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팽배한 사회의 갑질을 본다 글/박철영
한 해의 달력도 한 장만 달랑 남았다. 생각해보면 시간은 세월 속에 빠르게 묻혀간다. 세월에 묻혀 사는 게 사람이다. 어찌하다보니 나도 나이만 들어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행복이구나 싶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있다. 한때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어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버릴 듯이 요란을 떨었던 갑의 횡포가 아직도 곳곳에 관행처럼 남아 힘 있는 자의 갑질을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는 가졌다고 갑질이다. 못 가진 자는 더 못가진자에게 힘 있는 갑질이다.
정상인은 가장 힘없는 장애인에게 대단한 갑으로서 존재하고, 길바닥에서 노점을 하는 할머니에게는 나이 젊은 청년이 자릿세를 뜯으며 갑질을 한다. 참으로 한심한 사회임은 분명하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힘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에게도 법으로서 누르는 갑질을 한다. 이 사회가 온통 갑과 을이 존재하는 거대한 먹이 사슬 같다. 그러고도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사람들이고 대단한 나라에 산다는 우월의식을 일부가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지구인들이 곳곳에서 한류라고 찾아들어 우리 것을 보고 듣고 배우러왔다 간다하니 그렇다. 순천이란 소도시에서도 거리를 걷다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외국인들이 있다. 원어민 교사로 와 있는 외국인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가 어찌 보면 선호하는 외국인인 것이다. 그런 그룹에서 벗어나있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들을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의 사람이라고 미리 판단을 내려놓고 바라보는 외국인도 있다.
피부색과 생김새도 우리와는 쉽게 구별되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많이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들과 거리를 지나치다 눈이 마주치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눈부터 피해버렸다. 그 자체가 부담이었으니 그러다보면 그들은 내 곁을 되레 미안해하며 지나쳐갔다. 동남아인들이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노총각들을 위해 국제결혼이라는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 넘어와 새 삶을 꿈꾸는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언제부턴가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면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가슴속에는 남다를 그리움을 삭히며 살고 있음이다.
그들이 보금자리라고 찾아든 곳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서도 소외되어 가정을 꾸리기가 어려운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들을 우리 사회에서는 다문화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그들에게 잊을만하면 터지는 가정 내 폭력이 반복되고 언젠가 스무 살이 갓 넘은 베트남 여성이 시집와서 불행하게도 주검이 된 모습에 유족들이 분노에 찬 모습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런 사건이 우리 주위에서 잊을만하면 터진다. 우리의 여건이 필요해서 사는 그들에게 우린 더 이상 갑이 아니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우린 그들은 다문화인이 아닌 같은 사회에 사는 사회인으로 인식해줘야 한다.
우리의 사회 곳곳에는 다문화인의 문제뿐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올 한해를 갈음하면서 스스로 반성해본다. 나는 혹시 가장 약한 자에게 갑의 생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다.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도 해결의 기미가 없다, 이것도 결국에는 힘 있는 집단에서의 통 큰 양보와 뼈를 깍는 반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 일수록 글을 쓴다는 게 부끄럽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뻗어있는 부조리들을 내 손끝의 글로써 단칼에 베어낼 수 없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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