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무대 외 4편
전명옥
우리는 전진한다 오른편으로 돌면서 전진한다 왼편으로 돌면서 전진한다 밥을 먹으면서 전진한다 웃으면서 전진한다 악수하면서 전진한다 서서 전진한다 앉아서 전진한다 앉았다 서서 전진한다 샤워하면서 전진한다 부부싸움하면서 전진한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휴지뭉치로 코를 풀어내며 전진한다 걸어가면서 전진한다 대출 받으러 온 은행창구 앞에서 번호표를 만지작거리며 전진한다 행운치과 삐걱거리는 진료의자 위에 누워 전진한다 옆 칸막이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전진한다 편의점 한 구석에 구부정하게 서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전진한다 진격의 우리는 주정꾼의 어깨에 떠밀리면서 전진한다 술집 탁자 모서리에 오지게 부딪혀 피멍 들면서 전진한다 美親 쌍욕하면서 전진한다 산부인과 진찰대 위에 가랑이 벌리고 누워 전진한다 그때 너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걸 생각하면서 전진한다 울고 가는 한 여자 먼 발치서 팔짱끼고 낄낄 구경하면서 전진한다 아버지 그땐 제가 나빴어요 눈가에 눈물방울 주렁주렁 매달고 전진한다 동네 구멍가게 좌판 앞에서 까치에게 귀퉁이 파 먹힌 사과들을 담고있는 빨강 플라스틱 소쿠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전진한다 등과 배가 들러붙은 길고양이에게 밥 주면서 전진한다 밥 주지 말라고 피켓 시위하면서 전진한다 옛날엔 나도 괜찮았는데 자주 마음속으로 후진하면서 전진한다 술에 취해 새야 새야 이름 모르는 새야 노래랍시고 흥얼거리면서 전진한다 천진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쳐다보며 아프다 달아 엄살떨면서 전진한다 우리는 전진하면서 전진한다
셀카 찍는 사내
인파사이로 낯익은 한 사내 걸어온다
벙거지로 반쯤 가린 얼굴 아래로 떨구고 기우뚱거리며
걸음의 한쪽 어깨가 내려앉았다
스쳐가는 듯 하더니 갑자기 멈추어서서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어 든다
한 손을 길게 뻗쳐 셀카를 찍는 포즈를 취하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진 사내
순간 보도블럭 위에 내동댕이쳐진 사내의 스마트폰이 미친듯 연속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어둠 속으로 덩달아 기울어지는 내 마음의 뒷덜미를 야멸차게 낚아채며
그날 스마트폰이 제 몸속에 구겨넣은 잔상은 무엇이었을까
(휘청거리는 허공의 감정?)
기우뚱거리는 허공의 목을 끌어안고 자꾸만 바닥이 가까워지던 사내
직립을 잃어버린 채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또각거리며 휘돌아왔을 울퉁불퉁한 세상바닥
긴 외발 학다리가 가졌을 쓸쓸한 진동의 여운이
기억의 미로를 더듬어 심장 깊숙히 타고올라
나도 그 자리에서 한참을 후둘거렸다
어떤 비행飛行
붉은 부리가 날아간다
붉은 부리를 가진 새가 날아간다
붉은 부리를 가진 새의 기억이 날아간다
치열했던 어제와 안개 덮인 내일이 날아간다
붉은 부리를 가진 새를 품은 새장이, 새장 밖의 세상이 날아간다
유리병 속 신기루를 찍고 또 찍다 피멍든 붉은 부리
입술을 붉게 물들인 내가 날아간다
붉은 입술을 가진 이데올로기가 날아간다
절명한 절망 절망한 절명 절망 밖의 절망
날개 없는 내가 날아간다
길. 이. 보. 인. 다.
대변인
- 오래된 입술
입이라고 발음하자
입이 먼저 문을 걸어 잠근다
말이 터져 나올까봐
터져 나오는 말에 쓸려 입술이 사라질까봐
생각의 대변인인 입술이 사라지면
생각이 사라질까봐
입 없는 입과 입술 없는 입의 골짜기에서는
부르튼 생각들이 어디로 흘러가나
나는 저 입술을 알지 못 한다
저 입술을 매단 저 입을 알지 못 한다
쓰레기통
쓰레기통을 통기레쓰라 부르곤 하던 그녀가 십이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이 젖은 바람을 타고 들려오데 갑자기 추락과 비상이 뒤엉키기 시작하데 그녀의 추락은 비상이고 비상이 추락일지도, 그녀의 이승은 저승이고 저승이 이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데 이승에서 저승으로 아니 저승에서 이승으로, 쓰레기 통속으로 추락한 아니 비상한, 쓰레기인 것들이 아니 쓰레기 아닌 것들이, 거꾸로 뒤집힌 거대한 쓰레기 통 속에서 물집 잡힌 발가락 끝으로 버둥거리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 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데 오늘 아침도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탯줄에 목이 감긴 쓰레기가 버려지는 소리가 몰래 들리데 쓰레기세상에서는 쓰레기가 쓰레기 통속에 떨어지는 일도 축복받을 일이라데
당선소감
분명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졌는데도 바로 읽어내지 못한 문자들을 떨리는 손으로감싸 안고 조용히 문밖으로 나왔습니다. 다리 난간 위에 걸터앉은 달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네요. 슈퍼문이라나요?
계속되던 좌절로 인해 저에게도 있으리라 믿고 싶었던알량한 감성 내지 감각에 대한 최소한의 확신마저 허물어지는 듯하여 힘들었던 시점에 이렇게 저를 불러 세워주신 {애지}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와 어떤 부분에 있어서의 시적 공감대를 가지고 계실지도 모를 분들을 뵐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많이 설레입니다. 살아계셨더라면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셨을 저의 부모님께 먼저 이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칠 남매 중 편애에 가까웠던 애정을 저에게 퍼부어주신 아버지가 많이 그립습니다. 제 독서의 근간을 만들어주신 아버지가 안 계셨더라면 오늘의 저는 없었겠지요.
긴 세월 저를 지켜봐주신 유 병 근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빈빈의 여러 문우들께도 감사함을 표합니다. 제 글의 첫 번째 독자인 남편과 사랑하는 미리, 주리, 시헌에게도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감사의 인사가 필요한 제 좁은 기억의 한계 밖의 존재들과시를 쓰기에도 사연이너무 많았고 안 쓰기에도 사연이 너무 많았던 저를 스쳐간 시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 합니다. 이젠 더 이상 엄살 떨지 않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저의 손을 덥석 잡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제대로 한 번 해 보라 시는 뜻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약력 : 경북 경산 출생
경북대 사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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