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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필 창작론의 역사적 전개
오 덕 렬
Ⅰ. 들어가며
작품을 쓰면 그게 창작이지 뭐 창작이 따로 있느냐고 말하는 수필가도 있다. 필자도 창작론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학 이론 공부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었다.
에세이(수필)는 다만 수많은 산문 중에서 그 작법이 창작적이라는 점 때문에 문학 세계의 일원으로 여기게 되었다.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는 몰톤이 분류한 문학의 두 갈래 중 시문학에 속하고, 수필은 산문에 속한다.
본고에서는 수필 창작론이 언제 대두되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창작문예수필이 출현했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Ⅱ. 창작론의 대두
우리 수필문학에는 언제 창작론이 대두되었을까? 우리나라는 갑오개혁(1894)을 계기로 서양의 창작론을 접했다. 고전문학적 방법을 버리고, 현대문학을 택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모든 예술이 동양의 문장론적 작법론을 버리고, 서구문학 이론의 창작론을 받아들였는데 수필만은 그렇지도 않았다.
1. 기존의 수필
에세이(수필)의 시조를 몽테뉴(1533∼1592)로 여기지 않고, 몽테뉴보다 4세기나 전인 홍매(洪邁, 1123∼1202)를 원조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에세( Essais, 1580)는 저 건너 남의 얘기로 여기고,『용재수필』에서 ‘수필’의 글자 풀이를 딴 ‘붓 가는 대로’를 수필 이론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이론적 혼동·이론 부재의 글쓰기였다. 그리하여 시, 소설보다 창착론을 한 세기 이상 늦게 접하게 되고 말았다. 그동안 기존의 수필은 현대문학 이론으로 조명되거나, 비평을 받은 일이 없었다. 그 결과 시, 소설은 노벨문학상 문턱에까지 가 있으나 오늘날 수필이 타 장르나 독자들로부터 받는 대접(?)은 여기의 문학, 서자문학, 변방문학, 잡문, 신변잡기, 수필도 문학이냐 등의 비아냥거림뿐이다. 다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창작론을 받아들인 것이 늦기도 했지만 초창기 수필의 선배들이 방향을 잘못 잡은 탓도 한몫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 창작론의 대두
우리나라는 갑오개혁(1894)을 기점으로 사회 전반이 봉건 사회를 마감하고 근대 시민 사회로 전환하게 되었다. 모든 예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갑오개혁 이후로 현대문학을 하게 되었다. 음악, 미술 무용, 연극, 영화 및 대중 예술에 이르기까지 예술 전반이 고전문학적 예술 방법에서 현대문예사조에 의한 창조적 예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양 문물에 접하기 전에는 동양에서는 문학이라는 낱말이 문예, 언어 예술, 의미 예술 등의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이상섭:『문학비평용어사전』98쪽). 또한 우리에게는 서구적 개념의 창작이란 고유 개념이 없기도 했다.
우리에게 창작이란 고유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日人들의 오역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데 있다. 그 가장 주요한 실례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의『Poetica』를 들 수 있는데 일인들이 이를『詩學』이라 번역한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도 詩學』으로 통해 있다.…그러나『Poetica』의 원의나 내용은『創作學』또는『創作論』으로 번역해야 할 성질의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김동리:『문학개론』(어문각, 83쪽).
3. 창작 개념 · 작법 개념
창작의 뜻은 무엇인가. 수필계에서 말하는 상식적인 개념이 아닌 현대문학 이론에서 말하는 창작 개념을 조연현 교수로부터 들어 보자.
창작 문학은 시에 속하는 문학으로서 그 문장 형식 여하를 불구하고 <존재의 총계에 부가>하는 창조적인 문학이 된다. 그것이 한 인물의 창조든 어떤 사건 하나의 창조든 문장으로 창조된 내용은 그것이 역사상의 그것에 일치하든 않든, 그것이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신의 창조에 의해서 마련된 우주의 한 부분과 똑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 된다.”(조연현:『개고 문학개론』정음사, 1973. 46쪽)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시에 속하는 문학’이다. ‘시’는 창작 -‘poet(시)’는 희랍어로 무슨 물건을 만들고 또는 창조하는 사람 -의 뜻이다. 앞에서 김동리 교수는『시학』은 오역이라 지적하면서 그 원의나 내용은『창작학』또는『창작론』으로 번역해야 할 성질의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문장 형식 여하를 불구하고’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와 산문이 문장의 형식으로써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가능한 세계>냐 <사실의 세계>냐, 하는 것으로써 구별된다. … 시와 산문의 차이는 문장의 형식(율문 대 산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문장의 성질(창조 대 토의)에 있다는 말이다.
