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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고(Birth Pains)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1965년 1월 24일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벌써부터 우리 가운데 주님의 임재하심을 엄청나게 부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오후 우리는 이것을 심히, 풍성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방금 전에 이 찬송을 부르신 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신 여자 분의 이 놀라운 특송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영이 내려와서 통역을 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주님, 그렇게 계속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 각 사람을 복 주시고, 우리가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해지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기도하오니, 오늘 오후, 여기에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시간이
그들이 그 최종 결정을 내리고 거듭남을 통하여 주님께로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허락하소서.
주님, 오랫동안 이 길을 걸어온 우리 모두를 복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영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통역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통역사는 주님의 영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것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구하옵나이다. 아멘.
[어느 자매가 예언하기 시작한다. 테이프에 공백 있음-주]
그걸로 충분합니다. 놀라운 시간입니다! 저는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의 기름부음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아시죠,
우리는 하늘에 속한 곳들에 모여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곳들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플로렌스 자매님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길! 그런데 자매님은 지금 슬픔의 시기를, 그늘진 곳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거든요. “하나님, 저 자녀를 축복하소서.” 하고 저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디모스 형제님은, 두 어깨에 짐이, 이런 컨벤션과 모임들을 다 떠맡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도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쉬케리언 형제님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칼 윌리엄즈 형제님, 저는 이런 훌륭한 형제님들과 더불어서, 형제님과 함께 이 컨벤션에 올 수 있어서 정말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형제님 몇 분을 만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알기로는, 제가 맡는 예배로는 끝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훌륭한 형제님들과 악수를 나눌 수 있고,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저는 그들과 더 좋은 땅에서, 영원을 함께 보내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오해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제 여기서 한 친구에게, 제 친구 하나가 보낸, 대니 헨리가 보낸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가 바로 그 청년...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그리스도인 실업인 컨벤션에서, 저는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시대의 상태에 반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두 다 그걸 이해하시고, 제가 마음속에 나쁜 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여러분은 정말로 제가 그런 식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이해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게 말하라고 오는 것을 말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설교 후에, 이 분은, 침례교 형제인데요...그는 어느 영화배우의 친척일 것입니다.
그는 제게 다가와 팔을 두르더니, “주님께서 형제를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 저는 지금 기도를 해 드리고 싶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프랑스어는 한 마디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일어났습니다, 몸집이 좀 큰 여자 분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여자 분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그건 프랑스어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 뒤에서 한 남자분이, “그건 프랑스어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그 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알고 보니, 저 뒤에서 한 젊은이가 걸어 나왔고, 그 두 사람이 적은 기록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유엔(UN)에서 프랑스어 통역사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정말로 프랑스어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메모지를 읽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들 중 한 사람이 쓴 원본이고, 통역한 이 남자분이 쓴 것입니다.
저는 그 남자분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빅터 르 두, 그는 순수 혈통의 프랑스인입니다.
자, 그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네가 좁은 길을, 더 힘든 길을 택하고, 스스로 택한 길을 걸었기 때문에, 네가 올바르고 정확한 결정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것은 나의 길이다. 이 중대한 결정 때문에, 엄청난 하늘의 부분이 너를 기다리고 있도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결정을 그대가 내렸는가! 이것은, 그 자체가, 신성한 사랑 가운데서 엄청난 승리를 줄 것이고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그것을 들었을 때...아시죠, 제가 처음에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아무 것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저는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방언 뒤에 숨어 있는 그 사명이 뭔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저는 그게 하나님께로부터 온 방언임을 알았습니다.
다음에, 그의 형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변호사이십니다, 대니에게서 선물을 받아다 저에게 주었습니다.
대니는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덤 안에 누워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망한 후에 누워 계셨던 곳에.
그 때, 제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때 주의 영이 그에게 임했고, 그는 십자가사건이 있었던 갈보리 산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돌을 하나 주워왔습니다. 그는 그 돌로 저에게 커프스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몹시 아낍니다.
물론, 대니는 이것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밖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저는 그 커프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커프스는 두 개다, 보시면, 피로 물들어 있었고, 두 돌에 하나의 직선이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곧고, 좁은 길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꼭 맞는 얘기입니까,
정확하죠! 저는 그건 어쩌면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대니에게 고마워합니다.
형제님께서, 제가 그것을 몹시 고마워하더라고 그에게 말해 주세요.
또 한 가지 이상한 일은, 저는 그 날 와이셔츠를 입으면서, 커프스를 해야 한다고 아내에게 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당신 커프스를 가지고 오는 걸 잊었네요.” 하고 말했고,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서 커프스를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오,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안 그래요, 형제님들? [회중이 “아멘” 한다-주]
복음의 단순함 가운데 그저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서, 그건 제가 알기로는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저는 복음을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복음이 단순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시죠,
저도 그 안으로 들어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여러분이 오늘밤 교회에 가셔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너무 오래 끌고 싶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기 계신 방문자들이신 여러분 모두는 강단 위에 주변을 둘러 보셔야 합니다, 이 목사님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오늘밤 그들의 예배에 여러분을 모시게 되면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이 도시에 있는 주일 학교에 나가셨을 겁니다.
우리가 이 컨벤션을 열고 있는 동안, 순복음 실입인회이기 때문에,
저는 우리가 우리 교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실업인들이 가는 곳이 거기이기 때문입니다. 자,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오늘밤 어느 교회든 가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저녁에는 컨벤션이 마감됩니다. 저는 그들이 강사를 발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머물면서, 주님의 뜻이라면요. 그분의 설교를 들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 사람을 모두 다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가 설교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뭐랄까...제가 설교자라고 말할 만큼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설교자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사람들은 대학에서 두세 개의 학위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조그만 물매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아픈 양을 구하려고 가서, 가능하면, 그들을 아버지의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실수를 한다면, 절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저는 신학자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신학은 괜찮습니다. 그건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우리가 빠져있는 그 상태를 비난합니다.
그건 어떤 개개인을 향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메시지일 뿐입니다.
저는 그것이 제가 주는 메시지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그건 제 마음을 몹시 찢어놓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의 기분이 어떨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아이들을 나무라야 하고, 냅다 소리를 질러야 하고, 그러기 싫지 않으십니까?
저도 아버지라서, 그게 어떤 건지 잘 압니다. 저는 여러분이 절 용서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앉아 계시는 동안,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좀 짧고, 간단한 메모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렇게 제가 말할 성경 구절들을
적어둬야 합니다. 전에는, 거의 성경 구절을 다 외워 인용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너무나 많은 힘겨운 싸움들을 해왔고,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그러질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잠시 제 말을 들으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활짝 열고, 제가 전하려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저는 더 나아질 거라고, 이 도시와 다른 지역들에 사시는 담임목사님들에게 특별히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주 주의 깊게 들어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들으시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체리 파이를 먹을 때 하는 식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기는 닭고기입니다. 그런데 체리 파이 한 쪽을 먹다가 씨가 씹히다면,
저는 파이를 먹는 걸 중단하지 않습니다, 씨만 골라 버리고, 파이는 계속 먹습니다. 아시겠죠?
닭고기 뼈가 나오면, 저는 닭고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뼈를 골라내 버리죠.
그러므로, 제가 혹시라도 여러분이 찬성하지 않는 뭔가를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부분만 빼내 버리십시오. 하지만, 그것을 아주 자세히 보시고, 그게 확실히 뼈인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게 씨라고 한다면, 명심하십시오, 씨는 새 생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요.
그러므로 아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칼 윌리엄즈 형제님은 어제 집회를 좀 느슨하게 해서,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기도 줄을 세우기 위해서 정해진 모임이 아닙니다.
저는 오럴 형제님이나 다른 형제님이 컨벤션에서 기도 줄을 세우고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두세 번 그렇게 하려고 해 봤습니다. 보통, 이렇게 모인 무리라면, 여러분은 기도 카드를 나눠 주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죠, 기도 줄을 세우기 위해서요. 그 이유는, 할 수가 없으니. 이곳은 원형경기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시겠죠? 그런 목적으로 봉헌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사람들은 밀고 밀치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카드들을 줘서, 줄을 세우고, 질서 있게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빌리가 제게 물었습니다, 말하길, “제가 가서 카드를 나눠줄까요? 사람들이 기도 카드를 달라고 해요.”
저는, “아니다, 빌리. 성령께서 원하는 대로 하시게 하자.” 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건, 주님께서 어쩌면 믿음을 세우게 하고, 여러분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낫게 하시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병 고치심은 복음에서는 부전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전공을 전공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그걸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그건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임재, 하나님을 믿게, 초자연적인 분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도록 관심을 끄는데 사용하는 미끼와 같습니다. 그런 다음엔,
그것을 가지고, 그들이 그분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믿음으로써, 병이 낫는 겁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약 성경에서 좀 읽고 싶습니다.
이 말씀에서 본문을 정해서, 오늘 오후 잠시 동안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밤에 예배들이 있으니까 저는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전하길 바랍니다. 잠시만, 여러분 주목해서 들어주십시오.
자, 이렇게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입시다.
아시죠, 우리는 노래를 너무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너무 많이 지를 수 있습니다, 목이 쉴 때까지.
