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글쓰기를 글로 배웠더니

[유인규]

글쓰기를 글로 배웠더니

유인규

안녕 글. 내가 하다하다 글 너에게까지 편지를 쓸 줄은 몰랐네.

하소연으로 가득 찬 너의 메일은 잘 봤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는 거잖아.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춤을 글로 배웠어요.

요리도 글로 배웠어요.

글 너는 참 억울하겠어. 너무 이해가 돼.

무언가에 젬병이거나, 서툴거나 아니면 조금 어설프거나 하면 죄다 글로 배웠냐고 하니까.

요즘 같으면 유튜브로 배웠어요 이런 말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글로 배웠어요'는 내가 생각해도 이미지가 워낙 찰떡이라서 아마 안 바뀔 거야.

너의 운명이지.

그 와중에 내가 글쓰기를 배웠단다. 뭘로 배웠냐고? 당연히 글로 배웠지.

'글쓰기를 글로 배웠다' 뭐 이런 말인데 글쓰기마저 글로 배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글로 배울 수 있겠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글쓰기를 글로 배웠더니 난리도 아니더라.

일단 중구난방에 중언부언으로 시작해서 집 나간 주제에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편집 오류 같은 급작스런 결말에 나조차 맺지 못하는 결론까지 두루두루 어느 하나 쉬운 부분이 없더라.

그래도 좋았어. 내가 쓴 글을 읽어주고 고쳐주는 것도. 직접 읽어주는 것도.

프로의 목소리는 역시 다르더라. 마치 방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어. 내 이상한 글이 좋은 글처럼 들려. 

글. 네가 억울한 거 안다.

근데 어느 정도는 네 잘못이야. 뭔가 대표성을 갖는 것 같은 네 이름. 글. 그 이름 때문이야.

내가 해보니 글쓰기는 글로 배우는 게 아니라 쓰기로 배우는 거더라고. 명사 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동사 쓰기가 중요한 거.

요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요리를 하는 게 중요하고, 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춤을 추는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지.

하나 더 있네. 쓰는 거 너무 중요하지. 근데 쓴 걸 고치는 것이 또 그만큼 중요하더라.

난 자꾸 고쳐 쓴다는 게 뭔가 진실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했어. 고치면 고칠수록 자기의 실제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한 거지. 예를 들면 히틀러가 에세이를 쓰는데 쓰고 고치고 또 고쳐 쓰고 하면 거창한 인류애에 대한 에세이를 쓸 것 같은 거야.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런데 고쳐쓰기는 그렇게 거창하거나 거짓이 덕지덕지 붙는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어.

그냥 내가 삼계탕을 만드는데 닭고기랑 돼지고기랑 소고기를 모두 다 넣고 끓이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는 거.

닭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메추리를 넣었다거나, 아니면 닭을 통째로 넣어야 하는데 다 썰어서 넣은 게 아닌지 살펴보는 거.

닭은 너무 작은걸 넣고 대추와 인삼만 잔뜩 넣어서 대추탕을 만든 게 아닌지 살펴보는 거.

그런거더라고. 적어도 레서피대로는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아주 기본적인 과정.

그래서 일단 쓸 거야. 그리고 또 여러 번 고칠 거야.

앞으로 많이 쓰고 고치고 할건데 그래도 글 네가 소외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결국 쓰고 고치는 대상은 글이니까.

글쓰기가 남기는 것은 결국 글. 너니까.

[민금순]

편하고 재미있게 쓰셨는데,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심오한 글입니다~

수업 미뤄졌다고, 과제도 유예를 받은 것처럼 안심하고 있었더니, 죽비를 맞은 듯 번쩍! 합니다.

정말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는 아직도 일이 안끝나서~~ ㅠㅠ

아! 카톡 확인해 보니, 과제 마감도 다음주로 미뤄진 것이 맞네요. 아직, 손을 못대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