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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성경의 힘 - 제124강 마가복음, 누가복음 1부
이 시간에는 같이 마가복음을 살펴 볼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12제자도 아니고 12사도에도 들지 않는 마가가 기록을 했는데, 어떻게 마가가 12제자도 아니면서 이런 복음서를 썼겠는가..
성도님들이 그런 의문이 들 거예요.
사실은 기록을 마가가 했다는 것 뿐이지, 실제로는 이게 다 대부분의 내용이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것을 마가가 듣고 통역을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의 수행원으로 1차 전도여행때에 같이 동행을 했다가, 후에는 다시 자기 외삼촌되는 바나바와 같이 사역을 하다가, 나중에는 이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이렇게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상당 기간동안 활동을 했던 것 같은데, 스스로 알아낸 것도 있겠고, 바나바에게서 들은 것도 있겠고, 또는 베드로 설교를 쭉 통역하다가 이것이 정리되어가지고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가 보는데요,
학자들의 견해가 여러 가지로 엇갈리기는 합니다만, 마가복음은 복음서 네개 중에서는 제일 먼저 기록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을 앞에 놓지 않고, 신약성경에 마태복음을 먼저 놓았겠느냐 할 때에, 우선 순위가 사도가 기록한 것이면 우선 순위가 되었어요. 항상..
그리고 복음이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할 때에, 언제나 복음이든지 뭐든지 매를 맞아도 유대인이 먼저 맞고 복을 받아도 유대인이 먼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는 거죠.
그래서 유대인에게 전하는 복음이 1차적이기 때문에, 유대인을 1차적으로 염두에 두고 쓴 마태복음을 신약성경 제일 앞에 두고,
그 다음에 마가가 쓰기는 했지만, 이것이 거의 다 베드로의 통역을 하는 중에 베드로 입에서 나온 것이다 해서 기록을 한 필기자가 마가일 분이지, 사실은 베드로 복음이라 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두 번째 두게 되고,
누가의 복음에는 매우 알찬 내용이지만, 12제자도 아니고 12사도도 아니고 이방인이 썼다는 거예요.
그래서 역시 세 번째 배열이 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요한복음은 사도가 썼는데, 왜 맨 뒤에 있느냐 하는 것은, 앞에 세 가지 복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다해서 이른바 ‘공관복음’이라고 해요.
그런데 요한사도가 쓴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고, 나중에 우리가 살펴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기록된 연대가 앞에 있는 복음서들보다도 근 30년 이후가 돼요.
그래서 요한복음은 따로 네 복음서와는 나란히 배열되지만, 사실은 제 4복음서라고 해서 따로 쓰는 것처럼 전혀 별다른 관점에서 썼다하는 그런 의미에서 사도가 썼지만 네 번째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에, 요즈음처럼 설교를 성경을 단어풀이 해가지고 해석을 하고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개 베드로는 가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는 거기 현장에 있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보고 들은 대로를 그대로 증언을 했어요. 증인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되 요즈음 설교처럼 단어풀이를 하고 예화를 들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대로 그대로를 전하는 거예요.
가능하면 자기 생각을 보태지 않게..
자기 생각이나 자기 해석을 보태지 않고 자기 본 대로를 이야기하고, 들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혹시 잘못 해석하는가 싶으면 그 잘못 해석하는 것을 차단하는 정도..
이렇게 한 것이고,
지금처럼 해석을 해가지고 적용을 해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여러분 설교를 너무 그런 식으로 하면 성도들이 수동태로 빠지는 거야.
강의나 설교를 듣는 분들은 또 그중에 목회자 설교자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모든 성경을 한절씩 해가지고 과잉해석 해가지고 적용까지 해가지고 그렇게 성도들에게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하게 되면, 성도들은 성경을 이해할려는 의식을 다 내려놔버리고, 목회자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적용하는 그 적용따라 살아버리면 수동태에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설교가 매우 자세하고 친절한 것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수많은 성도들을 거의 수동태에 빠뜨리게 합니다.
저는 설교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그대로 이야기를 해요.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라고 하는데, 성경이 지금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하는 것을 쭉 알아듣게끔만 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성도들이 목회자와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본인 스스로도 목사님과 함께 깨달아지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본인이 읽고 깨달아 진 것을 본인이 하고 싶지,
목회자가 설교자가, '당신은 아무 것도 몰라.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읽고 깨달아서 다 적용까지 해줄테니까 순종만 해.'
이렇게 하면 어쩔 수 없이 성도들은 수동태에 빠지는 거야.
전부 다 해석을 해주고 행동만 해주는 걸로.
생각도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이렇게 되면 수동태에 빠진다는 거야.
