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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적
토큰(token)
63-0901M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주님께 예배드리러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주일 학교식 공부와 말씀 가운데서 위대한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밤에는 다시금 병 고침 예배를 갖고 그 이후에는 성찬식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아 봉헌식을 갖겠습니다.
네빌 형제가 어떤 사람이 자기들의 아이를 봉헌하고자 한다고 제게 막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지금 아이를 데리고 나오신다면, 오르간이든지 피아노 치는 분은 그 자리에 그냥 앉아 계십시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시면, 우리는 봉헌식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말씀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고 싶고, 그것이 주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주의 말씀에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여기서 예배시간에 여러분 모두를 만나는 기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분 좋습니까? 네, 여기에 작은 꼬마들이 있군요. 죄송합니다.
[유아 봉헌식-브래넘 형제가 부모들에게 얘기한다. 회중들이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라”는 찬송을 부른다.-주]
훌륭합니다! 몇 분이나 지난 주 일요일에 기도 받으러 오셔서 결과를 느끼거나 병 고침을 받았다고 느끼시는지,
손을 들고 주를 찬양하십시오. 오, 세상에, 여기를 보십시오.
네 선생님.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데 나중에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일은 영광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에 관해서 언젠가, 아시다시피, 다음 예배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일이 막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그 일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를 돌면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순회를 하는 대신, 저는 하나의 커다란 연합집회에, 아시겠죠,
집중시켜 거기에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성전을 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는지 이제 알아봐서, 그때 가서 기독교인 실업가 집회를 열고자 합니다.
해외 집회들의 계획이 완전히 세워질 때까지 우리는 1월, 2월, 3월 달에 남부지방에서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그런 다음에, 만약 우리가 지금 시작해서 아프리카로 들어간다면, 여기서는 크리스마스 때지만 그쪽에서는 7월 4일
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때 그곳의 기후는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엔 아프리카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가장 적절한 때는 나중입니다.
그 다음에 할 수 있다면 노르웨이에서 시작해서 쭉 내려와 세계를 돌고, 주의 뜻이라면,
아프리카에 가서 전하고 그곳에서 일정을 마치는 걸로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주님께서 우리들이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밤에는, 커다란 병 고침 예배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주 조금만 얘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밤에 성찬식이 있기 때문에 20분이나 30분 정도만 설교를 하고 나서 기도 줄을 세우고,
그 후 곧장 성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우리들과 함께 성찬식에 참석하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폐쇄적인 성찬식을 하지 않습니다.
성찬식은 믿는 사람,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잠시 동안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말씀을 축복해 달라고, 훌륭한 친구인 리 베일형제님, 우리를 기도로 인도해 주십시오.
베일형제님, 기도해 주십시오.
[베일형제가 기도한다.-주]
자, 엄숙하고 경건하게 말씀으로 다가갑시다.
저는 오늘 아침 출애굽기12장12절부터 시작해서 12절 13절을 읽고 싶습니다. 자 잘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밤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 출애굽기12장, 그 장 전체를 읽으십시오.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11절은 여행과 여행 전에 있을 성찬에 대한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아주 경건하게 다가가기를 원합니다. 자, 12장 12절입니다.
출애굽기12:12.내가 이 밤에 이집트 땅을 두루 지나가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또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집행하리라. 나는 주니라.
13.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적(token)이 되게 할지니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그의 거룩한 말씀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저는 거기에서 제목을 정하고 싶은데, 다섯 글자로 된 한 단어 토큰(token)입니다. 토큰,
저는 그 단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데, 토큰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주일학교 수업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여기 성서는 말하기를, “피는 너희를 위하여 표적(토큰)이 되리라.” 그래서 그 말 “토큰”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보라고 이곳에 온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베일형제가 “우리는 여기에 말씀을 듣기 위해서 왔고,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기 위해 왔다”고
기도하신 것처럼,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왔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인간은 영원 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느 길을 나아갈 것인지 결정할 시간이 이만큼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느 길을 나아갈 것인지 결정할 시간이 이만큼 있습니다. 그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고 싶은 둘 중의 한 쪽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주신 방식이며 우리에게도 똑같은 방식을 앞에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든지 간에,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는 모든 것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만약 그리스도가 기대해야 할 전부라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말씀을 영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 이상 가는 뭔가에 다다라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얻으신 후에, 말씀을 가져다가 선반 위에 올려놓지 마십시오. 말씀을 실행에 옮겨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마치 의사에게 가서 약을 지어 그 약을 선반 위에 올려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약을 지으러 갔으면, 약을 복용 하십시오. 여러분을 괴롭히는 질병이 있으면, 이 치료는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의사가 주는 것을 복용하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이나, 느낌이 아니라, 의사가 말한 대로, 지어주는 대로, 하십시오.
왜냐하면 때때로, 단 몇 분의 시간이 여러분이 약을 먹는데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경우에, 여러분의 한 순간의 결정이 여러분의 영원한 종착점을 결정할 지 누가 압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그대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피가 너희를 위하여 표적(토근)이 되리라.” 우선, 토큰이 무엇입니까?
그 말은 우리 영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이곳 미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토큰은-사전을 찾아보면, 토큰은 표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큰은 요금이 지불되었다는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철도나 버스노선 같은데서 지불하라고 요구되어지는 가격이나 요금이 지불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여러분이 들어가서 요금을 지불하면 그들은 여러분에게 토큰을 줍니다.
그런데 그 토큰은 다른 곳에 사용될 수 없고 오직 그 철도노선에만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요금을 지불했다고 철도회사가 인정해 줄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토큰입니다.
그것을 다른 곳에는 아무데도 쓸 수 없습니다. 다른 노선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노선에만 해당되고, 그것이 토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시작한 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너희를 위한 토큰 이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죽인 어린 양은 여호와가 요구하는 토큰이었습니다. 그것은 피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큰을 만들어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토큰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 이외의 다른 모든 토큰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은 이해할 수 없고, 멍텅구리 바가지였겠지만, 하나님께는, 그것이 유일한 길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토큰이었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요금을 내기까지는 토큰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요구를 충족시키면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자유롭게 통과하는 특권을 주는 토큰의 소유자가 됩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여러분이 “통과증(패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떤 대용물도, 어떤 교파도, 어떤 아무 것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만 내가 보리라.”
그들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고, 얼마나 많은 교육도 받았고, 어떤 옷을 입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그 토큰이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 토큰을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그 피가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채워졌다는 토큰(표적)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일이 행해졌다는 표시였습니다. 그 피는 토큰을 상징합니다. 그 피는 토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것을 먹는 날, 너희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비로운 하나님은 한 길을 만드시고 믿는 자의 생명을 대신할 대속하는 생명이 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더럽혀진 사람의 생명을 대신해서 그 대용물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말씀을 불신하는 죄로 자신을 더럽혔을 때, 풍성한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대용물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뭔가가 그들을 대신해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의 사과나 복숭아 같은 것들이 소용이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오직 피가 있는 생명이어야만 했고, 그 생명이 그 희생제물로부터 취해져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 피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명령이 수행되어졌다는 토큰(표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셨습니까? 생명이었습니다. 그 피는 생명이 취해졌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피는 생명이 바쳐졌고, 뭔가가 죽었다는 것의 토큰이었습니다.
