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의 흥성쇠망(興盛衰亡) : 618년~907년 (289년) | |||||||||
건국 | * 당 고조 (이연, 618), 장안에 도읍 | ||||||||
② 태종 | 국내 | * 통치제도의 정비(제도정비) * 정관정요(왕과 신하의 문답 정리) | 정관의 치(治) 황제의 모범 | ||||||
국외 | * 티베트, 돌궐, 위구르 정복 (중앙아시아까지 영토 확장) * 비단길 차지(장악) | ||||||||
③ 고종 | * 황제권 강화 * 신라와 나당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킴 | 측천무후 (則天武后) | |||||||
⑥ 현종 | 최고의 전성기, 중흥(中興) | 개원의 치(治) | |||||||
제도 | 3성 6부 | 중서성 | 조칙(詔勅)의 입안(立案). 어떤 안건을 만듦 | ||||||
문하성 | 조칙(詔勅)의 심의(審議). - 조칙(임금의 명령을 일반에 알리기 위해 문서로 만든 것) - 심의(심사하고 토의함) | ||||||||
상서성 | 조칙의 실시(實施) 집행 ▸ 6부(이·호·예·병·형·공부) | ||||||||
어사대 | 관리 감찰(감시) | ||||||||
律令格式 | 3성6부의 운영에 필요한 시행세칙 -시행세칙 : 시행규칙, 법령의 시행에 관한 사항을 상세히 규정한 규칙 - 율(형법), 령(행정법), 격(보충, 개정 규정, 변경의 추가 규칙), 식(시행세칙) | ||||||||
군사 | 부병제(兵農一致, 징병제) ▸안사의 난▸ 지원병제(현종, 모병제) 府兵制(토지를 지급받은 정남을 일정기간 군인으로 징집함) | ||||||||
교육 | 국자감 | ||||||||
조세 | 조·용·조(租庸調)▸안사의 난▸양세법(兩稅法, 土地多少基準賦課, 夏秋 ) | ||||||||
토지 | 균전제 ▸ 안사의 난 ▸장원제(지주전호제) | ||||||||
선발 | 과거제도(능력 존중) | ||||||||
지방행정 | 군현제 | ||||||||
쇠퇴 멸망 | 안사의 난(755) 이후, 절도사의 亂立 ▸ 황소의 난(875-884) ▸ 멸망(주전충, 907) | ||||||||
절도사 | *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변방지역에 설치한 군대의 최고사령관 * 주둔지역의 군사, 행정, 재정 책임자였다. 軍政+民政+財政 책임자 * 안록산, 사사명, 주전충 등은 모두 절도사였다. * 중앙정부의 지방 장악력이 약할 때, 세력을 떨침 * 패망원인 : 환관의 횡포와 지방 분권화(절도사 세력 강화) | ||||||||
안사의 난 | 균전제 | → 장원제 | |||||||
조용조 (租=세금(토지기준), 庸=노동(인구기준), 調(가정마다)= 특산물) | → 양세법 | ||||||||
부병제 | → 모병제(직업 군인) | ||||||||
사회 | 귀족중심사회(과거시험과 음서제로 귀족들 관직 독점) | ||||||||
경제 | 농업 | * 농업발달(2년 3작, 화북), 차 재배시작, 모내기법과 이모작 실시 | |||||||
상업 | * 장안, 양저우 등이 대도시로 번영. 상설시장(常設市場) 개설 * 화폐유통촉진, 飛錢(약속어음, 지폐의 기원)유통 , 행(行, 상업조합) | ||||||||
무역 | * 차와 비단이 주요 수출품 = 비단길, 동서교역로 * 시박사[市舶司, 광저우] : 해상무역 업무를 담당관청 = 바닷길 | ||||||||
문화 (예술) 불교, 국제 귀족 문화 | 특징 | 귀족적, 국제적. 장안(외국인 왕래) : 상인, 유학생 등 왕래 | |||||||
유학 | 훈고학 집대성, 공영달의 ‘오경정의’는 다양한 경전해석 통일시킴 경전해석의 통일은 경전해석의 획일화를 의미함(다른 학설을 용납지 않음) | ||||||||
문학 | 시(이백, 두보 등), 고문체 부흥(한유, 유종원) | 그림(왕유),글씨(구양순) | |||||||
공예 | 당삼채(唐三彩) : 서역(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黃綠靑) | ||||||||
종교 | * 불교발달, 도교(황실 보호),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 *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 도관(도교 사원) | 대체로 종교적자유 | |||||||
수와 당의 문화 | *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 (한자 + 유교 + 불교 + 율령 체제) * 동아시아 = 중국, 한반도, 일본, 만주, 몽골, 베트남 북부 지역 * 당의 문물이 주변국가에 전파되어,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문화적 同質性을 공유케 됨 |
화려한 세계 제국, 당
* <양제>의 대규모의 토목(대운하와 만리장성의 일부구간 건설 및 축조)과
무리한 원정(遠征, 고구려 침략)으로 국력 소모, 민생 피폐 등으로
민중저항(농민저항) 발생
* 민중저항세력 가운데서, <이연과 아들 이세민> 부자(父子)에 의해 멸망
* 당나라는 통치제도 등 수나라의 것을 대부분 약간만 손질하여 그대로 사용
하였다.