그래서 베드로 설교라든지 초대교회 설교를 보면, ‘그냥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을 우리가 봤습니다.’
하고 담담하게 사실 그대로 지나치게 더하지 않고, 아니면 빼먹지 않고 아주 사실 보도를 성실하게 증거하는 그런 식으로 증거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통역하던 마가가 이렇게 적을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어떻게 마가복음이 짧게 기록되었느냐?
두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베드로 사도가 들으면 조금 섭섭할지 모르겠는데, 베드로 사도의 기억력의 한계일 수 있어요.
그래서 간단하고 아주 단순하고 이렇게 하면서 더러 많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놓치기도 고고, 그래도 여기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마가복음이 짧지만 그래도 베드로가 혹시 기억에서 누락된게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는 거야.
아니면 마가가 어떤 기억에서 조금 문제가 있었든지 다시 말해 놓쳤다든지 아니면 기록했는데 놓친게 있었다든지..
하여튼 짧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예수님이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기본 복음에 대해서 아무 하자가 없어요.
많이 미흡하기는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사람들이 왜 마가복음이 짧은 것인가 했는데, 이게 제일 먼저 기초판으로 나온 거죠.
기본판으로 나온것인데, 이 마가복음을 마태가 읽어보니까 쓴 것까지는 다 진실히 기록되었는데, 아무래도 더러 빠졌다..
빠진 것도 있고 뺀 것도 있을 겁니다.
이를 테면, 마태처럼 족보 이야기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그 지루한 족보 이야기 얼마나 재미 없습니까?
유대인들 같으면 중요시 할 수 있지만, 우리 이방인이 볼 때는 그리고 처음 만나는 성경을 처음 접하는 이방인이 볼 때에 마태복음에 있는 족보 이야기는 지루한 얘기예요. 그렇죠?
‘뭐가 낳고 낳고 또 낳고 자꾸 낳고 아까 낳고 또 낳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그래요.
‘이게 뭐야? 산부인과 일기장이냐 뭐냐? 이게..’
그래서 그런 것을 빼고, 산상보훈도 더 그런 요소가 있지만 많이 빠져있고..
성실하게 기록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는 때로는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둔필승총(鈍筆陞總)이라고..
엉성하게 기록해도 총명한 기억력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습관이 되어야 돼요.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의 수행원으로 섬기다가,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섬겼고,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굉장한 활동을 하는데,
나중에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마가 이야기를 또 조금 언급하게 됩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입니다. 마가가..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에 마가 이야기는 별로 소개가 안 되었는데, 유럽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에 가 보면 마가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가..
사도바울 이후에는 사도바울에 버금가는, 바울의 활동에 필적할만한 그렇게 활기찬 그는 아주 발이 넓은, 활동 영역이 굉장히 넓은 아주 열정적인 주님의 증인이었어요.
바울이 처음에는 마가를 좋지 않은 사람으로 봤는데, 마가는 볼수록 훌륭한 사람으로 그렇게 성숙해 갔고,
나중에 사도바울이 죽기 전에, 다시 말하면 마지막 두 번째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를 쓰면서 꼭 마가를 만나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 하면서 바울이 마가를 많이 보고 싶어 합니다.
또 첫 번째 감옥에 가택연금 되었을 때에는 마가가 사도바울이 연금 된것을 알고 그 먼길을 찾아가요.
바울은 자기를 배척했는데, 마가는 옹졸한 인물이 아니었어요.
자기를 배척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게 약이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내가 아주 신실한 일꾼으로 거듭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따라서 마가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쪽 사람들 이야기로 ‘마르코, 마르코스, 혹은 막스, 마크’ 이 전부 다 마가를 말하는 겁니다.
마가의 이름에서 ‘마르코 마르코스 막스 마크’ 전부 다 마가의 이름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가의 전한 복음은 어떤 면에서는 베드로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고, 마가복음이 모든 복음서의 기초가 되었는데,
이 기록을 보고는 마태가 아무래도 많이 빠졌다 싶어서 이것을 근간으로 이것을 줄기로 해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좀더 소중한 것을 좀더 첨가했더니 보충했더니 마태복음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가복음을 복음의 사중창 중에 베이스 복음이야. 베이스 복음..
아주 완전히 기초가 되는 베이스 복음이 되고, 그 다음에 테너처럼 나오는 복음이 바로 마태복음이고, 상당히 섬세하게 나오는 그런 복음서가 알토같은 복음서가 누가복음서예요.
가장 고음을 내는 고차원적인 음을 내는 소프라노 복음서가 아마도 요한복음이 아니겠는가..
제가 그렇게 해석해 보는 겁니다. 딴데 확실하게 나오는게 아니고..
세례요한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준비하는 장면이 나오고,
바로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
그리고 천국에 관한 비유..
