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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작업을 하나 올립니다. 서정시의 정상회담 같은 것입니다.
[이별 35] 던, <고별: 애도 금지>(John Donne, “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
(1)As virtuous men pass mildly away,
And whisper to their souls to go,
Whilst some of their sad friends do say
The breath goes now, and some say, no:
(2)So let us melt, and make no noise,
No tear-floods, nor sigh-tempests move;
'Twere profanation of our joys
To tell the laity our love.
(3)Moving of th' earth brings harms and fears,
Men reckon what it did, and meant;
But trepidation of the spheres,
Though greater far, is innocent.
(4)Dull sublunary lovers' love
(Whose soul is sense) cannot admit
Absence, because it doth remove
Those things which elemented it.
(5)But we by a love so much refined,
That our selves know not what it is,
Inter-assured of the mind,
Care less, eyes, lips, and hands to miss.
(6)Our two souls therefore, which are one,
Though I must go, endure not yet
A breach, but an expansion,
Like gold to airy thinness beat.
(7)If they be two, they are two so
As stiff twin compasses are two;
Thy soul, the fixed foot, makes no show
To move, but doth, if the other do.
(8)And though it in the center sit,
Yet when the other far doth roam,
It leans and hearkens after it,
And grows erect, as that comes home.
(9)Such wilt thou be to me, who must,
Like th' other foot, obliquely run;
Thy firmness makes my circle just,
And makes me end where I begun.
(1)고귀한 사람들은 평온하게 사라지며,
자기의 영혼에게 가자고 속삭이고,
그러는 동안에 슬퍼하고 있는 벗들이
숨이 넘어갔다고도 아니라고도 하듯이,
(2)우리는 사라지면서 소리를 내지 말자.
눈물의 홍수도, 한숨의 폭풍도 없애자.
우리의 기쁨을 모독하는 짓이다,
속인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3)지구의 동요는 재해와 공포를 초래해,
어떤 일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린다.
그러나 천구(天球)에서 생기는 전율은
훨씬 크지만 해로움이 없다.
(4)우둔하고 세속적인 연인들의 사랑은
(핵심이 감각이므로) 없음을
용납하지 못한다. 없음은
사랑을 구성한 것들을 지우기 때문이다.
(5)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품격이 높아.
우리는 부재가 무엇인지 모른다.
마음을 서로 분명하게 하고 있어
눈, 입술, 손이 없어도 염려하지 않는다.
(6)우리의 영혼은 둘이 하나이므로,
내가 떠나지 않을 수 없어도
그것은 단절이 아니고 확장이다.
금을 공기처럼 얇게 편 것처럼.
(7)우리가 둘이라고 하면 둘이다.
컴퍼스의 두 다리처럼 둘이다.
너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이지만
다른 쪽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인다.
(8)너의 다리는 중심에 서 있지만,
다른 쪽이 멀리 돌아다니면
그리고 기울어지고, 귀 기울이다가,
그 쪽이 돌아오면 곧게 일어선다.
(9)너는 내게 이런 존재여서,
나는 다른 다리처럼 비스듬히 달리지만,
네가 확고해 원을 바르게 그리고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던은 17세기 영국 시인이다. 외국 여행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지어 주었다는 이 시가 형이상학적 시인들(metaphysical poets)의 시풍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한다. 고귀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이별을 해도 서러워하지 않고, 멀리 떠나 있어도 서로 신뢰한다고 하는 것이 말하고자 한 요지이다. 신분이 고귀한 귀족들에게 박해를 받고 살면서, 정신적으로는 대등해지고 싶어 고귀한 사랑을 한다고 하고, 표현의 격조를 높였다. 표현의 격조를 높이는 방법은 비교나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1)과 (2)에서는 같은 것을 비교했다. 고귀한 사람은 평온하게 숨을 거두듯이, 고귀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멀어져도 소리를 내지 말자고 했다. (4)와 (5)에서는 다른 것을 비교했다. 세속적인 사랑은 용납하지 않는 없음을 고귀한 사랑에서는 받아들인다고 했다. (3)에서는 지구의 변동과 먼 천구의 변동이 다른 것을 들어 세속적 사랑과 고귀한 사랑의 차이를 말하는 비유로 삼았다. (6)에서는 금을 두드려 확장하는 것을 들어 고귀한 사랑에서는 이별이 단절이 아니고 확장임을 말하는 비유로 삼았다. (7)에서 (9)까지에서는 기하학 작도에 쓰는 컴퍼스의 두 다리를 들어 고귀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이별을 해도 함께 움직인다고 말하는 비유로 삼았다.
