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팽나무는 부산 강서구의 구목(區木)이기도 하다. 주민과 친숙하고, 그 자체로 강서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산 아래 볕이 잘 드는 마을이란 뜻의 '산양(山陽) 마을'에는 터줏대감 '할배나무'가 있어 넓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정대현·정종회 기자 jhyun@
팽나무의 다른 이름은 '포구나무'다. 바닷가의 해풍에도 잘 자라서 배가 들락거리는 포구(浦口)에 많기 때문이다. 부산의 끝자락인 강서구 녹산동 산양마을에는 300년 가까이 된 명물 팽나무 두 그루가 자란다. 마을 주민들은 이 팽나무를 각각 할배나무, 할매나무라고 부른다. 할배나무는 부산시 지정 보호수로 늠름한 자태를 자랑한다. 할매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지는 않지만, 비스듬히 누워서 자라는 듯한 특이한 수형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호수' 할배나무 옆 할매나무 서로 어우러진 수형 독특 40~50년 전 당산 없앴다 낭패 서낭당 만든 뒤에야 화 없어져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당제 정겨운 쉼터로 주민 사랑 듬뿍
■마을 지켜온 늠름한 '할배나무'
지난 달 27일 오후 나무가 있다는 절 '산양사' 앞을 찾았다. 나무를 보러 왔다는 낯선 방문객들을 보자마자 팽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주민들이 달려와 나무 자랑을 시작했다.
"여기 보호수 지정 간판에는 수령 260년이라고 돼 있는데, 간판 세우고도 세월이 한참 흘렀으니 300년 가까이 될 겁니다. 마을의 보배나 다름 없는 나무죠. 그리고 자세히 보면 보호수로 지정된 할배나무에서는 남근(男根)의 형태를, 누워있는 할매나무에서는 여근의 형태를 볼 수 있어요."
나무 사랑이 지극한 탓일까? 주민들은 할매나무 가지에서 거북이 머리 형상을 찾아 보여주기도 하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 듯한 부처의 수인(手印)을 닮은 나뭇가지도 찾아 설명해 줬다.
주민 하대섭(54) 씨는 "내가 태어나기 전 아주 예전에는 이 포구나무 앞이 바다였다고 들었다"며 "마을 앞 파밭에는 모래도 나오고 굴 껍데기, 조개 껍데기도 나오고 저기 산 아래서 몽돌도 나온다"고 말했다.
나무는 그 자체가 마을의 역사다. 주민들은 1년에 한 번, 음력 정월 14일 자정부터 당제를 지낸다.
여호근 동의대 호텔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산신제, 당산제, 용왕제 순서로 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산신제와 당산제를 합사해 지낸다"며 "당산제에 불교의 산신제 형식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함부로 손 대면 동티 난데이~"
산양사 주지 평산스님은 "이 마을에 40~50년 전에 당산이 있었는데, 그걸 없애고 난 뒤 마을의 장정 여럿이 돌아가시는 등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절 앞 할배나무 아래에 서낭당을 만들고 난 뒤 그런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보호수 바로 아래 위치한 서낭당에는 당산할배와 당산할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있다.
마을 주민들은 팽나무의 죽은 가지도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 동티(나무나 돌 등을 잘못 건드려 지신(地神)을 화나게 해 재앙을 받는 일)가 날까 조심하는 것이다.
하 씨는 "가지치기 할 때도 스님께 염불을 부탁드린 뒤 할배, 할매가 노하지 않도록 조심한다"며 "예전부터 이 나무로 불을 때면 안 좋은 일이 생기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나무를 신령스럽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나무 그늘 아래는 주민들의 정겨운 쉼터이기도 하다. 할매나무 밑에는 운동기구, 바둑판, 장기판이 구비돼 있어 마을 사람들은 늘 이곳에 모여 논다.
산양마을이 속한 녹산동 7통의 손대현 통장은 "정월 보름에는 나무 앞에서 달집 태우기 행사도 한다"며 "예전에는 마을 서쪽에 있는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놀기도 했는데, 그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팽나무가 마을의 중심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팽나무는 키가 보통 20m까지 자라는 큰 나무예요. 전국에 분포하지만, 남부지방에서 주로 자랍니다. 우리나라 노거수 중 가장 많은 게 느티나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게 팽나무라고 해요.
주로 남부지방서 자라는 큰 나무 9~10월에 지름 7~8㎜ 둥근 열매
작은 대나무통에 팽나무 열매를 넣어 쏘면 '팽'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것을 '팽총'이라고 해요. 팽총의 날아가는 소리 '팽'에서 유래해 나무 이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팽나무 열매와 암꽃, 팽나무 수꽃.(왼쪽부터)
봄에 일제히 잎이 피거나 윗부분부터 싹이 트면 풍년, 그 반대일 경우는 흉년이라며 풍흉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이런 나무를 기상목(氣象木)이라고 하죠.
또 조선시대 농업 서적인 '산림경제'에는 '소나무, 팽나무, 참나무에서 생기는 버섯은 독이 없다'고 나와 있어요.
9~10월에 지름 7~8㎜의 둥근 열매가 초록색으로 달렸다 붉은색이 강한 노란색으로 익어요. 열매에 살은 많지 않지만 맛이 달아 식용으로 활용하거나 기름을 짜기도 했다고 해요. 목재는 단단하고 잘 갈라지지 않아 건축재, 가구재는 물론 농기구나 악기 재료로도 활용한답니다. 팽나무의 꽃말은 '고귀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