‘천국은 마치..’
여러분 천국에 있는 것들의 사건과 사물을 가르치는 직접 용어가 별로 없는 거예요. 땅에는..
그렇겠죠?
천국에 있는 것들과 천국에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지칭하는 용어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땅에서 같으면 뭐뭐 같다.. 마치 뭐뭐 같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비유로 밖에는 설명이 안 돼요.
그 다음에,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칠병이어로서 4천명을 먹인 사건이 나오죠?
그리고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똑 같고.
그 다음에, 역시 내려오면서 변화산에 들르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이 나와요.
여리고를 거쳐가죠.
여리고를 거쳐가는 길에 아시는 대로 디메오의 아들 바르디메오. ‘바르’ 하는 것은 ‘누구누구의 아들’이죠.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 이름도 없어요.
‘디메오의 아들’ 이게 이름이예요.
저쪽 사람들은 이름 짓는 것 보면 참 시원찮게 지어요.
자기 이름도 없고 그냥 누구의 아들이다. 이게 이름이야.
여러분 데이비슨은 다윗의 아들이다 그 말이죠.
로버슨 하면 로버트의 아들이다.
자기 이름이 없이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렇게 이름 지은게 많아요.
그래서 바디메오를 만난 사건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얘기고..
그 다음에 수난에 대한 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실 것을 미리 말씀을 하시는 것은, 만약에 그런 말씀도 안 했다가 예수님께서 갑자기 체포되어서 십자가를 지면 무슨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처럼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나중에 ‘예수님께서 미리 다 말씀하시던 거야. 알고 계셨더라고..’
이렇게 해야 그 의미를 해석하고 하는 건데,
미리 말씀하셨어요. 수난을..
그 다음에, 예루살렘 입성.
종려주일이죠. 예수님 입성때가..
스가랴서 9장 9절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장면인데, 예루살렘 입성..
그리고 성전 숙청..
그리고 마지막 고난주간 한 주간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그런 말이 있고,
그 다음에, 크고 첫째 가는 교훈,
마가복음의 종말론이 나오죠. 종말론..
마태복음에도 종말론이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나오죠.
반면에 요한복음에는 종말론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종말론적 소스가 빠져있고, 오히려 종말론적 소스는 따로 모아서 별권 별책으로 만들어서 요한계시록으로 따로 성경 맨 뒷두껑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따로 기록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 베다니 문둥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예수님이 방문한 사건이 나와요.
이것을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요,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 하는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많이 해요.
여러분 성경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것은 흔적도 없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고..
나중에 요한복음 할 때에 볼텐데, 창녀였던 사람은 아마도 베다니의 마리아예요.
나사로의 누이동생..
막달라 마리아는 뭘 막 달라는게 아니고, 막달레나라는 동네 출신의 마리아인데,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쫓겨나게 한 사람이야.
그것밖에는 정보가 없어요.
그리고 이분이 재력이 조금 있었는가 봐요. 막달라 마리아가..
막달레나 지역에서 염료업이라든지 무슨 어떤 비즈니스를 했다는 학설도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고,
신약성경 복음서에 보면 여러 여인들이 나오는데,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죠. 막달라 마리아죠. 베다니아의 마리아 있죠.
그러니까 마리아가 이 마리아 저 마리아 다른 마리아..
여러 마리아가 나와요.
여러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아가 나온다고..
그런데 요안나 수산나 하고 여러 마리아가 나오는데 그 이름들이 쭉 나열되었는데, 항상 막달라 마리아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와요.
그것은 대체로 볼 때 연장자가 먼저 나와요. 연장자..
그래서 제가 보기로는 아마 예수님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가 같이 나와도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항상 제일 먼저 나와요.
그러니까 동양에서 이름을 쓰는 순서는 특별한 직함이 있으면 몰라도 아니면 연장자 순으로 씁니다. 연장자 순으로..
그런 것도 모르고 어떤 되먹지 않은 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이 연애해가지고 아들 낳아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다빈치 코드인 다미친 코드인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보다도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고..
여러분 헤롯이 재무장관쯤 되는 그런 청지기를 세울 때 어린 애를 세우지는 않을 것 아냐?
구사라고 하는 사람의 아내보다도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니까 항상..
그렇다면 적어도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연세가 예수님 어머니뻘 쯤 되었을 거예요.
예수님이 할일 없어서 예수님 어머니뻘 되는 사람과 연애 하겠어요?
그런 댄브라운 같은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그런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몇천만부가 팔리고 그런 책을 읽어봤다 해가지고 신앙 팔아먹고 교회를 떠나는..
그 정도로 우리 교회가 성경을 안 가르친 거야. 도대체가..