이 시는 이별의 고통을 두 가지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이별을 해도 애통해 하지 않는 것이 고귀한 사랑이라고 했다. 이별을 두고 탄식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잘 계산된 비교나 비유를 사용해 시상을 차분하게 전개했다. 그렇게 해서 정신적 귀족의 시를 쓴 것이 형이상학 시파의 특징이다
[이별 36] 라마르티느, <호수>(Alphonse de Lamartine, “Le lac”)
(1)Ainsi, toujours poussés vers de nouveaux rivages,
Dans la nuit éternelle emportés sans retour,
Ne pourrons-nous jamais sur l'océan des âges
Jeter l'ancre un seul jour ?
(2)Ô lac ! l'année à peine a fini sa carrière,
Et près des flots chéris qu'elle devait revoir,
Regarde ! je viens seul m'asseoir sur cette pierre
Où tu la vis s'asseoir !
(3)Tu mugissais ainsi sous ces roches profondes,
Ainsi tu te brisais sur leurs flancs déchirés,
Ainsi le vent jetait l'écume de tes ondes
Sur ses pieds adorés.
(3)Un soir, t'en souvient-il ? nous voguions en silence ;
On n'entendait au loin, sur l'onde et sous les cieux,
Que le bruit des rameurs qui frappaient en cadence
Tes flots harmonieux.
(4)Tout à coup des accents inconnus à la terre
Du rivage charmé frappèrent les échos ;
Le flot fut attentif, et la voix qui m'est chère
Laissa tomber ces mots :
(5)“ Ô temps ! suspends ton vol, et vous, heures propices !
Suspendez votre cours :
Laissez-nous savourer les rapides délices
Des plus beaux de nos jours !
(6)“Assez de malheureux ici-bas vous implorent,
Coulez, coulez pour eux ;
Prenez avec leurs jours les soins qui les dévorent ;
Oubliez les heureux.
(7)“Mais je demande en vain quelques moments encore,
Le temps m'échappe et fuit ;
Je dis à cette nuit : Sois plus lente ; et l'aurore
Va dissiper la nuit.
(8)“Aimons donc, aimons donc ! de l'heure fugitive,
Hâtons-nous, jouissons !
L'homme n'a point de port, le temps n'a point de rive ;
Il coule, et nous passons !”
(9)Temps jaloux, se peut-il que ces moments d'ivresse,
Où l'amour à longs flots nous verse le bonheur,
S'envolent loin de nous de la même vitesse
Que les jours de malheur ?
(10)Eh quoi ! n'en pourrons-nous fixer au moins la trace ?
Quoi ! passés pour jamais ! quoi ! tout entiers perdus !
Ce temps qui les donna, ce temps qui les efface,
Ne nous les rendra plus !
(11)Éternité, néant, passé, sombres abîmes,
Que faites-vous des jours que vous engloutissez ?
Parlez : nous rendrez-vous ces extases sublimes
Que vous nous ravissez ?
(12)Ô lac ! rochers muets ! grottes ! forêt obscure !
Vous, que le temps épargne ou qu'il peut rajeunir,
Gardez de cette nuit, gardez, belle nature,
Au moins le souvenir !
(13)Qu'il soit dans ton repos, qu'il soit dans tes orages,
Beau lac, et dans l'aspect de tes riants coteaux,
Et dans ces noirs sapins, et dans ces rocs sauvages
Qui pendent sur tes eaux.
(14)Qu'il soit dans le zéphyr qui frémit et qui passe,
Dans les bruits de tes bords par tes bords répétés,
Dans l'astre au front d'argent qui blanchit ta surface
De ses molles clartés.
(15)Que le vent qui gémit, le roseau qui soupire,
Que les parfums légers de ton air embaumé,
Que tout ce qu'on entend, l'on voit ou l'on respire,
Tout dise : Ils ont aimé !
(1)이렇게 언제나 새로운 기슭으로 밀리며,
영원한 밤으로 실려가 되돌아오지 못하는
이 세월의 바다에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닻을 내릴 수 없을까?
(2)오 호수여! 한 해가 겨우 지났는데,
그 여자가 다시 보아야 할 정다운 물가에,
보라! 나는 이 돌 위에 홀로 앉았다.