생명이 바쳐지고, 피가 흘려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피는 생명이 취해졌다는 토큰을 상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동물의 생명이 취해졌고, 그 피는 토큰을 상징했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경배자는 토큰에 의해서 자기의 희생제물과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짧은 인용구에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들 중 하나에도 한 시간을 다 써서 설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여기서 믿는 자는 자기의 희생제물과 동일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멈추고자 합니다.
만약 그 희생제물이 저기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바치지만, 그는 희생제물가 함께 동일시되어야 합니다.
솔직하게, 그는 먼저 자기 자신을 그 희생제물과 동일시하기 위해 자기의 손을 그 희생제물 위에 얹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피는 그가 피 아래 서 있을 수 있는 곳에 발라야만 합니다.
그 피는 그의 위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죄를 지은 자기 자신이 죄가 없는 대용물과 함께 동일시되었으며,
죄 없는 대용물이 자기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토큰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오, 구속받은 사람, 아시겠죠.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요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 나는 너의 생명을 요구하노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죄를 졌을 때, 죄 없는 대용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그것은 피 있는 동물이었지, 사과나 복숭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뱀의 씨를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였습니다.
이 피는 과일로부터 나올 수 없고, 죄 없는 대용물에게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대신해서 생명이 취해졌고, 그 피는 동물이 죽었고, 피가 흘려졌다는 상징이었습니다.
경배자는 피를 자기 위에 바르면서 자기는 그 구속에 동일시되어졌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을 그 희생제물과 연결시켜 그것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피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토큰을 상징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얼마나 멋있는 장면인지! 그것의 대속 물인 희생제물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아주 똑같습니다.
오늘날 믿는 자는 보혈 아래에서 희생제물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완전할 대로 완전한 모형인 것입니다.
그런데 동물이 아닌 그리스도가 어떻게…아시다시피, 동물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 동물은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시키고자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어린 양으로 일치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셨을 때, 하나님은 새로서, 비둘기로 자기 자신을 일치시키셨습니다.
비둘기는 하늘을 나는 모든 새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새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은 이 땅에 있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그에게 나아가셨을 때에,
성서는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늑대였다거나, 다른 동물이었었다면, 비둘기의 성품은 늑대의 성품과 섞여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둘기의 성품은 양이 아닌 다른 어떤 동물과는 섞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두 성품은 한데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일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예정을 아시겠습니까? 그분이 여기로 오셨을 때 그것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데려왔을 때,
그것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것은 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양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말씀을 영접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진실한 영입니다.
그들 중 나머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얻으려고 애쓰면서 분을 내고, 못되고 야비한 늑대 위에 하나님의
성령을 두려고 할 것입니다. 성령은 그곳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성령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비둘기가 내려왔을 때, 어린 양이 아니고 어떤 다른 동물이 있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둘기는 금새 날아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비둘기가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성품을 발견했을 때,
비둘기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비둘기는 어린 양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 보십시오. 비둘기는 어린 양을 도살자에게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은 비둘기에게 순종했습니다. 아시겠죠. 비둘기가 어디로 이끌든지 간에 어린 양은 기꺼이 갔습니다.
오늘 저는 궁금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완전한 항복과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삶으로 이끄신다면,
우리의 영은 때때로 반항을 하지 않을까, 우리가 어린 양일까 궁금하게 여깁니다.
어린양은 순종을 잘 합니다. 어린 양은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립니다. 어린 양은 자기의 것을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양을 딱 누이고 양털(어린 양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을 깎아도, 어린 양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절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할 뿐입니다. 그것이 어린 양인 것입니다. 양은 모든 것을 줍니다.
모든 것을 나눠주고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줍니다.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들을 희생하고, 이 세상 것 때문에 아무 것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한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양의 피 흘림으로, 이집트에서의 자연적인 어린 양의 피 흘림으로, 피가 발라졌습니다.
피가 발라졌을 때, 그것은 토큰을 나타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어린 양의 피는 무엇을 나타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죽었고 우리의 희생제물과 하나가 되었다는 토큰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린 양과 그 피와 그 사람은 하나로 일치가 됩니다. 믿는 자와 희생제물은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희생제물로써 여러분의 삶 속에서 동일시됩니다. 그것이 현재의 여러분을 만듭니다.
그때 그 피는 동일시의 토큰이었습니다. 그 피는 경배자가 어린 양을 죽였고 어린 양을 받아들여 토큰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켰다는 것과 자기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누가 그 피를 보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 피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그 토큰을 볼 수 있는 곳에 발라졌습니다.
아시겠죠.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그것을 비밀리에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사귀고 있는 사람들이 모르도록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자 좀 보쇼. 난 기독교인이 되고 싶지만, 아무 아무개가 그 사실에 대해 알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글쎄 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 토큰을 공중 앞에 나타내어야 합니다.
공중 생활에서나, 사무실에서나, 거리에서나, 문제가 생길 때나, 교회에서나, 다른 모든 곳에서.
그 피는 토큰이고, 그 토큰은 나타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언약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 피는 이 사람이 구속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토큰이며 증명이었습니다.
자, 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에 구속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그 피를 발랐습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이전에 그 피는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으면서, 믿음으로 발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땅을 지나가기 이전에, 그 피는 먼저 발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고 난 뒤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자, 우리는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잠시 여러분에게 그것을 생각해 보시도록 하는 교훈. 보십시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왜냐하면 여러분은 피를 바를 수 없게 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십사일 동안 간직한 후, 어린 양은 해 질 때에 죽여야 했습니다.
어린 양이 죽은 다음에, 그 피는 해 질 때에 발라졌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토큰은 해 질 때까지는 절대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저녁때입니다.
지금이 교회에게 저녁때입니다. 지금이 저에게 저녁때입니다. 이 말씀은 저의 메시지의 저녁때입니다.
저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가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의 저녁때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됨과 기타 등등을 통해 올라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토큰이 나타나야만 하는 때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저는 여러분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그 일이 반드시 행해져야만 합니다.
만약 그 일이 행해졌어야 하는 일이었다면, 그 일은 지금 행해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진노가 이 땅을 지나가기 직전에 있고, 그 토큰 아래 있지 않는 모든 것들이 멸망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피는 여러분을 증명했습니다.
보십시오. 동물의 생명은 인간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피가 흘려졌을 때, 생명은 취해지고,
물론, 그것은 한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피가 그곳에서 나갔을 때, 그 생명은 그 피와는 다른 것입니다.
자, 피는 그 생명의 화학적 성질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피와는 다른 것입니다. 생명은 피 안에 있습니다.
동물의 생명은 경배자에게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어린양의 이 피를 흘렸을 때,
그는 그 화학적 성질을 발라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이 취해졌고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로 돌아올 수 없었는데, 동물은 혼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자기가 벗고 있음도 알지 못하고 죄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동물은 생물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동물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에게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명 안에 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피가, 생명이, 생명 안에 혼이 있습니다. 혼은 생명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에게는 특정한 성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피는 생명이 바쳐졌다는 토큰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광스러운 장소에서, 이 언약 아래에서는, 피와 생명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있어 토큰은 성령입니다. 화학적 성분인 피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늘날 교회에게 요구하시는 토큰입니다. 하나님은 이 토큰을 보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모두 가운데서 그것을 보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저녁 그림자가 나타나고, 하늘로부터 비 경건한 국가들 위에와 경건치 못한 불신자들 위에와 고백도
하지 않았으면서 고백했다고 하는 사람들 위에와 이런 것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막 부어내리려고 하는
이때에, 저는 제 자신을 드러내고 여러분 가운데서 올바르게 살려고, 제가 이런 일들을 말하기 전에
그것이 어디에 서 있는지 보려고 하면서 애썼습니다.