그래서 여기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예수님이 방문했는데, 베다니 문둥이라고 하는 것은 ‘벳아니’라는 동네가 있는데, ‘벳’ 하는 것은 집이고, ‘아니’ 라는 말은 슬픔이야.
그러니까 슬픔을 당한 집, 세상에서 어떤 병이 걸렸거나 아니면 무슨 불행을 당해가지고 일반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격리 된 마을에 삽니다.
그러니까 벳아니.. 슬픔의 집이예요.
그러면 그 베다니의 마리아가 사는데 나사로가 사는데 바로 그 동네인데, 아마 동네가 조그만 하거든요.
멀지 않은 집이 바리새인 문둥이 시몬, 아마도 딱히 말하지는 않지만, 나사로도 나환자 같거든요.
성경은 나환자라는 말은 딱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환자는 나환자끼리 산다니까..
아니면 혹독한 나병에 걸리면 그렇고, 또 성병도 지나친 성병 불가촉 병이라 해가지고 사람과 접촉해서는 안 되는 병에 걸리면 따로 격리되어서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오라버니 나사로가 나환자라면 생업을 갖지 못해요.
그리고 마르다 언니되는 마르다는 오라버니 곁에서 수발해야 되니까 떠나지 못해요.
그러면 생활할 길이 없죠.
그 동생 마리아는 뭘 해가지고 여자가 돈 벌겠어요?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노예로 팔리든지 몸을 팔든지..
그 두가지 밖에 생활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런 집에 예수님께서 꺼리지 않고 가셨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아시는 대로 그 날 따라 예수님이 나사로 집에 안 가고, 거기 바리새인 문둥이 시몬 집에 예수님이 초대되었어요.
왜 초대했는지 설명은 없는데, 사람은 유추 할 수 있어요. 유추..
유추할 수 있으면 철학이 되는 거죠.
미루어 생각해볼 때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얘기 있었죠?
바로 옆집에 바리새인 문둥이 시몬도 한번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요 ?
나사로가 그 예언자를 자기 집에 모셔서 은혜 받았는데, ‘Why not me?’ ‘나라고 왜 못해?’ 하면서..
나도 한번 모시겠다 하고 예수님 초대 했을 때,
‘나 그 집에 안 가..’ 예수님은 째째하게 안 하거든요. 그 초대에 응한거야. 갔는데,
이 사람이 지금 예수님을 잔치상에 초대해놓고 손 발 씻을 물도 안 주고..
이렇게 했다는 거야.
그러면 마리아가 어디 갔다가 출근했다가 돌아와서 보니까, 오라버니도 없고 언니도 없거든..
그리고 옆집이 부산하니까 가봤겠죠.
가보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와 계시고 자기 오라버니도 예수님과 함께 있고 언니도 거기 바쁘고 했겠죠.
그런데 딱 들어가니까, 아이고.. 냄새가 어휴..
막 완전히 오징어를 굽는 거야. 그냥..
바리새인 문둥이 시몬이 손발 씻을 물을 안 줘가지고 전부 냄새가 나는데도, 그러니까 마리아가 얼른 쫓아가서 물을 가져온 거야.
향유 옥합을 가져온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 그게 가룟유다 계산으로 하면 한 1년 품삯, 300데나리온은 1년 품삯이거든요.
1년이 360일인데, 안식일 빼버리고 명절 빼버리고 하면 300일 정도 일 하는거야.
300데나리온은 1년 품삯이니까 요즈음 같으면 6만원 같으면 300일 하면 1800만원이죠.
하여튼 1500만원에서 2000만원 할 정도로 고가품이예요.
한번 생각을 해 봐요.
지금 오라버니가 일도 못하는 주제에 언니는 오라버니 수발 한다고 꼼짝 못하고 마리아 하나가 벌어서 먹고 사는 집은 그렇죠?
그런데 마리아가 뭘 해가지고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그리고 그 비싼 향유, 큰것도 아닙니다. 조그마한 건데, 그것을 장만했다는 것은 팁을 좀 받거나 해서 꼬불쳐가지고 언니 모르게 모은거야.
왜 모았느냐 하면 히브리 처녀가 시집갈려면 혼수감으로 향유 하나는 준비해야 됩니다. 최소한..
준비해가지고 신랑을 만나는 첫날밤에 열어서 그 자기 순정처럼 여인의 가슴속에 간직한 순정처럼 고이 간직했던 향유를 열어서 한 방울을 신랑 머리에 톡 떨어뜨리면 그 향이 대단한 거예요.
비싸기도 하고..
