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3.05.07
07:00거림마을 주차장-07:10길상암-07:20용소-07:30이영회아지트-08:10길잃음-09:40시루봉-10:00세석고원 철쭉지대-10:50촛대봉-11:00세석산장-중식-11:30출발-11:40남부능 갈림길-12:25북해도교-13:20거림마을
비가 내린다. 출발할 때부터 내리던 비는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면서 폭우로 변하면서 더욱 거세진다. 애마의 윈드실드 와이퍼는 세차게 퍼붓는 빗물을 거둬 내는데 무척이나 힘겹게 작동하고 있다. 김포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하여 거림마을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7시. 빗방울은 조금 엷어졌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거림마을은 작년 수마와 태풍 로사에 시달렸는데 아직도 복구되지 못한 채 곳곳이 많은 상처를 떠안고 있다.
몇 채밖에 없는 마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좌측과 우측이 갈리는데 좌측은 거림골로 세석산장에 이르고, 우측의 길상선사와 길상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장골이다. 도장골은 지리산에서 칠선계곡, 한신계곡, 뱀사골의 아름다움을 고루 간직한 골짜기로서 과거 50년 전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들의 은신처로 환자트와 무기고가 있었던 곳이라 전한다.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 7권’과 이태의 ‘남부군 하권’에서는 도장골에서 빨치산 환자트 생활이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다. 특히 빨치산의 활동에 많은 부분이 기술되어 있는데, 도장골은 갓 시집온 어린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입산했다가 지리산의 영원한 상징적인 최후의 빨치산이 된 곳이며. 도장골에는 반란군 14연대 출신 빨치산 대장 이영회의 아지트가 있어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도장골은 마을 주민 외에 외부인에게는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곳이기는 하나, 원시적인 비경을 보기 위해 지리 산꾼들이 가끔 은밀히 숨어들기도 한다. 따라서 대규모 안내 산행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으며, 등로가 뚜렷지 않고 험로로 남아 있어 많은 위험성이 있다. 산불 경방 기간이 예상외로 일찍 풀린 터라 기쁜 마음으로 세석의 철쭉을 보고자 이곳을 찾게 되었다.
길상선사를 지나 바로 길상암을 우측 위에 두고 도장골로 진입하는 곳은 철조망으로 입구로 단단히 막아 놓았는데, 미안한 마음으로 계곡으로 내려서서 위쪽으로 다시 치고 올라 열린 등산로와 합류를 한다. 숲속에 들어서자 좌측에 도장골 본류가 흐르며 아담한 산죽밭 길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초입 등산로는 비교적 뚜렷하나 많은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은 없다. 곧 용소를 만나는데 비가 날리고 있으므로 잠시 머문 후 길을 떠난다. 울창한 숲속은 지난달 지리산행 때와는 절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후죽순이라 했던가. 올해는 유난히 자주 내린 비에 초목은 촉촉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아 그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가 강한 숲 향기를 뿜어내며 싱그러운 푸르름을 발산하고 있다. 이런 이유가 산불 경방 기간 해제를 보름 정도 앞당기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얼마 걷지 않아 곧 이영회 아지트를 만난다. 푯말엔 그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설명이 친절히 적혀있다. 이영회는 이태 선생의 ‘여순 병란’에 나오는 김금일, 김홍복, 이진범, 송관일, 이영식과 같은 14연대 출신 부사관으로 여순사건을 주도 참여하였고, 반란군 총대장인 홍순석과 김지회가 반선 마을에서 이듬해 사살되자, 그 후 잔당 빨치산을 이끌며 토벌군과 투쟁하며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 대장이다. 그는 신출귀몰하였다고 전하며, 부대를 잘 통설하여 토벌군에게 많은 곤혹감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러던 그도 결국은 천왕봉 동북쪽인 상봉골에서 사살되었다. 그 당시 빨치산 대장 이영회의 나이가 불과 26세의 약관이었다는데, 어떻게 강성한 경남도당 빨치산 부대를 이끌어 나갔는지 의문이다. 이영회가 사살된 후 사실상 지리산 빨치산 투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영회는 군인 출신이라 국군 포로에게는 관대하여 사살하지 않고, 산에서 내려보냈다고 이태는 그의 수기 ‘남부군’ 하권에서 전한다. 역사의 현장 그곳엔 세월조차 잊어버린 듯, 그 흔적의 아지트에는 무너진 돌담과 산죽 숲. 그리고 덤불만 무심히 남아 있다. 아지트를 지나자 좌측 넓은 계곡을 따라 산행이 이어지는데 도장골 본류이다.