우리는 때에 맞지 않게 노래를 할 수 있고, 때에 맞지 않게 소리를 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한 가지, 우리가 기도할 때는 절대로 순서에 어긋나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남자들이 어디서나 거룩한 두 손을 들고,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아니면...아버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특권은 두 눈을 감고 마음을 열고 주님께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들으신다는 걸 압니다, 우리가 주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믿을 수만 있다면.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나 아버지께 구하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니, 아버지, 오늘 오후,
우리가 간청하는 것을 받을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어디에도 의심의 그림자가 한 점도 없게 하소서. 우리가 구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건, 하나님, 우리 음성을 듣고, 아니면 이 설교 테이프가 저 이교도 땅에서,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모든 잃어버린
방황하는 혼들을 주님의 왕국으로 데리고 들여옴으로써, 오늘 주님의 위대하신 이름이 존중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오늘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배가 끝나게 될 때, 주 하나님께서 모든 잃어버린 혼을 구원하시고, 모든 아픈 몸들을 낫게 하시고,
주의 자녀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아버지께서 들으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구할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요한복음17장에서, 20절부터 시작해서, 본문 말씀을 위해서 읽고 싶습니다. 거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17:20.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들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도 위해 기도하오니
이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 잠시 만요. 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해산하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해산할 때에 관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인가요. 요한복음인가요? 잭, 그게 어디에 있죠? [누군가가, “요한복음16장요.”한다-주] 요한복음 16장요.
저도 그곳이 맞다. 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 같지는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1절요.”] 21절.
[다른 사람이, “그렇습니다.”하고 말한다.] 분명히, 21절입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요한, 요한복음16장:21절.
이는 그들... 모두가...아닌데요, 잭 형제님, 그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요한복음, 21절을 읽으세요.”한다. 다른 사람이, “21절요.”한다.
다른 사람이, “16장 21절요.”한다. 다른 사람이, “16절요.”한다-주] 그건 20절, 16장:21입니다.
저는 요한복음 16장, 21절을 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틀렸습니까?
[어떤 형제가, “제가 옮겨서, 그 구절을 보여 드리죠.”한다.]
어, 이 성경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에 이상이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한 형제가, “그들이 인쇄를 잘못했습니다.”한다-주] 그들이 인쇄를 잘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중이 웃는다.] 그거 아세요? 그건 정말 사실입니다. 이건 새로 산 성경이거든요.
저는 최근에 그 성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게-그게... 인쇄에 오류가 있군요.
[브래넘형제의 스코필드 성경이 1138-1139 두 페이지가 붙어있었다. 65-0129 오늘날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도다.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강단에 서 있던 한 카톨릭 대주교 사제, 존 S. 스탠리 신부가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성경을 브래넘 형제에게
주면서, “침착하세요. 이 일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거예요, 형제님도 그걸 알지요.
하나님께서는 형제에게 이 일로 놀라운 뭔가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하고 말한다.-주] 좋습니다.
[“잠깐 내 성경을 사용하세요, 브래넘 형제.”]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요한복음16장:20절부터 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입니다.
요한복음16:20.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슬피 울며 애통할 터이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또 너희는 근심할 터이나 너희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리라.
21.여자가 산고를 겪으면 자기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거니와 아이를 낳으면 곧 바로 세상에 사람이 난 기쁨으로
인해 다시는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의 형제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브래넘 형제가 그 카톨릭 사제에게 성경을 돌려준다.-주]
자, 여기 이 성경은 정말로 잘못 인쇄된 것입니다. 페이지가 잘못 찍혀 있습니다.
제가 늘 쓰던 스코필드 성경 위에 얹힌 것을 보고, 이 성경을 들고 몇 분 전에 서둘러서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이 성경은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것이기 때문에.
자, 저는 오늘 오후에 제가 광고했던 주제인 산고(Birth Pains)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자, 그건 말하기가 몹시 곤란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슬퍼하겠지만, 너희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교가 탄생하리라는 것을 아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 것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옛 것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출산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괴로운 해산의 진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통증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율법에서 은혜로 이르기 위해서는요.
정상적인, 자연적인 출산은 영적인 출산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연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의 예표들입니다.
우리는, 여기 땅에서 보는 것,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보면, 성장하는데, 생명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건 어딘가에, 죽지 않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그 나무는 뭔가를 찾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아파도, 어떤 상태에 있든지 간에, 살기 위해서 외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는데, 그건 어딘가에 우리가 살아가는 생명이--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완벽한지 보십시오.
자, 요한일서5장:7절에서, 거기가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잘못 알지 않았다면, “하늘에서 증거 하는 것이 셋이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라, 이 셋은 한 분이기 때문이라.
땅에서 증거 하는 것이 셋이니, 물과 피와 영이라, 그들은 합하여 하나니라.”
자 보십시오. 첫 번째 셋은 한 분입니다.
두 번째 셋은 땅에 있는 것이고 하나로 합해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증거 하는 것은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가 있을 수 없고, 성령이 없으면 아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피 없이 물은 있을 수 있고, 영이 없이 피는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들을 통해서,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물과 피와, 영. 칭의, 성화, 성령 침례. 그건 예표, 예표의 실체인데, 자연적인 출산의 실체인 것입니다.
여자가, 아니면 해산하는 어떤 것이든지, 출산할 때는.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은 양수가 터집니다,
정상적인 분만일 때. 두 번째 나오는 것은 피이고, 그 다음에는 생명이 나옵니다.
물, 피, 영, 그것은 정상적인 자연적인 출산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본째 단계는 물, 믿음에 의한 칭의(의롭게 됨)이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여러분의 구세주로서 영접하고, 침례를 받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성화이죠,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모든 요소들과 세상의 소욕으로부터 영을 정결케 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세 번째 단계는 성령이 들어오셔서 신생(新生)을 주시고 그 성화된 그릇을 채우십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었죠. 여러분이 믿지 않으시는 건, 옆으로 놔두고, 파이만 드십시오.
보세요. 자, 유리컵 하나가 닭장 속에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컵을 집어 올려서 식탁에 놓고 바로 물이나 우유를 따르지 않습니다. 네. 집어 올리는 건 칭의 입니다.
그 컵을 깨끗하게 씻는 건, 그것은 성화입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sanctify는 복합어인데, “씻겨져서, 사용하기 위해서 옆으로 놔둔 상태.”라는 뜻입니다.
사용 중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서. 그런 다음에, 그 컵을 채울 때, 그 컵은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기분 나쁘게 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거기서 순례자 성결교, 나사렛교인이신 분들이
오순절로 올라가지 못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성화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방언으로 말하거나 다른 것들의 은사들로, 섬길 수 있는 위치에 놓일 준비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그것을 거절했고, 다시 닭장 속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자, 여러분들을 비난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건 제가 이곳에 온 이후로 계속해서 제 속에 가득 차 있었던 생각이고, 그래서 말씀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저, 칼과 디모스와 그들의 친절로, 여러분 모두의 친절 덕분에, 저는 제 혼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나머지 일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통상적인 것은 영적인 것을 예표합니다.
자, 그 다음에 발견하는 건, 아기가 완전히 태어납니다.
보통, 아기가...양수가 터지면, 여러분은 그 일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피가 나올 때도, 여러분은 그 일에 대해서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 안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그 아기를 찰싹 때려줘야 하고, 그 아기가 울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 여기 계신 형제님들은 많은 훈련을 받으셨지만, 저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저는 그것을 예표로 만들기 위해서
자연을 예로 들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잘 때려 줘야만 합니다.
자, 여러분은, 조금, 약간의 쇼크를 받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를 때려줄 필요가 없이, 조금 충격만 주면 될 겁니다.
그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때로는, 그에게 충격을 줄 겁니다. 그를 붙들고, 그를 흔듭니다.
그는 숨을 쉬지 않습니다, 조금 때려 주면, 그는, 자기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방언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아기가 사산아로 태어나게 되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감정도 나타내지 않으면, 그 아이는 사산아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체제의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사산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복음으로 좀 맞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깨우기 위해서, 그들이 자각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실 수 있도록 말이죠. 이제 우리는 그게 정말 사실임을 압니다.
그건 쌀쌀맞은 신학이지만, 그래도 그건 진리입니다.
그래서 보시면, 씨의 탄생에서, 옛 씨앗은 새로운 생명이 나올 수 있도록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죽는다는 건 언제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죽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힘든 일입니다.
해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생명을 나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그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은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간 씨앗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우리는 다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학교 수업처럼 이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요. 보십시오, 이 말씀은, 씨이기 때문에.
자, 씨는 죽어서만 새로운 생명을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씨의 형태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율법이 아니라, 은혜가 되셨습니다. 자, 은혜와 율법은 동시에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율법보다 한 참 위에 있고, 율법은 그림 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율법에 죽기가 그렇게도 힘들고, 은혜가 태어날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율법은 자리를 내 주어야 합니다. 두 가지 법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 수기(手旗) 신호에는 달려도 된다고 하는 법 하나와 다른 법은 달릴 수 없다고 하는 법을, 하나는 되고,
하나는 안 된다고 하는 법을 같이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 번에 하나의 법이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한 때는 그것을 무시하고 달려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심하고, 그것을 통과한 적이. 하지만 지금은 빨간 불입니다. 멈추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동시에 두 가지 법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보면 그건 항상... 이제는 여러분에게 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거기에는 통증과 고통과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그 율법에, 통증과 고통과 불편함을 통해서 죽었었는지 보십시오.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비가 이 땅에 열매를 내는데,
그 시인이 말한 대로, “비는 천둥소리 나는 들판에서, 무섭게 번개 치는 하늘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천둥과 무섭게 번개 치는 하늘이 없다면, 바다에서 들어 올려지고,
소금에서 증류된 그 조그마한 증류된 빗방울은, 그 비는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거칠고 강인하고 무서운 것이 있어야, 부드러운 꽃잎 같은 물방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출산에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죽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구름들이 죽을 때, 비가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비는 그 구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나는 소멸해야만 합니다.
여기 있는 형제님들, 어떤 분들은 능력이 있으셔서, 그런 것들에 대한 모든 법칙들을 설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약간 증명을 하기 위해서, 또 다른 것을 제시합시다. 제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꽃들 중 하나는...
