히고 자신도 여전히 죽을 때까지 물러나야 하는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이런 한국을 만든 장본인들이 될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저 멀리 던져 주고서 하지 말아야 하는 누림에 푹 빠져서 그 달콤한 잠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 영광에 취한 상태에서 침몰로 가는 한국호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수많은 집도 땅도 없는 동족의 아픔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신앙생활을 못해서 그런데 왜 잔소리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징계를 설명도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잘못 가고 있습니다. 돈을 밝히면 이렇게 된다고 하셨는데 돈을 가장 밝히는 자본주의의 종이 되어서 모두가 하나님의 법, 율법을 버렸습니다. 당연히 정의는 없는 세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중국의 미세먼지는 우리 모두를 멸망하게 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도 위협이지만 온 국민이 모두가 힘을 합쳐서 중국의 미세먼지와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중국과 반드시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부자도 호흡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그리고 공기청정기를 수억 원대로 놓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코로나로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보다 적게 죽고 또 매일 자살하는 사람보다 작게 죽는데 눈에 보이는 위협이다 보니 온 세계가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 미세먼지는 국민 모두의 폐를 망가지게 하는 주범이며 이 주범이 중국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그냥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도 교회도 개인도 이 중국과 반드시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다음 대선에서 이 전쟁을 할 장수를 골라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용감한 장수를 우리의 지도자로 뽑아야 합니다. 정치적인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모든 성도는 만국의 여호와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의가 없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멸하시지 절대로 돕지 않으십니다. 모든 성경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정의롭지 않는 국가의 운명은 멸망이었습니다. 어떻게 정의롭지 않음을 압니까? 집이 없는 국민이 48%입니다. 그리고 땅이 없는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땅이 없는 국민이 온 국민의 70%입니다. 이런 한국에 이미 정의는 없습니다. 평등도 없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없습니다. 직장도 얻기가 어렵습니다. 결혼도 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그리고 뱃속부터 죽을 때까지 피 터지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고 이도 역전이 가능성이 이미 없습니다. 자 이런 한국에서 가진 자는 천년 백 년 이대로 이대로 외칩니다. 믿는 성도도 목사도 이런 상위 집단에 들고자 목을 매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취해 놓고 성도를 나를 따라 이렇게 살아라 합니다. 죄를 짓고 죄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도들을 죄악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라도 보통의 집에 전세로 살고, 차도 중고나 중형으로 타고, 월급도 한 월 300 정도 받으면 되는데, 500명 이상 되는 교회의 목사 중에서 이렇게 사는 분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미쳤고 모두가 벌 받을 일을 자행하고 모두가 정신이 나갔으며 모두가 멸망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돈을 다 버려야 합니다. 어디에 버려야 합니까? 먼저 이들 장로나 목사가 먼저 가난한 자신의 교회의 형제에게 집도 차도 땅도 그냥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육신의 형제도 돕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형제 된 가난한 형제에게 나눔을 절대로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에스더의 고백대로 이때를 위함이라 하고 과감하게 정신없이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먼저 그렇게 하고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장로님 권사님들이 정신없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게 해야 됩니다. 누구도 할 수가 없는 일을 목사와 장로가 먼저 해야 목사가 살고 장로가 살고 그리고 내 가난한 믿음의 형제가 살고 한국이 살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교회에, 성도들은 속히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서 어려운 교회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속히 도와야 합니다. 천국이 보장이 되었다면서요? 의롭게 되었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고 이 구원은 취소가 절대로 없다면서요?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 얼마 남지 않은 이 세상에 왜 그렇게 연연하며 누리려 하십니까? 말로만 그렇게 하시고 정말로 천국에 가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렇게 천국에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 소망이 있고 천국이 그립고 그리운 교우와 그리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날 소망이 있는 자는 절대로 이렇게 어려운 한국에서 홀로 잘 먹고 잘 살 생각을 1%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믿지 않는 사람의 지옥행이 너무나 불쌍해서 내 것을 주면서 전도하는 것이 절대로 어렵지가 않고, 주변의 어려운 크리스천을 돕는 일이 너무나 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얼룩진 목자들이여! 양심이 이미 허물어지고 상하고 둔해진 목자여! 언제 정신을 차리고 네 소유를 다 팔아서 네 가난한 성도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가난한 이웃의 품으로 올래?