* 국가의 통치이념(방향성 제시) → 시스템, 제도(중앙, 지방, 군사, 토지 등)
중앙 정치제도 | 3성 6부제 |
통치 원리 | 율령 |
관리 선발 | 과거제도 |
토지제도 | 균전제 |
군사제도 | 부병제 |
당의 흥성쇠망(興盛衰亡) : 618년~907년 (289년) | |||||||||
건국 | * 당 고조 (이연, 618), 장안에 도읍 | ||||||||
② 태종 | 국내 | * 통치제도의 정비(제도정비) * 정관정요(왕과 신하의 문답 정리) | 정관의 치(治) 황제의 모범 | ||||||
국외 | * 티베트, 돌궐, 위구르 정복 (중앙아시아까지 영토 확장) * 비단길 차지(장악) | ||||||||
③ 고종 | * 황제권 강화 * 신라와 나당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킴 | 측천무후 (則天武后) | |||||||
⑥ 현종 | 최고의 전성기, 중흥(中興) | 개원의 치(治) | |||||||
제도 | 3성 6부 | 중서성 | 조칙(詔勅)의 입안(立案). 어떤 안건을 만듦 | ||||||
문하성 | 조칙(詔勅)의 심의(審議). - 조칙(임금의 명령을 일반에 알리기 위해 문서로 만든 것) - 심의(심사하고 토의함) | ||||||||
상서성 | 조칙의 실시(實施) 집행 ▸ 6부(이·호·예·병·형·공부) | ||||||||
어사대 | 관리 감찰(감시) | ||||||||
律令格式 | 3성6부의 운영에 필요한 시행세칙 -시행세칙 : 시행규칙, 법령의 시행에 관한 사항을 상세히 규정한 규칙 - 율(형법), 령(행정법), 격(보충, 개정 규정, 변경의 추가 규칙), 식(시행세칙) | ||||||||
군사 | 부병제(兵農一致, 징병제) ▸안사의 난▸ 지원병제(현종, 모병제) 府兵制(토지를 지급받은 정남을 일정기간 군인으로 징집함) | ||||||||
교육 | 국자감 | ||||||||
조세 | 조·용·조(租庸調)▸안사의 난▸양세법(兩稅法, 土地多少基準賦課, 夏秋 ) | ||||||||
토지 | 균전제 ▸ 안사의 난 ▸장원제(지주전호제) | ||||||||
선발 | 과거제도(능력 존중) | ||||||||
지방행정 | 군현제 | ||||||||
쇠퇴 멸망 | 안사의 난(755) 이후, 절도사의 亂立 ▸ 황소의 난(875-884) ▸ 멸망(주전충, 907) | ||||||||
절도사 | *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변방지역에 설치한 군대의 최고사령관 * 주둔지역의 군사, 행정, 재정 책임자였다. 軍政+民政+財政 책임자 * 안록산, 사사명, 주전충 등은 모두 절도사였다. * 중앙정부의 지방 장악력이 약할 때, 세력을 떨침 * 패망원인 : 환관의 횡포와 지방 분권화(절도사 세력 강화) | ||||||||
안사의 난 | 균전제 | → 장원제 | |||||||
조용조 (租=세금(토지기준), 庸=노동(인구기준), 調(가정마다)= 특산물) | → 양세법 | ||||||||
부병제 | → 모병제(직업 군인) | ||||||||
사회 | 귀족중심사회(과거시험과 음서제로 귀족들 관직 독점) | ||||||||
경제 | 농업 | * 농업발달(2년 3작, 화북), 차 재배시작, 모내기법과 이모작 실시 | |||||||
상업 | * 장안, 양저우 등이 대도시로 번영. 상설시장(常設市場) 개설 * 화폐유통촉진, 飛錢(약속어음, 지폐의 기원)유통 , 행(行, 상업조합) | ||||||||
무역 | * 차와 비단이 주요 수출품 = 비단길, 동서교역로 * 시박사[市舶司, 광저우] : 해상무역 업무를 담당관청 = 바닷길 | ||||||||
문화 (예술) 불교, 국제 귀족 문화 | 특징 | 귀족적, 국제적. 장안(외국인 왕래) : 상인, 유학생 등 왕래 | |||||||
유학 | 훈고학 집대성, 공영달의 ‘오경정의’는 다양한 경전해석 통일시킴 경전해석의 통일은 경전해석의 획일화를 의미함(다른 학설을 용납지 않음) | ||||||||
문학 | 시(이백, 두보 등), 고문체 부흥(한유, 유종원) | 그림(왕유),글씨(구양순) | |||||||
공예 | 당삼채(唐三彩) : 서역(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黃綠靑) | ||||||||
종교 | * 불교발달, 도교(황실 보호),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 *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 도관(도교 사원) | 대체로 종교적자유 | |||||||
수와 당의 문화 | *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 (한자 + 유교 + 불교 + 율령 체제) * 동아시아 = 중국, 한반도, 일본, 만주, 몽골, 베트남 북부 지역 * 당의 문물이 주변국가에 전파되어,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문화적 同質性을 공유케 됨 |
* 양세법이란, 토지 소유 정도에 따라서, 여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세를 내게 한 제도이다.
