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원에 대하여 성악 기원설,기악 기원설이 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성악 기원설은 사람의 감정이 고양되면 억양도 더욱 고양되어 결국은 노래처럼 되어 음악의 기원이 되었을 것이라는 논리로써 언어 기원설,감정 기원설과도 관계가 있다.그래서 성악은 우선 사람의 목소리로 뱉어내듯 토해내는 절규가 될 수 있으며 마치 내면의 감정이 폭발되어 신음하듯 목으로 터져 나오는 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성악은 거기에 가사까지 수반되어 있으니 노래가 얼마나 강력한 호소력과 구체성을 지닐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악의 중심은 노래(Song)이다. 노래는 어느 민족,어느 시대에도 있었고 그래서 노래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일에서는 기악 중심의 고전주의 시대가 지나고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민중 계층에서 노래를 선호하는 문화현상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 당시 부르던 노래는 대부분이 민요풍으로,주로 가정이나 사교적 모임에서 단순하고 쉽게 불렀다. 따라서 소박하고 단순하며 모두가 공감하고 쉽게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당시 작곡가들도 이러한 문화현상의 영향을 받아 민요의 특징을 살려 새로운 시에 민요풍의 새 노래를 많이 썼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곡들은 시가 잘 전달되도록, 노래는 단순성,가창성,자연스러움에 중점을 두었고 반주는 노래를 도와주는 정도의 간단한 화성적 반주가 주를 이루었다(우리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의 노래를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이처럼 음악보다는 시의 낭송에 더 중점을 두었던 슈배르트에 이르러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되는데 슈베르트는 시와 음악이 혼연일체가 되도록 시의 해석가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 19세기 슈베르트의 예술가곡은 어떻게 한 차원 더 높게 업그레이드 되었을까. 노래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 첫째는 시(가사)이고,둘째는 노래의 선율이며,셋째는 반주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그 경계선을 찾아볼 수 없도록 합일(合一)된 상태의 경지에 도달한 노래를 특별히 예술가곡(Kunst Lied)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결합된 상태가 아니라 화학적으로 융합된 상태,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그 세 가지 요소가 함께 용해되어 제4의 새로운 물질로 태어난 상태의 노래를 예술가곡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와 음악(노래와 반주까지)이 혼연일체가 되어 빚어내는 전혀 새로운 세계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으며,시의 문학적 이미지가 작곡가의 마음속에서 용해되고 음악적으로 변용되어 새로운 예술로 창출된 경지의 노래가 곧 예술가곡이다. 슈베르트는 시의 성격,분위기,상황을 완벽하게 포착하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곡가였다. <들장미>처럼 귀엽고 아름다운 민요풍의 선율을 사용한 노래, <세레나데>처럼 감미로움과 우울함으로 가득찬 노래도 있다.
슈베르트가17세 때(1814)괴테의 시에 작곡한 <실 잦는 그레첸,Op.2,D.118>에서 피아노의 오른손이 아래위로 오르내리는16분음 음형은 실을 잦는 베틀의 움직임을 연상시켜주고,왼손의 반복음은 베틀의 페달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 작곡한 <마왕(Erlkong),Op.1, D.328>역시 시적 현상과 행간에 담겨진 분위기를 피아노로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슈베르트의 피아노 반주는 단순히 노래를 반주하기 위한 반주가 아니라, 시의 내용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시와 음악이 융합하여 예술가곡이라는 제3의 예술로 태어나게 하고 있다. <출처:김승일,‘클래식의 오해와 편견,PP.22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