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시골에서 가장 흥겨운 날은 언제일까?
아마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 아닐까? 초등학생이 있는 집이건 아니건 마을 사람들한테 가장 흥겹고 기다려지는 날은 운동회 날이다. 일찍부터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바람에 날리고 하얀 횟가루로 백 미터, 사백 미터짜리 선이 그어지고 학생들보다 군것질 장수가 자리 잡고 오뎅 솥에 불을 넣고. 그래 솜사탕 장수가 자전거에 달린 기구를 챙기기 시작한다. 아이쿠 빼먹을 번했네. 풍선장수는 수소가스를 풍선에 넣기 시작하면 잔치 분위기가 살아나지.
하얗고 까만 빤스, 사리마다라고도 했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사리마다 밑단에 고무줄을 넣은 거는 여자애들, 당시 쓰던 말로 가시나 혹은 지지바(사투리도 너무 우악스럽지 않은가) 사리마다를 입고서 운동장에 모이기 시작하면 연이어서 자리를 깔고 가지고 온 보따리를 푸는 건 학부형들이다. 아주 온 식구가 총 출동한 게 동네잔치가 아니고 뭐겠어. 그뿐인가, 자식들 출가시킨 뒷집 인대 할배네도 건너 마을 식이네는 아직 젓을 갓 뗀 두어 살 베긴대도 등어리에 업고서 이마에 이고 온 보따리를 푼다. 선생님들은 호루라기를 연신 불면서 아이들 정열 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아참 스피커에서는 교감선생님이 계속 “아아 마이크 실험 중입니다.” 당시 스피커는 지잉~ 그러던가 귀청이 떨어지게 삑하는 잡소리를 내며 교감선생님을 곤혹스레 했지.
어느 정도 운동장이 마을 사람들로 차나 하면 천막이 쳐진 본부석에 파출소장님, 우체국장하고 이장님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악수를 나누며 자리를 잡겠지. 교육장님이 빠지면 안 될 테고. 어느새 운동모자를 쓴 국회의원이 운동장을 돌며 마을 어른들한테 꾸벅 인사를 드린다. 하여간 정치인이란 이제나 그제나 눈치 하나 빠르지. 이런 운동회 날 왕왕 울려 퍼지는 노랜 뭐가 좋을까? 쌍두의 독수리, “니 날 모리나 춘자야” 하는 경복궁 타령(아이다. 경복궁타령은 에~ 정구다마를 돌려라 에~에)이 기억이 난다만, 그래 뭔가 신나는 행진곡을 틀었을 거고.
운동장에는 머리에 푸른 띠를 두른 청군과 하얀 띠를 불끈 맨 백군이 좌우로 갈라져 입장하기 시작하면 운동회의 막이 올라 가는 거라. 대개 백 미터 달리기로 시작하지 아매. "니는 몇 등 했노?" "가마이 있그라. 나는 바쁜기라." 대기 줄에서 준비하는 게 아니라 연신 응원단, 아니 마을 어른들이 자리 잡고 있는 관중석을 훑어보기 바빴다. 내 차례가 오자 달리기 시작했는데.....가마이 보자 나는 꼴등인기라. 점심 때 할매하고 엄마가 기다리는 자리에 얼른 가서 싸가지고 온 김밥이랑 삶은 밤하고 세모난 비닐에 빵빵하게 들어 있는 사이다를 살피느라 바쁘다. “야가 뭐하노? 꼴등한 주제에 니 때문에 동네 창피 해 죽겠다 이노므 자슥아야” 일등 이등이 문제가 아니라 내 머리 속에는 따라온 동생 둘이서 맛난 김밥하고 삶은 밤을 미리 먹었뿌랬나 걱정이거든. 달리는 내내 엄마 쪽에 시선을 두고서 달렸으니까 꼴등이야 맡아 놓은 거지 뭐. 그땐 동생도 딱 싫은 기라. 내 꺼 뺏어 묵은 동생한테 눈을 세모꼴로 째려보았으니. 그예 엄마한테 소견머리가 그게 뭐꼬하고 등판때기에 맵싸게 얻어 맞았지 뭐. 뒷집 기출네 아재가 불콰한 얼굴로 “저누마는 사이다에 신경 쓰느라 꼴등으로 들어온 기라. 이놈아, 선수가 사이다에 신경 쓰면 우야노” 맞는 말씀, 내가 살아온 내내 사이다에 신경 썼더니 이 모양 이 꼴이 아닝교. 엔간하면 받아 적으이소. 훌륭한 가르침이 아니고 뭔교? 세상에는 사이다에 신경 쓰느라 자기 본분에 어긋난 짓하는 사람 어디 한두 사람인교. 사회가 시끄러워지고 부품 사기 친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 때문에 올 여름 지낼 일이 걱정이다 그치요?