<존재의 총계에 부가>한다는 뜻은 ‘신적 창조론에 비유한 존재론적인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적인 사실적 창조를 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문학이 하는 창조는 상상적(형상적) 존재의 창조이다. 형상적 존재의 창조(창작)는 아리스토텔레스『시학』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문학의 형상 창작론’인 것이다. 몰톤의 설명에 따르면 ‘시인(작가)은 상상적 우주의 창조자로서 그 우주를 상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시인(작가)이 작품을 완성 했을 때, 즉 세상에 없던 새로운 존재론적 형상물을 만들어 냈을 때, 거기에 창조되는 인물과 사건의 수만치보다 더 ‘존재의 총계’에 보태져 풍부해진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문장으로 창조된 내용’이란 문장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문장으로 노래도 부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이관희:『정론 현대수필문학 이론』비유, 2009. 153쪽). 즉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문장으로 꽃을 그려낸다면의 뜻이고,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듯 문장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다. 문학의 재료는 오직 문장뿐인 것이다.
모든 예술 창작의 기본 작법은 <이것>을 {저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은 창조하고자 하는 대상 사물을 직접 있게(존재)하는 창작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돌멩이 하나도 실제로 있게 하는 창작을 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작은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변형, 변용시키거나, 혹은 두 개 이상 다른 것들을 합쳐서 제3의 새로운 존재 대상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예창작의 기본 작법이 나오게 된다. 즉 <이것>을 {저것}으로 변형, 변용시키거나 <이것>과 {저것}을 합쳐서 제3의 새로운 존재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모든 예술 창작의 근본 작법이다.(이관희)
몰톤은 문학을 시(創造的 문학)와 산문(討議的 문학)으로 분류했다. 김동리 교수는 이 분류의 ‘시문학’이란 말은 일부 착각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문학’의 ‘시’란 창조적인 문학의 일반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우리말의 습관으로서는 시가나 서정시와 동의어로 통해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문학’ 대신 ‘창조적 문학’의 ‘창조’를 따서 ‘창조문학’이라고 했으면 좋겠으나 그렇게 해서는 한문의 성질이 덜 맞으므로 같은 뜻을 살려서 <創作文學>이라고 함이 적합할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문학에 우리 용어로 정리한 <창작문학>이란 말이 확립되었다.
위에서 필자는 초창기 선배들이 방향을 잘못 잡은 탓도 한몫했다고 보았다. 초창기 대표적인 첫 수필론인 김광섭(1906~1977)의 <隨筆文學 小考>(『문학』통권 1호, 1933.)에서 그 실상을 살펴보자.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것이다.…문학의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소설이나 시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완성된 폼이 없다. 단편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에드거 앨런 포우나, 안톤 체홉이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私淑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에테나 셰익스피어나 혹은 입센 등에게서 그 완성품을, 비록 모델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 번 살펴볼 아량쯤은 있어야 하겠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반드시 찰스 램이나 해즐리트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이다.…형식으로서의 수필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성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요, 또한 성격이다.
기존의 수필은 고전수필의 전통도 잇지 못하고 현대문학 이론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이론적 정체성, 즉 뿌리가 없는 것이다. 이론이 없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 했다. 작품을 한 편이라도 써본 사람은 에세이건 창작에세이건 피 말리는 어려움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니. 그것도 ‘써지는’ 글이라니 세상 어디에 그런 장르가 있단 말인가. 또 ‘무형식의 형식’이라 했으니 문학이 창조하는 형식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작품은 산 인간과 같은 것이어서 인간이 정신과 육체로써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이 작품은 내용과 향식으로 살고 있다(백철). 형식이 없다니 내용도 없는 글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어떻든 ‘붓 가는 대로 무형식의 형식’은 이미 공식적으로 폐기처분된 용어다. 창작문예수필 작가회에서 <현대문학이론화 운동>(2016.1.28.)의 선언문에서의 일이었다. 왜 그랬는가? 수필의 이론이 될 수 없는 메모 방식의 글쓰기인 ‘무형식의 붓 가는 대로’가 지난 한 세기가 넘게 우리 수필계의 유일무이한 이론으로 행세한 탓이다.
인용문의 가운뎃부분의 내용은 수필은 이론공부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 세기 이상 타 장르보다 이론 개발이 늦은 것도 이런 수필론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Ⅲ. 에세이에서 창작에세까지
창작문예수필의 창작 개념은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이고, 작법 개념은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이다.