모두 다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꽃 중에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꽃은, 저 동부에 있는,
우리 수련(pond lily)입니다. 수련을 본 적이 있으신 분? 오, 제 생각에는, 그 꽃만큼 예쁜 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수련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생각납니다,
“백합화(lily)를 유의해 보라, 어떻게 그것들이 수고하며 길쌈하는지,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모든 영광을 누릴 때의 솔로몬도 이 들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왜냐하면, 솔로몬의 영광과 치장은 다 인공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
백합꽃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생명 그 자체이지, 어떤 인공적인 덧칠이나 화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여성들과 똑같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초록색, 눈에 바르는 그런 것, 아시죠,
매니큐언지 뭔지, 그런 것을 항상 혼동하는데요, 예쁘게 하려고 얼굴에 바르시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쁘다는 것은 예쁘게 행동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2:4절을 추가하고, 그것을 요한복음3:16절과 잘 섞는다면,
그것은 맥스 팩터 화장품 회사가 만들어내려는 어떤 제품보다도 우수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남편은 여러분을 더욱 더 사랑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거고, 하나님도 분명히 사랑하실 겁니다.
예수님은, “백합화를 유의해 보라, 어떻게 자라는지, 수고하고, 위로 자신을 끌어올려야 한다.” 하셨습니다.
이 조그만 수련(연꽃)은, 어떤 것을 뚫고 오는지 보십시오. 진흙탕, 진흙, 진흙 물, 더러운 물을 통과합니다.
그건 그런 모든 것들을 통과해 계속 위로 뚫고 올라옵니다, 이 조그마한 생명의 싹이, 개구리나 그런 것들이 있는
연못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밀고 올라온 겁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을 그런 모든 것 위로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해가 비치는 곳에 이르게 되면, 그 꽃은 태어납니다. 그 조그마한 씨는 생명으로 열리며 터뜨립니다.
그런 모든 과정을 통과할 때까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다 통과해야 합니다. 그게 수련을 만드는 것이니까?
왜냐하면, 해가 그 꽃을 끌어당기고 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련이 완전히 그 더러운 물, 진흙탕과 그런 것 위로 올라오면, 수련은 너무나도 기뻐합니다.
수련은 자신의 생명을 자유로이 내줍니다. 자신을 위로 끌어당긴 것 앞에 이르게 되면 수련은 아름다운 생명이 됩니다.
저는 그게 그리스도인 삶의 멋진 예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가 여러분을 세상에서 끌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여러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것의 존전 앞까지 태어나게 될 때까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이 수련을 도우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병아리가 태어날 때처럼, 아시죠, 여러분은 그 조그마한 녀석들을 지켜보셨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부리 끝으로, 알에서 태어나는 어떤 새든지. 그건 성숙해가고 있고, 이 낡은 계란 껍질은.
그 계란의 낡은 속은 썩어 없어져야 합니다.
병아리는 이렇게 조그마한 부리가 있어서, 그 계란 껍질을 부리로 이리 저리 움직여 깨뜨릴 때까지 찢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제가 태어난 켄터키 주에서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온다고 말합니다. 껍질을 깨고 나옵니다.
병아리들에게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왜죠? 그건 하나님이 예비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도와주려고 한다면, 그 놈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껍질을 제쳐주면, 병아리는 죽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병아리는 일하고, 애쓰고, 혼자 힘으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힘줄이 형성되고 살아서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과 악수하고, 여러분을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죽고, 썩고, 하나님의 왕국으로 태어날 때까지 거기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책으로, 악수로, 교회에 가입으로, 펌프질로 올려서, 끌어내려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낡은 껍질로부터 나와야만 합니다. 보십시오, 다른 더 좋은 방법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기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할 때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외에 다른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자, 어린 아기가 태어났는데, 여러분이 아기의 침대 옆에서 종을 하나 달아주면서, “아들아, 나는 예비 신학자란다.
나는 아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내 말을 들어봐라, 너는 현대적인 가정에서, 현대적인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지. 배가 고프거나, 엄마나 내가 필요하다면, 이 작은 종을 울려라.”하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건 절대로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기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우는 것뿐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도 그것입니다. 달라고 소리 내는 거지요. 크게 소리 내는 것입니다.
창피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향해 배고픈 상태입니다.”
집사들이나, 담임목사님들이나, 누구든지 간에 개의치 말고, 그냥 소리를 지르십시오. 존스 가족이 옆에 앉아 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소리 내 우십시오, 도움을 받을 때까지, 그게 여러분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지상에 계실 때 그것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아시죠. 불의한 재판관에 대해서.
그 조그마한 이슬방울은, 저는 그 이슬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어쩌면 여기에 과학적으로...
저는 그저 제가 생각하는 식으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어쩌면 어두운 밤에 대기가 뭉쳐서 된 것일지도 모르고,
그 이슬은 땅에 떨어집니다. 땅에 떨어지면, 그건 밤에 태어납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거기에서, 조그마한 풀잎 위에서나 여러분의 빨래줄 위에 매달려서, 추위에 떨면서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나오기만 하면, 여러분 그 이슬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셨습니까? 이슬은 그냥 반짝거리고 몸을 떱니다.
왜죠? 이슬은 그 햇빛이 자기가 처음에 있었던 곳으로 다시 끌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모든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우리 위에 퍼지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하나님의 품에서 나왔죠, 다시 돌아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햇빛이 내리쬐면, 기쁨으로 반짝거릴 수 있습니다, 자기가 나온 곳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미한 자연의 사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에 관해 계속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것을 알아봅시다.
우리는 그 오래된 씨는, 반드시, 새로운 씨가 그 오래된 씨에서 나올 수 있기 전에, 먼저 완전히 썩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을 뿐 아니라, 죽은 다음에 썩기까지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게 사실임을 압니다.
신생(新生)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나게 되면, 우리는 결코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 합니다.
오늘, 제 생각엔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게 아니라, 진정한 신생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유는 어쩌면 씨가, 말씀이나 그 사람에 대하여 동감은 하지만,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옛 체제로부터 완전히 썩기를
원치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 체제에서 나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옛 체제 안에 머물면서, 동시에 거듭났다고 주장하거나, 이 시대의 메시지를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루터 시대, 웨슬리 시대, 오순절교 시대, 그리고 다른 모든 시대에서도 발견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옛 체제를 붙들고 있으려 하고, 이것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옛 체제의 시대는 죽어야 하고, 썩어야지 새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매달리고 싶어 합니다.
보세요. 그들은 옛 체제는 죽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곳을 나와 썩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 썩는다는 것은, 완전히 없어질 때를 말합니다. 주장은, 그들이 신생을 주장하는 것은 오직 낳은 표적일 뿐입니다.
썩었을 때, 신생이 나오게 하는 것이죠. 그것에서 완전히 썩어져야 합니다,
이전 모든 시대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웨슬리 시대나 다른 시대들을 통과하면서.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새로운 탄생이 이루어진 후입니다.
웨슬리나... 루터는 한 가지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어, 그는 그 옛 체제에 더 이상 매달리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칼빈주의자들이 영국 국교회를 칼빈주의 교리를 가지고 그와 같은 상태에 빠지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르미니언 교리를 일으키기 전까지, 그건 존 웨슬리였습니다.
그 옛 체제는 죽어야 했습니다, 새 것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웨슬리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들도, 아니면 줄기에서 뻗어 나온 풀잎, 웨슬리 시대의 옥수수수염도 끝났습니다.
아시겠죠, 오순절이 은사들의 회복을 가지고 나왔을 때, 그들은 침례교, 장로교, 순례자 성결교, 나사렛교,
이른바 그리스도의 교회, 그런 모든 그들로부터 나와야 했습니다.
그들은 신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것으로부터 나와서, 그것으로부터 썩어져야했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미쳤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건 바울이 자기가 한때는 주장했던 것으로부터 썩었을 때 했던 말과 같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단이라 하는 도로, 나는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경배하노라.” 이단이라고 불리는 도로! 아시겠죠?
바울은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구약은 신약(을)에 탄생케 했고, 바울은 구약으로부터 썩어져서 구약을 그림자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하지만 그건 제 생각입니다.
교회들은 너무나도 체제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그 교회에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교제 카드나 뭐 그런 증명서류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음으로써, 저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문은 이 실업인회뿐입니다. 그들이 조직이 아니기만 하다면,
저는 그들과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그게 제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체제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는 오순절교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오순절은 어쨌거나 조직이 아닙니다. 자칭 오순절교라고 부르고 계시죠. 오순절은 체험이지 교파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시죠, 중요한 사실은,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힘이 든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믿고, 그게 말씀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을 보기는 하지만,
여러분들이 몸담고 있던 그것으로부터 썩어지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뭘 하게 될까요? 어디서 내 밥줄을 찾죠?”
뭐라구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밥줄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붙들고 늘어져야 할 분입니다.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저는 이쯤해서 그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서 우리가 새로운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성경 말씀을 원하신다면, 계시록 21장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그것을 인용해 드릴 수 있는데요,
요한이 말하기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졌더라.” 없어졌습니다.
자, 우리가 새 땅을 가지게 된다면, 옛 땅과 새 땅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또, 새 세상과 옛 세상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두 세상 체제가 동시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 땅이 있으려면, 옛 땅은 죽어야만 합니다.
자, 옛 땅이 죽어야 한다면, 지금 이 땅은 새 땅을 위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해산하려는 환자를 진료하러 가면... 의사들이 하는 일 중에 한 가지는.
자, 제가 알고 있는 의사들이 두세 분 이곳에 계시는데, 훌륭한 의사들로, 그리스도인 의사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의사가 하는 첫 번째 일은,
그 환자를 관찰하다가, 진통 시간의 간격을 재는 겁니다, 산고를요. 의사는 진통 시간을 잽니다.