우리는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진노가 내리치려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토큰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직접, 그의 토큰인 성령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나가실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표징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는 자에게 되돌아 온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생명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피는 문 위에, 인방 위에, 문설주 위에 발라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온 공중이 다, 그 집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문 위에 표징이 있음을,
피가, 생명이 그 문에서 죽었다는 표징이 있음을 알게 하도록 말입니다. 아멘!
그것이 오늘날 모든 믿는 자에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것, 어린 양의 흘린 피의 토큰인 성령으로 충만되어 어린 양 안에 있던 생명이 되돌아 왔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 공개적으로 인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나, 여러분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나, 여러분과 사귀는 사람이나, 그 피가 발라진 것을 보면서, 그 피 안에 있었던 생명의 토큰이 여러분에게
있음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노로부터 안전합니다. 그것뿐입니다. 교인이래서가 아닙니다.
동물의 생명은 믿는 자에게 올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온전한 희생제물이 올 거라는 것을 알려주는 양심에 대해서 말했을 뿐입니다.
자, 속죄가 되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오신 것보다도 더 온전한 희생제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되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창조한 피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성적결합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그 생명은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심판을 받고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수선할 수 없습니다. 수선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것은 죽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요구인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대용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성령이고, 여러분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영접했다는 하나님의 토큰입니다.
그래서 웨슬리 시대에는 피의 화학적 성질을 믿어야 된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토큰이 요구되는 마지막 날입니다. 그것은 온 단위 모두를 휴거하게 만듭니다. 아시겠습니까?
물과 피와 영이 엄마가 애기를 날 때 나옵니다. 정상적인 출산에 있어서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은 물입니다.
두 번째는 피입니다. 그 다음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물과 피와 생명이 나왔습니다.
온전한 교회인, 그리스도의 신부는 의롭게 됨과 성결과 토큰인 성령의 침례를 통해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히브리서11장에서 말하듯이,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학대를 받은 이 모든 사람들과,
이들이 행한 이 모든 일들도,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침례의 토큰을 받은 오늘날의 교회, 피가 흘려졌고, 성령이 교회에 임했는데, 우리 없이는 그들은 부활할
수 없고, 그들은 우리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것을 가지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누군가가 거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누가 있게 될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제 책임은 오로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그것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예정된 씨를 찾으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모두가 그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가 다 그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로 서로-물 시대, 피 시대, 그리고 지금은 성령의 토큰시대!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은 여러 일들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토큰이 요구되어지는 때는 아침이 아닙니다.
어린 양을 간직하는 십사일의 준비기간이 아니라, 해질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뭔가가 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루터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웨슬리도 알았습니다. 피니도 낙스도 캘빈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불기둥이 교회로 다시 돌아올 때가 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것을 기대하기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뭔가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해질 때에야 토큰인 어린 양의 피가 문에 발라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이미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것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루터의 때에 그것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웨슬리 때에도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토큰의 시대입니다. 각 집이 토큰으로 발라져야만 하는 토큰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각 집은 토큰으로 발라져야만 합니다. 집의 내부도 다 토큰으로 발라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한 성령으로 우리는 다이 토큰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것의 일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토큰이 전시된 것을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우리가 지금 어떤 시간에 살고 있는지! 피는 믿는 자를 증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취해졌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화학성분을 지녀야만 했습니다.
그는 생명이 피로부터 나갔다는 화학적 성질인 피를 페인트처럼 지니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영 자체가 토큰입니다. 성령 그 자체는 토큰입니다.
피가 아니고. 피가 갈보리에서 흘려졌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피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나왔던 곳-그분이 먹고 사셨던 음식-의 요소로 되돌아 갔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혈액세포 안에 그 혈액세포가 움직이게 시동을 거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만약 생명이 없었다면, 그 화학은 그 자체 내에 아무 생명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피의 화학 안에 들어가, 한 세포를 형성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세포를 형성하고, 계속 세포를 형성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 인간은 육신으로 거하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화학으로 되돌아 왔을 때 그것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토큰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는, 교회에 임한 성령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아내와 남편은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와 신부도 마찬가지로 하나가 됩니다. 신부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사역은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고 지금도 계속하시며…”
그분의 죽음은 그를 멈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시 돌아 오셨습니다.
세 번째 분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형태로 다시 되돌아오신 똑같은 분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계속 일을 하고 있고 계속하다고 사도행전에서 말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것이 바로 토큰입니다. 그것이 바로 표징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이라 하는 곳을 통과할 때,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불구의 남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얘기해 보고는 그들이 무식하고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을 주의해 보고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던 것을 알았습니다. 아시겠죠, 토큰이 거기에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불쌍한 앉은뱅이 형제를 보고, 거기에 누워, 다리를 못 쓰고, 불구이며, 등등,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똑같은 생명이 그들 안에 있어서 “내게 있는 것으로”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너희가 마귀를 쫓아내리라.”
“내가 쫓아낼 것이 아니고 너희가 쫓아내리라. 너희가 이 산더러…라고 말하면”-만약 내가 말한 다면이 아니고.
“너희가 이 산더러 말하면.”
형제여, 토큰이 전시되어야 할 때가 가까 왔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말씀들이
이적과 기사들을 보여주고 있는 때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는 끝에 가까이 와 있음을 압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로 되돌아와서, 토큰이 전시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다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피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우리의 토큰입니다.
위대한 신학자이며 학자이며, 훌륭한 성격을 가진 좋은 사람인 침례교 형제로서, 한번 제게 와서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당신은 이 성령에 대해 말하고 계십니다. 아니, 그것은 하나도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대를 통해서 쭉 그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글쎄, 저는 …”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신은 언제 받으셨으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가 믿을 때에 받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이 침례교 신학임을 알았기 때문에-그들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다면, 바울이 사도행전19장에서 한 무리의 침례교 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개종시킨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한 침례교도가 성경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윗 쪽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을 때, 그는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은 이후로(since),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이 무슨 침례를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희생제물로 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전혀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약을 선반에 두고 먹지는 않는 것처럼 그것을 믿기만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으라고 명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행했을 때,
그러자 토큰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하나님을 높이면서,
그들은 성령의 역사와 표적에 의해 증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희생제물과 일치가 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증명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증명합니다. 오랜 시간 교회에 다녀서가 아니고, 우리의 성경 이해로도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고, 오직 우리가 창조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는 창조자가 우리가운데
얼마나 살아 있느냐가 우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죽었다고 여기고,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있는 것은 토큰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이 아니고, 그 분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 지금 내가 사는 이 삶은…”
그는 과거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증명된 토큰이 있습니다.
우리의 희생제물과 일치가 되어서 우리 안에 계신 구세주의 생명인 성령, 오 얼마나 완전한 토큰입니까!
더 이상 다른 토큰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제가 오늘아침 여러분의 귀가 아니라, 여러분의 혼 속에 말로써 표현해서
그것을 넣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것의 보장을 볼 수만 있다면. 그 사실은 여러분을 너무너무
안심하고 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죄를 저지르고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여러분이 유죄로 판결이 날 것이며 여러분은
죽게 될 것을 아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전지의자로나 가스실로 갈 것입니다.
