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말 중에서 몽골기병과 로마보병이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이 “몽골기병이 되어 질풍노도와 같이 누비면서 선거혁명을 이루겠다”고 하자,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 “그렇다면 나는 또박또박 전진하는 로마보병이 되겠다”고 맞받아친 것입니다. 최근엔 삼별초까지 거론되었죠. 무예사랑방에서 정치 얘기를 하고자 하는것은 아니고, 두 정치인이 스스로 자신을 빗대어 표현한 몽골기병과 로마보병이 가지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무인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과연 몽골기병과 로마보병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라는 아주 단세포적인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죠.
첫째. 기동력 비교.
기동력이라면 몽골기병이 단연 역대 세계 최고를 자랑할 겁니다. 몽골기병의 기동력은 강인한 말에서 옵니다. 몽골말은 어깨 높이 120∼140㎝, 몸 무게 2백∼3백㎏ 정도에 불과할 만큼 작은 편이지만 성질이 온순하고 아무 풀이나 잘 먹어 거친 환경에도 잘 적응합니다. 또한 빠른 속도로 달리지는 못하지만 지구력이 강해 장거리 원정에 적합합니다. 몽골의 말은 특히 기병에게는 최상의 말입니다. 반동이 적어서 빨리 뛰더라도 피로를 주지 않는데, 특히 오른쪽 앞 뒷다리와 왼쪽 앞 뒷다리를 번갈아 내면서 달리는 조로모리가 특기. 조로모리가 조랑말의 어원이라고 합니다. 조로모리 주법으로 달리면 흔들림이 적어 달리는 말 위에서도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다고 합니다. 제주 조랑말이 몽골말의 후손이죠.
그리고 몽골기병은 경무장입니다. 번거로운 군수물품은 별도의 보급부대에 맡기고 기병은 최대한 무장을 가볍게 하여 놀라운 기동력으로 적의 근거지로 질주합니다. 오랜 유목생활에서 온 삶의 지혜이죠. 몽골군은 유목민족답게 주식량을 말린양고기로 대체하고, 중무장 갑옷 대신에 가볍고 활동성이 강화된 가죽갑옷을 입었습니다. 가죽 밑에는 작은 철편을 덧대어 방어력을 높였죠. 그리고 가볍고 부피가 작은 조립식 원형집인 겔도 기동력을 높이는데 한몫을 합니다. 쉽게 해체하고 조립할 수가 있어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행군을 하는데 짐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죠.
기병이 주력인 몽골기병에 비해 로마군단은 보병이 주력입니다. 그렇다고 로마군단의 기동력이 느리다거나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군단의 기본 전술은 보병으로 구성된 군단병을 중심에 두고 기병을 좌우에 배치하는 진영이었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전쟁(BC 218∼BC 201)이라고도 하는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술가 중의 한명인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등장한 전쟁입니다. 그가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격한 것은 2차대전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버금가는 일이었죠. 아무튼 로마군단은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보병들이 들고 있는 창(필룸이라고 부르는 창)을 던집니다. 그리고는 전진하여 백병전을 벌이죠. 이때 좌우의 기병이 재빨리 적의 배후나 측면을 기습하거나 적의 기병을 상대하는 역할을 합니다.
로마군단의 기동성과 유연성은 그리스의 방진과의 대결에서 단연 우월성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스의 방진은 6미터에서 7미터에 이르는 장창을 든 보병이 촘촘히 밀집된 대형을 이루고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각 대열들이 앞으로 창을 내밀고 전진하는 식이었습니다. 대열의 중간에 선 사람은 전후좌우로 넘어질수도 움직일 수도 없이 오로지 전진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한명이 넘어지면 다음열의 사람이 보충되는 식이죠. 한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은 정확히 3피트. 즉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이에비해 로마군단은 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군단을 배치하였습니다. 군단의 한명이 담당하는 영역은 반지름 3피트의 공간입니다. 이 안에서 군단의 보병은 자유자재로 전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오로지 밀집된 대형으로 전진만이 가능한 그리스의 방진에 비해 로마군단의 대형은 지형지물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기동력을 살리도록 한 것입니다. 결과는 단연히 로마군단의 압승.
