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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3-21
위기를 극복하게 한 무명의 선지자 / 유관지 목사
기원전 860년경, 북왕국 이스라엘은 큰 위기에 빠집니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강력한 군대를 동원하여 침공해 온 것입니다.
열왕기상 20장 1절을 보면 벳하닷 왕은 그의 군대를 다 모아 쳐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왕삼십이 명이 벤하닷 왕과 함께 있었다고 했는데 아람 왕국, 시리아인데 이 나라는 아주 강대한 나라여서 속국들이 많았습니다. 그 속국들의 왕을 모두 동원한 것입니다.
이들은 말과 병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기동력이 뛰어났고 탱크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는 순식간에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해 버렸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었습니다. 엘리야를 괴롭힌 바로 그 왕인데 형편없이 무능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사자들을 보내 이런 말을 전합니다.
3절을 보세요.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라 하매”
너무나 모욕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4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과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아합 왕은 남자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네 아내는 내 것이다’ 하는데 ‘지당하나이다’라고 합니다.
벤하닷이 다시 사신을 보냅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 이 맘 때 신하들을 보내겠다.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그들의 마음에 드는 것을 잡아가겠다’ 라고 합니다.
아합 왕은 그때서야 ‘이거 안 되겠다’하고 나라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비상대책회의를 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으면 그래도 좋았겠는데 일을 저질러놓고, 물을 다 엎질러놓고 회의를 소집합니다.
아합 왕은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너희는 이 사람이 악을 도모하고 있는 줄을 자세히 알라 그가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과 내 은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내게 보냈으나 내가 거절하지 못하였노라”(7절)고 말합니다. 뒤늦게 벤하닷을 비난하고 변명 겸 하소연을 합니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그거 안 됩니다’ 하니까 아합은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안 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사자들의 보고를 들은 벤하닷은 화가 났습니다. 다시 사람을 보냅니다. 벤하닷이 한 말이 1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이 좀 복잡한 것 같지만 간단합니다. ‘내가 사마리아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꼭 그렇게 하겠다’ 이것입니다.
아합 왕은 이번에는 무슨 배짱인지 큰 소리를 칩니다. 11절,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 하라” 이 말은 ‘군인은 갑옷을 입을 때 자랑하는 법이 아니라 싸움을 끝내고 갑옷을 벗을 때 자랑하는 법이다’ 이런 뜻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한다’ 는 말입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벤하닷은 총 공격명령을 내립니다.
아람 군대는 사마리아 성을 향하여 공격진용을 갖춥니다.
이제 사마리아 성의 함락과 이스라엘의 패망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자, 보세요. 적군은 강하고 기세 등등합니다.
적군의 왕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무능하고 변덕이 심하고 무책임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형태와 정도는 다르지만 지금 우리 나라도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 위기상황에서 오늘의 본문이 시작됩니다.
한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선지자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교회는 이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선포해야합니다.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르도록 해야합니다.
이 선지자는 어떤 말씀을 전했습니까?
먼저, 하나님이 개입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3절을 보세요.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하는 것은 ‘너는 지금까지 이렇게 큰 군대를 본 일이 없을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에 비추어 보면 ‘너희는 지금까지 이렇게 큰 위기를 만난 일이 없을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 큰 일입니다.
국론분열이 너무 심해진 것, 더 큰 일입니다.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의 양상이 부분적으로는 과격해서 경찰, 소방서 등이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간 것, 문제입니다. 엄청난 국력낭비입니다.
이 선지자의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선지자는 여호와가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에 비추어 보면 ‘내가 오늘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물리쳐 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이어서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합니다.
아합은 하나님을 배반한 왕이었습니다.
왕후 이세벨의 영향으로 바알을 섬기고, 바알의 신전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하려고 한 악한 왕후였습니다.
아합은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하나님 여호와를 더 노하게 만들었습니다.(왕상16:29~33)
엘리야가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그대로 되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과 대결을 벌여 여호와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었음을 증명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다시 예고한 대로 큰 비가 내렸는데도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왕후 이세벨이 이 사실을 알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세벨이 화가 날 대로 나서 엘리야를 꼭 죽이겠다고 날뜁니다.