그리고 닫아두었다가 일평생 자기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잔치를 할 때마다 잔치석에 앉는 주빈의 머리위에 한방울 떨어뜨리고.. 이렇게 떨어뜨리고 그렇게 아껴서 쓰다가 남은 것은 자기 남편이 돌아가실 때 그 시신을 다 목욕시킨 다음에 다 발라서 미라를 하게 되는 거예요.
혼수품 중에 제일 소중한 그것 하나는 준비해야 되는데,
이 여자가 이것을 한 방울 머리에 떨어뜨려주고 나머지는 발에 다 갖다 부었어요.
어떤 성경에 보면 머리에 떨어뜨렸다 하고, 어떤 성경에는 발에 부었다고 되어 있어요.
제가 볼 때 둘 다 입니다.
한 방울은 머리에 떨어뜨리고 나머지는 예수님 발에 부어서 머리카락을 내어가지고 문지른거야.
그러니까 그러한 마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는 눈길이 다 곱지 않습니다.
맨 첫 번째 가룟유다는 뭐라고 그래요?
‘이 여자야 그것을 왜 허비하느냐? 비싼 값에 300데나리온에 받아서 가난한 사람 구제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투덜거리니까..
요한은 속으로 ‘가난한 자 좋아하시네. 저는 도적이라 훔쳐감이라.’ 그러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 집 주인 바리새인 문둥이 시몬은 ‘내가 오늘 예언자도 아닌 것을 괜히 초대한 것 아냐? 이거..’
‘정말 예언자 같으면 저 여자가 얼마나 큰 죄인인데, 거기 발을 들이대고 있지 못할 텐데 말이야..’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장면이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몬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아시고,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했어요.
‘예 말씀하십시오.’
‘한 사람이 말이야. 5억을 빚졌는데 보니까 갚을 힘이 없어.
그리고 한 사람은 5백만원 빚졌는데 그 사람도 갚을 힘이 없는 거야.
그래서 5억이나 5백만원이나 둘 다 갚을 힘이 없어서 다 탕감해 줬어.
그러면 자네 생각에 누가 더 많이 감사하겠는가?’
그러니까 바리새인 시몬 문둥이가 뭐라고 해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 더 많이 감사하겠죠.’ 그러겠죠?
예수님께서 ‘그래 네 말이 맞다.’
꼭 보면 항상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고’ 해요.
상대방이 맞는 말 대답하게 해가지고 꼭 ‘네 말이 맞다’ 그러니까 대화가 잘 되는 거죠. 그렇죠?
‘네 말이 맞다.’ 하면서 ‘네가 보다시피 네가 큰 죄인으로 보고 있는 이 여인이 죄가 많아.. 네 말이 맞다는 거야.’
‘그러나 그 많은 죄를 탕감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감사하는 거야.
자네는 이 사람아 자네 집에 들어올 때 발 씻을 물도 안 줬잖아요.
내가 네 집에 손님으로 왔는데, 내 머리에 식용유도 한 방울 안 가져왔어.
그런데 봐라. 이 여인은 많은 죄를 탕감받았기 때문에 그 비싼 향유를 내 머리에 또 발에 붓고 지금 자기 머리카락으로 씻는 것 아니냐?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도 이 마리아가 많은 죄가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이 착한 여인이 무슨 죄가 그렇게 많이 있을까?
무슨 죄 같아요?
그러니까 성경을 아는 사람은 알게 애들은 모르게 써 놨다니까..
마리아가 창녀예요.
또 처음 들었죠?
맨날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인가 해가지고..
찬송가도 엉터리로 해 놨어요.
‘값비싼 향유를 주께 바친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하니까..
막달라 마리아 입장이 곤란해요. 천국에서..
‘내가 안 바쳤는데 한국교회에서 저렇게 노래한다 하면서.
창녀는 덤태기로 씌우고 바친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뒤집어 씌워서..
베다니 마리아도 곤란하고 막달라 마리아도 곤란하고 마리아가 말이 아니야. 지금..
이렇게 무식하게.. 이게 지금 AD590년이나 591년에, 로마교황 그레고리 1세가 부활절에 누가복음 7장을 강의하면서, 거기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다. 그렇게 한번 설교를 했답니다.
그게 성경을 하나도 안 보고 교황 그레고리 1세가 말한 그것이 그냥 다 퍼져가지고 그냥 막달라 마리아가 어느 날 갑자기 591년에 창녀가 되어 버린거야. 그냥..
그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창녀가 아닌데..
그리고 값비싼 향유를 바친 베다니 마리아 이야기는 이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 증거해서 저를 기념하라 했는데, 엉뚱하게 해가지고..
그래서 댄브라운 같은 정신나간 사람이 ‘다빈치 코드’같은 엉뚱한 책을 써가지고 그게 또 영화까지 나오고.. 이런..
그런데 한 사람도 이 문제를 바로 짚어서 이야기 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 보니까..