진정 간격이 얼마나 짧아지는지, 진통이 얼마나 더 심해지는지. 이전 진통보다 더 심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다음 진통은 더 아프고, 더 진통 간격이 짧아집니다. 그렇게 산고를 통해서 진단합니다.
자, 세상이 새로운 세상을 낳기 위해서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지는 산고를 몇 가지 알아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그리고 얼마나 긴 진통을 지구가 겪어내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일차 세계 대전은 커다란 산고를 보여줬습니다. 땅이 겪은 첫 번째 산고를 보여 주었습니다.
땅을 위해 정해진 그 시간 때문에, 우리는 폭탄들을 제조해냈고, 기관총과 독가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여러분 기억나시죠. 어쩌면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은 기억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때 여덟 살에 불과했었지만, 사람들이 겨자탄과 염소 가스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던 걸 기억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게 작동개시만 되면 전 지구를 불태워 버릴 것이다. 모든 사람을 죽일 것이다.
어, 그게 터지고, 바람이 불어서 전 지구에 퍼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독가스라는 무시무시한 무기에 대해서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모릅니다!
지구는 그런 걸 겪었고, 그게 첫 번째 산고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 전쟁이, 세계 2차 대전이 있었고, 이 땅이 겪은 진통은 훨씬 더 큰 것이었습니다.
진통은 늘 더욱 끔찍해집니다, 지구의 산고는요. 지구는 거의 파괴되었을 뻔했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져 도시 하나가 전부 다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일차 세계 대전의 진통, 지구의 파괴보다도 훨씬 더 큰 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이 땅은(지구는) 구원받을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구가 불안해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는 것입니다,
수소 폭탄이 있고, 공중에는 전 세계를 파괴시킬 공중미사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나라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해도. 그들은 그 미사일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장하기를...
그것 중 하나라도. 그들은 별들을 보고 그것들의 방향을 지시하고 원하는 곳에 세계 그 어디라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저는 며칠 전에 뉴스를 들었는데, 러시아는 우리나라를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자나 그런 것들이
자기 나라에서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모두 다 그런 주장을 내세우고 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과학은 하나님의 위대한 실험실로 침입해 들어왔고, 자신들을 파괴할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로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파괴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지혜로 자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사탄의 지혜를 하나님의 말씀 대신 취함으로써 그랬던 것처럼.
자, 지구는 자기가 넘겨주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견딜 수가 없어서죠.
러시아는,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우리나라를 멸할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 나라를 파괴할 수 있고,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이 조그마한 나라들 중 어느 나라든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그와 같은 상태에서는 본 궤도 내에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구의 산고가 너무나 크고, 넘겨주어야만 하는 상태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탄생이 있을 것입니다, 가까웠습니다. 저는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땅에 질렸습니다.
누구나 여기에는 사망과 슬픔과 온갖 불일치와 그런 것들이 있는 땅인 것을 압니다.
저는 이 땅이 넘겨줘야 한다는 게 기쁩니다. 저는 그 때가 가까웠음을 기뻐합니다.
예전에 요한이 말했듯이, “그러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자, 물론,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 지구는 새로운 탄생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썩어야만 합니다.
지구가 어떻게 썩어 들어가는지 보십시오. 보세요, 나의 형제님들! 지구는 완전히 썩었습니다.
정치와 체제들은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그 안에는, 세상의 체제 안에는, 세상의 정치와 종교적인 정치와 그게 뭐든지
간에, 그 안에는 성한 뼈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민주당원이에요. 나는 공화당원이에요.
나는 감리교인이에요. 나는 침례교인이에요.” 합니다. 전부 다 뼈 속까지 썩었습니다. 그러니 뭔가가 내줘야만 합니다.
지구는 견뎌내지 못합니다. 미국의 모든 카운티 단위에 조지 워싱턴이나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을 임명해 둔다
해도, 미국은 원 상태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미국은 구속을 받을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창조주의 강림뿐입니다. 아멘.
지구는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는 진통과 고통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누구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쪽을 바라보고, 어떤 이는 저쪽을 바라보고, 다 그럽니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한 나라는 이 나라를 파괴 키실 어떤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 나라는 또 다른 나라를 대적하려고 하고,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은 그것을, 오 분 이내에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죄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합니다.
아시겠죠? 세계는 자신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곧 일어나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러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전체가 불에 탈 것입니다.”
전부 다 혁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세상이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세상은, 모든 체제 가운데서 썩었고, 그래야만, 썩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세상이 그렇게 불안해하고, 당황해 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도처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해안 위아래로. 알래스카에 해일이 일고, 해안을 지진과 그런 것들이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 땅을 떠날까요? 이 땅을 떠날까요?”하고 쓰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안전지대는 한 군데 빼고는 없습니다, 그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안전지대는 단 한 군데뿐인데, 그건 그리스도입니다. 거기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멸망할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정말입니다.
의사의 책을 봅시다, 지구가 이런 상태에 있는지, 새 땅이 태어나게 될 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지 봅니다.
마태복음24장, 의사의 책이죠, 성경입니다, 뭐라고 예언되어 있는지, 어떤 징후가 있을지를 알아봅시다.
자, 의사가 아이가 태어날 징후들을 안다면... 아기가 태어날 때쯤에, 의사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태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징후들이 보여주니까요,
양수가 터지고, 피가 지금은... 때가 된 겁니다. 아이는 내려왔고, 아이가 태어날 때가 된 겁니다.
그래서 의사는 그 아이를 받을 준비를 해 놓습니다.
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때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24장에서, 교회(참 교회)와, 그리고 다른 교회가, 육적인 교회가 있고, 영적인 교회가 있을 거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로 너무나 비슷해서, 모방하는 자들이죠, 택함을 받은 자들도 가능하다면 속일 정도일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어땠었는지, “어떻게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었는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세상의 온갖 부도덕. 성경은, 그 책, 의사의 책은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 탄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자, 우리는 그것을 보고, 국가들이; 한 국가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자, 이스라엘, 교회, 잠시만 이스라엘부터 시작해 봅시다. 한 십분 정도만 이스라엘을 쫓아가 봅시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이 땅에 올 때마다 산고를 겪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메시지에 산고를 겪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산고를 겪었죠? 선지자는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썩을 것을 뿌렸었고
그 안에 너무나 많은 체계적인 집단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선지자는 나라의 기반을 통째로 흔들어놓았습니다.
선지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면, 교회는 그야말로 산고를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주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오고, 선지자에게만 오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 시대를 위해 말해진 말씀은 그 시대의 선지자에 의해서 표명되었고, 항상 그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은, 너무나도 많은 체제들을 말씀 주변에다 담처럼 쌓아 놓아서, 말씀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선지자가 오면 이스라엘을 통째로 흔들어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산고를 겪었습니다.
그게 뭐였죠? “말씀으로 돌아가시오! 생명에로 돌아가시오! 체제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 주위로 쌓여진 체제들은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선지자의 메시지는 남은 사람들을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게 흔들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무리는 나올 것이고 믿을 것입니다. 때로는 어쩌면... 노아의 시대에는, 여덟 명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남은 사람들을 흔드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멸망되고, 흔들려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모든 시대를 걸쳐 내려오면서, 마침내 교회가 그들에게 사내 아기를 낳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 사내 아기는 말씀이었고, 육신이 되었던 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었느니라.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였도다.”
예수는 아버지의 말씀만을 가지고, 모든 마귀를, 이 땅에 있는 자기를 대적해 오는 모든 세력을 정복하셨습니다.
사탄이 그에게 주는 모든 유혹들, 예수님은 사탄을 꾸짖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자신의 능력들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록되었으되... 기록되기를... 기록되었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이브를 유혹하기 위해서 왔을 때, 이브는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지 못했고, 그래서 졌던 겁니다.
사탄이 모세를 대적하여 왔을 때, 똑같은 일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부딪혔을 때,
예수님은 만 볼트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건 사탄에게서 느슨한 깃털들이 떨어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기록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사내 아기는, 육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친히, 여기 이 땅에서 말씀을 대표하기 위해서, 육신을 입은 몸 안에서 표명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빌립에게 그가 어디에 있었고,
그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누군지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죠? 그분은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4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양쪽에 날선 칼보다 더 예리하고 힘이 있어, 골수까지 쪼개며,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분별하는 분이시다.” 라고 했습니다.
어, 그 눈먼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그게 표명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제사장직과 체제로 꽁꽁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옛 체제는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건 말씀이었고, 하지만 약속된 것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이 일단 성취되면, 그건 썩어야만 합니다.
그건 껍질입니다. 씨는 계속 전진했습니다.
모세는 노아의 메시지를 가지고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노아의 메시지를 가져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시대였으니까요. 옛 씨는 옳았습니다,
그래도 그 씨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었고 죽었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옛 것에서 생명이 있는 새 것으로의 변모는,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었고,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근심거리가 됩니다.
우리는 루터의 메시지로, 아니면 오순절의 메시지로 시작했을 때처럼, 벽을 쌓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직선으로 쭉 가는 게 아닙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퉁이를 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물을 건축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계도입니다. 누구나 직선으로 벽돌을 쌓을 수는 있지만, 석공만이 모퉁이를 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하늘에서 온, 그 일을 하도록 보냄을 받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필요합니다. 매 시대마다 그랬습니다.
선지자의 시대에서, 주의 말씀은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나오죠,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 모퉁이를 만들고,
다른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건축자들은 벽을 건축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건 벽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건 건물입니다, 하나님의 건물.
자, 우리는 이것이 진리라고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체제들은 매 시대마다 썩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그들 체제들은, 그 교회를 낳을 때까지, 썩고 죽어야 했습니다.
