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교과서 <소학小學>을 펼치면 '택우교지유소보익擇友交之有所補益' 이란 긴 관용구가 있습니다 한문학에서는 관용구라 하지 않고 고사성어故事成語로 달리 부르지요 그렇다면 '택우교지유소보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생각보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벗을 사귈 때 반드시 잘 가리면 도움과 이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말씀하셨습니다 "치 사귀고 내리 사랑하라"고요 '만일 사람을 사귀려 한다면 자신보다 높게 사귀고 다른 이를 사랑하려 한다면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사랑하라' 이 말씀 뒤에 사설을 덧붙이셨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높은 사람에겐 배울 게 있고 낮은 사람은 사랑을 고파한단다'
사람의 생각은 거의 비슷합니다 배움이 높으면 풍김이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무엇인가 베풀 게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주고 싶어도 줄 게 없지만 만약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 남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이는 학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운 게 있어야 가르칠 수 있으니까
벗을 사귀려면 사귈 벗에게서 단정함을 찾아내야 합니다 단정에는 드러난 단정이 있고 드러나지 않은 단정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단정은 표정과 언어와 몸가짐에서 찾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단정은 마음의 씀씀이에서 찾습니다 위로 얼마나 정중하고 아래로 얼마나 겸손하느냐지요
나의 은법사이신 고암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시기 두 해 전이니까 벌써 35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가 1986년 여름이었지요 서울 종로 3.1독립 성지 대각사에 잠시 주석駐錫하실 때였습니다 큰스님은 88세 늙은 몸을 이끌고 새로 지은 3층 법당으로 오르셨지요 어린 상좌의 손을 꼭 잡으신 뒤 마루에 앉아 말씀하셨습니다 "불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큰스님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잘난 체를 했습니다 "네, 스님. 바로 이 마음에 있습니다" 큰스님의 표정은 담담하셨으나 말씀은 매우 다르셨습니다 "자네 말도 맞긴 맞으나 불교의 장래는 벗에게 있지" 나는 어리둥절한 채 여쭈었습니다 "벗에게 달렸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도반의 힘이 8할八割이니라"
큰스님 말씀이 그대로 이어졌지요 "도반道伴이 곧 '길벗'이니라" 내가 여쭈었습니다 "위로는 불보살님이 계시고 역대 조사, 천하 종사와 큰스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도반을 말씀하시는지요?" 그 당시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자비제일로 일컬어지던 분이 바로 고암 스님이셨는데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불보살이 벗이고 천하 종사와 역대 조사가 벗이며 먼저 가신 선지식이 벗이고 함께 닦는 동료가 벗이며 후학이 두루 다 벗이고 화주 시주가 모두 벗이다 이들 어깨에 불교가 있느니라"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이셨습니다 "나이를 떠나 같은 길을 걷는 자는 한결같이 모두가 벗이니라"
은법사 고암대종사 말씀을 빌리면 8할, 곧 80%가 도반의 힘이고 1할인 10%가 스승의 가르침이며 나머지 10%가 제힘自力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가자들끼리 도반인 곳이 남방불교/초기불교라면 북방불교/대승불교권에서는 생명을 가진 자 모두가 스승이고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곧 도반입니다
벗에 좋은 벗이 따로 있고 나쁜 벗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한 녘에서 보면 믿음을 등진 듯싶은데 나중에 보면 그가 좋은 벗이었고 어찌 보면 그리 좋을 수 없는데 아첨이 되고 배신이 되는 요즘 정치인들을 보며 취우取友와 함께 택우擇友가 얼마나 어려운가 짐작하게 합니다 이런 글을 동몽에게 가르쳤으니
동몽선습에서는 말합니다 '싹수가 노랗다면 애초에 접으라'고 불교, 특히 대승불교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다 벗이고 스승입니다 그렇다고 대승불교는 위대하고 초기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이 초졸憔猝한 게 아닙니다 그런 논리라면 어른은 장하고 어린이는 초졸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세상에는 귀인貴人이 있습니다 이 귀인이 어디에 나오는 글일까요 동몽선습 첫머리에 있습니다 사사오송으로 옮긴 글과 원문을 곁들입니다 -----♡----- 높은하늘 낮은대지 그사이에는 일만가지 생명들이 존재하는데 그와같이 하고많은 생명붙이중 으뜸으로 귀한것은 사람이로다 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最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