그 미국에 수많은 목사님들이 있는데, 그렇게 된게 아니다..
바로 잡아서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없어.
보다 못해 가지고 제가 어디 글을 써서 올렸더니 전국에 좀 퍼져가지고..
참 안타까운 일이예요.
성경을 정밀히 봐야 돼요. 정밀히.
그 다음에, 최후의 만찬을 드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 나오고,
그 다음 얘기는 총총 끝을 내는데,
부활하신 후에 여기 마가복음 끝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16장 15절인데,
[마가복음 16장]
15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물론 12제자 내지는 감람산에 모였을 때 500여 성도가 있는 곳에서 했던 말씀 같기는 한데, 이분들에게 이르기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꼭 무슨 사도들만 아니라 성도들이 만민에게 온 세계에 가야 돼요.
그런데 예배당에 갇혀 있을려고 하지 말고 복음이 전파 되어야 하는 곳에 가야 돼요.
저는 한 예배당이 몇 천명 몇 만명 가둬놓고 내보내지도 않고..
그렇게 하는 교회가 성공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선교사 몇 사람만 보내는게 아니라 집사님들 다 나가야 돼요. 교회 없는 마을로..
예배당에 갇혀 있을게 아니라 주말이 되면 교회 없는 마을로 온 세상으로 퍼져가야 돼요.
가고 또 가고..
혹시 여러분 담임 목사님 설교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러면 빨리 교회 없는 곳에 가서 개척을 해요.
우리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 내지 초신자들도 쫓아 보내어 개척해요.
새신자 초신자 1년 내지 2년만 가르치면 교회 개척 시키러 나갔어요.
1년 2년만 해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가르칠 수 있는 사람 여럿이 나와요.
집중적으로 교육을 하니까..
여러분 4박 5일 정도만 해도 신구약을 다 이야기 할 수 있는데, 1년 2년 공부하면 정말 도사가 돼요. 도사가..
갈릴리 어부들 불러 모아서 예수님이 3년간 해서 사도가 되는데, 그 때는 66권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잖아요. 성경이..
오늘 교회에서 교육하는 것 보면 정말 현기증 납니다.
너무 간지럽게 해요.
그리고는 일꾼으로 기르지 못하고 3년이 아니라 30년 해도 집사도 제대로 할까 말까..
어떤 집사는 성경 한번도 제대로 안 읽어본 집사가 수두룩할거야.
읽었다손 쳐도 읽으면 압니까?
다만 읽은 것 뿐이야. 그냥..
교사도 여러분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도 초등학문 가르치는데도 교사 임용고시가 있고, 4년 씩이나 공부를 해야 자격증을 주는데, 교회학교 교사가 66권 중에 한권도 제대로 공부한 것이 없이 교사로 임명하는 거야.
여러분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요? 이게..
괜찮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 맞아요.
여러분 천국 시민을 교육하는 그런 교회학교 교사가 66권 중에 단 한권도 아는게 없으면서 교사 임명받는 사람도 웃기는 사람이고 임명하는 사람은 더 웃기는 사람이야.
저는 지금 교사 임용고시 문제집을 만들려고 해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66권 중에서 반드시 교사라면 모름지기 알아야 될 문제를 주관식을 1천 문제, 객관식으로 하면 연필 굴리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주관식으로 1천 문제는 풀어야 그리고 90점 이상 나와야 정교사 자격증 나올 정도로..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의사와 판사 같은 분들 우리 사회가 존경하고, 또 상당한 엘리트급이라든지 실력이 있어야 의사나 판검사 되게끔 해 놨어요. 그렇죠?
왜 그런 거예요?
왜 의사 판사 그런 분을 존경합니까?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거죠. 그렇죠?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그런 직책은 중요한 직책이고, 판검사는 생명의 운명을 다루죠. 그렇죠?
판결이 잘못되면 운명이 잘못 될 수 있니까..
그러니까 생명이나 운명이나 다 목숨 명(命)자가 걸려 있는 거예요. 그렇죠?
생명이나 운명이나 다 목숨 명(命)자가 걸려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보통 사람 가지고는 안 되고, 그래도 어느 정도 탁월한 분들이 담당해야 된다 해서 실력자라야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게 해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교회 목사가 된다든지 교회학교 교사가 된다는 것은 생명을 다루되 일생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다루어요. 맞아요?
일생뿐 아니라 영생을 다루고, 운명도 일생의 운명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까지 걸머쥐는 그런 중차대한 일이 목사에게 교사에게 있는데,
세상에 초등학교 교육과정만큼도 공부를 안 하고 준비도 안 된 사람이 교회학교 교사가 된다는 것은 현기증 나는 얘기죠.