그 썩어서 엉망진창이 된 것으로부터 말씀이 나왔습니다, 말씀 자체가. “주의 말씀은 선지자들에게 온다.”
결코 제사장들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에게 옵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했을 때, 마침내 말씀 전체가 여기서 인간의 육체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신격의 충만함이 육체로 그분 안에 거했습니다. 그는 말씀이셨습니다. 선지자들은 말씀의 일부입니다,
그 시대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말씀의 일부이고, 말씀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의 전 충만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든다고 예수를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어, 당신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율법에,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들을 ‘신들(gods)’, 선지자들이죠,
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들은 신들이었도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고 어떻게 너희는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 하셨습니다.
신격의 충만함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육체에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충만한 표명이셨습니다.
마침내, 그들 선지자들 밑에서 겪은 산고는, 그들은 말씀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그 충만함을, 말씀의 충만함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그 체제들이 죽었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야곱 안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잘 보십시오. 그게 요셉 안에서 어떻게 정확하게 묘사되었는지 잘 보십시오.
형제들에게...아버지에게는 사랑을 받았고, 형제들에게는 아무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영적이었고, 일들을 예고할 수 있었고, 꿈을 해몽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되도록 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급기야는
요셉을 삼십 냥, 거의 은 삼십 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일으켜졌고 파라오의 오른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있던 감옥을 들여다보면, 술 맡은 관원 한 사람과 빵 굽는 관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감옥 안에 계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보십시오. 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고, 한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확합니다. 다음에는 하늘들로 높임을 받았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떠나게 되면, “무릎을 꿇어라,”는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혀가 고백할 것입니다.
요셉이 보좌를 떠나 나가기 시작하면, 나팔이 울렸고, 모든 무릎이 꿇어야 했습니다. “요셉이 나가신다.”
그래서 언젠가 하나님의 위대한 나팔이 소리를 내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끓을 것이고, 모든 혀가 이 말씀에 고백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뭘 찾으러 오십니까? 주님이 왜 여기로 오시는 거죠?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육신이 된 이 완전한 말씀을 낳게 했습니다,
“주님이 오신다! 주님이 오신다! 주님이 오신다!”고 소리 높여 외쳤던 그 선지자들의 산고를 겪고 나서.
자, 하지만 역사와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사백 년 동안, 말라기로부터 요한의 때까지, 선지자가 한 사람도 없이
지냈습니다. 신학자들, 제사장들, 담임목사들만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가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없이 사백 년 간을 지내면서,
그 체제가 얼마나 썩은 상태가 되었겠는가를. 그래서 제사장들, 예언자들과 그런 사람들은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썩어 있었습니다.
그때 요한이, 말라기3장에서 약속된 엘리야죠, 말라기4장이 아니라, 말라기3장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태복음11장에서 똑같은 일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독수리 눈에 얇은 막이 덮였을 때, 펨버(Pember)가 쓴 초기 시대들(Early Ages)에서 그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압니다. 요한은 “가서 그분이 그분인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하는지 물어 보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을 돌려보낸 뒤에, 그들에게 집회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라고 하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요한에게 이런 일들을 보여 주어라. 걸려 넘어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예수님은 몸을 돌려 얘기하고 있던 제자들과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너희가 요한을 보러 갔을 때 뭘 보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나갔더냐?”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런 사람들은 왕궁에 거하느니라.”하셨습니다. “너희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더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 말해서, 사소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요한이 그 일로 흔들렸느냐? 이겁니다.
“있잖아요, 만일 당신이 와서 우리 단체에 가입하면, 우리가 월급을 더 많이 드릴게요.” 요한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이러 이런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설교를 하지 않겠다면, 당신은 우리 단체들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요한은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선지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 이상 가는 사람이라.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선지자가 말했던 자니라, ‘내가 길을 예비하라고 내 얼굴 앞에 내 사자를 보내리라.’”
말라기3장1절입니다. 말라기4장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건 다른 선지자에게 예언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엘리야가 오면, 세상은 금세 타버리고, 의인들은 악인들의 재를 밟고 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보세요. 그의 메시지는 결코 그들을 그들의 교회 수면상태에서 화들짝 깨어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저 아래에는 미치광이가 한 사람 있어요. 금세 지나쳐 버리세요. 그 사람이 미쳤대요.
그는 사람들을 저 물에 빠뜨리려 하고 있어요. 아시겠죠? 그 사람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에요.
어, 그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았어요. 양 가죽을 둘렀어요. 자, 그는 너무나도 가난한 사람이에요.
어, 어떤 신학교를 나왔대요? 어떤 교제 카드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그가 여는 집회라면 협조하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그가 거기에 서 있도록 놔두고, 굶어죽게 놔둘 거예요.” 아시겠죠? 세상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체제들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그냥 거기에 놔둘 거예요. 그는...도 없어요.”
왜 없었는지 아세요? 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녀가 아버지의 일을 대를 잇는 것이 관례였었는데, 왜 요한은 아버지의 일을 따르지 않았죠?
요한은 뭔가, 더욱 더 위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메시야의 초림을 소개해야 했습니다,
성령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가브리엘의 메시지로 돌아왔던 몇몇 남은 자들은, 그것이 그러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홉 살 가량 되었을 때, 요한이 광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후에, 요한은 정확하게 들어야 했기 때문에,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커다랗고 큼직한 신학교 건물 안에서는, 그들이, “자, 저는 당신이 메시야를 알릴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이사야는 당신이 오리라고 말했고, 그래서 당신이 그 음성일 거예요. 자, 여기 계신 우리 존스 형제님이 그 조건을
딱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쉽게 설득 당할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체제에 속한 어떤 것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 단순하며, 중요했습니다.
요한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에 나타날 때까지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보세요. 요한의 메시지는 신학자와는 달랐습니다. 요한은 광야의 예표들을 사용했습니다.
요한은, “오, 뱀들의 세대여” 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직자들을 “뱀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그가 광야에서 발견하는 안 좋은 것들 중 하나는, 기어 다니는 것들 중 하나는 뱀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그게 제일 좋은 비교인 것 같군.” 그는, “너희 독사들의 세대여, 너희를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경고하였느냐? ‘우리는 이러 이런 것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하려고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은 이 돌들을 일으켜서라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돌들,”
그가 광야나 계곡 물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죠.
역시, “도끼가,” 그가 광야에서 사용하던 것이죠, “나무 뿌리에 놓여 있도다,” 그가 광야에서 보았던 나무죠.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그건 모닥불을 피우는 곳에서 배운 겁니다, 아시죠,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그것으로 모닥불 피우는 재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요한의 메시지는 성직자의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보았던 자연을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발표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고, 자기가 전할 메시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메시야는, 그분은 지금 여러분 가운데 서 계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제가 그분의 신발을 들 자격도 없는 그분이 서 계십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여러분에게 침례를 줄 겁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요한, 그가 누구시죠?”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젊은이가 강으로 걸어내려왔습니다, 평범하게 생긴 남자였습니다.
그저...침례자 요한은 거기에 서 있었고, 복 있는 그 선지자, 그런데 그는 요단강 저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저기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 그분을 어떻게 아십니까?”
“가서 물로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던, 광야에 계셨던 그분이, ‘영이 내려 그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보면,
그가 바로 성령으로 침례 줄 사람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신학적인 관점이나 어떤 인간이 만든 신조 체제로는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나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메시지는 그들을 그다지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 자기가 그걸 보았대요.
저는 아주 의심이 가요. 저는 아무 것도 안보여요. 저는 살펴봤습니다.
오, 세상에! 저는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하고 제사장들과 그들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것을 보았고, 우리도 지금은 그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메시지가 뭘 가지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 메시지는 결코 그들을 잠에서 깨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고, 아랑곳하지 않고,
요한의 목을 잘랐습니다. 하지만 그건-그건 그들을 결코 요동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남은 자들을, 속에 생명을 가진 사람들, 조그마한 무리, 안나와 시므온,
주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 몇 명은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던 안나도, 기도로써 주님을 섬기던 눈먼 여선지자였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안나가 영 안에 있을 때...그런데 시므온은 예언을 했고, 말하기를, 노인이었는데,
그는, “성령께서 내가 주의 그리스도를 볼 때까지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소,”하고 말했습니다.
어, 제사장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가엾은 노인 양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군, 아시죠.
자 이제는 무덤에 한 발을 들여놓고, 다른 한 발은 미끄러졌나봐. 자 내버려두세요.
그는 존경스러운 노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좀...”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죠, 그가 뭘 가지고 있었죠? 그것은 성령께서 그에게 계시해 준 것이었습니다.
자 여러분들에게 오늘 오후에 계시된 것도 똑같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여러분을 이곳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어떤... 성령께서요! 이 사제들과 여기 계신 감리교, 침례교, 카톨릭, 그리고 모든 교파에서 오신 성직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령으로 감동 받았습니다. 그 때가 지금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였고, 그들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고파하면서.
어느 날, 아시죠, 텔레비전도 없었습니다. 그런 때가 있었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은 유대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별이 하나 나타났고, 기타 등등.
하지만 여드레가 지난 후에, 어머니는 그 어린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건 포대기입니다.
저는...들었는데. 그들은 입힐 옷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소의 멍에 위에 있던 조그마한 천을 잘라서 만든 게
그분을 싸던 포대기였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요셉과 그들이 들어옵니다, 이 조그마한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곱게 수놓은 강보로 싼 아기들을 데리고 있는 어머니들이 멀찌감치 따로 서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길 보세요. 아시겠죠? 저 여자가 왔어요. 아시겠죠? 저 여자는 저 남자의 애를 뱄었어요. 여기로 들어오네요.