* 조용조(租庸調)는 조(租)는 토지에 부과하여 곡물을 징수하고, 용(庸)은
사람에게 부과하여 역역(力役) 또는 그 대납물(代納物)을, 조(調)는
호(戶)에 부과하여 토산품을 징수하였다
* 부과 기준 : 조(租, 토지) 용(庸, 사람) 조(調, 가정)
* 호세(戶稅)는 사람에게 붙는 세금, 지세(地稅)는 토지에 붙는 세금
* 소금 밀매업자였던 황소는 자신의 정보망과 연락망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전국을 장악하고 당의 수도 장안까지 점령하였다.
* 서유기(西遊記)는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모델로 한 것이다.
* 서유기의 삼장법사(三藏法師)는 ‘현장’이 모델이었다.
* <현장>은 627년 <비단길>을 따라 인도에 가서, 여러 스승들을 만나고
654년 많은 종류의 불경을 가지고 돌아왔다. 현장의 이러한 노력은
당나라 불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 <율령 체제>는 황제(왕)를 중심으로 한 지배체제로서, 과거제도, 3성6부제
균전제, 부병제, 조용조 등이 있다. 수와 당대에 이루어진 <율령 체제>는
그 후,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제도의 기본이 되었다.
* 당나라의 약속어음, 飛錢은 송나라의 교자(交子) ·회자(會子) 등의 지폐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부(祖父) | 유목민의 관습 | |
수문제 | 북조의 장군 출신 | * 수양제, 직접 전투 현장 지휘 |
당고조 | 북조의 장군 출신 | * 당태종과 고종 모두 직접 전투 현장 지휘 * 고종은 태종(父)의 후궁을 자신의 아내로 삼음 * 현종은 며느리(子婦) 양귀비를 아내로 삼음 * 당 문화의 개방성(국제적) |
*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한 명뿐인 여황제다.
* 무후는 어릴 때, 태종의 첩이었다.
* 태종이 죽으면서, 원래 황제와 함께 순장되었어야 했으나, 황궁의 서편에
있는 절에서 승려(女僧)이 되어, 죽은 남편을 애도하도 추모하며 살았다.
* 그러나 후에 태종의 아들, 고종에 눈에 띄어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 다시 말하면, 태종의 첩에서 태종의 아들, 고종의 후궁(後宮)이 된 것이다.
* 측천무후는 병약(病弱)한 고종을 대신하여, 정사(政事, 정치적인 일)를 처리
하는 역할을 하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고, 이어서 황후마저 쫓아내고
황후의 아들인 태자도 폐위시키고, 자신이 후궁에서 황후가 되고, 자신의
아들도 태자의 자리에 앉혔다.
* 여황제 <무측천> = 측천무후
* 성은 무(武), 이름[諱]은 조(曌), 시호(諡號)는 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
이다.
*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皇帝)가 되었던 인물로 무후(武后), 무측천
(武則天), 측천후(則天后), 측천제(則天帝), 측천여제(則天女帝), 측천여황
(則天女皇) 등으로도 불린다.
* 당 태종(太宗, 재위 626∼649)의 후궁으로 입궁하였으며, 4품(四品) 재인
(才人, 후궁)으로서 태종에게 ‘미(媚)’라는 이름을 받아 ‘무미랑(武媚娘)’이라고
불렸다.
* 649년에 태종이 죽자 무후는 황실(皇室)의 관습에 따라 감업사(感業寺)로 출가(出家)하였다.
* 그러다 651년 고종(高宗, 재위 649~683)의 후궁으로 다시 입궁하였다.
* 무후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낳았으며, 655년 왕황후(王皇后)와
소숙비(蕭淑妃) 등을 내쫓고 황후(皇后)가 되었다.
* 측천무후는 황제가 되기 위해 친자식을 3명이나 죽인 여자였다.