아니면 사형집행이든지-매달거나 그런 거, 교수형이나, 형벌이 무엇이든지 간에-여러분은 유죄라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을 그 일로부터 빼낼 수 있는, 여러분을 대리할 변호사를
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압니다. 자, 여러분은 가장 뛰어난 변호사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여러분이 훌륭하고 민첩한 변호사를 얻고 나서, 여러분은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호사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아직도 그 변호사가 판사의 생각이나 배심원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
의혹이 생길 것입니다. 만약 이 변호사가 능변과 법률지식으로 여러분의 입장을 호소할 수 있고 여러분이 살아야
함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훌륭한 능력과 훌륭한 연설과, 그가 배심원이나 판사에게
줄 수 있는 인상에, 여러분은 잠깐동안 안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는
“저 변호사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있어서는, 판사가 직접 우리의 처지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어떤 변호사도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와 율법, 선지자들,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배심원, 변호사가 다 되었습니다.
판사가 직접, 그 자신의 손 안에 그의 율법의 정의를 취하고 직접 그 죄의 값을 지불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희생제물을 받으셨다는 증인으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다시 보내 주셨는데 말입니다. 얼마나 안전합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분은 판사, 배심원, 변호사가 다 되셨을 때, 우리의 사건을 옹호했습니다.
그분 자신의 율법으로 보면 죄있는 우리를, 그분이 오셔서 성소 안에 있었던 죄인의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인의 죄를 가져갔습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에게 돌리시고, 죽으셨고, 자신의 피를 흘려 값을 치루시고,
자기 자신의 토큰인 자신의 생명을 돌려 주셨습니다.
사건은 끝이 났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죄가 없습니다.
오,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사람들이 사건은 이제 끝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면.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건이 있습니다. 사건이 끝이 났고 더 이상 없습니다. 아멘!
토큰을 발라놓고 안전하게, 죽음이 문을 치기 시작할 때, 죽음은 아무런 지배를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토큰이 발라졌습니다. 이제, 토큰만이 인정받습니다. 그분이 토큰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 토큰은 하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인간을 만드셨을 때, 그 인간을 아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너무나 타락해서, 하나님 대신 아내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남편의 말 대신 마귀에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 일은 그들을 다 타락하게 했고 오염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이 자녀를 세상에 낳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나무 중앙에 있는 과일은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만졌을 때,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죄를 불러들였고, 그래서 태어나는 온 인류는 죄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 밖으로 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려 오셨습니다. 그를 되돌릴 유일한 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다시금 아들로 되 돌이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분의 율법이 거기 서서, “그는 정죄를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그분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때, 아버지 자신이, 우리들 중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것이 진짜 어린 양입니다.
그것이 그분이 품고 있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린 양이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증명되었던 이유입니다.
언젠가 한번 어린 양과 비둘기가 만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린 양과 비둘기가 하나가 될 때, 우리 모두가
그것을 볼 때,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기꺼이 그러한 희생제물을 바치신 것입니다.
토큰이 발라진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외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다, 여자와 남자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희생제물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딸들입니다.
그러자, 어떤 실수도 없애기 위해서, 이 몸의 흙에 심어져야만 했던 이 삶의 씨는 죽는 씨입니다.
만약 그 씨 안에 왜곡된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씨와 같이 죽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씨 안에 영생을 넣으시고 그것을 자기자신이라고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일으키셔서 아무 것도 잃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이제 그것은 죽을 수 없습니다. 생명이 그것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토큰입니다.
그 작은 몸 위에, 그 사람의 혼 위에 놓여 있습니다. 저기에 하나님께 속한 성령인 토큰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것입니다. “내가 토큰을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확실한 토큰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토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할 전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여러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는 죽지 않습니다.
성경을 말하기를,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느니라.” 그가 죄를 질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님의 씨가…
아멘!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거하고, 어떻게 죄 없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는데, 그가 죄를 질 수 있겠습니까.
그가 죄 없으신 하나님 안에 있는데, 어떻게 죄를 질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보혈이 그를 덮습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는 잡초에서 밀로 변했기 때문에, 그의 소망과 이상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의 소망은 이전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전시합니다.
여러분은 “오, 저는 그걸 믿습니다.” 하면서 아직도 죄를 짓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속았습니다. 그것은 토큰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전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행진 명령이 내리기까지 그 피 아래 머무르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 아래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일단 그 토큰 아래 있으면, 그들은 그 안에서 인 치심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것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정이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고 나팔 소리가 났습니다. 나팔 소리가 났을 때, 그 수양의 뿔을 불기
시작했을 때, 각자가 약속의 땅으로 가려고 준비한 것을 들고 앞으로 행진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인 치심을 받아서 모든 상함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그의 온 삶이 그 사람 됨됨이를 나타냅니다. 그가 어디를 걸어가든지 간에, 그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가 누구와 얘기를 하든지 간에, 그가 여자들과 상대를 해야 될 때나, 아는 사람들과 만날 때라거나,
그가 모든 일과 부딪힐 때, 그 토큰이 거기에 놓여져 있습니다. 아멘.
그가 죽음에 이르면,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 토큰이 거기에 있습니다.
부활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실 것이므로, 그는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피를-토큰-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기억하십시오. 만약에 그 토큰이 밖에 드러나지 않으면, 그 언약은 취소된다는 것을. 맞습니다.
그 언약은 없어질 것입니다. 토큰이 그곳에 없으면 언약도 없는 것입니다. 토큰은 언약을 상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토큰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토큰이 그곳에 없으면 그 언약은 효과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리로 와봐, 나는 내 문에다 피를 바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뭘 좀 보여주지. 난 할례 받은 유대인이야. 난 할례자라구.”
그것은 그런 걸 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브래넘형제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다-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내가 그 토큰을 볼 때에”
여러분은 “저는 침례교인이예요… 장로교인… 감리교인”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다)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그 토큰을 볼 때에.”
가령, “저는 신자예요. 제 엄마는 이 교회에 다녔었죠. 제 아빠는 이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 적부터 거기 교인이라구요.”
그것은 그런 걸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브래넘형제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다-주] 난 거짓말을…
도둑질을 안 합니다. 저는 이걸 안합니다. 그것은 그런 걸 뜻하지 않습니다. [브래넘 형제가 딱 소리를 낸다.-주]
“저는 브래넘 성막에 다녀요. 저는 이걸, 저걸, 기타 등등을 합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 모두를 믿습니다.”
저 유태인들은 “난 여호와를 믿소.” 하고 말할 수도 있겠죠.
여러분은 이 시대의 메시지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이죠. 그들은 많은 메시지를 갖고 있었지만,
이것이 이 시대의 하나님말씀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이 시대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습니다.
피는 해 질 대에 발라졌습니다.
그들은, “저는 유태인입니다.”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나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어디서 뭐라도 훔쳤으며, 법정에 나간 적이 있었는지 말해 보세요. 제가 어디서 간음을 행했나 말해 보세요.
제가 이 모든 일들을 한 적이 있나 한번 보여줘요.”
그것은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수고를 했든지 간에, 그 언약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비효과적입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음, 저는 신학생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언약이 없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임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따라 잡았습니다. 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은 죄의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죄(sin)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토큰, 자체의 증거를 믿지 않았습니다.
