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읍치 동네길 돌고 돌아
1800년대 거제읍치 약도 기성관, 동헌과 부속건물이 보이네요
코스 1) 거제현관아-제일교회-향교옆-옥산금설길-거제저수지-옥산금성 입구-계룡산임도삼거리-동상3길-거제여상-동상 명진길-거제성당입구-동상우체국-거제초등학교-거제현관아( 3.34km 50분 2) 거제현관아-제일교회-향교옆-옥산금설길-거제저수지-옥산금성 입구-계룡산임도삼거리-고자산치임도길-뒤돌아오기-동상3길-거제여상-동상 명진길-거제성당입구-동상우체국-거제초등학교-거제현관아 (12.0km 2시간) 3) 거제현관아-제일교회-향교옆길-궁도장-근린공원-유아숲-삼거리-거제사슴영농조합-향교옆-제일교회-마을안길-거제현관아 (1,77km 26분) 거제시에서 역사와 문화 전통이 살아숨쉬는 곳이 거제면이다. 1663년부터 1914년 통영군으로 병합 될 때까지 거제면은 거제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고현은 옛 치소였으나 임진왜란 시 고현성 함략으로 초토화되어 모든 관공서를 거제면으로 이전하였다. 그래서 거제문화의 보고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거제군이 통영에 병합되었다가 1953.1.1. 장승포로 환군 되었다가 1995년 1월1일 장승포시와 거제군이 통합되어 거제시가 되는 바람에 고현이 행정중심지가 되어 발전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문화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거제 주민 뿐 만아니라 거제시민이면 거제 역사길을 걸어보든지 아니면 거제면 동네길을 둘러보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가요? 거제면은 경상남도 거제시의 서부와 중부에 걸처져 있는 면으로 거제시 최대의 농업 및 특화작물 재배지이며, 1663년부터 1914년까지 거제현 관아와 거제군청이 있었던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 1900년 진남군이 설치되기 전에는 거제도 남서쪽의 한산도 등의 섬들(현 통영시 한산면)까지 아우르는 행정 중심지였다. 거제기성관을 출발하여 경남 4대 누각 중의 하나인 기성관, 객사 겸 집무 거제질청
거제기성관 주변에는 거제면사무소, 거제질청, 거제초등학교, 동산우체국, 거제성당 등이 모여 있는 문화중심지이다. 안내판을 보면 거제관아로 되어 있다. 거제현관아는 1952년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략되어 1663년 고현에서 거제로 현아를 옮겼다. 향교, 동헌, 객사, 질청과 그 부속건물이 250년동안 거제에서 거제현 관아로 이용되어 왔다. 지금은 기성관은 보물로 지정되고 질청은 국가지정 사적문화재이며 동헌은 거제면사무소로 이용되고 있다. 거제현 객사(기성관)는 2021년 10월22일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음. 일제 강점기에는 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하였음. 경남 4대 누각(촉석루, 세병관, 영남루, 기성관)중의 하나이다. 기성관 마당에는 송덕비군이 있다. 철비가 6기, 석비가 8기 총14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립연대는 17세기에서 18세기가 대부분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2019.12.26.)로 지정되었다. 요즘 시대에 보면 이해가 안가지만 그 시절에는 그러한 문화있었으니 이해를 해야지... 기성관 앞에는 거제면사무소가 있다. 옛날 동헌이 있어서 거제현의 사무를 관장했던 곳이나 지금은 면사무소로 활용하고 있다. 면사무소 옆에는 300년이나 된 팽나무가 있고, 기성팔경이란 비석이 보인다. 기성팔경[岐城八景] ..거제면 8경 黃沙落雁(황사낙안) 죽림 모래사장에 기러기 앉아 노는 광경 竹林棲鳳(죽림서봉) 죽림의 대숲에 온갖 새가 놀고 있는 광경 水晶暮鐘(수정모종) 수정봉아래 있는 세진암의 종소리 烏岩落照(오암낙조) 오수 뒷산 까마귀바위로 넘어가는 낙조 內浦漁火(내포어화) 거제만에 고기 잡는 어선들의 불빛 燕津歸帆(연진귀범) 고기잡는 배가 나룻가에 돌아가는 장관 五松起雲(오송기운) 오송마을 뒤에 구름이 일고 있는 광경 角山夜雨(각산야우) 각산 부두에 밤 비 내리는 광경 현재 거제 9경과 비교하면 좀 다른 의미가 느껴진다. 혹자는 ‘한자는 뜻글자라서 의미가 깊고 훈민정음은 소리글자라서 의미가 없다’고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같다. 어떠하든 감성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거제 유일의 장...거제장(4, 9장)
거제에는 아주장, 하청장, 거제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제장밖에 없다. 사람이 사는데는 의식주(衣食住)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 필여한 음식, 의류, 생활용품등을 사고 파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지금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많이 있으나 아직도 전통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제사장은 주변에 있는 농어민들이 가지고 온 품목들도 많지만 외지에서 전문 장사꾼이 많이 몰려든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장은 8시부터 10시까지 북적거리다가 12시경 파시한다. 일반 마트나 백화점보다 10~20% 정도 값이싸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거제 소나무동산을 지나 옥산성지로 거제읍치 뒷산에는 소나무 근린공원이 있다. 5ha에 약 1,000그루 소나무숲 근린공원내에는 유아숲도 있다.