이제 비창작 일반산문인 에세이가 어떤 역사적 전개 과정을 거쳐서 창작에세이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 진화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1. 플라톤: 최초의 수필가
플라톤(Platon, ?B.C.428~?B.C.347)은 최초의 수필가다. 몽테뉴 이전에도 수필적인 문학이 있었다. 물론 고대에는 에세이라 부르지 않고 <대화> 혹은 <議論> 또는 <論記(dissertantion)>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고대의 수필문학의 형식은 우선 플라톤의『대화편(Dialogues)』의 자유스러운 논의의 형식이 극히 수필에 가깝다는 것, 그 점에서 플라톤은 최초의 위대한 수필가요,『대화편』은 최초의 수필 작품리란 것이다. 또한 그 점에 수필의 기원은 <漫然한 對話>인 것이다.(백철:『문학개론』신구문화사, 1956. 355쪽).
위에서 말한 ‘만연한 대화’의 성질은 곧 수필의 명상적인 표현 개인적인 여러 가지의 틀리는 입장의 논의, 산만한 자유의 조건들과 부합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몽테뉴가 자신이 자기의 에세이 형식에 관하여 그런 대화적인 뜻을 암시한 것이 있다. “나는 처음 대하는 사람과 말하듯이 종이(紙)에 구술하는 것이다.”가 그것이다.
2. 몽테뉴: 근대 수필의 아버지
근대(현대) 수필의 아버지는 몽테뉴(1533∼1592)다. 그의 에세(Essais(1580)-대표적인 특징은 풍부한 인용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자 곧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진화·변용을 시작했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에 의해 영국식 이름 ‘에세이’가 되면서 첫 번째 변화를 맞았다. 몽테뉴의 인포멀 에세이(informal·주관적)는 베이컨의 산문수필인 포말 에세이(formal·객관적)-문장은 비유법의 연속-로 변하였다. 이후 몽테뉴 탄생 242년에 찰스 램(1775∼1834)의 <엘리아 수필집>에서 창작ㆍ창작적인 수필로 진화를 보여주었다.
본래 몽테뉴가 쓰기 시작한 엣세이(Essais)란 프랑스 말의 뜻은 <시험해 본다>는 것이다.(백철:『문학개론』신구문화사, 1956. 353쪽)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수필의 개념은 ‘에세이’의 개념인 ‘시험해 본다’는 것과 에세이의 시조는 몽테뉴라는 것이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수필론 어디에도 홍매는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3. 찰스 램: 창작문예수필의 시조
찰스 램은 창작에세이의 완성자로서 실로 창작문예수필의 시조가 된다. 수필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 현상을 가장 분명하게 작품으로 말해주었다.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 현상의 정점에 있는 것이다.
근대 영문학에 있어서 대표적인 수필가는 역시 램(Lamb, Charles. 1775-1834)이다. 그는 純文學的인 수필을 처음으로 쓴 사람으로서 世評과 같이 그의 수필의 특징은 절실한 애정으로써 추억적인 재료를 써간 것이다.(백철:『문학개론』신구문화사, 1596. 361쪽).
여기서 말하는 ‘순문학적인 수필’이란 창작 수필, 즉 창자문예수필을 뜻한다. 여기서도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의 시조는 찰스 램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찰스 램의 작품이 나오자, 그 형태와 관념은 일변했습니다. 비로소 詩 ·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의 한 장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거기에는 분명히 <램>에 와서 비로소 예술품 순문학 작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윤오영: 『수필문학입문』관동출판사, 1975, 205쪽).
찰스 램의 작품은 비창작 일반 산문문학이었던 에세이에서 ‘시 · 소설’과 같은 창작문학으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여 앞에서 말한 몰톤의 시문학에 속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영국의 informal essayist로서의 ‘아직 대표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는 Charles Lamb이라고 할 수 있다.(공정호 등:『영미희곡 수필 평론』신구문화사, 1964. 209쪽).
‘아직 대표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은 현재까지도 찰스 램을 능가할 수필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겠다.
4. 최남선: 최초의 창작문예수필, <가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창작·창작적 문예수필은 최남선(1890∼1957)의 <가을>(1917)로 치고 있다. 내년(2017)이면 우리나라 창작문예수필 탄생 100주년이 된다. <창작문예수필 작가회>에서는 문학계 인사들을 모시고 기념행사를 가질 계획으로 있다.
5. 백철: 최초로 수필을 독립 항목으로 잡은『문학개론』
백철(1908∼1985)교수의『문학개론』(신구문화사, 1956.)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수필’을 독립 항목으로 취급하였다. 즉, 제3편 文學分論, 제4장 수필(상동, 352쪽)이 그것이다. 오늘날 문인들이 말하는 에세이는 사회적 문화 도구로서의 에세이가 아닌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한 에세이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에세이 이론을 가장 먼저 밝혀준 분이 백철 교수다.