토큰이 자신을 우리들 가운데서 증명했을 때 말입니다. 여러분 그걸 믿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이 토큰을 얼마나 믿지 않았다 해도, 토큰은 나타내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걸 믿습니다. 저는 그걸 믿어요. 저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두 좋습니다. 하지만, 토큰은 발라져야만 합니다.
어린 양이 피를 흘릴 때, 한 유대인이 거기에 서서 피를 휘저으면서, “이것은 여호와입니다.”하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거기에 제사장이 서서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제사장 자기 집에는 피가 발라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밖에 있는 그 무리들과 함께 동일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되지. 피를 문 위에다 바르는 이 광신자들과 일치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가 제사장이라 해도, 그가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아도, 그가 아무리 잘 자라났다 해도,
어떤 일들을 해 놨다고 해도, 아무리 많은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 해도, 그가 아무리 많이 희생을 했다 해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등등,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그리고 다른 이런 모든 것들이, 토큰이 발라질 때까지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
오늘밤 제가 말하고 있는 이 토큰은 사랑입니다. 자, 이것이 발라지기 전에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귀신을 쫓아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기도로 아픈 자들을 고쳤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든 일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토큰이 거기에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강대상에 서서 복음을 전할지도 모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여,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당신의 이름으로 설교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것은 다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교인들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서 떠나가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그러나 내가 토큰을 보면, 너를 넘어 가리라. 그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저녁 때 복음은 토큰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탄은 악수하는 것이라든가 증거라든가 그런 모든 것들 같은 온갖 종류의 가짜들을 뿌릴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어떤 가짜나 믿는 체하는 대용물, 등등이 아니라 토큰, 자체의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토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우리들 가운데 바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똑같은
예수이며, 그분은 말씀과 일치된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토큰은 발라져야만 합니다. 자기가 토큰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말씀을 부인하는 사람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럴 수 없습니다. 토큰이 거기에 있어야만 합니다. 보혈이 여러분에게 토큰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이-보혈 속에 있던 생명이 여러분의 토큰입니다. 잠시 후에 그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령이 토큰입니다. 사건은 해결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지, 얼마나 맘이 좋은 분이든지, 몇 번이나 펄쩍펄쩍 뛰셨든지,
교회를 여러 군데 다니시든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셨든지 간에, 만약 토큰이 발라지지 않았다면,
그런 것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저녁때입니다.
그런 것은 루터의 시대에는 잘 통했습니다. 웨슬리의 시대에도 잘 소용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용이 없습니다.
네, 양을 간직해 두는 것은, 그때는 괜찮았습니다. 양의 피가 발라지기 전에 죽었던 사람들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선한 의식 때문에 그렇게 처신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정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인데, 그것은 그들을 쳤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분은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자를 의롭게 하시고, 원하시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원하시는 자에게 정죄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게 다 입니다. 그분은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정죄하고자
하는 자를 정죄하십니다. 유대인은 자기가 신자라는 걸 할례로써 단순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들고 정통주의자라며, “저는 신자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느니라.”
그런데, “저는 신자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침례라는 것은 헛소리입니다.”
그렇다면, 토큰은 나타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무리 많이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무효입니다.
마치 유대인의 할례처럼. 그는 말합니다.
“나는 유대인이오. 왜 내가 저기 밖에 나가서 저 광신자 무리들처럼 행해야 한단 말이오?”
모세는 일어나 거리로 내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녁때의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십사일 날 저녁에 온 회중을 모으고 양을 잡으십시오.
이스라엘 회중이 양을 잡고, 양 위에 손을 얹어 자기 자신들을 어린 양과 일치시키면서, 양을 죽이십시오.
그리고 피를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십시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내가 너희를 넘어 가리라.
왜냐하면 그 피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어린 양의 죽음을 너희가 영접했다는 토큰이기 때문이라.”
그 피는 토큰이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이 토큰입니다. “지금부터 며칠 후, 너희들은 성령 충만을 받으리라.”
그리고 보혈이 흘려졌을 때, 토큰은 크고 강한 바람처럼 오순절 날에 보내어졌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도들이 전하는 주제였습니다. 그것이란-“너희가 믿은 이후로 성령을 받았느냐”
“너희 모두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왜냐하면 그것이 너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웠다는 토큰(아멘!)이기 때문이라.” 였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유대교회가 희미해져 버리자, 이방인들이 그와 같은 왜곡 속에서 양도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의 나머지-그리스도의 신부-를 부르기 위해 나왔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성서가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토큰이 전시되지 않았다면, 그때는 언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믿는다고 해놓고, 말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국 믿지 않으시는 겁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교회에 나가서 침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이 모든 일들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토큰-성령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 드린대로, 이 훌륭한 학자는 제게 계속 얘기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빌리,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이상 어떻게 사람이 더 할 수 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박사님, 그건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여기까지는 당신이 맞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내진 열두 정탐군이 가나안 땅으로
나아간 이상, 그들은 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계선에 왔을 때, 그때 그들이 거절을 했습니다.
당신네 침례교도 당신이 나온 이상까지는 좋았었지만, 당신이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건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표징으로서 할례의 인을 주셨습니다. 할례된 그의 살은
그의 영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다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자로서 인정하시고 나서 성령의 표징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여 각각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이제 무슨 뜻인지 아셨습니까?
유대인들이 아무리 할례를 받았다 해도, 토큰이 보여 져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언약은 효력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요. 똑같은 일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얼마나 많이 성경을 설명할 수 있든지,
어쩌면 여러분은 신학교에 다니시는 분들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난 신자입니다.”하고 말할 수도 있고, 등등, 하지만 여전히 토큰은 요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하나님)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분이 잘못 행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브래넘 형제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다.-주]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요구가 있고, 그것만이. 여러분은, 어린 양이 죽지 않았다면, 인방에 토큰으로 피를 바를 수가 없습니다.
그 피는 양이 죽었다는 확실한 표적이었습니다. 믿는 체 하는 게 아닙니다. 어린 양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어린 양이 죽었다는 확실한 토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의 진짜 생명이 여러분 가운데 있으므로
토큰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믿는 체 하는 것은 없습니다. 둘러쓰는 것도 없습니다. 모방도 없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압니다. 세상도 그것을 압니다. 토큰이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착한 사람일지라도…여러분은 신학생일지도 모르고, 착실한 교인일지도 모릅니다.
맘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교파교회의 우두머리일지도 모릅니다.
로마의 성직계급일지도 모릅니다. 전 직위 이름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못합니다.
신학생은 누구나 이스라엘이 교회의 모형이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이 여행하는 목적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녁때가 돼서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한 가지 엄숙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유대인이든지, 곡식을 얼마나 잘 간수했든지, 이웃을 아무리 잘 돌봐 주었든지,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행했든지, 얼마나 훌륭한 교인이든,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냈든지 간에 이 모든 것들은
괜찮습니다. 좋았습니다. 그는 맘씨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이웃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지만,
피의 토큰이 없으면, 그는 죽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게
저를 도와주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을 설교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마귀를 쫓아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방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소리를 지르고, 성령 안에서 춤을 추었을지도 모릅니다.
토큰이 없어도.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토큰이 없이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바울은 여러분이 그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내가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
그것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토큰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일을 행했든지, 여러분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지간에 하나님의 진노가 번뜩이게 되면, 그것은 오로지 토큰만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요구된 값이 지불되었다는 토큰입니다. 치뤄진 값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생명을 주셨고 성령이 여러분이 받아들여졌다는 토큰으로서 여러분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토큰을 일요일만이 아니고 밤이나 낮이나 지니고 다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지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토큰을 갖고 계십니다.