* 황후가 되기 위해 딸을 몰을 졸라 죽였고, 그 후 태자가 된 아들도 2명도
독살하였다.
* 그리고 막내아들을 황제에 허수아비로 앉히고 수렴청정을 하다가,
67세에 새로운 나라인 <주, 무주, 武周>를 세우고 15년간 통치하였다.
*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가 집권한 시기에 당과 주는 토지가 개발되고
농업생산량이 늘고 인구가 증가하고 문화가 발전했다고 한다.
* 측천무후는, 한(漢, BC 202∼AD220)의 여태후(呂太后, ?~BC 180),
청(清, 1636∼1912)의 서태후(西太后, 1835~1908)와 함께 ‘중국의 3대
악녀(惡女)’로 불리기도 한다.
* 말년에 병이 나자, 신하들의 압력으로 황제의 지위에서 물러남으로써,
당나라는 다시 수명을 연장해 갈 수 있었다. 624~705년 동안 생존했다.
* 측천무후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에,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676년
* 고종이 죽은 후, 자신의 아들을 번갈아 즉위시켰다가 폐위시키는 등
무소불위(無所不爲,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의 권세를 행세하다가 드디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스 스스로 ‘신성황제’라고 칭하였다.
* 아울러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나라 이름도 <당>에서 <주(周)>로 바꾸었다.
* 어린 소년들을 뽑아서 자신에게 수청(守廳, 몸을 바쳐 시중드는 일)들게
하였다.
* 그리고 귀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과거시험을 자주 실시하여, 과거시험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여, 과거시험 합격한 관료와 공신 및 귀족세력이
서로 견제하도록 함을 통해서 황제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 이 때 합격한 과거시험 출신자들이 송나라의 <사대부 세력>을 형성한다.
* 한편 당나라가 태평성대를 구가(謳歌)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경작할 토지가 부족하게 된다.
* 이러한 토지의 부족으로 농민들은 남의 땅을 빌려서 경작하는 소작인이
되거나 도적으로 변해 가면서, 국가의 세금 수입이 줄어들고 국방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귀족들이 소유한 장원을 죽이고 대지주가 흡수
한 농민의 수를 줄이려는 제도를 실시하였으나, 귀족들과 대지주의 반발로
실패하게 된다.
* 한편 당나라는 북방민족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변방의
‘진(陣)’을 통합하여 ‘번진(藩鎭)’을 두고, 번진의 우두머리로 <절도사>를
두어서 변방지역에서 그들에게 <군사권과 아울러 행정권>을 주게 된다.
* 여러 개의 ‘소군진’ 모여서 ‘대군진’을 이루고 여러 개의 대군진이 모여
‘번진’을 이루게 하였다.
* 세력이 막강해진 절도사들은 점차 중앙 정부에 반독립적 세력이 되어갔다.
* 특히 절도사들은 직업 군인으로서, ‘용병(傭兵)’들을 많이 모집하여
군사력을 키워갔다.
* 한편 당나라의 현종은 말년에 <양귀비>에 빠져 지냈다고 하는데,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아들 <이모>의 부인
* <현종+무혜비>의 아들이, <이모>이다.
* <이모>는 <양옥환=양귀비>과 결혼한다.
* 아버지의 아내(측천무후)를 후궁으로 삼은, <고종>
* 아들의 아내(양옥환)를 후궁으로 삼은, <현종>
* 양귀비가 <현종>의 후궁이 되면서, 그녀의 4촌 오빠였던 <양국충>이
권력을 잡고 전횡(專橫, 마음대로 함)을 하게 된다.
* 한편 절도사 <안록산>이 <양국충>과의 세력 다툼에서 패하게 되자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켜 수도를 점령하고 나라를 세운다.
* 안록산이 세운 나라의 이름은 <연(燕)>이다.
* 현종은 수도를 버리고 <쓰찬>으로 도망을 갔다.
* 안록산이 일으킨 반란은 우두머리가 바꾸면서 8년 간 지속되었다.
* <안록산 - 안경서 - 사사명 - 사조의>로 이어졌다.
* 이를 <안사의 난>이라고 역사는 부른다.
* <안사의 난>은 다른 절도사들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 이제 당의 운명은 황제가 아니라 <절도사>가 좌우하게 된 것이다.
* 이때부터 약 200년 간의 당나라는 <절도사>의 시대였다.
* 한편 절도사들이 국가를 좌우하던 시기에 농민이 중심이 된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 황소의 난을 진압한 절도사들은 이제 자신들끼리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이로써 당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 절도사 출신의 <주전충>이 <송나라, 907>를 세우고 난 뒤에 절도사들은
완전히 해체 되었다.
* 당나라 말기와 절도사와 그들의 시대를 <당말 5대>의 시대라고 부른다.
* 당의 멸망(907)
* 발해의 멸망(926)
* 신라의 멸망(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