거제장의 끝부분에 거제제일교회가 보인다. 1910년 3월 15일 거제면 동상리 하대원씨 행랑방에서 하씨 외 8~9명의 청년이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사역을 시작해 거제지역 복음화의 초석이 된 거제제일교회다. 그 옆에는 거제향교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세종 14년(1432) 고현에 처음 세워졌으나 현종 5년(1664)에 거제에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날 교육기관이던 향교는 지금은 제사만 지내고 있다. 옥산길을 따라 가노라면 소나무동산이 나온다. 100년이나 된 소나무가 500그루정도 숲을 이루어 장관을 이룬다. 산에 가는 이유가 피톤치드를 향유하기 위해 간다고 한다. 혹자는 편백나무가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하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한국사람에게 가장 알맞지 않나 생각해본다. 5ha에 빼곡이 들어선 소나무 군락은 산책하기에 안성마춤이다. 특히 한쪽에는 어린이 숲 공원이 있어 안성마춤이다. 거제저수지를 지나 옥산성지로 옥산성지 중앙에 위치한 금성대
농자천하지대본이라하여 조선시대에는 물을 가장 귀중하게 여겼다. 전체인구의 60%나 되니 그럴만하다. 현재는 농촌인구는 전체대비 4%정도이니 격세지감이 든다. 옛 문헌에 보면 수정저수지이다. 지금 동산으로 되어 있는 옥산성지도 옜날에는 수정봉이라 기록되어 있다. 거제저수지의 윗부분이 홈골이다. 연초면 명동의 옛 이름이 홈골이다. 홈과같이 길골짜기란 뜻이다. 수정저수지를 지나 옥산성지에 오른다. 옥산성지는 수정봉성, 옥산금성ㄹ으로 불리워오다 최근에는 옥산성지로 불리우고 있다. 1873년 거제부사 송희승이 축조한 성곽이다.성문 밖에 세워진 비석에 새긴 글에 의하면 조선 고종 10년(1873) 거제부사 송희승이 조정에 지방의 행정·경제·군사 중심지에 읍성을 쌓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왕은 거제의 읍터를 3번이나 옮겨서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송희승은 대신 수정봉에다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8개월만에 성을 완성시켜 군기와 군량을 비축하고 해변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송희승은 백성들의 강제동원 및 임금의 명령을 어긴 죄로 파직되었다. 최근에 출토된 유물로 추정하면 7세기경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계룡산 임도 갈림길에서 반곡서원으로
계룡산 아래 자리잡은 거제여상 우암 송시열을 배향한 반곡서원( 경내에는 거제의 대학자 정혼성을 기리는 동록당이 있다) 거제도 고찰...세진암(경남문화재자료 목조여래삼존불좌상)
옥산성지 돌아 보고 계룡산을 보고 가노라면 인도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고자산치가 나오고 이어서 계룡산이다. 이곳을 갔다 오려고 하면 왕복 1시간 이상 걸린다. 다음에 거제역사탐방길을 갈 때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동네 둘레길이기에 여기서 반곡서원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약간 경사가 있으며 시멘트 포장이 된 도로이기에 걷기에 편안하다. 길가에 큰 바위에 ‘ 조상을 다지며 건강을 다지는 길’ 각석이 있다. 궁금하면 못사는 기질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보니 비석 뒤에 아버지란 글귀가 보인다. 중략...1909년 아버지는 태어났다. 그 이후 아버지는 바다로떠났다...하금열 하금열씨는 거제면 서정리 출신으로 고려대학을 나와 언론계에 종사했다. 동아방송-mbc, kbs, 거치면서 마지막에 sbs사장을 하고 상임곰누으로 있을 때 이명박대통령시절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거제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은 없으나 향인으로 자랑스런 분이다. 그 묘소옆에는 소목장 한 것이 보인다. 우리나라 장례문화도 많이 바끼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사람이 죽으면 보통 9일장을 하고 매장을 한 후에 묘지옆에 움막을 짓고 모든 관직을 버리고 3년동안 조석으로 식사를 올리고 외출시는 방립을 쓰고 술과 고기는 먹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생전에 부모를 잘 모시지 못했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죄를 사해야 했다. 이러한 행위가 효의 근본이라 생각했다. 