저 여자 가까이 가지 마세요. 거리를 두세요.” 그들은 여전히 똑같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아기를 팔에 안고서,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그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안에 영접하는 신자들도 다 그렇습니다! 저는 체제들이 하는 말에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메시지가 뭔지 아시죠. 그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건 여러분에게 성령에 의해서 계시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능력으로 덮였을 때. 여러분은 그게 어디에 있는지도 아십니다.
아무도 사막의 뒤편에서 하나님을 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만나기 전에는 복음을 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세상에 있는 어떤 교회 체제도 여러분을 그 메시지에서 멀어지도록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일은 여러분에게 일어났습니다. 저는 체제들이 뭐라고 하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일의 증인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늙은 흑인 형제가 말씀했던 것처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여기 강단에는 자리가 부족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지금, 생각할 때, 아주 종교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게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시므온이 그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 자기 서재에 앉아 있다가, 오, 거기에는 수백 명의 아기들이
매일 아침 드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의 이백 오십만 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있었을 텐데, 그 아기들이
들어왔고, 태어난 아기들이 많았습니다. 팔일 후에 어머니는 정결례를 위한 제물을 바치러 들어와야 했습니다.
자 여기에 오... 거기에 앉아 있던 시므온은, 아시죠, 이사야 두루마리를 읽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자, 성령이 여러분에게 약속을 하셨다면, 성령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성령이 정말로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만일 그분이...어떤 사람이 와서 어떤 말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뒷받침하지 않으신다면, 그건 애초부터 성경이 아닙니다. 잊어버리십시오.
그래도 그가 그렇다고 말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뒷받침하지 않으시면, 그건 여전히 틀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통역사이십니다. 그가 한 말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들으라, 그게 진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상식일 뿐입니다.
만일 그가 그 일이 일어나겠다고 말했는데, 그 일이 일어나면, 그건 뭔가 시사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매번, 정말로 진리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 시므온이 핍박을 받으면서 거기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남은 자였습니다.
시므온은 요한의 설교를 들었었고, 그 당시의 소수의 남은 자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를 들으면서, 알고서. 제 말은, 요한이 온다는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그는-그는 남은 자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아기가 성전으로 들어왔을 때, 성령은 그 아기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계시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시므온은 그의 작은 서재에서 나와서, 홀을 가로질러 가서,
그 여자들이 서 있는 줄로 다가갔습니다. 그 줄을 쭉 내려가서 이 어린 아기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습니다,
사람들은 다 그들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 아기를 팔에 안아 들어 올리고는,
“주님,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으므로, 이제는 주의 종으로 평안히 떠나게 하소서.”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 시대에 조그마한 선택받은 무리 가운데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여선지자 안나 였습니다.
눈이 먼 그녀는 거기에,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소경이었고,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다가옵니다,
그 모든 여인들과 성전을 드나드는 많은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나가 곧장 그리스도 아기가 있던 곳으로 갑니다.
성령께서 눈먼 여인을 그분께로 인도하실 수 있었다면, 보이는 눈이 있는 오순절교인인 무리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서부터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보십시오. 오, 세상에!
그 교회는 정말 다시금 엄청나게 엉망진창인 상태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가 그랬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조그마한 남은 자들을 흔들었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요.
이제 솔직해집시다. 우리가 만일 오늘날 교회가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을 보고 있다면, 우리가 다시 그 때에 당도한
게 아닙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주] 자 성경의, 오늘 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리라고 약속된 일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끝부분에 와 있음을 봅니다.
자 오늘날 교회 안을 들여다봅시다.
교회는 루터 밑에서 산고를 겪었습니다.
자, 우리는 계시록에 의하면, 일곱 교회 시대가 있고, 그 교회 시대에는 일곱 사자(使者)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자, 루터가 나와야 했을 때, 그건 정말로 교회가 산고를 겪게 했고, 하지만 루터라는 인물을 출산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일 후에, 교회는 다시 진통을 겪었고, 그래서 웨슬리라는 인물을 출산했습니다. 맞습니다.
다시 나와서, 오순절을 출산했습니다.
그들 시대의 사자들은 각기, 흔들어... 말씀으로 돌아가게, 그들의 시대의 메시지로, 성경에 입각한 메시지로 돌아가게
흔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책이 곧 나올 것입니다, 계시록 첫4장의 주석들입니다. 그것을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출판해내자마자.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루터의 메시지, 칭의가 뭐였는지, 성화가 뭐였는지,
자연적인 출산에서의 다음 과정이죠, 증명합니다. 그 다음에는 오순절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자, 보십시오, 각 시대는 교회를 흔들었고, 진통이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했죠?
산고가 온 후에, 말씀과 함께 전진하는 대신에 첫 번째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일단의 사람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흔들어놓고 난 바로 뒤에, 우리는 다시 교회가 벗어나는 것을 봅니다.
다음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초기의 아가보나 많은 개혁자들이 뒤를 이어 나오는 것을 봅니다.
각 시대는 행했습니다, 여러분이 니케아 이전 공회, 니케아 교부들, 이런 책을 공부하시면. 여러분은 그것을 그 책들
안에서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자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가지고 올 때마다, 각 시대는 흔들렸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지금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나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있는데, “부자요, 하지만 눈먼 교회 시대이고, 그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 바깥으로 내쫓긴 시대는, 라오디게아 시대말고는 그 어느 시대도 없었습니다.
라오디게아 시대는 가장 형편없는 시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많이 썩은 시대입니다.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너희가 벌거벗고, 비참하고, 눈멀고, 가난한 것을 모른다, 그 사실도 모른다.” 네,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와서 내게서 안약을 사라, 내가 네 눈을 열 수 있도록.” 그건-그건 정말로...
하나님의 안약은 만일 교회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눈을 뜨기를 원한다면 정말로 빛을 교회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빨리 하겠습니다. 자, 교회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있습니다.
자, 그 교회의 사자는 말라기4장에서 약속되어졌습니다. 그는 그 일을 하도록 약속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말씀을 다시 가지고 올 것이고, 사람들을 다시 말씀에로 돌아오게 할 메시지입니다.
탄생이 있을 겁니다. 교회는 신생으로, 말라기4장으로 인하여, 출산하게 될 겁니다.
오늘날의 교계(敎界)에서는, 두 가지 체제들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자 정말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자 저는 이 말에 여러분이 “아멘”하시는지 보고 싶습니다. 오늘날 교계에서는 두 가지 체제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 어깨에서 내려놓으려고 하는데요, 그러면 그 일을 끝낼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과 교파적인 체제인 것을 압니다. 두 가지 체제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은 영의 일을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육적인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죠?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도 싸우고, 태어날 때까지도 싸웠습니다.
교파와 말씀도 그렇게 서로를 대적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루터가 첫 종교 개혁을 가지고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여러분이 이해하실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말이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이 분들이, 만일 그들이 이것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면, 그들은 그것을 더 이해시킬 수 있고,
그것을 여러분이 바라는 곳에까지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이 씨를 심어 놓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그것을 생명으로 터져 나오게 만들기를 바라겠습니다. 보세요. 아시겠죠?
그건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산고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싸움이 있기 때문이죠.
에서가 있는데, 세상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었고,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오,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고, 제가 알기로는, 훌륭했고, 깨끗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장자 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그 장자 권을 원합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 둘은, 오늘날, 교회라는 자궁 안에 있습니다. 세계 교회 협의회라고 불리는 아주 커다란 체제가 형성되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자궁으로부터 두 자녀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 말을 표시해 두십시오. .
말씀은 말씀 신부 교회를 낳아야 합니다. 참 교회는 교회로부터 출산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신부가. 모든 시대에서 잠들었던 사람들은 그 신부를 구성할 것입니다,
그 신부는 말씀으로 나왔고, 여러분이 발에서 머리로 이르는 것처럼, 신부도 계속 쌓여집니다.
신부는 점점 더 커지고, 여러분은 더욱 더 가져야만 하는 거죠. 몸이 성장하듯이, 그리스도의 몸도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머리가 그 몸 위에 내려올 것이고, 자, 보시면, 왜냐하면 몸은 다 머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돌리게 하고, 당기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체제들은 그것에서 성장하지 않을 것이고, 왜냐하면 그건 체제이고 낳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꼬마리는 밀을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 똑같은 밭에 있고, 똑같은 물을 공급받고,
똑같은 햇빛을 쬡니다. 하나는 말씀이고; 하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 둘은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첫 종교개혁 이후부터 계속 싸워왔고,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자, 그것에 대해서는 그만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말하는 것을 확실하게 아셨죠?
[회중이 “아멘” 한다.-주]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체제는. 여러분이 어떤 체제 속에 있죠?
이제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이전 시대에 살았었더라면,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전파된 말씀들의 그 요동 하에 있었다면, 여러분은 그 시대에 어느 편에 있기를
원하셨겠습니까? 자 오늘날 여러분도 똑같은 선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완벽한 말씀을 낳으려 하고 있고, 말씀은 말씀 신부를 위하여 올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일부분인 것처럼, 남자에게 취해져 나와서, 그래서 교회는 말씀이 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 체제들이 아니고, 독단들이 아니고, 아무것도 거기에 추가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건 더럽혀지지 않고, 순수하고, 처녀 말씀 안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루터의 빛이 있던 시절에는, 교회 볼트가 막았을 때, 루터는 강경했습니다. 교회는 진통을 겪고 있었는데,
루터는 밀고 나가면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만찬이 아닙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자, 존 웨슬리 때에, 교회는 다시 진통을 겪었고, 하지만 웨슬리라는 사람이 태어났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하지만 웨슬리가 뭘 했죠?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거기로 돌아갔습니다.
