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22보병사단 유격훈련
해군병장 출신 기자 생애 첫 유격
‘담장 넘기’ 방심했다 체조 8번 쓴맛
원통 구조물에 올라서자 다리 ‘후들’
뒤로 몸 던져 전우들 ‘팔 침대’ 안착
‘타잔 나무 타기’ 두 번 시도했지만 실패
코로나로 2년 만에 재개된 훈련
용사들 이동하며 “유격 자신” 구호
우렁찬 함성에 훈련장 열기 가득
평소 체력단련…자신감 똘똘 뭉쳐
코로나19는 우리 일상 속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사람들이 단체로 모이지 못하면서 늘 해 오던 활동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육군 훈련의 꽃이라는 ‘유격훈련’도 마찬가지다. 군 복무 중 유격훈련을 한 번도 못 하고 전역하는 용사가 생길 정도였다. 최전방 경계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만큼 확진자 발생 예방을 위해 지난 2년간 육군22보병사단의 유격훈련 시계도 멈춰 있었다. 하지만 최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완화되면서 훈련 시계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자는 24일 22사단 북극성포병대대 유격훈련에 동참했다. 체력이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오랜만에 진행하는 훈련에 허둥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만반의 준비로 2년의 공백을 무색하게 만든 장병들의 모습에 ‘나이는 어려도 멋있으면 형’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글=배지열/사진=양동욱 기자
가지 않은 길을 다시 걷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는 화자가 두 갈래의 길을 마주하는 상황이 나온다. 그는 고민 끝에 사람이 적게 지나간 길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기자는 해군병장 출신이다. 수병으로 함정에서 군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내 인생에 ‘유격훈련’은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또래 친구들과 ‘군(軍)부심 배틀’을 벌일 때도 유격훈련의 추억을 곱씹는 그들 앞에선 할 말이 없었다. 연예인들이 군 생활을 체험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렴풋이 유격훈련의 어려움을 느낀 정도였다.
그렇게 ‘가지 않은 길’이 될 것 같았던 유격훈련의 길을 국방일보 기자로 걷게 됐다. 24일 강원도 고성군의 한 훈련장에서 펼쳐진 유격훈련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나이 차가 10년 이상 나는 장병들과 함께 뛰어들었다. 부대 측에서 준비해 준 군복과 전투화를 신으며 마음이 착잡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풀 냄새와 모래바람이 낯선 훈련장으로 향하는 기자의 얼굴에 부딪혔다. 이날은 낮 최고기온이 32도에 달해 올해 중 가장 더운 날이었다. ‘날을 골라도 하필 이런 날을 골랐을까’. 하늘을 원망할 새도 없이 훈련이 시작됐다.
‘집중!’…교관의 따끔한 가르침
첫 훈련은 ‘전우와 담장 넘기’였다. 나무판자를 덧댄 2m 남짓한 높이의 벽을 한 조로 편성된 교육생들이 힘을 합쳐 오르는 훈련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에 조교 시범을 제대로 보지 않고 방심한 것이 실수였다. 한 명이 뛰어올라 벽을 잡으면 다른 2~3명이 엉덩이를 받쳐 밀어 올려주고, 벽 위에 올라선 교육생이 손목을 잡고 다른 교육생을 끌어올려 주는 방식이었다.
이윽고 기자 차례가 됐다. “1번 교육생 등반 준비 끝!” 자신감 있게 보고했지만 교관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교육생, 보고하는 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까?” 분명히 조교 시범과 앞선 교육생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했다고 생각했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두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지만, 교관은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나 때문에 함께한 교육생들과 공포의 유격체조 8번 ‘온몸 비틀기’ 맛을 보고 말았다. 다리 무게를 버티느라 애쓰는 와중에도 당황스러웠다.
체조가 끝나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보고 자세 중 주먹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가 양쪽으로 팔을 펴면서 손도 펴야 하는데 기자는 주먹을 쥔 채로 잘못된 자세를 반복한 것이다.