근데 최근에 보면 납골당 봉안도 싫고 자연장도 싫어서 화장을 한 후네 산이나 바다가에 날려버리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물론 옛날에도 괴질이 걸리며거나 너무 어리면 화장을 하여 흔적고 없어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예방 차원이나 어린자식을 자나깨나 생각하기 때문에 곤육지책으로 행해진 것이라 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오니 거제여상,반곡서원, 혜양사가 있는 곳이다. 반곡서원, 세진암을 지나 거제초등학교로 거제성당 ( 예수와 성모마리아상이 보인다) 거제장 주변에 위치한 제일교회 거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고 유일하게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로 거제의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본산이라 할 수 있다. 1902년에 창건한 사찰이라 알려져 있는데 세진암의 전신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 계룡산 뒤쪽의 뒷메라고 하는 마을에 있었다고 구전되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혀진 바 없다. 또 세진암 쪽 계룡산 정상 9부 능선에 의상스님이 창건하고(640) 수행했다는 의상대와 절터(돌담 샘 대밭이 있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세진암의 근원은 신라 의상스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추정할 수 있다. 거제시의 사찰은 기록상에는 명확하지 않으나 의종이 폐위되어 둔덕으로 왔을 대 수 많은 사찰이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정수사, 은적암, 석굴암, 설매암, 법률사, 구절암, 견암사, 각호사 등이다. 세진암 옆에는 반곡서원이 있다. 반곡서원은 1705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宋時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김진규(金鎭圭), 김창집(金昌集)을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 골짜기를 도론곡(道論谷)이라 하며 반곡서원, 동록당, 세진암 그리고 향교가 있어 도(道)와 윤리가 있는 골짜기라 하여 이렇게 이름지어졌다. 최근에 지어진 거제여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금 가다가 보면 명진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명진은 757년에 거제군의 3속현 중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을 앞에는 경상남도 기념물인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으며 바로 밑에는 문제인 생가가 있다. 다시 돌아서 조금 가노라면 거제성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기본도로에서 50미터거리이다. 1935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외부 모양이 단아하고 깔끔하다.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전경만 보고 돌아왔다.
거제도 최초의 학교... 거제 초등학교(1907개교) 성인식....거제향교에서
거제초등학교기념식 1920년대
옛 동헌이 잇던 자리에 들어선 거제면사무소..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거제시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인 거제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거제초등학교는 거제군 최초로 1907년 개교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문화예술인,교육가를 배출하였다. 교문에 들어서면 2007년 개교 100주년 기념하여 기념탑을 세우고 대대적인 행사를 하였다. 1956.6 본관건물이 개축되었는데 이는 2007년9월21일 국가등록문화제로 등록되었다. 12,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인터넷에 동문회가 없는 것이 흠이다. 거제면 서정리 일대는 거제현이 260년간 머물던 곳으로 문화의 향기가 묻어나는 곳이다.
~~~~~~~~~~~~~~거제만 전경 ~~~~~~~~~~~~~~ 수정봉에 바라본 거제만 노을이 물들어가는 거제만 ( 각산에 노을이 물드는 전경)
계룡산에서 본 거제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