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지씨와 경주지씨 관계
경주지씨 시조 문성공 지원부(1170~1180 출생함)이며 중시조 충의공 지용도이다. 문성공 지원부의 사위인 정숙은 해주정씨 시조이다.
경주지씨는 충주지씨에서 갈려져 왔으며 설과 또다른 지씨성을 중국에서 귀화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시조 문성공 지원부는 충주지씨 시조 지경의 후손인지 정확한 문헌 없어 고증하기가 어렵다.
문성공 지원부의 사위는 해주정씨 시조 정숙은 생존연대는 대략 1190~1210년 사이에 출생했다고 합니다.
문성공 지원부의 생존연대 1170~1180년 사이에 출생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이를 것입니다
충주지씨족보 역시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충주지씨족보에 기록된 우사간(벼슬이름) 지원부 세계도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현재 충주지씨 대동보에 실려있는 지원부 계보도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충주지씨족보 및 관련들이 90%는 신뢰가 가지 않고 있다.
다만 아래의 내용은 충주지씨족보에 의하며, 역사적인 검증이 되지는 않았으며 또한 정확한 문헌 없어 고증하기가 어렵습니다.
충주지씨족보에 따르면, 충주지씨는 지씨의 시조(1세조)인 "지경"으로부터 6세가 되는 "종해"에서 본관이 충주로 정해졌고, 경주지씨는 역시 "지경" 시조로 부터 충주지씨로 이어져 16세 "元夫(원부)"에서 본이 경주로 정해집니다. 즉, 경주지씨는 충주지씨에 속해있다가 시조로 부터 16세 "원부"를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주지씨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충주지씨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경주지씨를 인정하는 사람은 16세에서 독립한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검증이 되지는 않았으며 또한 정확한 문헌이 없으며 충주지씨 시조 지경으로부터 경주지씨 시조 지원부까지 연계할 고증자료가 없기 때문에 고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충주지씨정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경주지씨의 일부 후손들도 현재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통설로 보셔도 무방할 듯 합니다.
지씨(池氏)는 조선씨족통보」 에는 지씨의 본관을 89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관향은 충주, 울진, 경주, 청주, 단양, 광주 6본으로 전한다. 그들은 아직 정확한 문헌이 없기 때문에 고증하기가 어렵고 아직 정확한 고증 계대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각각 울진지씨, 경주지씨, 충주지씨, 청주지씨, 단양지씨, 광주지씨 대종회을 따로 한다고 합니다
*.경주지씨 대종회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