피가 너희에게 표적(토큰)이 되리라. 여러분은 “저는 아직도 믿습니다. 저는 신자입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 토큰을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신자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반대해서 얘기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증거와는 반대로 얘기를 합니다.
신학생이고 좋은 사람이고, 교인이고, 여러분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아버지는 목사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는 성도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니까 말입니다.
제가 전에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떤 몸집이 크고 늙고 뚱뚱하며 손자들을 귀여워하는 할아버지로,
쥐새끼들과 고양이새끼들 같은 손주들의 할아버지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어떤 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손주들이 없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분은 크고, 부드럽고, 손주들을 귀여워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진노는 맹렬합니다.
그것을 짓밟으면서, 언젠가 여러분을 죄 가운데서 취하시고 하늘나라로 데리고 갈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그는 여기 있는 이들 모두에게 변명을 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든지, 아니면 여러분은 멸망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토큰이 여러분 위에 임할 것입니다.
그날 밤 죽음이 이집트 땅을 어느 때라도 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그때는 두려운 때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의식과 모든 축제와 금식의 날들-하나님께서 그들을 방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이적과 기사를 그들 가운데 이미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 잠시 멈추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그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것은 쓸데없는 소리야. 그것은 큰 폭포 위에 있는 뭔가이지.
왜냐하면 붉은 진흙의 분출이 밖으로 흘러 나왔으니까. 그래서 바다를 홍해로 만든거야.”
그다음에 우박이 내렸습니다. 그 다음엔 개구리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곳을 예비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 선지자의 입 속에 넣으셨습니다.
그가 말할 때, 말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것은,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하나님으로 만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차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하나님이 될 것이고 아론은 너의 선지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아시겠습니까?)
“너는 하나님같이 될 것이라. 왜냐하면 내가 너를, 네 목소리를 취하겠고 너와 함께 내가 창조하리라.
내가 말하겠고 사람들은 그 말한 것이 바로 거기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부인하지 못하리라.
네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세상에! 제가 여러분에게 그런 일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애굽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저녁 때 바로 전에 아니면 저녁때에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선하심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취하셔서 고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술사들은 똑같은 일들을 행하려고 했었습니다. 모방자들. 여러분은 항상 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에 대해서는, 그들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은 따라 붙었지만, 잠시 후에,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났습니다.
성경이 마지막 날에 똑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러나 그들의 어리석음은 드러났습니다. 그 일은 또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타락한 마음을 가진 자, 진리에 대하여, 사실에 대하여 돌아선 자들. 그들은 교인들과 좋은 것들,
위대하고 높고 크고 화려한 것들을 갖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시간이 마침내 이를 것입니다.
토큰과 떨어지지 말고 계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다른 데로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항상 함께 하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보이셨고, 능력과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자, 잠시만 거기서 멈춥시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마음속에 생각 좀 해 봅시다.
저는 우리가 그것을 살펴보았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일을 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회개하고 그 시대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앞에 그것이 나타났고 확실하게 알려졌어도…
여러분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다가오는 심판의 징조입니다.
심판은 그런 것들 후에 옵니다.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심판이 은혜 뒤에 따라 옵니다.
자비를 거절했을 때, 남는 것은 심판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은 항상 따라 다닙니다.
이제, 그 장면. 모든 영적인 사건은 하나님이 보내신 징조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그것을 주의해 보십시오.
모든 영적인 사건들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의 징조입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징조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빨리 이르는 것이 좋겠다는 징조입니다.
노아는 그의 세대에서 한 징조였습니다.
엘리야도 그의 세대에서 마찬가지였고 요한도 그의 세대에게 징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들이…이 시대의 하나님 말씀은 하나의 징조입니다. 그것을 지켜보십시오.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모든 것이 저마다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하나님 말씀은 다른 어떤 시대에 올 수 없었습니다. 루터의 시대에 올 수 없었습니다.
웨슬리의 시대에 올 수 없었습니다. 오순절교 시대에도 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약속되어졌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있습니다.
이때까지는 그 일이 일어날 수 없었고 그것은 징조, 이적으로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징조입니까?
오, 나의 형제님, 자매님, 빨리 그 토큰 아래로 오십시오. 어떤 대신하는 것을 갖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냥 그것을 상상하지 마십시오. 토큰이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계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될 때까지, 세상의 모든 허튼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마음의 모든 소원이 그분이 될 때까지, 그 다음에는,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니”-믿는 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어떤 모험을 걸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교회들에게는 하나의 징조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징조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저는 테이프를 통해 듣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알아듣고 세계의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징조가 여기에 있습니다. 적용되어져야만 하는 토큰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시대에 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지켜보십시오.
자, 아시다시피,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런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예를 보여주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할 준비가 되셨을 때, 첫째로 하나님은 준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순서를 결코 바꾸시지 않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준비를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가진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행하신 처음 일은 말씀을 가진 선지자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다음에 행하신 일은, 이 선지자를 증명하기 위해서 불기둥을, 증명을 삼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번째 것은 토큰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토큰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보장을 뜻합니다.
처음에,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으로, 자기의 선지자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토큰을 보내서 이 피 아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대신한 이 대용물,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그 피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셨다는 토큰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말씀을 들었고, 불기둥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해 주셨던 그 대용물을 받아 들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서 흘려진 생명의 화학적 성질인 보혈 아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 여러분은 보혈 아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령 아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능력인 불기둥을 믿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것을 믿기만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있는 곳 주위를 걷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더욱 나쁘게 만들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아시겠죠.
그 같은 경계선 신자들은…예수께서는 히브리서 6장에서 똑같은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비침을 얻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거기에 있는 화학작용으로
자기들이 성결케 된 피의 언약을 여기기를”-성결케 되어-그것은 토큰이 아닙니다.
이제는 피는 토큰이 아닙니다. 생명이 토큰입니다.
그 피가 동물의 피였기 때문에 옛날에는 생명이 그곳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화학작용이 토큰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문에다 진짜 피를 발라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잠시 후에, 그 내용을 말하겠습니다. 아시겠죠.
토큰은 바로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안에 성령으로 인쳐져서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성경과 말씀은 다 똑같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면 여러분과 말씀과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다 똑같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모세의 입술에 능력을 집어넣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거기로 나가서 말해라! 개구리가 나왔습니다.
말해라! 개구리가 사라졌습니다. 말해라! 이가 나왔습니다. 말해라! 이가 사라졌습니다. 아멘!
그리고 나서는 토큰이 온 이스라엘에게 요구되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이 토큰을 요구받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이 토큰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토큰을 볼 때에, 내가 너희를 넘어 가리라.
오, 세상에! 얼마나 좋은 보장인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오늘날 반모형의 모형입니다. 애굽은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신부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것처럼 신부들도 교회에서 나옵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그것이 나오기 위해서는 거기에 뭔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것이 모형이라면, 교회는 저 애굽에 있고, 세상 가운데서 그리고 죄 가운데서 있으면서 여러분의
토큰에 대해서는 눈 하나 깜박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토큰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이 그들에게는 구원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오, 교회여 그것을 바르십시오. 실수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않으시겠습니까? 해가 지게 만들지 마십시오.
밤이나 낮이나 쉬지 마십시오. 모험을 걸지 마십시오. 자녀들이여, 그것은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토큰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 저는 믿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메시지를 믿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토큰을 가져야만 합니다.
