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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7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제목: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설교를 위한 묵상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첫 시간에 소개했다: 구원자, 후견인, 삶의 목적, 롤 모델, 왕. 둘째 시간에는 그리스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십자가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배경 이야기를 다루었다. 네번째 시간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하여 다루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성경지식과 신앙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역시 어떤 배경 가운데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가가 중요하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린 양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어린 양은 왜 죽는가? 그것은 세례 요한이 말한 대로 자기 백성의 죄를 지고가는 것이다. 그들의 죄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죄는 왜 없어져야 하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죄가 무엇이며 그 죄가 사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두 가지 다른 관점이 있다. 이것은 사실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기준이기도 하며 그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평이기도 하다. 나는 그 두 가지 이야기를 비교하여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룰 것이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관련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소명을 깨닫게 할 것이다.
설교 개요
1. 리뷰 –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2. 어린 양의 죽음과 하나님의 백성
3.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4. 어린 양과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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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뷰 –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안녕하십니까? 설 명절을 앞두고 신우회 예배로 모였습니다. 우리들의 모임은 성동구청 기독신우회입니다. 여기서 기독(基督)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저는 이 공부를 시작할 때 예수님에 대하여 다섯 가지 키워드를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면 좋을까에 대하여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Savior)이시며, 후견인(Guardian), 그리고 삶의 목적(Life Goal)과 롤 모델(Role Model), 그리고 만왕의 왕(King of kings)이십니다. 우리의 공부는 이 각각의 키워드에 대하여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그 의미는 보통 구원자라는 의미로 이해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맡기시고 보내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기실 때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공부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이며 예수님은 그 일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그리고 그 일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아마 이 공부를 하면서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 세상에 특별한 일을 하라고 보내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바로 그런 실천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할 때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이야기를 배경으로 이해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어떤 이야기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것이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두가지 관점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에 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 예수님을 가리키는 전용어 같지만,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내 장자,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지난 주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관심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배울 때 그것은 단지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임을 확인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부는 결국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과 깨우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주제를 다루겠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2. 어린 양의 죽음과 하나님의 백성
성경에서 한글로 ‘어린 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20개의 본문이 나옵니다. 그 대부분은 제사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을 가리킵니다. 레위기에 어린 양을 바치는 때와 방법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레위기 5:5~6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 전에 어린 양이나 염소 같은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목적은 허물을 사함 받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왜 자기 허물을 사하는 속죄의 제사를 드렸을까요? 죄와 허물을 사함 받는 것이 왜 그들에게는 중요했을까요? 이것은 성경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본래 애굽 즉,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그 백성을 건져내시고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식에서 맹세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5~6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먼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애굽기 2:23~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고통에서 건지실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그의 자손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것이며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5:13~14).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세기 12: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는 계획을 세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아담 부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그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고 그들의 죄가 땅에 가득할 때는 사람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결국 창세기 11장에서는 바벨탑을 쌓은 인간이 온 세상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의 축복이 될 사람 아담 부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앞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이 그 인간의 실패를 다시 바로잡으시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부르신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는 인간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있을 때 그 일이 실현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성막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거하시면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살다가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이 다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또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있도록 그들의 죄를 대속하는 방법을 제정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제사제도입니다. 어린 양은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 그들의 죄가 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과 함께 일하실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요한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쳤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다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구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는 하늘이 열리고 악한 자들이 심판을 받으며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고 황무지가 장미꽃 반발한 평원이 될 것이라고 예언자들이 말했습니다. 그 예언을 믿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신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를 사하실 분이 오신다면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 가운데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린 양의 피로 죄를 사함받야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려면 죄를 모두 깨끗이 용서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실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시고 새로운 창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 베드로는 교회에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문제는 그들의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입니다. 그 헛된 행실은 죄를 말합니다. 죄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계획하신 그 목표를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언약을 통해 계획하신 것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아담처럼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것이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실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고 그들은 비참하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유업에 동참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유업이며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나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세상의 축복이 되는 삶입니다. 그것은 옛적에 아담이 처음 받았고 누리던 삶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성전 백성으로 살던 영광입니다.
그런 이유로 어린 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얻은 구원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제사장의 특권을 누리며 동시에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우리도 그 위대한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린 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된 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보여줍니다.
4. 어린 양과 하나님 나라
성경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환상이 나옵니다. 밧모섬의 요한이 환상 가운데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흰 옷을 입은 제사장의 모습이고 또 다른 경우에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요한계시록 5:6~7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사자의 모습으로도 묘사됩니다(계 5:5). 영국의 작가 C. S. 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에서 사자 아슬란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예수님의 형상은 바로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으로 나타나는 예수님이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옆구리에 피를 흘린 흔적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상처를 입고 죽임당한 어린 양은 온 세상을 다스릴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기독교회가 기리고 기념하는 그리스도는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의 모습입니다. 나라마다 자기 국가를 상징하는 문장(紋章, emblem)이 있을 것입니다. 영국 왕실의 문장은 사자와 말입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의 문장에는 독수리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기독교회가 기리는 그리스도의 문장은 어린 양입니다. 이것은 기독교회가 추구하는 정신을 보여줍니다.
기독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바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회가 늘 기억하고 추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은 죽임당하신 어린 양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모델이 되겠다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그리고 기리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칼과 창으로 세워지지 않으며 어린 양 같이 흠없고 정결한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으로 세워진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하여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 같은 분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어린 양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대리인이자 제사장 나라로 살 수 있기 위한 대속의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교회가 기념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그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방법과 선택해야 할 길에 대한 표지판이 됩니다. 성경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 될 사람들이 바로 어린 양을 따르면서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라고 알려줍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