그 여자가 앉은 걸 네가 본 돌에.
(3)깊은 바위 밑에서 너는 이렇게 울부짖고,
찢어진 바위 허리에서 이렇게 부서졌지.
바람이 너의 물결을 이렇게 내던졌지
그 여자의 아름다운 발에.
(4)어느 저녁, 기억하지, 우린 조용히 배를 저었다.
멀리 물결 위 하늘 아래 들리는 것은
박자를 맞추어 노를 저으며 치는 소리
너의 조화로운 물결을.
(5)갑자기 이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가
마술에 걸린 기슭에서 들려와 메아리쳤다.
물결도 듣고 있는데, 내게 정다운 어조로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6)“오 시간이여, 날아가기를 멈추어라,
행복한 순간이여 달리기를 멈추어라.
우리 생애에서 가장 좋은 날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다오.
(7)이 세상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바라니
흘러가거라, 흘러가거라 그들을 위해.
그들의 나날과 함께 괴롭히는 근심도 앗아가고,
행복한 사람들은 잊어라.
(8)그러나 몇 분을 더 요구하는 것도 헛되게
시간은 나를 비켜 달아났다.
나는 이 밤에게 천천히 가라고 말하는데,
새벽이 밤을 흩어지게 하려고 한다.
(9)그러니 사랑하자, 사랑하자 달아나는 시간을
우리는 서두르자 즐기자,
인간에는 항구가 없고, 시간에는 기슭이 없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지나간다.”
(10)질투하는 시간이여, 고조된 사랑이
행복을 가져다 준 이 도취의 순간도
같은 속도로 멀어져 사라지는가?
불행한 사람들의 나날과.
(11) 뭐라고! 도취의 순간 흔적도 남길 수 없다고?
뭐 영원히 사라졌다고, 뭐 모두 잃어버렸다고?
시간이 주고는 시간이 없애버려
되돌릴 수 없다고?
(12)영원, 허무, 과거, 어두운 심연
너희가 삼킨 나날로 무엇을 하려는가?
말하라, 숭고한 황홀을 우리에게 되돌려주려느냐,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을?
(13) 호수여! 말없는 바위여! 동굴이여! 어두운 숲이여!
시간이 남겨두고 다시 젊어질 수 있는 그대들이
이 밤을 간직하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라,
추억이라도 간직하라.
(14)너의 휴식에라도, 너의 폭풍에라도
아름다운 호수여, 너의 미소 짓는 언덕에라도
이 검은 전나무에라도, 거친 바위에라도
호수 위에 돌출해 있는.
(15)살랑거리면서 지나가는 미풍에라도
이 기슭, 저 기슭에서 되풀이되는 소리에라도
이마가 은빛인 별, 너의 표면을 희게 하는
부드러운 빛에도.
(16) 흐느끼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너의 감미로운 공기의 가벼운 향기,
듣고 보고 냄새 맡는 것이
모두 말한다. “그들은 사랑했다.”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라마르티느는 이 시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만나던 현장 호수를 찾아 지난날을 회고했다. 사라진 사랑을 되살릴 대책을 작품 전반에서 흘러간 시간에서 찾고자 하는 불가능한 시도를 거듭 하다가, 후반에서는 남아 있는 공간에서 찾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시간에 대해서 다각적인 고찰을 하고, 시간에서 공간으로 이행했다.
(1)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 없을까 하고 물었다. (2) 사랑하던 여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3) 과거로 돌아가, (4) 사랑의 현장 하나를 재현했다. 여기까지는 서두이다.
(5) 사랑을 하고 있을 때 하고 싶던 말을 되새겼다. (6) 행복한 시간은 흘러가지 말고 멈추라고 했다. (7)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시간이 흘러가라고 했다. (8) 시간은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빨리 간다. (9) 달아나는 시간을 사랑하자. 이렇게 생각하던 것이 모두 과거가 되었다.
(10) 행복한 시간도 불행한 시간과 같은 속도로 흐르는지 다시 물었다. (11) 행복한 시간 사라져 되돌릴 수 없다. (12) 시간이 빼앗아간 것을 되돌려주려는가 하고 물었다. 시간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13) 시간에서 공간으로 방향을 바꾸어, 공간이 추억을 간직하라고 했다. (14)에서 (16)까지 호수와 그 주변의 경치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것들이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다고 했다. 시간에서 찾지 못한 해결책을 공간에서 찾았다.