6. 조연현: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하는 산문의 대표, 수필
백철 교수에 이어 조연현(1920~1981) 교수는 현대수필의 성격이 창작적인 변화에 있음을 더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전문화되지 않은 학문이나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하는 일반적 산문이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산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수필이다.”(조연현:『개고 문학개론』정음사, 1973. 100쪽).
수필을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하는 산문의 대표로 보았다. 이것은 수필이 창작수필로 진화하는 속성을 내다 본 것이다.
7. 윤오영: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필을 쓸 수 없다
윤오영 선생은 『수필문학입문』(관동출판사, 1975.)에서 수필이 시적 창작 발상을 잉태한 결과 그 이전의 몽테뉴 유(類)의 건조한 산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식의 창작문학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수필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는 쓸 수는 있어도,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필을 쓸 수 없다.”(윤오영:『수필문학입문』(관동출판사, 1975. 192쪽).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필을 쓸 수 없다’는 말은 수필은 또 다른 시문학이라는 뜻이다.
8. 공정호: 수필의 ‘진화’ 용어 처음 사용
이 정의는 고도로 진화한 현대수필에 부합시키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겠으나…”(공정호 등:『영미희곡 수필 평론』신구문화사, 1964. 198쪽).
공정호 교수는 ‘고도로 진화한 현대 수필’이라고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진화’라는 말을 처음 썼다. 고도로 진화한 현대 수필의 실체를 본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informal essay는 더욱 짧고, 가볍고, 밝게 되는 동시에, 빠르고 암시적인 가운데 그 개인적인 성격이 짙어가고 있다. 집필자의 변덕·기분·감정 등이 직접 친밀하게 반영되는 점은 抒情詩를 방불케 한다.”(상동, 209).
‘서정시를 방불케 한다’는 진단이다. 수필의 서정시적 분위기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창작문예수필의 창작 개념인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와 통하고 있다.
9. 이관희: <창작문예수필> 발견자 · 이론 창안자
몽테뉴의 에세이가 진화하여 전혀 새로운 양식의 창작·창작적인 수필이 되었음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창작문예수필>이라 붙였다. 창작문예수필이 ‘서정시를 방불케 하는 작품들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즉 ‘서정시를 방불케 하는 작품이 곧 산문의 시인 것이다. 산문이 운문의 시적 창작 발상을 잉태하므로 산문의 시가 되는 것이다.
기존의 수필의 소재는 ‘사실의 소재’이고,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의 소재는 인간의 회상 기억 작용의 불완전성에 의한 ‘변형·왜곡·치환·가치 전도’된 이미지 조각 형태로서의 소재, 즉 [허구적 사실의 소재]를 의미한다.(이관희:『창작』<수필이란 새빨간 거짓말>, 300쪽).
모든 문학의 소재는 사실의 소재다. 현실에서 취한 사실의 소재를 다루는 방법이 장르마다 다르다. 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거기서 작품화하는 것이 태생적 특성이다.
비창작 일반산문인 수필은 <사실의 소재 형식>의 문학이고, 창작문예수필은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의 문학인 것이다. ‘사실의 소재’ 앞에 ‘허구적’이라는 용어를 붙이게 된 본질적·이론적 근거가 무엇이냐, 딱 떨어지게 대답해 달라고 하면 <변질·왜곡된 정서적 경험 기억의 잔상>을 의미한다고 답할 수 있다.(오덕렬:<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이란> 2015).
창작문예수필 이론 총서 전5권으로 창작문예수필 이론 정립 1단계를 마감하였다. 총서 전 5권은 다음과 같다. 제1권 창작문예수필이론서(청어, 2007.), 제2권 수필의 [창작 문학] 시대 선언(비유, 2009.), 제3권 정론 현대 수필문학 이론(비유, 2009.), 제4권 수필문학 이론은 정립되었다(비유, 2010.), 제5권 형상과 개념(비유, 1910). 그리고 이론 정립 1단계 이후 더욱 심화된 이론을 집대성한 창작문예수필 원론(비유, 2016.)이 충간되었다.
10. 수필이 시적 창작 발상을 잉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작가들
1) 이태준: 수필은 심적 나체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이태준:『문장강화』창작과 비평사, 1993. 166쪽).
2) 백철: 시는 주정의 문학
시는 주정(主情)의 문학이다.”(문학개론 신구문화사, 1956. 191쪽).
