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20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요시아 왕 / 한서노회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셨던 분 가운데 바울 선생을 말 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특별히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바울이 왜 이점을 강조 하였을까요
기왕에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바른 관계를 잘 정립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롬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요일2: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행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오늘의 현실에도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유대 왕 요시야(BC640-609)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본문 말씀 의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시야의 증조 할아버지인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15년이라는 시간을 연장받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유대 역사상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왕인 므낫세였습니다. 므낫세 는 12살에 왕이 되어 유대 왕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55년이나 왕위에 있었습니다. 므낫세가 죽자 그 아들 암몬이 왕이 되지만, 반란에 의하여 2년 동안을 치리하고 죽게되며,아몬의 뒤를 이어 요시야가 불과 8세때에 왕이 됩니다.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섬겨왔던 바알숭배를 과감히 배척 하였고,이방신들의 신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모든 우상 조각들을 모두다 제거 하고, 여호와 만군의 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 이었으며, 유대나라 역사에서 마지막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이었습니다.
(대하34: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을 치리하며 (대하34: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대하34:3)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대하34:4)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대하34:5) 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으며 (대하34: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대하34:7) 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대하34:8) 요시야가 위에 있은 지 십팔 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그는 즉위 18년,즉 26세 때 성전을 성결케 할 것을 명 하였는데, 성전을 수리 하다가 성전에 감추어 졌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의 아버지 암몬과 할아버지 므낫세가 통치하던 57년 동안, 그러니까 최소한 57년 동안 사라졌던 말씀이 발견된 것입니다. 서기관 사반이 발견된 율법책을 읽었을 때 요시야는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왕하22:11)“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왕하22:19)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리고 요시야는 열조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왕하22:13)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열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여 하나님의 진노속에 머물 게 된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 씀을 듣도록 하고,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순종 할 것을 명령합니다
(왕하23:1)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왕하23:2)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하23:3)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그러면 우리가 기록된 요시야의 생애를 통하여 받아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요시야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무시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생애였습니다. 그들의 생애에서 말씀이 사라지자 그들의 생애속에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자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모든 죄를 다 저질렀습니다. 유대 나라를 우상이 가득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요시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전에 웬 우상들이 그렇게 많이 있습니까?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하는 사람의 인격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인격이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긴다면 곧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며 하나님을 중히 여길 수는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경히 여길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일,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기는 길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말을 순종한다는 것 은 곧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불순종은 말은 하지 않지만 나에게 있어 당신은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 당신은 나에게 중요한 분입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 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은 "나를 존중히 여겨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2.우리는 본문에서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보게 됩니다.
요시야는 왕이 되자 지금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많은 잘못들을 범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서기관 사반이 읽는 말씀을 듣자 옷을 찢을 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 앞에서 통곡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기의 열조들이 그렇게 어려움을 당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즉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기의 연약함과 추악함, 그리고 더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알기는 알았지만,그렇게까지 더러운 모습인 줄은 몰랐습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추악하고 완악한 모습인 줄을 몰랐습니다. 말씀이라고 하는 거울에 비쳐진 자기의 모습 앞에 요시야는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러한 시간이 있었습니까?
말씀에 비쳐진 자기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코 겸손할 수 없고,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의 심령에 은혜가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사라졌으며,구원의 감격이 없는지요?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죄로 물든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은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앞에 겸손히 나아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겸손과 감사,감격은 요원한 일입니다. 다만 냉냉한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3. 요시야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순종의 결과는 무엇인가?
1)진정한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발견하자, 제일 먼저 옷을 찢고 통곡을 하며 회개합니다.
(왕하22:19)“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연하여 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겸손과 순종의 시작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진정한 순종이란 진실한 회개가 전제로 가능한 일입니다.
즉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 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백함으로 부터 진정한 순종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요시야로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2)요시야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복은 무엇입니까?
왕하 22: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고 합니다.
즉 요시야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께서 요시야의 기도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시야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 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응답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그러면 요시야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성경에는 요시야가 무엇을 구하였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 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보면 알 수가 있기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요시야에게 평안히 묘실로 내려 갈 것과 하나님의 재앙을 네 눈으로 보지 아니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결국 요시야는 자기 백성들의 죄 문제를,하나님의 진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씨름을 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그 앞에 무릅을 꿇고 죄를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말씀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