“여러분이 집중하지 않으면 교관과 조교가 앞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행동요령을 전하는 말과 직접 보이는 시범에 집중하지 않으면 훈련 중 다칠 수도 있습니다.” 가볍게 생각했던 훈련의 참맛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훈련을 실전같이, 실전을 훈련같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훈련이 끝나고 미안한 마음에 함께한 교육생에게 말을 건넸다. 오용택 일병은 “유격훈련은 힘들지만, 전우와 함께하면 다치지 않고 다 극복해 잘 마무리할 수 있다”고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가슴 뭉클한 전우애…격려 박수도
다음 훈련은 ‘트러스트 폴’. 원통 모형의 구조물 위에서 “전우야, 믿는다”를 외치며 양팔을 X자로 모으고 뒤로 떨어지면 다른 교육생들이 팔을 모아 받아 내는 훈련이다. 말 그대로 전우를 믿고 내 몸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기자 차례가 돌아오고 원통 위에 올라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낙하지점까지 가는데 앞이나 옆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균형을 잡고 서서 앞을 바라보자 울창한 숲이 한눈에 펼쳐졌다. 하지만 그 풍경을 뒤로하고 떨어져야 할 시간. 전우를 믿는다는 말을 외쳤지만 무서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땅에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 직전에 안정적인 전우들의 ‘팔 침대’가 내 몸을 받쳤다. 처음 본 장병들을 향한 전우애가 솟아올랐다.
협동해서 해내야 하는 훈련이 있는 반면 개인의 체력과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훈련도 준비됐다. ‘엮어가기’는 가로로 놓인 사다리 모양의 철봉 구조물에 몸을 위와 아래로 교차하면서 통과해야 한다. 철봉을 잡고 버텨 내는 팔 힘과 유연성이 요구됐다. 하지만 기자의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철봉 오르기부터 난관이었다. 한 차례 떨어지는 아픔을 겪어 무서웠지만, 한 번 더 도전하겠냐는 교관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해보겠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간신히 철봉 위에 올라 몸을 아래로 통과시켰는데 다음 철봉까지 거리가 구만리처럼 느껴졌다. 손을 뻗어 잡으라는 조교의 말에도 팔을 뻗는 순간 떨어질 거라는 불안함에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몸을 받쳐 준 조교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훈련을 마무리했다.
이어진 ‘타잔 나무 타기’ 훈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봉과 철봉 사이를 마치 밀림 속을 누비는 타잔처럼 손을 교차해 가면서 넘어가야 한다. 어렵지 않게 철봉 사이를 오가는 조교와 다른 교육생에게 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기자는 이 훈련에서도 두 번의 시도에서 모두 한 단계도 이동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애쓰는 ‘아저씨’ 모습에 교육생들이 박수로 격려를 보냈다. ‘세월이 야속하다’는 아쉬움이 절로 내뱉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외나무 건너기 △뒤에서 계단 오르기 △5단봉 뛰어넘기 등 다양한 장애물 코스가 마련됐다. 장병들이 이동하면서 내는 “유격 자신!” 구호와 훈련을 마치고 내지르는 함성에 훈련장 곳곳이 열기로 가득 찼다.
자신감과 체력으로 극복하는 유격훈련
유격훈련을 처음 경험하는 용사들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걱정을 떨쳐 냈다. 백진욱 일병은 “입대 전 ‘유격체조 8번이 힘들다’ ‘행군이 힘들다’는 말을 듣고 겁도 났지만, 훈련 전날 밤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되뇌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며 “실제 겪어 보니 몸은 힘들지만, 전우를 믿고 열심히 하면 무사히 수료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년 만에 재개된 유격훈련이라 모두 긴장한 상태에서 훈련을 맞이했다. 처음 유격훈련에 임하는 인원이 많은 만큼 각종 상황에 대비도 해야 했다. 부대는 훈련을 앞두고 체온을 측정해 이상이 있는 경우 격리 조치하는 매뉴얼을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교육생들과 함께 훈련에 임한 정용우(대위) 본부포대장은 “2020년 유격훈련 이후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걱정도 됐지만, 평소 체력훈련을 꾸준히 해 온 대원들 덕에 잘해 내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번 유격훈련은 오는 27일까지 계속된다. 박용운(중령) 대대장은 “코로나19 때문에 2년 만에 시행하는 유격훈련이지만 대원들이 체력과 단결력을 끌어올려 잘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첫댓글 서진만봐도 힘들어보이네요ㅜㅜ
유격~ 아무리 믿는다 해도 쉽지 않은 훈련이네요~
힘든훈련 하나 하나 해내면서 여리던 아들들이
강한 군인으로 거듭나는 거겠지요…😭
부디 손톱만큼도 다치는일 없이 건강히
잘 마치기를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