시는 感情의 언어이고, 산문은 理性언어이다.(상동, 94쪽)
문학의 세계는 정서와 감정의 세계다.(상동, 63쪽)
3) 윤오영: 수필은 시여야 한다
수필은 하나의 시여야 한다. 이 말은 수필에 시적 표현을 포함시키라거나 시적 운율, 시적 구조를 따르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이 말해두거니와 수필의 특징은 산문인 데 있고, 시인 데 있지 않다. 수필은 그 전체에서 하나의 詩格을 얻어야 한다.
수필은 승화된 단편이어야 한다.…단편소설에서 그 설화성을 배제하고 그 기획성을 탈피하고 그 가설무대를 철거시키고 시적 정서, 준열한 비판정신, 성광적인 진리를 솔직 미려하게 빛낼 수 있다면 수필문학은 확립될 것이다.(윤오영:『수필문학입문』(관동출판사, 1975. 198-199쪽).
창작문예수필의 창작 개념은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이다. 그러하니 창작문예수필은 ‘시 + 소설’의 양식으로 두 장르의 진액을 합친 것을 잘 짚어주고 있다. 수필에 정서가 흐르는 것은 서정시에서 빌어온 수법이요, 문장의 탁의는 시의 메타포에서 확충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225쪽)
4) 강범우: 수필은 마음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
리드(H. Read)는 ‘시가 앉을 자리에 수필이 앉아 있다’는 말로써 수필이 창작적인 변화를 진행하여 가는 동안 시문학에 가까이 접근하여 간 것을 지적했다. 이태준의 ‘심적 나체’로서의 수필, 수필가들이 잘 알고 있는 ‘심경의 문학’, 윤오영의 ‘시를 알아야’ 쓸 수 있는 수필의 문학 이론적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준 분은 강범우 교수다.
시가 말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이며, 소설이 인물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이라면 수필은 마음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이다.(『수필 인간학』미래문화사, 2004. 33쪽).
‘수필은 마음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이란 말은 창작문예수필은 ‘감성적 상상력’에서 탄생한다는 말과 통한다. 창작문예수필은 사물의 마음의 이야기, 즉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력을 창작하는 문학이란 뜻이기도 한다.
이상에서 에세이(수필)가 어떤 진화의 과정을 거쳐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가 되었는지 긴 여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창작문예수필의 미래를 내다보자.
Ⅳ. 전망과 과제
수필이라는 장르 명칭은 1924년에야 비로소『영대(靈臺)』(송명희)와 『開闢』(오창익)에서 정착되어 쓰이기 시작했다. 수필 전문지의 최초는 1938년에『박문』이 창간된 것으로 여러 연구가 밝혔다.
이 소론은 현대수필 창작론을 역사적, 시간을 따라 종으로 벌려 놓았다. 현대 수필 창작론의 사적 전개 과정을 짚어보려 하였다.
산문시를 맨 처음 쓴 시인은 보들레르이다.(1869) 이를 두고 방비일(Banville)은 ‘문학사상에 진실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고 한다. 몽테뉴 에세(Essais)에서 베이컨을 거쳐 찰스 램이 창작ㆍ창작적인 진화의 정점을 찍었다. 그후 대한민국에서 이관희 작가에 의해 창작문예수필이 발견되고, 이어서 이론이 창안되어 대한민국이 <창작문예수필>의 종주국이 된 사건이야말로 혁명적인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창작문예수필은 시와 소설은 물론 다른 모든 장르, 동화나 희곡, 심지어 미술이나 음악, 무용, 영화까지도 그것들과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는 문학 양식이다. 그러므로 타 장르 창작 양식을 융화적으로 얼마든지 원용해 올 수 있다.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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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에 서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림 <창작문예수필의 외연 확장도>처럼 중심부에서 주위에 시· 소설· 희곡· 문학평론은 물론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하는 기타 시문을 모두 포용할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오덕렬:<창작수필론>『창작문예수필-작품과 작법16』2014. 1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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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론을 버리고>는 <문장론적 작법론>을 버리고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구의 창작론을 받아들였는데>는 <서두문학 이론의 창작론을 받아들였는데>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카페에 올렸을 때 문장이 깨어지는 원인은 한글 작업을 할 때 문서 기본을 변경시켰기 때문입니다.
한글을 펼쳤을 때 상태에서 아무 변경도 하지 말고 문서를 작성해야 카페하고 호환이 됩니다.
한글에서 기본문서 조건을 변경시킨 것이 있으면 기본문서 작성으로 바꾼 후 위 글을 지우고 다시 올려 보세요.
샘아저씨 고맙습니다. 지난 4일에 올린 <상상력과 허구의 관계>도 한 번 살펴주셔요. 글제를 그냥 <상상력과 허구>라 하면 어쩔는지요.
<상상력과 허구> 편이 나을 듯 합니다.
네에! 그리 고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