왁자지껄하며 술판이 벌어지고 온 동네가 학교 운동장에 모여 앉아서 잔치판은 흥겨워 가는데. 뭐라뭐라캐도 운동회의 백미는? 울 벗님네들 맞춰보소. 바구니를 겨냥해서....모래를 잔뜩 넣은 헝겊주머니를 던져서 깨뜨리는 거? 사백 미터 계주? 이인삼각 달리기? 줄 당기기? 글쎄, 내 생각은 달리기를 하는 데 중간쯤에 놓은 문제를 펼쳐서 할배를, 아줌씨를, 자기 엄마를 데리고 달리는 게 어떨까 싶네. 그럼 니는 뭘 뽑았노?
그래 내 이야길 해볼까. 그날 내가 뽑은 거는 처녀를 데리고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라는 거였어. 하늘이 노랗더군. 갑자기 처녀를 어디 가서 구해 오는가 말이다. 뜬금없이. 근데 내가 누군가. 운동장을 휙 둘러보는데 울 담임선생님이 본부석에 있는 풍금 앞에 서 계신 거 아닌가. 울 학교에서 처녀 선생님은 딱 한 분, 울 담임선생님이었거든. 잽싸게 선생님을 나꿔채고는 머리띠를 풀어 다리에 묶고서는 달린 거라. 그때까지는 꼴등이었는데 선생님하고 달릴 때는 앞에 아무도 없는 무인지경이었지. 사실 결승선 테이프도 눈에 보이지 않았어. 십리건 백리건 그냥 선생님하고 끝없이 달리고만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걷는 길이라매. 생각해봐 달리기 했다 하면 평생 꼴등만 하던 나였지만 다른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 저 할매라든가 엄마하고 이인삼각하고 달렸으니까 내가 일 등하는 건 ‘따논당상’이었어. 운동회가 끝나고서 내가 일 등한 거는 두고두고 화제꺼리였어. 원체 운동에는 소질이 없었거든. 거기다가 사이다에 신경 쓰는 놈이 일 등은 가당키나 했을까. 그날 난 담임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어. 갑자기 달려와서 손을 잡고서 이인삼각이니 해가며 달리느라 숨이 차서 얼굴도 바알갛게 달아오른 선생님이 부끄러워서 그런 거라고. 그걸 지레짐작으로 날 좋아해서 그랬다고 말이야. 하지만 내 첫사랑은 너무 허무하게 끝났어. 그해 겨울 방학이었던가 울 선생님이 시집을 건 거야. 정말 너무 밉더라니까.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내가 스물 중반일 때 그 선생님을 만난 거야. 기억이 날 턱이 있나만. 우리 가게에 들르신 거야. 네가 그때 하시면서.... 담임선생도 몰라본다고 타박하시던 선생님은 후덕한 중년의 모습이었어. 내 기억에 남아있던 새초롬하면서도 여린 모습이 아니었어. “말이 돼, 어떻게 내 첫 사랑이. 뭐 이래” 그날 난 실연의 슬픔 땜에 엄청 술을 먹었어.
