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읽기]
서정춘 시인을 읽는다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 된다._75쪽-서정춘
혹독할 정도로 언어를 엄격하게 다루는 시인_77쪽-안도현
無碍(무애)와 劍制(검제). 낭창낭창한 남도 방언과 유서 깊은 듯이 보이는 유년 왕국으로의 귀소 그리고 날이 푸르게 선 禪的(선적) 사유, 그뿐만 아니라 … 듣도 보도 못한 비유 등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 아늑하고 정겹고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시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선생님 연배다우시게 그려내고 있다는 … _80쪽-박주택
더운 숨길과 서늘한 손길 스치지 않은 시가 없으니 … 무언의 시학(!)이 빛나고 있어 … _82쪽-이시영
서정춘은 동양적인 화재畫材를 사용하여, 서양화를 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시집의 서문에서도 그는 ‘칸딘스키’를 인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정춘은 그 누구보다도 적은 수의 말을 사용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꽉 채운, 짙은 시들을 생산하고 있다._85쪽-김혜순
극절제와 이완_95-하종오
시에는 시적 불운이 필요하다. 잘 쓴 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많이 읽히는 시가 있는가 하면 어딘가에 틀어박힌 시가 있다. 요즘엔 박혀 있는 시가 드물다. 그게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서정춘 같은…… 뼛속에 무덤 기운이 가득한._98쪽-고은
상식적인 교양인 수준을 넘어서는 시인과 작가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문학은 물론이고 ‘인간 개념’마저 바뀌려 하는 이 캄캄한 세기말의 밤에 최소한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만두고 술 한 가지만이라도 죽을 작정을 하고 마시는 사람이 없다. 다들 적당히 술을 마시고 적당히 책을 읽고 적당히 글을 쓰면서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_103쪽
망팔에 이르러서도 시밭 일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서정춘 선생이시다. 젖 먹던 힘을 다하여 어뜨무러차 시밭을 일군다고 하지만 언어로 인골탑人骨塔 세우려는 시인 몸맨두리는 물 부어 샐 틈 없게 반듯하기만 해서 또한 한 해 농사에 한두 편 캐어내는 베메기농군일 뿐이다. … 2,30대의 불타는 뜨거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닌 게 시이다. 중단전 언저리에서부터 불붙기 비롯하여 쥐구멍 팔딱거리는 상단전 백회혈 거쳐 저 아래 배꼽 밑 세 치 자리인 하단전 돌아 다시 중단전 거쳐 목구멍 밖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바로 시인 때문이다. 저 똥구녁 밑창에서부터 한마음으로 끌어올려 내는 것을 가리켜 비로소 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한 갑자는 살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시인지도 모른다.
서정춘 선생의 물방울무늬 같은 시들(은) … 애틋한 마음이다. ‘진정眞情’, ‘필연’ … 한낱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워 줄기를 세우고 가지를 뻗쳐 잎새를 벌려나가다가 마침내 한 송이 꽃으로 그렇게 피어날 수밖에 없는 외마디 슬픈 부르짖음인 것이다._107,8쪽-김성동
시인과 어린아이의 공통점은? 둘 다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것. … 불교에서 천진면목天眞面目이란 부모가 낳기 전의 본래 모습이며, 천진天眞이란 낳지도不生 죽지도 않는不滅 본래의 참된 마음을 말한다. 노시인의 천진이 무섭도록 아름답다._114,5쪽-권혁웅(‘카렌다 호수’ 관련)
어느 시인이 말했다는 ‘극약 같은 짧은 시’를 ‘촌철살인 같은 짧은 시’라고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면 슬픔이 뚜렷해지는 순간을 느낀다. … 그는 짧고 울림 있는 시로써 말의 거부가 된 것이다._119쪽-천양희
*위 글은 『서정춘이라는 詩人』(도서출판b, 2018.10.29.)에서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