끔찍한 일이예요.
그래서 이미 임명을 받았으면 사표내라 그 말이 아니라, 공부를 하라고 공부를..
교사가 되어가지고 성경공부 하나도 안 하고 66권 중에 한권도 모르면서 교사가 되었다는 것은 그것은 말이 안 돼요.
그것은 임명 받은 사람도 책임이 있고 임명한 사람은 더 큰 책임이 있는 거예요.
대단히 죄송한 얘긴데, 우리 교회는 개척한지 3년이 되었는데, 3년이 되어서 150명 성도가 모이는데, 아직 교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교사로서 생명들을 맡길만한 사람..
여러분 차라리 교사가 없으면 없는게 낫지..
여러분 의사가 실력이 안 되면 의사가 안 되어야 되죠. 그렇죠?
실력도 안 되면서 의사가 되어가지고 사람의 생명을 맡으면 바로 돌팔이가 되는 거예요. 돌팔이..
돌팔이 의사보다 더 무시무시한 죄악이 돌팔이 목사이고, 그리고 함량미달 교사야 교사..
이런 심각한 문제를 교회가 인식을 안 하고 있다는 거예요.
성경 한번도 안 읽어본 사람을 집사로 임명한다든지..
한번은 성경 한번도 안 읽었는데, 장로로 피택이 된 거야.
그래서 안수받을려고 하니까 심히 마음에 찔리니까 어디서 누구가 에스라 하우스 얘기를 했는가 봐요.
충청도 분인데 두분이 장로로 피택 되었는데, 성경 한번도 못 읽어서 황송해서 왔다는 거야.
참 끔찍한 일이야.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얘기야.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든지 간에 방송 프로그램 화려한 프로그램 재미있는 프로그램 다 좋아요. 좋은데, 그런 것 오락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방송 중에서도 좀 이 방송매체를 가지고 성경을 성실하게 매일 방송이 나가니까 매일 저녁시간에 저녁 먹고 예를 들어서 8시부터 9시까지, 아니면 7시부터 9시까지는 전 기독교인이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매일 두시간씩 한다든지..
그러면 매일 두시간씩이면 두달이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끝나버려요. 두달이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래서 성경을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잘못 가르치고 미흡하게 가르치는 이 교회야말로 제일 각성해야 될 부분이야. 회개하고 각성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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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부
자 그 다음에, 우리가 마가복음을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누가복음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누가복음을 펴봅시다.
누가복음 1장 보세요.
[누가복음 1장]
1우리 중에 이루어진뭐에 대하여?사실에 대하여
거기 줄을 그으세요.
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아요? 작아요? 많은지라
자 이리 보세요.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할 때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연대가 61년에서 63년 어간. 62년경 이렇게 봅니다.
그러면 마태 마가가 기록된 연대는 그보다 한 7-8년간 앞서 보거든요.
그래서 마가복음 같은 경우는 조금 일찍으로 보는 분도 있고 조금 늦게 보는 분도 있는데,
신약문서 중에서 제일 일찍 기록된 것은 아마도 ‘데살로니가전서’ 일 것이다 이렇게 보기도 해요.
연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어떻든 누가는, 마가복음이 기록되고 마태복음이 기록된 그 이후였을 것이다 이렇게들 봅니다.
그러면서 여기,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라고 말하는데, 얼마나 많은 지는 저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만,
일단 나중에 우리가 챙겨보면 기록된 연대순서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워도 여러 복음서중에,
에피온인의 복음서, 히브리인의 복음서, 이집트인의 복음서, 니고데모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도마복음서, 빌립 복음서, 마태 마가 복음 이렇게 하니까 많잖아요.
물론 그 후대에 나중에 기록된 야고보 원복음서. 이것은 카톨릭이 어쩌면 마리아를 신격화 할려고 쓴 것 같기는 한데 후대에 기록되었고,
어떻든 복음서가 최소한 열댓권 정도 돼요.
그러니까 많아요.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하는데, 아니 붓을 든 사람이 많으면 자기는 그만두지 자기는 왜 씁니까?
이 때도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쓴 것을 내가 충분히 챙겨보고 많이 챙겨보고 많이 읽어봤는데, 자기가 쓴다 하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별로 마음에 안 들더라’ 그 말이죠.
왜 마음이 안 드느냐 하면,
첫째, 너무 많이 누락되어서 마음에 안 드는게 있어요.
그 다음에 황당한 이야기, 좀 과장되어서 황당한 얘기가 첨가 되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안 맞는 수가 있다는 거야.