브래넘 성막이여, 듣습니까? 여러분은 토큰을 밖으로 나타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여러분의 믿는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을 듣고, 교회에 가고, 옳게 살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좋습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그때는 -그것이 토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인 화학작용을 보셔야만 했습니다.
생명이 취해져서 피로부터 생명이 없어졌다는 표시를 말입니다. 그것은 동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있던 것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그 화학작용은 오로지 깨끗케 되었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 자체는 토큰입니다.
왜냐하면 할례가 없으면, 토큰이 없으면, 여러분은 언약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일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말씀에 할례 되었고, 말씀에만 할례 되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믿는다면, 토큰이 나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보십시오, 그 다음 자신의 약속의 땅 백성들을 위한 준비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우선,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가지고 계셨고 그들을 위해서 한 땅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어떤 땅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거기에 준비한 것을 내려 보내셨습니다.
약속의 땅 백성들을 위해서. 그것은 오로지 그 약속의 땅에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하셨느냐면, 하나님께서는 한 메시지를 가진 선지자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불기둥으로 증명하셨으며,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한 표적을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위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모형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교파들로부터 나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것은 신부들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립교회들 중 어떤 교회들은 교파교회들 만큼이나 나쁘고, 때로는 더 나쁩니다.
저는 나타내진 토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토큰은 모든 말씀과 동의합니다. 그렇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씀 가운데 있었던 생명입니다. “내 말은 영적이요, 내 말은 생명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이적들로(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은 재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온 애굽에서 고센으로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뭔가가 일어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 이 얼마나 훌륭한 모형입니까!
“오, 그들이 동서로부터 오네.
그들이 먼데서 오네.“
(맞습니다. 여러분은 그 찬송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왕과 잔치를 벌이고, 왕의 손님으로서 음식을 들기 위해서,
이 순례자들은 얼마나 복받은 사람들인지!
신의 사랑으로 빛나는,
왕의 거룩한 얼굴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복 받은 자들은
왕관에서 빛나는 보석들.
오, 예수께서 곧 오시리.
그때 우리의 시험은 끝나리라.
오, 만약 주께서, 이 순간에 오신다면
죄에서 자유를 얻은 자들을 위해서.
오, 그때 당신에게는 기쁨을,
아니면 슬픔과 커다란 절망을 가져올까?
우리 주님이 영광중에 오실 때,
우리는 주를 공중에서 만나리라.“
토큰을 나타내는 것.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일으키리라.” 확실합니다. 우리는 그런 날에 살고 있습니다.
고센으로 모인 사람들.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오리들이 떼 지을 때가 되면, 그들은 모두 함께 모입니다.
벌들은 다른 모든 것들이 준비됐을 때, 벌들에게는 어떤 본능이 있습니다.
성령이 사람들을 이끕니다. 오, 하나님의 커다란 진노가 내릴 시간이 올 때, 모든 …저기에 두 마리의 오리-수컷과
암컷이 옵니다. 여기에 두 마리의 거위, 수컷과 암컷이 옵니다. 다른 뭔가가 그들을, 예정된 그들을 잡아 당깁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멸망했습니다. 오! 나머지는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라는 당김을 느낀 자들은 방주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비가 올 거라는 토큰이었습니다. 그들은 비가 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밖으로 나타난 것이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들은 마음속에서 뭔가가 “거기로 재빨리 들어가라! 거기로 들어가라!
그곳이 안전한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예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표징으로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비가 올 예정이었으며 그들은 둘씩 둘씩 그 안으로 곧장 들어
갔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방주 안으로 둘씩 둘씩 들어갔습니다. 그 방주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멸망했습니다.
피의 토큰 밖에 있는 모든 것은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고 성령의 토큰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멸망할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얼마나 교인이 많든지 간에-노아의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피를 표적(토큰)으로서 바르지 않은 사람은 죽었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방주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
고린도전서12장은,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라고 했습니다.
신령한-교회가 아니라 신령한-교파가 아니라, 한 영,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 우리는 모두 물에 잠겨서 이 한 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엔, 토큰이 문에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희생제물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대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희생제물을 보실 때,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안전할 대로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똑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녀들인 여러분은 한 몸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화학 반응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이 토큰 아래 있기 위해서 그들은 온 애굽으로부터 이 한 장소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토큰 아래 있기 위해서 그들은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 오순절교, 기타 등등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 때와 똑같습니다.
그들을 대표했던 것은 불기둥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얘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여기에 그들 모두가 오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표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이 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토큰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피를 문에다 바르십시오. 양을 죽이고, 그 피를 문에 바르십시오.
죽음이 닥칠 예정이니까, 그것이 토큰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토큰이 문에 있지 않다면, 영적인 죽음이 내리쳐질 것이고
모든 교회들은 세계 교회협의회(WCC)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카톨릭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다만 진짜로 거듭난 사람들만 밖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오순절 교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들은 망했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바치고는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문 밖에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토큰을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의지했던 것은 다만 방언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언하는 것이라든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토큰 자체가 거기에 있게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게 하십시오.
할례를 받아서-이것만, 저것만이 아니라 여러분과 그리스도가 하나가 될 때까지 여러분의 모든 존재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 안에 계시고 그분의 생명이 여러분을 통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제 우리가 고센 땅에 있었던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십시오.
우리에게도 그들처럼 그 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도 그들처럼 똑같은 일을 하라고
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아셨습니까? 그 선지자가 말한 것을 지켜보십시오.
이제, 히브리서10장에서 좀 읽겠습니다. 잠시 동안 한두 절을 여기서 지금 읽을까 합니다.
히브리서10:26.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글쎄, 제가 바로 읽었습니까? 네, 그 절 맞습니다.)
26.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다시는 죄들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27.대적들을 삼킬 불같은 격노와 심판에 대하여 두렵게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느니라.
28.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자비를 얻지 못하고 죽었거늘
29.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영
(그것은 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께 무례히 행한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해 보라.
목사든지, 교인이든지, 맘씨 착한 남자분이든지, 도덕적인 남자분이든지, 여러분이 누구든지 간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담배를 피지 말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여자분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짧은 옷과 짧은 머리와, 모든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지만, 그리고나서 여러분이 돌아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한다면,
여러분을 깨끗케 하고 여러분을 이만큼 이끌었던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신다면…
그 정탐 군들처럼, 그들은 경계선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고, “음, 나는 그 땅이 저기에 있는 것을 알겠어.
하지만 장애물이 너무 커. 우리는 마치 메뚜기같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경계선 신자들입니다.
이만큼까지만 오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나는 이 시대의 메시지를 믿습니다.”
이 시대의 말씀을 복종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 저는 당신이 한 말은 전부 다 믿습니다.”
그건 좋습니다만, 그것은 다만 읽을 수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시대의 말씀을 취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토큰을 가지셔야만 하므로 그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던 그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게 하십시오.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오늘날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위대한 말세의 징조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보십시오,
저는 오래, 오랫동안 이 설교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기 위해서 기다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말세의 징조들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설교했고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모든 것으로 그것을
보여 드렸습니다. 맞습니까? 여러분도 그걸 인정하실 겁니다. 말세에, 저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러면 짐승 표는 어떻게 됩니까?”