개인의 징계를 논하고자 했으나 민족의 징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목자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가장 큰 벌이 있습니다. 자신이 병이 들고, 자녀가 결혼도 못 하고 있는 목자가 있습니까? 자신의 교회의 교인이 원로가, 장로가 병들고 죽고, 그리로 요절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자살하는 교인이 있고 정신적으로 병이 든 교인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징계를 겸허히 받고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목사가 회개해야 되는데, 가장 모든 분이 걸려 있는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성도에게 주는 일부터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돈을 가지고 병들고 자식이 불행하지 돈을 나누고 내가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병이 떠납니다. 내 자녀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내 자녀가 내 대를 이를 손자를 낳아 줍니다.
다 물질을 소유하고 나누지 않음으로 생긴 문제이니 이 문제를 먼저 푸셔야 그다음에 장로님, 목사님 가정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집과 땅이 자녀의 행복보다 귀하다. 집과 땅과 돈이 내 건강보다 귀하다 하시는 장로님, 목사님, 권사님 집사님은 그렇게 믿고 사시면서 모든 불행을 다 겪고 그리고 예수님을 뵈올 때 하실 말씀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이 정신을 차리고 돈으로 부할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징계를 받은 사람입니다. 불순종으로 아내가 말도 없이 모든 소유를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나가서 옷을 벗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녹번에 있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리고 불면증에 걸려서 스스로 자해하고 죽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행동이 죽을 수 있음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저는 정신이 나갔던 사람입니다. 정말로 너무나 무시무시한 불면의 밤을 4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늘 우울했고 약을 먹고 버티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왜 내게 이렇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쉬지 않고 생각했습니다. 고등부 교사로 교회를 섬겼고, 늘 전도했고, 그리고 교회에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고자 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가족도 외면하고 친구도 모두가 떠났습니다. 외로움이 뼈가 시리게 오고 이것이 불면이 됨을 알았습니다. 자비로우신 주께서 입맛을 뺏어가지 않았고, 그리고 교회로 인도하셔서 교인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지나고 가정도 새로 주시고, 아들도 주시고,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다시는 겪지 않고 싶은 불과 같기도 하고 또 밤과 같은 소망 없는 체념의 시간, 그리고 하나님과 완전히 막힌 시간을 경험을 했기에 징계에 대해서 조금은 압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징계의 말씀이 그대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을 믿고 약 30년 이상을 한국에서 최극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지은 죄는 신실하지 못함에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면 그대로 하나님과 약속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극도로 화나게 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제 마음대로 어떤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조심하고 절대로 부자가 되고자 애를 써서 아니 됨을 너무나 잘 압니다. 어렵게 살면서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말로 다 설명하게 어렵습니다. 주와 함께 하는 가난에는 너무나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돈이 없으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됩니다. 놀러 가는 일도 없고, 차도 없고, 집도 없고, 땅도 없는 것이 가난입니다. 그리고 전기, 수도, 가스비도 못 내서 수시고 끊어지는 것이 가난입니다. 옷도 사 입지 못해서 남이 버린 옷을 다시 입는 것이 가난입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은 모두가 할인이 되는 하품의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난입니다. 어쩌다 차를 사도 가장 싼 차를 사서 수리비가 더 들어가는 것이 가난입니다. 아들의 우유도 늘 할인된 것만 사서 먹이고, 겨울엔 내복으로, 여름엔 에어컨도 없이 지내는 것이 가난입니다. 집이 좁고 반지하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어 공공의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 가난입니다. 여름이다 겨울이다 연휴나 하나 경비가 어디 연휴가 있습니까? 청소부가 어디 제대로 쉴 수가 있습니까? 새벽에 누구보다 다 일찍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그리고 저녁 늦게 누구보다 어두울 때 퇴근하는 것이 가난입니다. 차의 보험도 내지 못하고, 검사도 받지 못하고, 팔지도 못하고, 벌금이 올라가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가난입니다. 누가 돈을 빌려줍니까? 아무도 돈도 빌려주지 않는 것이 가난이요, 신용불량입니다. 그러나 무엇합니까? 틈이 나면 기도요, 시간이 나면 성경을 읽고 정리요, 시간이 나면 몸으로 하는 전도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떤 여유도 없으니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낮고 낮은 자리에서 살다 보면 세상의 무시와 멸시와 천대는 늘 일상입니다. 대학원까지 배우고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의 눈에 이런 세상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세상은 온갖 불의를 이렇게 힘도 빽도 없는 목사에게 행합니다. 