지리산은 크고 작은 계곡이 99개라 이병주 선생은 말했는데. 지리산의 계곡은 사실 어느 곳을 들러봐도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처럼 비슷비슷하다. 지리산 주능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골짜기도 이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건데 도장골은 피아골의 상류 용수암골과 너무 많이 닮았다. 이러한 도장골은 국군 토벌 작전시 세석평전 쪽과 일출봉, 연하봉의 장터목으로 탈출로가 많아 빨치산들이 안심하고 많이 이용했던 천혜의 요소였다.
좌측 계곡을 끼고 계속 진행되던 길은 끊기고 넓은 계류를 처음 건너게 된다. 계곡의 우측 산등성이로 이어진 아담한 산죽 오름 길은 계속 이어지다가 위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등로가 선회하므로 본류와는 조금 멀어지게 된다. 내리는 비와 자욱하게 낀 안개는 홀로 산행에 다소 장애가 된다. 출입통제지역으로 표지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도장골인지라 오늘같이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된다. 더구나 도장골에서 연하봉으로 오르는 루트는 거의 미답지로 아직도 지리 산꾼들에게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장골에 들어선 지 1시간이 되었을까. 비가 오는 관계로 메모를 하지 못해 지금 생각해보니 모호하다. 지도를 챙기지 않아 확실치는 않으나 본류에서 갈라진 계곡을 타게 된 것 같다. 도장골의 지형도가 머릿속에 그려져 있어 걱정을 하지 않았으나, 가스가 많이 차서 시루봉 골을 타게 된 것이었다. 희미한 갈림길이 2개가 나타났는데 색바랜 표지기가 있던 곳이 와룡 폭포 쪽으로 오르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쪽으로 향한 길을 살폈으나 길로 인식되지 않았고 심한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니 평상시와 달리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는 매우 난감하다. 십여 분 동안 탐색하다 시루봉 골을 치고 오른다. 선택한 시루봉 골도 길이 희미하게 겨우 이어지고 있어 그 길을 따라 오른다 해도 개고생은 각오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길로 오르게 되면 촛대봉에서 흘러내린 시루봉을 만나, 완만한 세석고원 철쭉지대를 따라 촛대봉까지 무리 없이 진행하기로 생각을 한 터였다.
갈림길을 지나 이십여 분 희미한 오름길이 계속되었으나 그 후 곧 길은 사라진다. 하지만 시루봉 골은 어렵지 않은 모습으로 어서 오시라고 산꾼을 유혹하고 있다. 비는 계속 내린다. 발아래는 너덜들이 이어지고 있으므로 미끄럼에 주의한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자주 미끄러진다. 가끔 앞을 가로막은 잡목과 수풀을 비집고 나간다.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으면 바위를 직접 오르고, 걷기 편한 곳으로 우회한다. 다만 아침을 먹지 못해 배고픔을 느꼈으나 계속되는 비에 배낭을 풀고 음식을 꺼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입이 말라 물을 마신다. 다행히 산죽밭 사이로 희미하게 난 잃었던 길을 찾기도 하는데, 곧 그 길은 귀신에 홀린 듯 사라져 버린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의 맥을 찾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짙은 안개 속에 어딘지는 분간이 어려우나 일단 능선에 섰다. 혹시 주능 쪽은 아닐까. 순간적으로 헷갈린다. 평상시 같으면 조망으로 가능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서두르지 않는다. 일단 내려서다가 길이 아니면 다시 돌아섰고 비교적 순한 곳으로 길을 찾아, 나갈 길을 찾는 데 주력을 한다. 산정에는 강한 바람이 분다. 계속 내린 비를 맞아 온몸은 한기를 느꼈고, 축축이 젖은 바지에 살갗이 접촉하여 다리가 뻑뻑하다. 이럴 때 쥐라도 나면 큰일 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험로에서는 위험에 직면할 수가 있다. 제자리에 꼼짝 못 하고 서서 앞뒤 허벅지를 맛사지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쯤일까. 짙은 안개와 함께 비바람이 날리니 고독감이 엄습해 온다. 삐죽삐죽하고 기묘한 형상의 암봉들이 안개 낀 바다의 섬처럼 흐르고, 곳곳에 만개한 철쭉꽃들이 예쁘다. 강한 바람에 꽃잎들이 날린다.