다음에 오순절교 때에는,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그것에서 나오셨고 그것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나갔고, 여러분의 어머니는 스타킹도 신지 않은 채, 그 양철통을 두드리면서, 성령의 침례에 대해서
얘기하고, 낡은 기타를 치곤 했습니다. 그들은 시내전차 선로에 누워 있었고, 밤새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뻣뻣하고, 조직 안으로 다시 들어가 스스로 똑같은 쓰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그 부모의 자녀들을 부모들이 나왔던 그곳으로 다시 끌고 들어갔습니다.
부모들은 무덤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할 겁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여길 겁니다.
저는 이게 강한 말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건 진리입니다. [회중이 “아멘” 한다-주]
여러분은, “저는 당신은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요.”하고 말씀하실 겁니다.
사랑이 잘못을 고쳐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잘못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저는-저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독단에 묶어놓은 이런 체제들을 보면, 썩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진리임을 선포하시고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그 체제를 붙들고 있습니다. 아멘.
[회중이 “아멘” 한다.-주]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그게 사실임을 아시죠,
형제님, 자매님. [“아멘.”] 그건 바로 이겁니다.
그건 그것을 간단하게 말하는 방법입니다. 그건 헬라어를 분석하는 게 아닙니다,
상식을 분석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더하기 이는 사다 정도죠. 아시겠죠?
이제 우리는 그게 옳다는 것을 압니다.
자, 말씀은 신부를 산출해내야 합니다.
하지만 옛 체제는 그 모형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건 자기의 장자 권을 팔아버린 에서를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그게 또 오는군요. 저는 그것을 느낍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일 제가 미쳤다면, 저를 가만 놔두십시오. 저는 이런 상태로 기분이 좋으니까요.
저는 다른 식으로 있을 때보다 이런 식으로 있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저-저는 어쩌면 세상이 보기에는 미친 사람일 지도 모릅니다.
저-저-저는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압니다.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압니다.
자. 교회 체제는 사산아를 만들어낼 겁니다, 모든 교파들을 한데 모아서, 야곱을 미워하는 에서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죠. 아멘. 저는 여러분이 그것을, 사산아, 죽은 교파, 그들 모두를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오, 말씀을 믿는 신자들이여, 제 메시지를 따르십시오.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제 메시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진리라고 굳게 선포하시는 그분의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이 집회 후에는 가만히 앉아 계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며칠 전, 거기 웨스트워드 호(Westward Ho)에서, 그 날 아침, 조반을 들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그 밀에 대해서
어떻게 보여 주셨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게 루터를 통해, 웨슬리를 통해, 술이죠, 등등, 그런 싹들이 나오는 거,
모든 교회는 그 옥수수 대에서 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분은 그 밀 알로 들어 가셨었고,
처음에 밀 알이었기 때문에, 그 조그마한 껍데기가 나왔고, 그것은 진짜 밀알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보시면, 여러분이 밀에 대해서 모르는 분이라면, 여러분은 거기에 밀이 있다고 말할 것이지만,
그건 사실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 껍데기를 까면, 거기에는 밀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저 옛날에, 조그마한 생명의 싹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돋보기를 가지고 그것을 보십시오.
오순절이 처음에 나왔을 때, 그것은 너무나도 비슷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24장:24절에서, “그것은 가능하다면,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도 속이리라.” 하셨습니다. 그게 어떤 역할을 했죠? 알곡을 돕는 역할입니다. 맞습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주]
자, 여길 보십시오, 줄기는 안으로 들어간 알곡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술도 마찬가지로 닮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그것과 비슷해져 갑니다. 그런데 깍지는 훨씬 알곡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밀알은 아닙니다.
그건 밀의 전달체입니다.
여러분 그런 메시지들이 어떻게 산고와 함께 왔었는지 모르시겠습니까?
하지만 생명은 그 다음 메시지로 가기 위해서 바로 거기서 떠났습니다. 생명은 루터에게서 나와서,
웨슬리의 메시지로 들어갔습니다. 웨슬리의 메시지에서 빠져 나와, 오순절교의 메시지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다시 깍지를 떠날 시간입니다. 뭐가 문제죠? 자연을 봐도, 어느 형태로 보든지, 그것은 진리인 것을 선포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왜 여러분이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어쩌면, 말씀드렸듯이, 저는 미쳤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결코 제 안에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그건 절대로 제가 선택해서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게 진리라고 증명하려고, 그걸 진리로 만들려고, 그것을 확증하십니다.
저는 루터나, 웨슬리나, 오순절교인들이나, 침례교인들이나 뭐든 반대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그 체제들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그 체제를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 앉아 계신 이 사제들과 성직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체제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면 여기에 오시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공통적으로 나와서 그 말씀을 받아들일 상식적인 대담함을 가진 분들입니다.
할렐루야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소리친다고 여러분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아멘” 하고 말한다.-주] “그렇게 되기를.”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그게 진리라고 믿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진리라고 확증되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 늦게. 자 보십시오. 보세요.
성경은, “그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다”고, 시대의 끝에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녀가 자신을 예비했죠?
그분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 무엇으로 그랬을까요? 어떤 의복을 입고 있었죠? 그분 자신의 말씀입니다.
그녀는 그분의 의로움으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게 맞습니다. 아시겠죠?
환상입니다! 보세요, 이제 끝내겠습니다. 저는 마치기 전에 이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이 말을 하도록 인도했던 것입니다. 자, 그건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말을 하고, 맘대로, 자기의 생각을 집어넣어서 말한다면, 그는 위선자일 것이고, 그 일로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맞습니다. 그가 여기 계신 분들처럼 훌륭한 분들을 많이 모으려고, 그들을 속인다면,
어 그는 인간의 육신 안에 들어와 있는 마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를 존중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마귀나 거짓말을 존중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그들의 머리 꼭대기로 넘어가 버리고,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을 끌어내십니다.
시대를 통해서 모든 선지자들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택받은 자들을 붙드셨는지.
보십시오, 쭉 내려오면서 종교개혁 때까지. 마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잔다르크를 마녀라고 하며 말뚝에서 화형을
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잔다르크가 마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성도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참회를 했고,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서, 강에다 던졌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의 책들에서도 그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성도 패트릭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는 저 만큼이나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니까,
그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그의 자리도 보십시오, 저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아십니까?
순교학 책을 보시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살해당했는지. 아시죠,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장은, 주장한다고 실제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게 진리라고 증명하시느냐입니다. “모든 것을 시험하여 보라. 선한 것을 굳게 붙잡으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한 이삼 개월 전에, 어느 날 아침에, 저는 집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환상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분들 모두에게 도전합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주님께서 저에게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를 말하게 하시고, 실제로 그 일이 성취되게 하지 않은 일이 언제 있었는지 있었다면 말하라고 도전합니다.
몇 분이나 그게 진리로 밝혀졌는지 아십니까, 손 좀 들어 보십시오. [회중이 “아멘” 한다.-주] 맞습니다.
누가 반대로 얘기할 수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가 말을 멈춘다. 회중이 조용하다.-주] 그건 사실입니다.
사자(메신저)에게는 관심 두지 마십시오. 메시지를 보십시오. [회중이 “아멘” 한다-주] 그게 중요한 겁니다.
그렇죠? 그게 아닙니다. 조그마한 [테이프에 공백 있음.] 대머리인 사람을 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는 사람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저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 일이 그것을 선포하니까요.
자, 저는 사람들이 온갖 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우리는 그런 말들의 대부분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어떤 누가, 어떤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 대답은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한 말에 대해서 답을 해야만 합니다.
저는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저-저-저는 그것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습니다. 저는 다른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는 판단하라고 보냄을 받은 게 아니라, 메시지를 설교하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참교회의 모습을 미리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볼 수 없는 누군가에게 이끌려가 높은 곳에, 스탠드 같은 것 위에
놓여 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지금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감미로운 음악을 들었습니다. 보니까, 오는데,
많은 젊은 여자들이 오는데, 나이가 스무 살, 열 여덟 살, 스무 살 가량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모양의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치마를. 그들은, 가능한 한,
그 음악에 보조를 잘 맞추어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 왼쪽에서 나와서, 이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게 말하는 분을 보려고 몸을 돌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락큰롤 밴드가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오른 쪽으로 보니까, 이쪽으로 올라오면서, 다시 오는데,
여기에는 전 세계의 교회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각자 그들의 기를 들고 있었고, 출신국가의 기를.
어떤 이들은 제가 평생 본 중에 제일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교회가 올라왔을 때,
그 교회는 그때까지 본 교회 중에서 제일 추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제 재판관이십니다.
그들은 지저분한 회색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술집 여자들처럼요, 이 위에, 등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고;
그저 회색 신문 같은 것을 붙들고 있었고; 훌라춤을 추는 것처럼; 화장을 하고;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담배를 피우고, 몸을 비틀면서, 락큰롤 음악에 맞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게 미국 교회란 말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음성이, “그렇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가는데, 그들은 신문을 이렇게 붙잡고, 그들이 지나갈 때는 신문으로 뒤쪽을 가렸습니다.
저-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수고하고,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그리고 우리
목사들이 함께 일하면서 한 모든 일이...형제님들, 여러분들이 이런 환상들에 대해서 얼마나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게는, 진리입니다. 환상은 항상 사실로 증명되어 왔습니다.
제가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자, 제 마음은 산산 조각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어떻게 내가 이렇게 실패할 수 있단 말인가?
주님, 저는 그 말씀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런 결과를 빚을 수 있습니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에, 주님은 제게 왜 그 환상을 주시고, 거기에 가 있는 저를 보게 하셨습니까?
그때 저는, ‘그들도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무리도 심판을 받을 거다.’ 하셨습니다.