이 시는 시간에 관한 말이 많이 하면서, 시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 사람은 시간을 멈출 수 없고,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했다. 시간과 싸우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공간라고 말했다. 시간과 더불어 사라진 사랑의 자취를 호수와 그 주변의 자연물로 구성된 공간이 간직하고 있어 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 이름을 <호수>라고 했다.
[이별 37] 헤세, <단계>(Hermann Hesse, “Stufen”)
(1)Wie jede Blüte welkt und jede Jugend
Dem Alter weicht, blüht jede Lebensstufe,
Blüht jede Weisheit auch und jede Tugend
Zu ihrer Zeit und darf nicht ewig dauern.
Es muß das Herz bei jedem Lebensrufe
Bereit zum Abschied sein und Neubeginne,
Um sich in Tapferkeit und ohne Trauern
In andre, neue Bindungen zu geben.
Und jedem Anfang wohnt ein Zauber inne,
Der uns beschützt und der uns hilft, zu leben.
(2)Wir sollen heiter Raum um Raum durchschreiten,
An keinem wie an einer Heimat hängen,
Der Weltgeist will nicht fesseln uns und engen,
Er will uns Stuf' um Stufe heben, weiten.
Kaum sind wir heimisch einem Lebenskreise
Und traulich eingewohnt, so droht Erschlaffen,
Nur wer bereit zu Aufbruch ist und Reise,
Mag lähmender Gewöhnung sich entraffen.
(3)Es wird vielleicht auch noch die Todesstunde
Uns neuen Räumen jung entgegen senden,
Des Lebens Ruf an uns wird niemals enden...
Wohlan denn, Herz, nimm Abschied und gesunde!
(1)꽃은 모두 시들고,
청춘이 모두 노년으로 물러나듯이,
모든 삶의 단계, 모든 지혜, 모든 미덕도
때가 되면 피어나고 영원하지는 못한다.
마음은 삶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이별하고 재출발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용감하게 눈물은 흘리지 않고
달라지고 새로운 관계에 들어서야 한다.
모든 시작에는 어떤 마법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가 살게 도와준다.
(2)우리는 이 공간 저 공간 즐겁게 통과하고,
어디서도 고향이라고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세계정신은 우리를 속박하고 제한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높이고 넓히려 한다.
우리가 어떤 생활환경에 정이 들어
기분 좋게 눌러 살면, 무기력이 으르댄다.
출발과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야
습관의 마비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다.
(3)죽음의 순간마저 아마도 우리를
새롭고 신선한 공간으로 보내줄 지 모른다.
우리를 향한 생명의 부름은 끝이 없다...
자, 마음이여, 이별을 받아들이고 건강하자.
헤세는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를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많은 시를 남긴 가운데 특히 힘들여 써서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것이 이것이다. 이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어 자기 소견을 제시했다. (3)의 마지막에서 “이별을 받아들이고 건강하자”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어서 그 이유를 밝히려고 앞에다 긴 사설을 폈다.
(1)에서는 사람은 생애의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2)에서는 한 단계에 머무르면 무기력이 으르대니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말이 타당하다고 하려고 경험할 수 있는 영역 이상의 것을 가져왔다. (1)에서는 “어떤 마법”이 모든 시작을 도와준다고 했다. (2)에서는 “세계정신”이 한 단계 높이고 넓히는 작용을 한다고 해서 범속한 발상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3)에서 죽음마저 “새롭고 신선한 공간”으로의 이동이어서 “생명의 부름”일 수 있다고 한 말이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이도록 했다.
[이별 36] 라마르티느, <호수>에서 시간의 흐름이 인간에게 이별의 슬픔을 가져다준다고 원망했다. 헤세는 여기서 시간의 흐름은 당연하다고 하고, 시간의 흐름을 따르면 이별을 한다고 해도 슬픔이 없다고 했다. 라마르티느는 시간과 공간을 대립시켜, 시간이 주는 공간에서 얻는 위안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헤세는 여기서 공간은 독립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 들어 여겨 따로 언급하지 않다가 죽음이 “새롭고 신선한 공간”이라고 한 데서 비로소 정면에 내놓았다. 이것은 죽음이 삶의 또 한 단계임을 말하려고 마련한 표현이고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이별 35] 던, <고별: 애도 금지> 도 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 작품은 관심이 오직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있고 시간도 공간도 문제로 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별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말하지 않고, 현재에서 미래를 상상하기만 했다. 공간은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비유로 사용하기만 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이별은 사람 마음에 관한 사항이라고 해서 생각의 범위를 좁혔다. 그런데 이별을 마르티느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로, 헤세는 시간의 문제로 고찰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했다.