그 때 아합은 이렇게 말해야 마땅합니다. ‘왕후여, 내가 보니 여호와는 살아 계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참 신이오. 우리 바알 숭배를 그만 두고 여호와를 믿읍시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런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21장 25절은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의 충동질 때문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한 길로, 타락의 길로, 교만한 길로 가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 아합을 향해 하나님은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라고 엄숙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 우리 나라가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향해 ‘우리가 믿고 의지할 존재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주 배반하고 주님을 멀리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래서 이런 어려움을 만났지만, 지금과 같은 어려움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뿐이라는 사실을 믿어야됩니다!‘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선지자는 또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아합 왕에게 전했습니까?
상류층이 앞장서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14절의 앞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라고 하셨나이다“
아합 왕의 질문,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리이까”는 ‘누구를 선봉에 세워야할까요?’는 뜻입니다.
아합 왕의 질문에 대해 이 선지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앞세우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방 고관의 청년들은 요즘 말로 하면 고위층의 자녀들, 또는 측근들입니다.
6.25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6.25 때 남한의 고위층의 자제들 가운데 전사한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8군사령관 벤플리트 장군의 아들이 조종사로 참전하여 출격했다가 실종했고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毛岸英)이 역시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것과 대조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고위층의 측근들, 지도층, 많이 배운 사람들, 나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이 선지자는 또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아합 왕에게 전했습니까?
왕 자신이 진두 지휘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14절 뒷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는 “누가 총지휘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바로 너다. 왕인 네가 총지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왕으로서 마땅한 책임이다. 오늘날 이 나라가 이런 위기를 만난 것은 당신의 책임이니 당신이 책임지고 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 이것이었습니다.
이미 나타난 대로 아합 왕은 줏대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왕좌왕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충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 남의 말에 잘 따랐습니다. 평소에는 왕후 이세벨의 말에 꼼짝 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벤하닷에 대해서 처음에는 쩔쩔매다가 장로들과 백성들의 말에 따라 벤하닷에게 대항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런 성격적 결함이 이번에는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선지자의 말에 그대로 따릅니다. ‘음 마땅히 그래야 하지!’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 사람의 결점이 장점으로 되고 그의 약점이 강점으로 됩니다.
사사 에훗이 좋은 예입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 그 당시 왼손잡이는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왼손잡이 에훗”이라는 말은 ‘왼손을 못쓰는 사람 에훗’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성경주석도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에훗은 칼을 감추고 들어가서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합 왕은 이 선지자가 전한 말대로 합니다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조사해보니 이백삼십이 명입니다. 이들을 앞세웁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점검하니 칠천 명입니다. 매우 빈약한 병력입니다. 그래도 출전합니다.
벤하닷은 장막에서 왕 삼십이 명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다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여긴 것입니다
술에 취했으니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올바른 지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정탐꾼들이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옵니다’ 보고하니까 ‘화친하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합니다.
그러다가 패망해서 말을 타고 도망을 칩니다.
그렇게 강한 아람 군대가 패망하고 반대로 그렇게 빈약한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한 직접적인 원인은 이와 같이 벤하닷이 너무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다투지 말라고 하십니다. 힘을 합해 이 어둠을 뚫고 나가라고 하십니다.’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선지자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 선지자는 다시 아합 왕에게 나갑니다. 22절을 보세요.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라
한 번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자만에 빠지지 말고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준비해야합니다. 한 때의 승리에, 한 때의 성공에, 한 때의 번성에 들떠서는 안 됩니다.
그 뒤에 찾아오는 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88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 우리 나라가 너무 들떴습니다.
그러다가 IMF를 만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에도 너무 들떴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과연 해가 바뀌니 벤하닷은 다시 공격해 왔습니다.
벤하닷은 먼젓번 패전을 거울삼아 준비를 치밀하게 하고 쳐들어 왔습니다.
23절을 보세요. 벤하닷의 군대는 전술을 바꿉니다.
‘아, 이스라엘이 강한 것은 그들의 신 때문인데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지. 이번에는 평지에서 싸우면 되겠구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을 ‘산의 신’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일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깊이 연구한 것입니다.