저는, ‘저는 바울이 전한 그대로 말씀을 전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 실업인들은 그것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죠? 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지나가는 매춘부들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옷을 입고, “미스 미합중국 교회”라고 불렸던 무리. 저-저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저는 정말로 감미로웠던 그 음악이 다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시금 그 똑같은 신부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들이 나올 사람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걸어서 지나갔을 때, 그녀는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음악에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던,
행진하며 지나갔던 신부와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거기서 두 손을 들고 서서, 이렇게 울었습니다.
제가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바깥 현관에 서서, 건너편에 있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뭐라구요? 그녀는 동일한 신부, 동일한 부류, 처음에 있었던 동일한 재료에서 나와 세워진 신부여야 합니다.
자 말라기4장을 읽고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들에게로 돌릴”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보십시오, 원래 오순절 메시지로, 말씀을 그대로 돌이킬 메시지를. 형제님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자, 이 교회는 표징을, 마지막 표징을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에서, 자 보시죠, 보시죠,
라오디게아 시대에 있는 그 극심한 산고를 우리는 봅니다. 그건 지루합니다. 그들의 교회는 거듭나고 있는 중입니다.
더 이상 다른 조직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메시지가 나갈 때마다...이 역사학자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메시지가 나가게 되면, 메시지에서 조직이 나왔습니다. 오, 알렉산더 캠벨이 나오자, 기타 모든 것들이 생기고,
마틴 루터가 나오자, 또 많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듣고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대개 하나의 메시지는 삼 년쯤 갑니다, 부흥이. 이 메시지는 십 오 년 동안이나 있어왔지만,
지금까지 하나의 조직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죠? 깍지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부분에 있습니다.
여러분 그 산고를 보십니까? 뭐가 문제인지 아시겠습니까? 오직 남은 자들만 빼내질 것입니다.
남은 자만 빼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외치고, 애를 쓰고, 밀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려고 세상에 있는 사람의
모든 호의를 버리는 것이고, 그냥 그분의 말씀 안에서 계속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게 현재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해산을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손으로 쓴 글씨가 벽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갈 준비가 거의 됐음을 봅니다. 맞습니다.
교회를 보면, 너무나도 썩어서, 교회는 갈 때가 다 됐습니다.
그런데 진통은 그 모든 것에, 세상과 교회에 둘 다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태어날 참이고, 새로운 교회가 천년왕국을 위해서 그 땅에 가려고 태어날 참입니다.
우리는 그걸 압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교회에게 주시... 이것을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곧 마치겠습니다.
교회가 가지는 마지막 표징, 마지막 메시지, 교회가 가지는 마지막 표징. 교회의 마지막 표징은,
교회가 처음에 있었던 상태들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어떠했는지 보십시오, 말라기에서부터 예수 때까지, 그 때에는. 그때를 보세요, 그리고 지금을 보십시오.
그 옛날 그들이 어떤 부패 가운데 있었는지, 옛날을 보십시오. 이 땅을 보십시오,
매번 어떠했는지, 노아의 날과 같이, 등등. 똑같은 종류의 예표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우리는 이런 모든 일들이 패턴으로 있는 걸 봅니다.
다음에, 우리는 마지막 한 가지 표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17장,28절, 예수님께서는, “소돔의 날과 같이, 인자가 오는 날에도 그러하리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소돔의 때처럼, 보십시오. 자, 예수님께서는 이것과 똑같은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우리가 읽는 창세기와 똑같은 창세기를 읽으셨습니다. 자, 마칠 테니까, 이 말을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읽는 똑같은 성경을 예수님은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교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뒤를 보고 소돔의 때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라.” 성욕 도착자들, 자연적인 순리를 거스르는 남자들.
동성애자들을 보십시오, 오늘날 그건 전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최근 신문에 난 걸 보면. 여러분은 제 사무실에 오셔서, 어머니들이 보낸, 아들들에 대해서 보낸 편지를
읽어보셔야 합니다. 작년에, 캘리포니아 주에서만도 이십 내지 삼십 퍼센트가 증가했습니다.
심지어 공무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공무원이신 분들 그 사실을 아실 겁니다.
저는 정부에서 발행한 잡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자매가 다른 방언으로 말한 후 통역을 한다. 그 자매가 다시 다른 방언으로 말한 다음 통역을 한다.
테이프에 공백 있음-주]
자, 제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건 정확히 하나님께서 일어날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통역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그건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했고, 하나님은 여기에 계시면서, 그것을 확증하시고 계십니다.
그건 진리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자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마지막 메시지는 뭐였었죠? “소돔의 날들과 같이,” 자 잘 보십시오,
이방인 세상이 불에 타버리기 전에. 이제 일어난 일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많은 미지근한 사람들이,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롯과 소돔에 있던 그 사람들처럼. 이미 거기서 나와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소돔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장차 올 아들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죠. 이해하십니까? “아멘.” 해 보십시오. [회중이 “아멘” 한다-주]
자, 멸망의 절정이 오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한 남자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한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다가갔습니다.
자, 여러분은, “그건 사람이 아니었어요.”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그건 남자 안에 있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람은 남자였습니다.
보세요, 그분은 장막에 등을 돌리고, 앉아 계시다가, “너의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녀는 당신 뒤에, 장막 안에 있나이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생명의 때에 따라 너를 방문하리라,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을 하리라.” 그러자 사라가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왜 사라가 웃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셨죠?
자, 그 날에 일어났던 일이 그겁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선택받은 무리가 본 마지막 표징을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뭘 하시든지 이 비유를 놓치지 마십시오.
처음부터 따로 나와 있었던 무리, 소돔에 있지 않았던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두 명의 천사들은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이 거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롯을 발견합니다.
그는 롯이, 동성애자들과 성욕도착자들 사이에서, 타락한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그 내용을 아시죠. 하지만 아브라함(Abraham)과 머물러 있던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바로 엘로힘 이셨습니다.
그들은 그 아래서 말씀을 설교했습니다. 말씀을 전함으로 그들의 눈이 멀게 했고, 그들은 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오늘날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따로 나와 있던 무리와 함께 계셨던 그 한 분은 아브라함 앞에서 자신이 누구신지를 보이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셨고, 아브라함 곁에 계셨습니다.
그는, “사라가 왜 웃었느냐?” 하셨습니다, 이 아기에 관한 일로. 그러자 사라는 자기가 웃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웃었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일부가 아니었다면 사라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부가 아니라면 우리도 죽였을 겁니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우리를 붙듭니다,
말씀을 의심하는 우리들과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들을.
하지만, 보세요, 일어났던 일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제 등을 돌리시고,
“롯의 날들과 같이, 인자가 자신을 계시하기 시작하는 마지막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시겠죠? 성경에서 “인자”는, 항상, 선지자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세 차례 아들의 이름으로 오십니다.
인자(Son of man),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아들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셨습니다,
“인자,”라고, 왜냐하면 그분이 하시는 일은 선지자의, 예견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자신을 계시하기 시작할 때, 그건 마지막 때가 될 것이다.”하셨습니다.
이제 잠시만 생각 좀 해 봅시다. 지금까지 한 번도...사자(使者)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피니, 쌩키, 무디, 피니, 낙스, 칼빈, 등등, 전 세계에, 이런 산고를 겪는 교회에 보냄을 받은 사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제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나간, 이름이 h-a-m으로 끝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A-b-r-a-h-a-m, 여섯 자죠... A-b-r-a-h-a-m, 일곱 자죠.
오늘날 우리는 G-r-a-h-a-m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섯 글자죠,
그런데 여섯은 세상의 숫자, 창조 날의 수입니다.
세상이 언제 전 세계적으로 설교하는 한 사람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전 세계로 다니면서, “회개하십시오, 회개하십시오! 멸망하든가 아니면 거기서 나오십시오,”하고 사람들을 불러내는
설교를 이 시대에 말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G-r-a-h-a-m, 그분이 하고 계시는 일을 보십시오,
말씀을 설교하고, 외부인들의 눈을 멀게 하고, “나오라고,” 불러내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이 인자가 자신을 계시할 때에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게 어디에 있죠?
저기 밖에 교회 무리, 세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고 그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브래넘 형제님의 영어 이름은[Branham] 입니다.-편집자.)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영적인 무리가 또 있었는데, 에서의 무리가 아니라, 야곱의 무리죠.
야곱의 무리는 아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 아들은 그 바빌론에 있지 않았고, 그들은 받아들였습니다.
이해하십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주] 아브라함, A-b-r-a-h-a-m, 그들은 그 사사자를 자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자는, 그 때가 말세임을 보여주려고 그분이 어떤 위대하고 독특한 일을 하셨죠?
그분은 사라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분별하셨습니다.
예수,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이 되신 분, 하나님의 영이 마지막 때에 다시 그 조그마한 무리에게 내려와,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할 것임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산고입니다. 형제님, 제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제발 애써 보십시오. 잠시 여러분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 동일한 분. 이런 일들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약속하셨다면, 그분은 분명히 그 일들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이제 엄숙하게, 여러분 좀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 이제 그것은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씨는 심겼습니다.
그 씨 위에 물을, 성령을 부으소서. 주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씨에 물을 주시옵소서.
제가 실수를 했다면, 주님, 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그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것을 바르게 통역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하소서.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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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산고의 고통을 겪듯이 우리 안에서 말씀의 씨앗이 발아되려면 먼저 썩어야 할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길고 긴 ~ 읽어내기에도 힘든 말씀들을 올리시느라고 더운 날에 고생하시는 걸 생각하면서
더 정성을 들여 말씀을 대하려고 자세를 잡습니다만 한번으로 다 읽어내기가 힘들어요 ㅋ~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될수록 더욱더 말씀 안에 거하는 일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느끼게 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