10시가 되어 산죽 사이로 잘 나 있는 길을 찾았다. 이 길이야말로 나의 생명 줄로 촛대봉으로 향하는 길이 틀림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예상대로 심신이 지친 가엾은 산객을 인도해준 고마운 길이었다. 산죽 사이로 길이 확실히 이어진다. 평원에 가까운 이곳엔 철쭉이 많다. 오늘 비바람이 불지 않고 가스가 차지 않았다면 정말 오랜만에 그 천상의 화원을 보았을 것이다,
강한 바람에 재킷 모자를 쓰고 조임 끈을 당긴다. 예상치 못한 바위틈 사이에 1인용 텐트가 있다. 플라이 색깔이 국방색인 거로 보아 위장을 고려한 것 같다. 통제구역인 세석 철쭉지대인 이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할 정도의 산꾼이라면 지리산을 많이 오른 산꾼임에 틀림이 없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건만 기척이 없다. 이럴 때 반응이 없으면 더 부르지 않는 것이 산꾼의 예의이며 도리이다. 아마 강한 바람 소리에 듣지 못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깊은 잠에 빠졌거나 자리를 비웠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아쉽지만 지나쳐간다. 이제 정말. 직감적으로 촛대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감 있게 확신하고 천천히 느긋하게 걸어 나간다.
계속된 완만한 경사면에 고운 철쭉꽃이 만개한 것으로 보아 세석산장에서 바라보았던 넓고 넓은 남동쪽 지역임이 틀림없다. 오를수록 암릉이 자주 펼쳐진다. 비바람에 흩어지는 안개가 자욱하여 바로 앞도 바라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바위 날등을 타고 오르니 올망졸망한 바위 군들이 흩어진 촛대봉이다. 확실한 촛대봉이지만 잃어버린 방향 감각에 주능 등산로 위치를 찾지 못한다. 바위 몇 개를 우회하여 내려가니 통제구역으로 밧줄을 쳐놓고 <출입금지 등산로 아님> 표지판이 있다. 그리고 세석산장의 방향과 천왕봉 쪽을 가리키는 이정표.
반갑다. 오늘은 많이 걷지 않았지만 오름길 5시간 동안 비바람에 시달린 산행이라 몸이 얼고 지쳤다. 비에 젖은 바지는 보행하며 근육의 피로와 경직을 가져왔고 등산화는 진작 도장골 계곡에 빠져 발바닥은 퉁퉁 불어 있던 터였다. 게다가 물 세모금만 마셨을 뿐, 아침 식사도 걸렀으니 힘이 빠진 상태였다. 홀로 산행 때에는 항상 이렇다.
계속되는 근육통을 참고 세석산장으로 향한다. 산님 한분이 비닐을 뒤집어쓴 채 촛대봉으로 오른다. 오늘 산님 구경을 못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다. 산불 경방 기간이 풀려 종주 길에 나섰다는 중년의 산님은 산행하면서 역시 주능 길에서 산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세석산장에 내려서니 역시 무인 산장. 긴장이 조금 풀리니 비로소 추위를 느낀다. 15년 전 이맘때 지리산 종주 길에 나섰다가 세석산장에서 한신계곡으로 탈출할 때도 몸이 이랬었다. 그 당시처럼 따끈한 커피나 우유가 무척 생각이 난다.
지금의 시각이 불과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평상시 같으면 예정대로 음양수 샘을 지나 남부 능선을 조금 맛보다가 한벗샘에서 자빠진골로 내려설 예정인데 지금은 몸이 너무 무거워졌다. 계획을 수정하여 순한 거림골 루트를 따르기로 한다. 몸이 떨리고 한기를 느껴 고어텍스 재킷 위에 우의를 더 걸친다. 샘터를 지나 내려선다. 잘 다듬어지고 닦여진 등산로는 물이 철철 넘쳐난다. 오늘은 출발부터 비에 젖은 산행이었다. 괴롭고 고행의 길이지만 그동안 안일하고 나태해진 일상을 정리할 겸 무조건 출발을 했다. 오늘의 산행이 다만 인적 드문 곳으로 산행이었지만 나는 도전하였다.
요동치는 계곡 물살이 거침없이 하류로 흘러내려 간다. 추위에 덜덜 떨리는 턱 끝을 진정시키고자 배낭을 풀어 팩 소주를 한 개 꺼내 한입에 털어 넣었다. 시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어 천천히 걸었지만 하산 시간은 빨랐다. 내가 거림마을에 도착하고서야 거친 비는 그쳤다. 넓은 주차장엔 깨끗하게 목욕을 마친 애마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늘 하산 후 습관적으로 아쉬운 마음에 안개 낀 주능을 하염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