성령을 거절한 사람들은 이미 짐승에 의해 표를 받았습니다. 형벌은 나중에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희년에 나팔이 울리면, 모든 남자들은… 여러분 그리스도가 그것을 읽은 것을 아십니까?
그는 그 절의 반만 읽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절의 반만이 그 시대에 적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놓임을 전파하며, 기타 등등,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그 절의 나머지는 예수께서는 읽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머지는 이 시대에 해당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저 그 절의 앞부분만 읽으셨습니다. 그 부분이 그분의 날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이 그분이 오늘날 행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이 오늘날 교회에게 그의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 시간입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사람들이며, 그것을 영접하십시오.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지켜보십시오! 우리는 커다란 말세, 어느 곳에서나 빨간 불들이 깜박이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자연도 불을 깜박이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때가 가까 왔습니다.
우리는 교회도 번쩍하는 빛을 내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죄를 받았습니다. 때가 가까 왔습니다.
교회는 이미 세상 체제 가운데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늘에서나, 바다에서나,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모든 곳에서, 해에서도, 달에서도, 별들에서도, 징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말세의 징조들을 봅니다.
롯의 때와 같이, 어떻게 성령이 인간의 육을 통해 역사를 했었는가, 거기에서-하나님이 육신으로 표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시대에 그의 신부 안에서 자기 자신을 표명 했는가 그리고 똑같은 징조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똑같은 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우리는 똑같은 불기둥을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학까지도 그 불기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말세의 징조들이 가까이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그것이 여기에 있음을 압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저를 믿으신다면, 이것을 보면서, -만약 여러분이 저를 믿지 않으신다면, 징조들을 믿으십시오!
말씀을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얘기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들은 결코 뒷받침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결코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말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제가 설교하고 있는 메시지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오하이오 강가에서 침례를 베풀고 있었을 때에 “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고하리라” 하고
말씀했던 천사뿐만 아니라, 행해진 일들 자체가… 여러분이 만약에 천사가 진리를 말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면,
행해진 일들을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이 말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겠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제 말들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크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들이 시대에 대해 증거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대하고 어마어마한 말세의 징조들을 사람들에게서 보고, 이 땅에서 시대의 징조들을, 국가 간의
갈등을 봅니다.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을 보며, 이스라엘 국기, 여섯 별 꼭지 점을 가진 다윗의 별이란
이름의 국기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국기가 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국가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정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모든 일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국제연합(U.N.)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화폐도, 모든 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 이루어졌던 바로 그 날 밤에, 주의 천사가 저 곳에서 저에게 나타났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그런 시점에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정확히 진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진리를 말했습니다.
제가 그랬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증거하셔 왔습니다. 자,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 형제라는 것과 저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그냥 여러분 모두처럼 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 말씀을 가져와야 합니다. 누군가가 그 말씀을 말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저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리를 말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진리임을 곧바로 증거 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땅에서 이런 일들을 봅니다. 오, 사람들이여, 지금이 마지막 시대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여러분 위에 토큰을 가지십시오. 아니 토큰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토큰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우리가 시간의 위대한 국기가 가까이 이르러 우리들을 경고하는 것을 볼 때 시간은 가까웠습니다.
오, 이 말을 엄숙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우리는 서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사랑에 쑥 빠져 있어야만 합니다. 서로 서로에 대해서 나쁜 말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만약 누군가가 실수를 하면, 금방, 그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이것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간이요 자매간입니다. 오, 경건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의 딸처럼 사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처럼 사십시오.
온유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게 사십시오. 어떤 악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고 그것을
그냥 떨쳐 버리십시오. 만약 그것이 문에서 두드리면, 그것을 제치고 그냥 말하십시오.
그냥 여러분의 토큰을 보이십시오. 그냥 계속해서 걸으십시오. “나는 보혈아래 있다고 말하면서.”
기억하십시오, 그날 밤 많은 사람들이 그들 여자들에게 왔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얘, 릴리야, 밖으로 나오렴. 우리는 오늘 밤 파티에 가려고 해.”
“아-아, 나는 피 아래 있어. 나는 여기 피 아래 있어야 해. 나는 내 창조주만을 사랑해.
오늘 밤에, 죽음이 그 땅에 임할거야.”
오늘날 죽음이 이 땅에 있습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판이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과 온갖 재난이 국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동시키고 있으며 모든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성품과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꽤 오랫동안,
어린 양을 간직해 왔지만, 이제는 토큰이 적용되어져야만 합니다. 토큰이 나타내져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일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들은 서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믿는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시켜야만 합니다.
지금 이 말을 그냥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자, 이 말을 테이프를 통해서 듣고 계신 분들, 여자분들, 남자 분들,
잠깐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저를 믿으셨다면, 지금 그 말씀을 믿으십시오.
서로 다투는 것을 그쳐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성경의 메시지를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귀히 여기십시오.
남자 분들, 여러분의 아내들을 존중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귀히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식구를 한데 모으십시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이 어린 양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온 가족도 들어와야 했고, 모든 것들이 들어와 있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켜야만 합니다.
주의하십시오. 그들은 그냥 메시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려고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피를 바르기 위해서, 토큰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바로 그것을 여러분이 해야만 합니다.
네빌 목사님, 그리고 여기 모인 성도들, 이사님들, 집사님들, 여러 형제님들,
이제 우리가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을 다 제쳐 두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것을 제껴 두어야할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토큰을 발라야 한다고 확신할 정도로 이제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토큰이 없이는,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멸망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것입니다.
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하고 말하려고 모이지 마십시오. 그것 아래로 가십시오. 그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어떻게 하냐구요.?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각자가 믿으십시오,
전심으로. 하나님은 그 아래에 있지 않고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그것 아래로 가십시오. “오늘 우리 모두 고센으로 가자. 고센으로 차를 몹시다.
너는 너의 낙타를 타고 우리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겠고 우리는 여기에 존스네 식구를 태우겠소, 기타 등등,
골드버그네 식구를 태우겠소. 우리 모두는 고센으로 올라 가겠소. 그거 아나? 오늘 모세가 설교를 한다네.” 하고
말하려고 이스라엘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중요한 것은 그 피 아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그렇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있잖아요, 골드버그씨, 저는 실제로 그것이 진리라고 압니다.
네, 형제여, 제가 믿기로는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것이 진리임을 나는 알아요.”
“레빈스키씨, 당신은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것은 절대적으로 진리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개구리들이 그 땅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그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압니다.
그리고 난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도 압니다.” 자, 그것은 다 좋습니다.
“당신은 할례를 받았습니까?”
“물론이지요.”
“당신은 신자입니까?”
“물론이지요.”
그리고나서, 그가 모세목사가 그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모세는,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 피 아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피가 표적(토큰)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토큰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믿든지, 여러분이 얼마나 할례를 받았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그것은 언약입니다-그러나 여러분은 피 아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토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내가 너희를 넘어가리라.”
이스라엘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교파든지 아니든지, 여러분은 피 아래로 와야만 합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오순절교인, 초교파인, 여러분이 누구이든지간에 ― 그것은 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피 아래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얘기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제 말을 들으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제 말을 들으십시오.
피 아래로 와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아래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셨습니다.
그 피 아래에 있지 않는 모든 것은 멸망하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확실히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멸망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십니까? 고린도전서12장 “한 성령으로 침례 받아서”입니다.
한 번의 악수나, 한 번의 가입이나, 한 교파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성령으로, 우리는 모두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용량 초과로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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