둘째. 무기
몽골기병의 주력무기는 활과 만도(彎刀)입니다. 기마민족의 활솜씨는 세계 최고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풍요로운 농경세계의 거주자들은 유목민의 침입을 처음에는 지평선 너머 멀리에서 이는 먼지구름을 통해서 알고, 다음에는 요란한 말발굽, 마지막엔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에 의해 알았다고 합니다. ‘한서(漢書)’에는 다음과 같이 유목민의 침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을에 온다. 살찐 말과 강한 활과 함께”
각궁으로 만들어진 몽골의 활은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고 탄력이 좋아 엄청난 사거리를 자랑합니다. 헝가리 군사박물관에 남아 있는 훈족(유목민족의 하나로 몽골족의 선조격)의 활로 시험해 본 결과 최대 300m를 날아가고, 약 150m 떨어진 사람을 겨낭하여 사살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50m 떨어진 곳에선 멧돼지의 몸을 관통하고, 30m 거리에선 황소의 허벅지 뼈를 뚫는다니 강궁(强弓) 중의 강궁이라 부를 만 하죠.
만도는 초생달처럼 휜 곡도(曲刀)를 말합니다. 만도를 또한 횡도(橫刀)라고도 하는데 허리 옆으로 길게 뉘여 찼기 때문입니다. 또한 칼집에 고리를 달아 끈으로 묶어 달았다고 하여 환도(環刀)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만도는 몽골기병의 상징과도같은 칼입니다. 만도처럼 날이 타원처럼 크게 휜 칼은 원운동에 의해 날의 어느 지점이 목표에 맞더라도 휘두르는 힘이 그한 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똑같은 힘으로 칼을 휘두르더라도 직도보다 상대방에 입히는 타격이 훨씬 크죠.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 적을 타격해야 하는 기병에게 곡도는 최적의 칼입니다. 말 위에서 상대방의 기병이나 보병을 재빨리 베기에는 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라비아나 코사크의 기병들도 모두 크게 휜 곡도를 사용했습니다.
로마보병의 주무기는 필룸이라고 불리는 창과 글라디우스라고 불리는 단검입니다. 이중에서도 단연 필룸이 주력무기로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룸은 아주 독특한 무기로 작살처럼 생긴 긴 창날을 소켓으로 창자루에 고정시키는 방식입니다. 창날의 길이는 대략 50센티. 자루는 1m에서 1m50사이. 창날은 화살촉처럼 한번 몸에 박히면 잘 빠지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필룸의 독창성은 소켓에서 나옵니다. 무거운 철제띠로 만들어진 소켓은 창의 앞부분으로 무게 중심을 쏠리게 하여 창을 던졌을 때 적의 몸이나 방패에 필룸이 단단히 박히도록 해줍니다. 만약 방패로 필룸을 막게 되면 필룸의 무게로 인해 적은 방패를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게 되죠. 즉 방패를 버려야 됩니다. 필룸의 무게는 대략 1.5~2.5kg. 필룸은 근거리에서는 투창으로 사용하였고, 접근전에서는 훌륭한 타격무기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나오는 것처럼 로마보병의 칼은 글라디우스라고 불리는 짤막한 단검입니다. 길이는 60센티가 채되지 않는데 폭이 균일하고 곧은 양날검. 보병에게는 두자루의 필룸과 글라디우스가 주어지는 데, 적과 맞붙으면 먼저 투창으로 상대의 예기를 꺽은 뒤에 글라디우스로 백병전을 벌입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단검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더욱 근접하여 싸워야하는데 잘 훈련된 로마보병은 충분히 자신들의 용맹함을 발휘하였습니다.
