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4-08
수 용(受容)과 비 판(批判)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마태복음 7:1-2 -공동번역성서).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독선과 아집에 빠질 때가 많다. 문을 닫고 다른 이들의 말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자리에 서기를 좋아한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비판만을 일삼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 자신의 먼저 살핌을 통한 자기 스스로의 세워감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때에는 나의 전 이해를 뒤로하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통한 자기의 변혁이 요청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예수도 자기에게 나아오는 서기관, 바리세인들을 보며 저희들이 말하고 가르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는 수용과 비판을 동시에 지니는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그의 설교 “단단한 지성과 부드러운 감성”에서 어느 불란서 철학자는 말하기를 성격에 뚜렷하게 대조되는 요소를 지니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강할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강한 자는 뚜렷한 대조적 요소가 생명 있게 혼합된 것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게서 보통 이 대조되는 것들 사이에 균형을 발견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러나 최선의 삶은 대조되는 것을 건설적인 조화 속에서 창조적으로 융합시킨 삶이다. 철학자 헤겔은 진리라는 명제는 그 대조 가운데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불시의 융합 속에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행동의 지침으로써 “너희는 뱀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해야 한다”(마태복음 10:16 -공동번역성서)라고 말씀하셨다. 한사람이 뱀과 비둘기의 성품을 함께 지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예수님이 기대한 것은 그것이었다. 우리는 뱀의 예리함과 비둘기의 양순함, 예리한 비판과 부드러운 수용을 함께 지녀야 한다.
오른손으로 체벌하고 왼손으로 품안에 끌어안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데, 언제부터인가 사람 사이에서 개인주의와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지으려는 태도, 이기주의가 우리들 곁을 찾아들게 되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도무지 대화하려 들지 않는다. 열린 마음 그렇다고 두루뭉실이 아닌 비판을 통하여 여과시킬 수 있는 수용이 필요하다.
수용과 비판은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야될 앞과 뒷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이야기
마 침 내 하 나 됨 을 위 하 여
밀알의 집 전도사님의 말씀을 따라 수통리 적벽강(赤壁江)에 우리들은 함께 이르렀다. 그곳 강가에는 이미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를 정하고 함께 모여서 강과 그 건너의 위로부터 드리워져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앞에서 작은 화지(畵紙)에 그 큰 모습을 담고들 있었다. 나도 자리를 정하고 전방을 주시하는데 나의 작은 눈으로는, 초가을 날에 펼쳐져 보여지는 높다란 바위를 군데군데 감싸고있는 그 소나무는 검푸르고 힘이 있었다. 그것은 바위의 기세에 눌리지 않는, 그 사이에서의 나무의 세월이 담겨진 바람 속에서의 기상(氣像)이었다. 나는 한 동안 그곳의 커다란 벽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면벽(面壁)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받아든 원고지에는 막상 아무 말도 쓸 수가 없었다.
오전 동안은 대부분 앞의 산과 강을 보면서, 그곳의 여러 다른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과 다르게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함께 갖는 모임에서 티셔츠를 하나씩 선사 받았다. 그 앞자락에는, 2004 금강축제, 江과 사람, 장애우와 함께 달리기, ......, 공동주관: ...... 희망의 언덕, ......,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江과 사람이라는 글귀를 보며 여유 있게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사람들의 문명(文明)이 발생했음을 다시 기억하게되었다. 그 옷을 입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이 어떻게 달릴 수 있겠는가? 아니 달리기라고 말하기보다는 함께 걸어가자는 모임이었다. 두 세 명씩 손에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면서, 무리를 이루며, 앞의 사람에게서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걷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휠췌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뒤에서 밀어주면서 걷는다. 예전의 서울 올림픽 경기 때에 불렀던 노래가 생각되어진다. “손에 손잡고 벽(壁)을 넘어서......”, 그리고 전에 얘기했던 시인 김남주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도 또 생각되어진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어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어차 건네주자. 해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가자. 아픈 다리 서로기대며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앞에서 얘기했던, 우리들의 걷는 이 걸음걸이가 앞이 꽉 막힌 적벽강(赤壁江)을 바라보며 멈칫멈칫하는 것이 아니라, 유 선생님이 꾸려 가는 “희망의 언덕”으로 서서히 오를 수 있는 발길들이 되기를 나는 바랬다.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이 작은 무리들에게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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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라홍채
강재홍
최성재
최영애
지명수
정무래.박정숙
박종만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희망의 언덕에서는(회장:유상현) 금산밀알의집, 새터공동체 그리고 이웃 장애인 분들과 함께 갖는 목요일 모임을 7월 22일에는 시골가든에서, 7월 29일은 군북교회가 함께 해주셔서 신안계곡에서, 8월 12일은 제원주유소에서 각각 모임을 가졌습니다. 군북교회(한성국 목사님. 박형순 전도사님)에서 새터공동체 식구들을 위하여 매주 차량운행으로 같이하여주셨습니다.
# 제원적십자사 대신 모임이름을 전부터 유선생님이 사용하여 오시던 희망의 언덕으로 바꾸어서 표현하였다.
* 7월 23일에는 한밭렛츠가 새터공동체에서「실미도」영화상영을 하였습니다. 밀알의 집 식구들도 함께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 8월 5-6일에 대흥교회 베데스다 여름캠프에 밀알의 집 식구들과 함께 공동체에서 10명이 참여하였습니다. 여름캠프를 위하여 대덕교회에서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 8월 21일에 금산군 부리면 적벽강에서 있은 금강문학제 가운데 장애인과 함께 달리기 모임에 공동체에서 4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주식회사EG(이광형).김기홍.정무래.최영애.강재홍.라홍채.군북교회(박형순).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8인).대전지역사회선교협의회.지명수.채윤기(박현실).세광교회.진명구.향림원(2인).기물리교회대덕교회(이중삼외3인).박종만.분평청북교회.대전노회.대한민국H.I.D설악동지회(김종명외21인).대덕교회.옥천동부교회.추부제일교회.라학채외1인.향림원(2인).찬미교회.신건태.대전일보(김세원외2인).그리스도의집.김철우외1인.향림원(3인).양동교회(최영성외4인).성남교회.김종택외3인.최선희.이정애.남상륜(김성숙).추부소방서(11인).수당교회(노경섭외1인).영광교회장로회(6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