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쉬듯 물어볼까요 난 왜 살고 있는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율 나 가고 기억 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흩어진 노을처럼 내 아픈 기억도 바래지면 그 땐 웃어질까요 이 마음 그리운 옛일로.. 저기 홀로선 별 하나 나의 외로움을 아는 건지 차마 날 두고는 떠나지 못해 밤새 그 자리에만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율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내 슬픔까지도 사랑하길
부디 먼 훗날 나 가고 슬퍼하는 이 나 슬픔속에도 행복했다 믿게..
지난 1894년(일 메이지(明治) 27년) 9월 10일자로 발행된 명성황후 생전 초상화 보급판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본지가 한 중국인으로부터 입수한 이 초상화는 그림 우편 상단에 세로로 된 한자로 朝鮮國貴顯肖像(조선국귀현초상·사진 ①)이라는 제목 아래 3명의 황실 가족이 그려져 있다. 그림 가운데는 고종(朝鮮國王-조선국왕으로 기록)을 중심으로 왼편에 명성황후 (王妃閔氏로 기록), 오른편엔 고종의 부친인 흥선 대원군의 반신상(半身像)이 담겨져 있다.
초상화 크기는 가로 55cm, 세로 40.4cm. 그림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아 인물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그림 밑으로 초상화 발행, 인쇄시기, 주소, 작가, 출판사 명 등이 밝혀져 있다.
띠 장식으로 꾸며진 초상화 밖 아래 작은 글자로 씌여진 설명 내용에 따르면 오른쪽 밑에는 板權所有(판권소유) 明治二七年(메이지 27년-1894년) 九月十日印刷同年同月十日發行(9월10일 인쇄동년동월10일 발행)으로 표기돼 있다.(사진 ②)
명성황후 그림 쪽 아래왼쪽 글자는 印刷所 東京 麴町區 有樂町 三町目 信陽堂(인쇄소 동경 국정구 유락정 삼정목 신양당·사진 ④)으로 적혀 있다.
명성황후 전문학자로 명성황후 사진권위자인 서울대 이태진(64) 국사학 교수는 "이번 초상화는 연대가 가장 앞서고 일본에서 나온 자료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며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명성황후를 궁녀라고 왜곡보도하고 있었던 사실도 있으므로 자료소개차원에서도 공개 보도하는 게 좋겠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또 “작가 이름까지 초상화에 밝혀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당시 1894년에는 일본 삽화가들이 조선궁궐을 내왕하던 시기로 일본 출판사가 세 인물을 한 장에 담아 보급판을 낸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토론토에서 10여 년간 화랑을 경영하는 미술 감정사인 한 고화전문가는 “이 조선왕실 초상화는 사진이 아닌 오리지널 리토그라프(Origin. Lithograph/석판인쇄)의 희귀한 작품으로 연대와 작가, 발행처 등 세세한 부분까지 밝혀져 있는 높은 기술수준으로 찍어낸 가치를 지닌 초상화”라고 분석했다.
반면 조선시대 의식연구 전문가인 한영우 박사는 “그림은 복장과 가발 등으로 볼 때 진짜 명성황후가 아니다”라며 “연대가 1894년 인 것은 출판사 사정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지가 입수한 이 초상화는 명성황후가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고종 31년)으로 만 44세에 시해당하기 13개월 전인 1894년 9월 10일에 그린 작품으로, 그간 궁녀 등 가짜라고 논란됐던 사진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