24절을 보세요. 총동원 체제를 갖춥니다.
속국의 왕들을 떠나게 하고 그 자리에 총독을 세웁니다. 동원과 지휘에 편한 직접 통치체제로 바꾼 것입니다.
여기 “총독”들을 다른 성경은 “군사령관들”이라고 했습니다.
25절을 보세요. 군대와 말과 병거를 보충합니다.
단단히 준비하고 쳐들어왔습니다. 최소한 십이만칠천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해서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앞에서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27절의 뒷부분을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염소 때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번에도 이스라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였습니다.
패잔병 이만칠천 명은 아벡 성읍으로 도망했는데 성벽이 그들 위에 무너졌습니다.
벤하닷은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 아합 왕에게 나가서 목숨을 구합니다.
아합은 이 때 벤하닷을 죽였어야 하는데 마음씨 좋게 살려주었다가 한 선지자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습니다.
한 성경 주석은 오늘 본문에 ‘약자의 승리’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강한 자인 벤하닷을 패망시키고 약자인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었을까요?
더구나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도 아니었는데, 그 반대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이유를 거듭해서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3절 뒷부분을 보세요.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이라 하셨나이다”
28절 뒷부분을 보세요.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요,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 싸움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28절 앞부분을 보면 ‘아람 사람들이 나를 산의 신으로만 알고 있어? 여호와는 산의 신이지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고 말해? 그렇다면 내가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마!’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지자, 또는 예언자라고 하면 우리는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이렇게 잘 알려진 사람들만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에는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선지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다윗 왕의 간음을 꾸짖은 나단(삼하 12:1~15),
여로보암에게 새 옷을 열두 조각을 찢으며 나라가 갈라질 것은 예고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말한 아히야,(왕상 11:29~39),
아합 왕 때의 미가야(왕상 22:1~29) 같은 예언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일이 있고 여러 해 뒤에 아합은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아람과 싸우려고 합니다.
왕에게 아첨하는 선지자 사백 명이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리이다”(왕상 22:6)라고 합니다.
이 때 참된 예언자 미가야는 ‘그들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아합 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미가야를 가두고 출전했다가 화살에 맞아 비참하게 전사합니다.(왕상 22:35)
아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지자도 “한 선지자”(11절) “그 선지자”(22절) “하나님의 사람”(28절) 이런 식으로 등장합니다.
‘무명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도 선지자로서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했습니다.
만일 이 때 이 무명의 선지자가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벤하닷의 군대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합 왕 때의 선지자’라고 하면 우리는 얼른 엘리야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엘리야 말고 이와 같은 무명의 선지자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35절 이하에는 아합 왕이 벤하닷을 살려준 것을 엄하게 꾸짖은 선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선지자도 역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엘리야와 같이 위대하고 잘 알려진 사람들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때일 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인식할 것을 권하는 무명의 신앙인들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탄핵 문제 때문에 갑자기 유명해진 목사님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인데 탄핵이 통과된 것에 화가 나서 분신자살하기 위해 휘발유 15리터를 사서 택시에 싣고 상경하다가 이 일을 알게된 동료 목사님의 신고로 사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지 당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목사님이 자살하겠다고 나선 것도 특별한 일인데, 더구나 토요일 아침에 그랬습니다. 목사님들은 토요일은 주일 준비에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분이 과연 건전한 교파에 속한 목사님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교역자들이 선수촌 앞에서 스피커 달린 차로 북한선수단 문제로 소란을 피운 일이 있는데 알고 보니까 새일교회라고 이단으로 규정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하튼 그 목사님 이번에 참 유명해 지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때 이렇게 해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는 무명의 신앙인들이 더
귀한 법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259장에는 “빛의 사자들”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하고 자신이 그 말씀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사는 무명의 신앙인들을 어둠 가운데에서 빛을 비추는 빛의 사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위기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도 그렇게 하실 것이지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라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해야할 때입니다.
이 때에도, 그리고 평소에도 하나님을 늘 새롭게 인식하고 흔들림 없이 믿음의 길을 걸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이 나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