이야기가 다른 길로 들어서네만 이건 빼먹을 수가 없지. 고등학교 입시에 체력평가가 있었어. 백 미터 달리기, 멀리 던지기, 넓이뛰기, 턱걸이 뭐 이런 거였어. 점수가 상당했어. 각 5점 만점이라 합이 25점. 난 기본 점수 각 1점에 합이 5점이니 20점이나 차이가 났거든. 합격하는데 비중이 꽤 컸을 거야. 서울로 보내달라는 내 청을 거절한 부모님한테 불만이 있었던지라 공부는커녕 시험 치러 가는 것도 겨우 등 떠밀려갔으니. 친구하고 둘이서 달리는 건데. 내 친구는 평발이라 내보다 더 시원찮았어. 출발하고서 겨우 반 틈이나 왔을까 내 앞엔 아무도 없는 무인지경이었어. 내가 일 등이었다니까. 갑자기 뒤에서 친구가 그러대. “야 잠간만” 돌아보니 그 녀석 운동화 끈이 풀려서 끈을 묶고 있는 거야. 시험 와중에 말이야. 나는 그냥 서 있었지 뭐. 운동화 끈을 다 묶은 걸 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 결승선에 서 계시던 체육 선생님이 둘을 부르더라고. 수첩에 내 이름하고 그 친구 이름을 적고선 입학하게 되면 보세. 하는 거야. 우리 둘의 우정이 남달라 보였던가봐. 그 선생님은 뭘 모르셨다니까. 나나 그 친구나 어차피 달려봤자 기본점수밖에 못 받는 체육 열등생이었거든. 친구 청을 외면하고 달려봤자 기본 점순데 뭐. 그날 몇 초 끊었냐고? “궁금해? 그럼 오백 원” 난 23초, 친군 24초 “왜 날라댕기는 돼지라고. 들어본 적 없어” 후후 나는 늘 이랬어. 그 친구랑 요즈음도 잘 지내. 이 이야길 꺼내면 무척 싫어해. 그런 적이 없다고. 그 친군 체육 점수 땜에 울 학교 입학시험에 일 등을 놓쳤지만 지금은 날라댕기는 메시야. 특히 축구는 선수 급이고. 군대에 가서 부사단장 숙소에서 돼지치고 맨날천날 한탄강에서 수영만 했거든. 노력하면 운동도 일취월장할 수 있대요.
누구엔가 운동회 추억이 없을까? 만국기가 날리던 파아란 하늘하며 달음박질하던 하얀 모래 운동장, 바톤받기하다가 떨어뜨린 기억이며 내 삶은 밤을 하염없이 까먹던 내 동생. 세모난 비닐주머니에 빵빵하게 들어 있던 사이다의 달콤하고 싸아한 맛이. 손뼉을 치며 응원하던 동무들. 우리 운동회는 우리만의 잔치가 아니었어. 놀이가 궁하던 가난한 시절의 어른들한테도 운동회는 한 바탕 큰 잔치였어. 그래, 술에 거나하게 취한 영식이 큰 아배는 꽹가리를 신명나게 쳤지. 깨갱깽깽~하며 돌아가던 영식이 큰 아배의 춤사위가 생각 나. 유달리 신명이 뻗치던 그분이 끝내 비틀거리며 쓰러지데. 영식이 큰 아배한테 동네 어른들이 그러대. "이 사람아, 그런다고 아 낳다가 명줄이 끊긴 자네 부인이 돌아올건가?" 아매 그랬지. 울 또래를 보면 유달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엿가락 하나라도 쥐어 주시던 맘 좋으신 영식이 큰 아배한테 이렇게 마음 쓰린 추억이 있었을른지 우리는 몰랐지.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며 잠을 설치며 기다렸던 운동회의 뒤안길에는 누군가의 아프고 시린 추억이 있었을 테고 달려도 달려도 숨이 차질 않던 어린 우리들의 꿈도, 늘 푸르던 우리의 기상도 이제와 돌아보면 달콤하기만 했을까? 흘러가버려서, 잃어버려서 더욱 애리고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을 거야.
내 이야기 밸로라고? 그럼 어떡하지. 그만 둘까?
참 이제사 생각 나는 거 하나. 선생님과 결승 테이프를 끊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노오란 풍선을 주더군. 그걸 선생님한테 건네주다가 놓쳐버렸어. 바람따라 하늘로 높이높이 올라가던 풍선은 지금 어디쯤 갔을까? 우리들의 박하사탕처럼 달싸하면서도 그 안의 또 다른 맛. 색바랜 사진첩 안의 내 모습, 누렇게 바랜 지난 세월 같은 거, 그래서 더욱 보고싶은 추억. 아니, 다 큰 어른이 되어 돌아온 옛날 놀이터에 서 있는 기분을 그대는 알까? 아련하고 그립지만 이미 지나온 세월 같은 거, 돌아 갈 수 없어서 더욱 애닳은 이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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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야기가 밸로라고요? 아이시더...
추억담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장면 장면들을 눈앞에 그대로 펼쳐진 듯하게 표현하신 필력. 대단하십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