아니면 문법적으로 많이 혼란스럽게 썼다든지,
표현력이 명료하지 않다든지,
유대인 실력을 가지고 헬라어 문학 작품을 썼을 때 그 문장이 좀 조악하다든지 이런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인로서도 아주 문장력이 뛰어난 아주 필력이 뛰어난 누가의 안목으로 읽어볼 때, 여러 유대인들이 헬라어를 구사해가지고 복음서를 썼지만 누가의 마음에 썩 든다는 것은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12제자도 아니고 12사도도 아니지만, 그래도 헬라어에 능숙하니까..
이 사람이 사도바울에게서 기초복음을 들었을 것이고 세 번째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가기 전에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들르게 됩니다.
그 때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가난한 작은 개척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거금의 연보를 했습니다.
이것을 다 모아가지고 전달 차 예루살렘 방문 했다가 바울이 거기에서 체포되어서 가이샤랴 감옥에 2년간 억류됩니다. 2년간..
바울이 2년간 가이사랴 감옥에 억류되었을 때에 누가는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가 마리아를 만나고 엘리사벳을 만나고 세례요한 고향동네에 가서 제법 상당 기간을 체류하면서 그 뒤로 예루살렘..
맨 먼저 마리아에게 듣고 그리고는 엘리사벳에게서 듣고 해가지고, 세례요한 탄생기사 다 마련하고,
예수님 그림자도 지나갔던 모든 것을 정밀 답사해요.
그리고는 누가복음을 쓸 수 있는 수많은 자료를 직접 인터뷰를 해서 자료수집을 완벽하게 해가지고, 그 자료가 다 준비되자 로마로 가서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가택 연금 되는 2년..
그러니까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로마에서 가택연금 2년, 가는 도중에 6개월..
근 4년 반 내지 5년 정도 안에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할 자료를 다 수집을 했다는 거예요.
그 때는 벌써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복음서를 많이 봤다는 거죠.
그래서,
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많지만, 자기가 쓴다는데, 어떻게 쓰느냐?
3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이 사람은 모든 일을 살피고, 근원부터 살피고, 자세히 살피고, 미루어 살피고..
이렇게 살펴서 기록할 때에,
..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왜 이 사람이 차례대로 썼느냐 하면, 마태처럼 주제별로 써 놓으면 스토리가 잘 안 나와.
그래서,
..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자, 이 사람이 지필 동기, 그 다음에 기술 방식, 내지는 자료수집의 자세, 그리고 수신자, 목적 이런 것이 벌써 1절에서 4절까지에 명쾌하게 드러나는 거예요.
이런 것만 봐도 글을 써 본 사람의 냄새가 나요.
대단한 필력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마치 그림처럼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데 그림 같아요.
이런 표현을 문학적으로 ‘회화적 기술’이라고 합니다. 회화적 기술..
마치 글을 쓰는데,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성화를 그리는 분들도 누가복음을 읽어서 성화를 그릴 정도예요.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아주 표현력이 뛰어나게 되면 그림처럼 떠오른다는 거야. 장면들이..
여러분 아까 제가 그런 얘기 했죠?
베다니 바리새인 시몬 문둥이 집에서 잔치하는 장면을 제가 설명 했죠?
눈 감으면 장면이 떠오르죠?
그런 식으로 설명을 말로 하는 사람은 장면이 떠오를 만큼 글로 써야 읽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누가는 탁월한 분이예요.
성경을 연구하는 성경학자들 붙잡고 천국에 가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이름 순위를 적어 내라고 하면 누가가 제일 많이 나와요.
예수님 말고는 누가가 제일 많이 나온다는 거야.
여러분 누가복음에 대해서 우리가 나중에 공부하지만, 누가도 마태와 같이 말이 없는 사람이예요.
여러분 온 신약성경을 다 뒤져도 누가가 무슨 말을 했다 하는 말은 한마디도 안 나와요.
말인즉슨 늘 베드로가 다 하니까..
베드로는 맞고 안 맞고 상관이 없어. 그렇죠?
틀려도 그것 때문에 주눅들고 그런 일 없습니다.
다음 틀릴 일에 바빠서 그냥..
그래서 대개 누가와 마태 이런 분들이 말이 없는 대신에 생각을 많이 하고 듣기를 잘 하고 기록을 잘 하는 분들이야.
그래서 누가복음의 내용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1. 세례요한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준비하는 장면
2.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
3. 천국에 관한 비유
4.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는 모습
5. 칠병이어로서 4천명을 먹인 사건
6. 베드로의 신앙고백
7. 변화산에 들르신 일
8.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
9. 여리고에서 바디메오를 고치는 사건
10. 수난에 대한 예고
11. 예루살렘 입성
12. 성전 숙청
13. 크고 첫째 가는 교훈
14. 마가복음의 종말론
15.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의 사건
16. 최후의 만찬을 드시는 예수님
17.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