해고도 마음대로 당하고 여기저기서 만만하니 모두가 함부로 덤비고 대합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천하보다 귀한 것을 얻었으니 세상의 불의하다는 명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고시에 합격하고 은행에 그대로 다녔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살기에 어렵고 불의 한 줄 알았겠습니까? 한 달에 천만원을 벌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용돈도 늘 넉넉하고 시간도 많으니 외국도 여러 번 갔을 것이고, 골프도 치고, 음식도 먹으려 수준에 맞는 친구와 함께 수시로 다니고, 만나는 사람도 레벨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동산에, 증권에 돈이 되는 모든 것에 신경을 쓰고 살았을 것이며, 먹고 마시니 탈이 나는 몸을 위해서 건강에 좋다는 것을 다 먹고, 또 보험은 보험대로 잘 챙겨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어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흐름에 늘 관심을 두고, 자녀를 잘 키우고 또 좋은 대학에 넣으려고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과 저는 1%도 관심이 없이 저는 주로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또 전도하고 그리고 생업에 충실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기에 이렇게 온 세상에 불의한 세상을 고발하고 불의한 목자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이렇게 인도하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곧 죽을 목숨을 잠시 사는 생명을 누려 보았자 무슨 큰 유익이 있습니까? 가난 속에 있는 축복 속으로 모든 목사와 장로와 권사님을 초빙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서 율법의 소중함을 아는 자가 되어서 이를 하버드와 예일과 옥스퍼드와 프린스턴에 영어로 번역해서 약 10권으로 책으로 묶어서 전했으니 이들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가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누가 이런 축복속에 있습니까?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복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복 중의 복으로 믿습니다. 그냥 값없이 제 오천만의 로마서를 읽으시고 모두가 가지고 가시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냥입니다.
주께서 부자들에게 모든 소유를 팔아서 네 이웃과 가난한 형제에게 나누고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 중에는 전능한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진다, 먹는 것, 입는 것, 교육 그리고 너를 훈련시키는 것 다 책임을 지고 네 생명도 더욱 풍성한 해 주겠다는 약속이 숨어있고 또 사랑이신 목자께서 우리를 틀림없이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이를 믿고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강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사는 제게 또 큰 징계를 주셨고 저는 수년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를 쉬지 않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덤볐습니다. 징계를 경히 여기고 낙심했던 사람입니다. 그래도 이런 무지 몽매한 죄인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젊은 아내를 주셨고, 그리고 아들을 주셨고,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17년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16세가 되었습니다. 이전의 고난을 옛일이 되고 대부분 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임을 알게 되었고 징계를 엄히 여기고 낙망하지 않고 회개하며 열심을 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를 쉬지 않고 또 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징계가 옵니다. 잘 믿는 목사님께도 오고, 잘 믿는 장로님께도 오고, 잘 믿는 권사님께도 옵니다. 병이 오기도 하고 가정이 깨어지기도 하고 그리고 주변에서 누가 죽기도 할 것입니다. 너무 늙어서 오는 징계를 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젊을 때 징계는 참을 힘이 있지만 노년에 모든 재물을 두 손에 가득 쥐고 오는 징계는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그대로 인생이 재물만 세상에 남기고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주변에 있음을 봅니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속히 필요가 넘치는 모든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믿음의 형제를 도와야 합니다. 어려운 분 중에는 목사가 있을 수도 있고 장로가 있을 수도 있고 집사도 초신자도 있을 수가 있으니 이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고 돕고 정말로 후련하고 단출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고 주님을 뵈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 있으십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 있습니다. 속히 이런 문제를 해결하시고 징계에서 벗어나시고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같이 나아가길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리고 징계중에 있으신 분은 절대로 낙심마시고 고난을 통해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시고 더욱 열심으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정신을 차려서 먼저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대부분의 오천만의 로마서의 글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더욱 좋은 것으로 풍성한 것으로 건강한 것으로 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힘을 내시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