[이별 38] 한용운, <님의 침묵>
(1)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2)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3)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4)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5)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6)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7)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8)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9)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10)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이 시는 모두 열 줄이다. 열 줄의 상관관계를 살펴야 하므로 (1)에서 (10)까지 번호를 붙였다. 번호를 붙여놓고 보니 시제의 교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님이 갔다고 하는 과거형과 님이 아직 있다고 하는 현재형이 교체된다. (1)에서 (5)까지의 전반부는 모두 과거형으로 끝났다. (6)부터 (10)까지의 후반부는 (6) 현재형, (7) 과거형, (8) 현재형, (9) 과거형, (10) 현재형으로 끝나 둘이 교체된다.
이 점을 위의 세 작품과 견주어보자. [이별 35] 던, <고별: 애도 금지>는 현재형의 연속이다. [이별 36] 라마르티느, <호수>는 현재형으로 진행되면서, 회상을 위한 과거형을, 희망을 위한 미래형을 곁들였다. [이별 37] 헤세, <단계>도 현재형의 연속이면서 미래에 관한 말을 넣었다. 이런 사실을 왜 이제 말하는가? 세 작품은 시제를 의식하고 읽을 필요가 없어서 말하지 않았다. 한용운, <님의 침묵>과 비교하려고 시제가 어떤지 다시 보았다.
이별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생기는 일이다. <호수>는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심각하게 문제 삼고, <단계>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유럽의 언어는 시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도 세 작품에서는 시제가 작품 구조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해설자 노릇을 하는 시인이 독자에게 이별에 관해 시간의 경과와 관련시켜 설명하는 데 그쳤다. 우리말은 유럽의 언어처럼 시제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도 <님의 침묵>은 시제의 교체를 기본 구조로 삼고 있다. 시는 설명이 아닌 표현이어야 한다. 표현은 시 자체의 구조로 나타나 있어, 서술자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
<고별: 애도 금지>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we”(우리)는 이별의 당사자이면서 이별에 대해서 말하는 해설자이다. <호수>의 “je”(나)는 이별의 당사자 노릇을 하다가 해설자이기도 하려고 어디선가 들여왔다는 소리가 한 말을 길게 삽입하는 방식으로 분신술을 썼다. <단계>의 “wir”(우리)는 이별의 당사자인 척하기만 하고 해설자 노릇을 부지런히 하면서 대단한 이치를 설파하는 거동을 보였다. <님의 침묵>에 등장하는 “나”는 이별의 당사자이기만 하다. 이별의 당사자가 하는 말이 긴박하게 전개되어 해설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과거형과 현재형이 같은 양상으로 지속되지 않고 뜻하는 바가 단계적으로 변했다. 과거형은 (1) “님은 갔습니다”에서 시작해 (2) “떨치고 갔습니다”, (3) “날아갔습니다” (4) “사라졌습니다”로 나아가면서 님이 없어진 정도가 더 심해졌다. 그런데 (5)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에서는 과거가 현재까지 지속되어 현재형으로 전환될 준비를 했다. (7)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에서 (9)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로 나아가면서 과거형이 과거를 부정하고 의미에서는 현재형이 되었다. 현재형이 시작되는 (6)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는 의미에서 과거이다. (8)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에서 (10)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로 나아가면서 현재형이 현재를 나타내는 의미를 지니고 미래를 암시했다. 다시 만나리라는 미래를 먼저 말하고, 님이 침묵하고 있어 어젠가는 침묵을 깰 것이라고 기대하게 했다. “님의 침묵”에서 과거와 현재, 실망과 기대, 이별과 재회가 하나로 합쳐졌다. 이것이 결론이므로 시 제목을 <님의 침묵>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엇을 말했는가? 시는 산문이 아니지만, 산문처럼 쓴 위의 세 편과 비교해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고별: 애도 금지>에서는 사랑의 등급을 나누어 이별을 한탄하는 것은 저급한 사랑이고, 고귀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이별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 했다. <님의 침묵>에서는 사랑이나 이별에 등급이 없다. 이별을 당하면 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고, 한탄을 기대로 바꾸어 재회를 기대하자고 했다. 과거와 현재, 실망과 기대, 이별과 재회가 “님의 침묵”에서 하나로 합쳐진다고 했다.
