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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복(호2장14-23)
성경본문: 호세아2:14-23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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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실패의 경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실패자로 남느냐 아니면 성공자로 도약하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도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의 경험을 남다르게 처리합니다.
우선 이들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코 자신을 실패자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을 때 큰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황제 페르디난도가 “너무 시끄럽다”, “지나치게 많은 음표를 사용했다”라고 혹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실패자로 간주하지 않고 정진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작곡가로 일어섰습니다.
다음 이들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실패가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코 그 실패가 자신을 영원이 곤경에 빠뜨릴 구덩이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38살이던 1922년에 많은 빚을 지고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실업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결코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달렸습니다. 마침내 1945년 미국 대통령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 어떻게 그 실패의 경험을 처리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실패를 받아들이거나 실패와 타협하면 안 됩니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실패합니다. 남다른 소명을 받고, 남다른 은사를 받고, 남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패를 겪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실패를 겪었습니다. 모세도 므리바 물에서 실패를 겪었습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는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 실패의 자리에 주저앉아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섰고 성공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호세아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은 참담한 실패를 겪고 있었습니다.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음란한 여인이 남편을 버리고 외갓 남자와 음행을 저지른 것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들이 우둔하여져서 길 잃은 짐승처럼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9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0절에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남편에게 쫓겨나며 생계에 대한 보장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담한 실패를 겪게 된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참담한 실패 한 복판에서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울부짖게 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1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하나님께서 저들을 회복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 계획대로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패의 구덩이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건져낼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회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점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그 실패의 구덩이를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실패의 구덩이 안으로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실패의 한 복판에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선 회복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50:15을 보면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참담한 실패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17-9을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줄로 생각한 지라”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가 이 아이를 죽여 번제로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실패의 경험을 딛고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사람의 실패를 생각할 때면 우선 삼손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부모의 서원으로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사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들릴라라는 블레셋 여인의 치마폭에 묻혀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삭도로 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힘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눈이 뽑히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끝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다곤 신전 두 기둥 사이에 묶여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힘을 주셨습니다. 그의 능력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가 붙잡고 있던 기둥을 쓰러뜨려 다곤 신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을 죽게 했습니다. 사사로서의 사명을 마지막 죽으면서 담당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실패의 참담한 경험 속에서 아파할 때에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가 회복되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복
오늘 본문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실 때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회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 21-2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고...” 그날에 농사가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의인 욥이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게 됩니다. 가진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자녀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었습니다. 게다가 건강마저도 다 잃었습니다. 욥의 고난을 지켜보다 아내마저 욥을 저주하며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욥은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욥 42:10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복은 바로 갑절의 회복이었습니다. 건강도 자녀도 재물도 다 갑절로 회복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수명마저도 갑절이 되었습니다. 구전에 의하면 당시 그의 나이가 70이었습니다. 그런데 욥 42:16을 보면 “그 후에 욥이 140년을 살며...”라고 했습니다. 고난 받을 때 나이보다 갑절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실 때 우리의 삶 자체를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건강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직장과 생업을 회복시키십니다. 이 시간이 하나님의 이런 삶의 회복의 역사가 풍성하게 나타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것이 회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회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오늘 본문 호세아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이스라엘은 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 2:9-13을 보면 남편인 하나님께서 아내인 이스라엘을 법적으로 버리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근동사회에서 남편이 아내의 허물을 핑계 삼아 법적으로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깨져버린 것입니다.
윌라드 할리 (Willard F. Harley Jr)는 [러브 바스터](Love Busters)라는 책에서 결혼생활을 어부의 그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을 때 고기와 더불어 바다의 찌꺼기도 그물에 잡힙니다. 지혜로운 어부는 매번 그물에 쌓여있는 바다의 찌꺼기를 제거하지만, 어리석은 어부는 찌꺼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그대로 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기 잡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어리석은 어부의 그물 속에는 찌꺼기가 가득 차게 되어서 그물을 버리고 다시 살 때까지 고기를 잡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윌라드 할리는 고기는 결혼생활을 통해서 채워지는 정서적 필요, 찌꺼기는 사랑 방해꾼, 즉 불행을 불러들이는 나쁜 습관으로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부부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은 조절되지 않은 분노의 폭발,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 거슬리는 행동, 자신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요구, 그리고 정직하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방해물들은 서로의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능력과 의욕을 감소시켜 결국은 이혼이나 정서적 별거상태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에 방해꾼 장애물이 가득 차서 이혼 상태 또는 정서적 별거 상태에 놓여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혼 직전은 아닙니까? 정서적 별거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이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신혼 시절의 달콤한 상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2:19-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법적으로 아내로 맞이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장애물을 깨끗하게 치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 용서하시고 다 용납하셔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야 말로 진정한 회복의 시작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처럼 기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기도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고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기도 응답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신혼부부의 친밀한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관계로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고백의 회복
본문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1:8-9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루하마 곧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 그리고 로암미 곧 “내 백성이 아닌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들을 회복시키셔서 루하마 곧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 그리고 암미 곧 “내 백성인 자”라고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 완성이 됩니다. 이제 주를 나의 하나님을 모시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회복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실패의 깊은 구덩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면서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수 윤형주 장로님은 원래 모태신앙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가수활동을 해서 인기 절정에 올랐습니다. 참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마초 흡연 때문에 감옥엘 가게 됐습니다.
그 실패의 구덩이 속에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과학자요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정근모 장로님도 평탄한 삶을 살던 중에 아들이 신부전증으로 죽어가게 되었답니다.
이 때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찾게 되었고 은혜받고 방언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평탄할 때는 하나님과의 처절한 씨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깊은 구덩이에 빠지면 얍복강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처절한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제대로 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진정한 회복의 절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제대로 된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이 때 온전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실패의 구덩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구덩이까지 찾아오셔서 손을 내미십니다. 그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회복이 시작됩니다.
우선 여러분이 잃은 것을 되찾아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