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줄과 머리빗의
크리스마스 선물 동화.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내가 죽을때까지 기억하는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1999년이다.
크리스마스 성탄 성야미사를 하고
돌아온 새벽 3시경 아들들과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봉투 하나를 준다.
피곤하니 자고 난 다음에 본다고 했지만
한사코 지금 꼭 봐야 한다고
남자 셋이 싱글거리며 아우성이다.
그 봉투 속에 담겨진
전설같은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
1995년 남편의 부도로 인해
경매로 집을 뺏기고 단칸방으로 나갔다.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3년간 병원 신세.
뇌치료가 끝나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3년 뒤 시아버지가 똑같이 쓰러져
뇌치료를 마치자마자 내게로 오셨다.
기가 막힌 현실 원망과 눈물 바람 속에
월세방 양쪽벽 끝에 놓여진 병원침대 2대.
남편과 시아버지 두사람 대소변 병수발에
하느님을 찾고, 수없이 엄마를 불러댔었다.
마루바닥에서 중고등학생인 두 아들 보며
나 또한 여자로서 숨죽여 산 희생의 세월.
고생하는 아내에게 꼭 집을 사주고 싶어
얼마간 용돈달래서 샀다는 꿈같은 복권당첨!
그렇게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의 탄생!
또또복권, 2등, 3등 당첨금 1억과 5천만원.
왠만한 빚을 조금 갚고, 지금 사는 중계동
주공아파트 17평에 내 집으로 이사했다.
작은 아파트이지만, 기쁨은 한이 없었다.
성당 감사헌금과 학교 친목회에 일부를,
친정 6형제, 시댁 6형제들에게 조금씩
복권 축하금들을 기쁘게 나누어 드렸다.
두 아들에게 큰 목돈을 주었다.
작은아들은 은행으로 가서 저금통장을,
학원 문턱도 못가본 재수생 큰아들은
바로 컴퓨터를 구입하고 입이 벌어졌다.
시어머니, 쌍둥언니 시어머니께도 드리고
나눌수 있는 사람들 친한 친구들에게도
크게 식사대접에 선물들을 안겨주었다.
난생 처음 그렇게 가진 돈을 나누어주고
풍성하게 식사대접하며 나는 부자였었다.
사람마다 복터진 여인의 손을 잡으려했고,
고생하더니 복받았다고 기뻐들 해주었다.
있을 때 해야지, 있을 때 나누어야지!
아, 고생의 끝은 분명히 있긴 있구나!
축복과 은총이 충만함을 비로소 느끼며
복권으로 불화설, 도망설, 자살설 등에
휩싸이지 않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돌아왔다.
성당 성탄미사를 가족과 함께 드렸다.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예수님께 고개숙여
절하는 손자와 가족이 고맙기 그지없다.
신부님과 복사, 전례자, 봉사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산타분장으로 웃는다.
신선하고 사랑스러우며 활기가 넘친다.
손자가 있는 아들 내외 집에서
크리스마스 케잌에 촛불을 밝히고
함께 주님 탄생 축하 노래를 불렀다.
가족들끼리 선물들을 주고 받으니,
전설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떠오른다.
힘든 시간 잘 견뎌와 지금 편안해진 내가
내 삶의 그림이 참으로 예쁘다.
첫댓글 사람들이 말하길
'전설 속의 여인 '이라구 하지만
나는 늘 아들들에게 죄스럽다.
방없이 마루에서 버티며
중고교 시절 힘겹게 보내고
아버지 할아버지 병 신음 속에서
엄마 안쓰러운걸 본 아들들이
언제나 나는 걸린다.
그래서 야단도 못치고
제 혼자서 자란 애들
지금 잘 커준 아들들.
그래서 며느리 손자에게
더 고맙구 이뻐서
더 잘해주려고 한다.
맨 마지막 사진.
큰 아들과 손자가 집에 와서
함께 조립하여 세워준
소형 크리스마스 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