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주 죽림사 괘불이야기
오랜 진묵겁전에 일찌기
성불하셨건만
중생제도를 위해 친히 세간에 출현하셨네
높고 높으신 덕의 모습
달처럼 원만하시고
삼계에서 중생을 인도하시는
스승이 되셨네
두루 사자좌에 오르시어
시방세계에 함께 임하소서
꿈틀대는 모든 중생들을
극락정토로 이끌어 주옵소서
괘불함에서 괘불을 꺼내 도량에 모시면서 올리는 게송이다.
괘불을 내거는 날은 부처님께서 직접 세상에 출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게송과 범패로 부처님을 찬탄하며 공양하고 예배를 올린다.개인과 가정 국가의 소망을 기원하고 축원을 올린다.
우리나라에 현재 전해지는 괘불의 숫자는 110여점에 이른다.그중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만 해도 50점이 넘는다.같은 종류의 문화재가 일괄유물이 아닌 각자 국가문화재로 지정한것은 괘불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나주 죽림사 괘불탱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첫째는 광해군 1622년 조성된 가장 오래된 괘불문화재라는 점이다.둘째는 석가모니 한분만을 모신 독존의 형태라는 것이다.
죽림사 괘불은 현존 괘불중 가장 작은 크기이다.괘불 족자의 세로가 5.13미터 가로 폭이 2.75미터이다.불화의 바탕천은 6폭을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중간의 두폭은 비단이고 좌우 네폭은 마직물이다.
괘불의 상호는 아주 자비롭고 원만하게 표현되었다.특히 두광 주변으로 오색광명이 뻗쳐 나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다.그 모습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석가세존 영산탱을 모시고 영산재를 모실때는 참여대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축산의 영산회상에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산회 작법이 의례로 정착한 것은 고려후기부터이다. 강진 백련사에서 원묘 요세스님이 주도한 백련결사에서 수나라 천태지의스님이 저술한 법화삼매참의에 근거한 의식에서 유래하였다.
법화삼매참법의 해심적인 절차는 법화경을 안치하고 보현보살을 본존으로 전생과 금생의 악업을 참회한다.법화참법에서 참회와 발원은 극락에 왕생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하는 정토왕생의 행법이었다.
죽림사 세존 괘불탱이 조성된 시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20년이 되는 해이다.전란으로 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생겨나고 전몰희생자를 위령하는 국가적인 행사를 필요로 하였다.
3단에 식찬을 베풀고 7축의 금문 (법화경)을 독송하였습니다.종과 북이 산중에 울리고 풍번이 구름밖에 나부끼니 영산회상이 눈앞에 펼쳐진듯하고 도솔궁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듯 합니다.
서산대사가 남긴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괘불은 야단법석에 단을 차려 영산회상을 재현하고 수륙제를 베풀던 거대한 불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죽림사 세존괘불탱으로 소개되는 괘불은 죽림사에서 제작되었을까?
간기에 보면 천계 3년 (1622년)임술 11월 17일 죽림사 정중괘불 세존탱이라 적혀 있다.
자세히 보면 죽림사 글자는 축서사라는 이름을 지우고 그위에 가필한 것을 알수 있다.축서사는 편백숲 자연 휴양림으로 유명한 장성군 축령산에 있던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