<호수>에서는 지난날의 사랑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시간에 실망하고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하면서 호수와 그 주변의 풍경을 묘사했다. <님의 침묵>에서는 풍경이 (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에서는 직접 나타나더니 (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에서는 비유로 쓰이고, (5)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에서는 냄새만 남겼다. 공간이 흐릿해지다가 사라지면서 홀로 남은 시간과 대결해 과거가 현재라고 하는 데 이르렀다. 이별이 이루어진 과거의 공간이 내면의식이 소중한 현재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겨 지워버렸다.
<단계>는 공간은 버리고 시간만 집중해 다루고, 시간이 흐르면 이별의 고통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님의 침묵>에서는 시간의 진행에 따라 작품을 구성해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문제 삼다가 과거가 현재이고 또한 미래라고 하는 데 이르렀다. 님이 떠나가 이별한 과거가 보내지 않은 님이 침묵하고 있는 현재로 이어지고, 침묵은 깰 수 있으므로 현재에 미래가 준비되어 있다.
사람이 살면 이별을 하게 마련이다. 이별에 관한 시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별을 고통스럽게 여기기나 하면 격조 높은 시일 수 없고 무언가 다른 말을 해야 한다. 이별이 이별로 끝나지 않으므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론을 그럴듯하게 전개해야 사상을 갖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데 몇 가지 방안이 있는 것을 위에서 든 작품들에서 확인했다.
이별에는 저속한 이별과 고귀한 이별이 있어, 저속한 이별은 파탄으로 끝나지만 고귀한 이별은 재회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던은 <고별: 애도 금지>에서 이렇게 했다. 이별을 바람직하게 하는 자세를 대응이 되는 사물에다 견주어 적절하게 나타내, 시 창작의 수준을 고귀함의 증거로 삼으려고 했다.
다른 세 작품에서는 생각을 더 깊게 했다. 시를 잘 쓰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별에 관한 논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별이 있는 것은 사람이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이 있어야 할 동반자와 존재하는 공간이 달라지고 시간이 경과한 것이 이별이다. 이별을 그 자체로 논의하는 데 그치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시간과 공간을 문제 삼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함께 하면서 세 작품이 세 가지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시간은 지나가고 없지만 공간은 남아 있다. 이별 이전의 상태를 공간에서 확인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마르티느는 <호수>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당연하므로 이별하지 않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단계가 달라지면 새로운 공간이 열릴 수 있다. 헤세는 <단계>에서 이렇게 말해다. 공간에서 거리가 생긴 과거의 이별이 현재의 마음가짐에서 달라진다. 공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없음을 침묵으로 여기면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를 내포한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용운의 발상은 시 자체에 적절한 구조와 효과적인 표현을 갖추고 제시되어 있어 설명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없음을 침묵으로 여기면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를 내포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 타당하다고 한 것이 시가 예사롭지 않은 증거이다. <고별: 애도 금지>는 비유를, <호수>는 묘사를, <단계>는 논리를 특징으로 삼았다. 이 시는 그런 특징이 없으면서 어느 부분이 아닌 작품 전체가 비유이고, 묘사이고, 논리를 넘어선 논리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생생하게 그린 것은 있음과 없음의 관계를 납득하기 쉽게 나타내기 위해 선택한 비유이고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있음이 없음이고 없음이 있음임을 알려주어 논리를 넘어선 논리에 이르렀다. 이렇게 생각하면 “一切唯心造”이고 “眞空妙有”라고 하는 말을 기억해내지 않을 수 없다. 님이 갔다고 하는 것도, 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一切唯心造”이다. 님이 침묵하고 하고 있다는 것은 “眞空妙有”이다.
님은 갔어도 보내지 않았으며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을 나타내기 위해 탁월하게 선택한 비유이고 묘사이다. 진실을 감추어두고 찾지 않아도 깨닫게 한다. 진실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님이 간 것을 통탄하게 여기면서 보내지 않았다고 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침묵은 깰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 현실의 수난에 대처하고 해결 가능성을 찾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님을 조국, 정의, 이상 등으로 필요한 대로 구체화해서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