3. 잔인함
로마군단과 몽골기병은 적에 대한 분노와 잔인함에 있어서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로마군단은 숙적 카르타고를 정복한 다음에는 수십년 동안 소금으로 그 땅을 황폐화시켰고, 몽골기병은 아프가니스탄의 공성전에서 징기스칸의 손자가 전사하자 적의 요새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는 남녀노소와 개, 말, 심지어 개미새끼, 풀 한포기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시켜 아직도 황무지로 남아 있게 만들었죠.
4. 군대 편제
징기스칸이 정복 활동을 벌이던 당시의 몽골기병의 주력은 10만명. 몽골기병은 십진법의 체계로 십부장(10명의 대장) 백부장(100명의 대장) 천부장 만부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명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공이 큰 사람을 십부장으로 임명하고, 십부장 중에서 가장 전공이 크면 백부장으로 임명하는 식. 그래서 몽골기병은 죽기살기로 싸웠습니다. 정복지역의 군대도 흡수하였지만 이들은 대개 최전선의 화살받이로 주로 이용하였고, 주력은 어디까지나 몽골기병 10만이었습니다.
로마군단의 소대장은 백인대장입니다. 백인대장은 100명의 병사가 모인 백인대를 지휘합니다. 백인대장의 선출방식은 백인대가 투표를 하여 해당 백인대 중 한 사람을 뽑는 방식입니다. 2개의 백인대가 1개의 중대(200명)를 이루고, 3개의 중대가 1개 대대(600명)를 구성하고, 10개 대대가 1개 군단(6000명)을 구성합니다. 재밌는 것은 군단에서 먼저 30명의 백인대장을 뽑은 다음에 이 30명의 백인대가 각각 한명씩 백인대장을 임명한 것입니다. 로마식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죠.
1개 군단은 최대 8000명에 이르기도 하는데, 군단은 집정관이 다스립니다. 한 명의 집정관이 두 개의 군단까지 거느리죠. 집정관은 투표를 통하여 후보를 선출한 다음, 그 중의 한명을 황제가 직접 선택하였습니다. 집정관과 사병들의 임기는 다같이 1년. 로마는 의무 징병제를 시행해서 언제나 30만명 규모의 군단을 유지하였습니다.
5. 효율성
몽골기병의 주력 기마군단이 10만명인 것에 비해, 로마보병군단은 3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참고로 러시아 침공 당시 나폴레옹이 동원했던 군대의 숫자는 100만명입니다. 10만명대 30만명이지만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골기병이 정복한 땅의 넓이는 777만㎢로 로마제국보다 무려 4배나 넓은 영토입니다. 참고로 나폴레옹은 115만㎢. 히틀러는 219만㎢. 알렉산더는 350만㎢를 정복. 수치상으로는 몽골기병의 효율성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가장 적은 병사로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으니까요.
몽골기병의 뛰어난 효율성과 창의력은 그들의 전투식량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몽골기병은 보르츠라 불리는 육포, 버터, 미숫가루를 말 안장에 싣고 다녔는데, 현지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기본식량만으로 두 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말의 방광에 이를 가루로 내어 넣으면 거의 양 한마리 분이 다 들어가는데 이것으로 1년을 버틴다고 합니다. 그만큼 병참선을 단순화한 것이죠.
그리고 전리품의 획득에서 몽골 일선의 전투부대는 전리품에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전투부대가 황금에 눈이 어두워 공격시기를 늦추거나 서로 공을 다투는 등 대세를 그르치는 것을 방지한 것입니다. 전리품은 공격부대가 지나가고 난 뒤 후방부대가 수거하여 공평하게 분배했다고 합니다.
# 결론
객관적인 전력으로 비교하여 볼 때 몽골기병이 로마보병보다 한 수 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병과 보병은 원래 상대가 안되니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몽골기병의 선조격인 훈족의 침입으로 하여 유럽민족이 대이동을 하였고, 로마 제국은 붕괴 직전까지 갔으니까요. 당시 훈족을 이끌고 로마 입성을 눈앞에 둔 아틸라가 진중에서 급서(암상당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로마는 훈족의 말발굽에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 역사의 가정은 무익하지만 재미는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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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구... 이거 재밌었는데... 아쉬워라잉...
헉 개인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