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5.
주말에 사촌 동생 결혼식이 성당에서 있었다. 카톨릭 신자인 나는 주일에 성당에 가지 않는데 오랜만에 성당에 가니 마음이 참 좋았다.
미사가 시작되면서 내가 왜 성당 미사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 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신자들이 동시에 말하는 문구와 기도문들이 나에게는 개인적인 감정이 배제된 채 주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도 다소 저음이고 말하는 음색도 모두 동일해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나보다.
오래전에 세례를 받기 위해 성경 공부를 할 때 각종 기도문을 나는 전혀 외우질 못했다. 암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인데 이상하리만치 기도문은 외워지지 않았다. 외우는 행위 자체가 기계적인 느낌이 들어서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반발심이 생겼던 것이다. 세례식날 신부님이 여러 기도문을 물어보실 거라는 수녀님 말씀에 차라리 세례를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수녀님께서 내 생각을 이해해주시며 기도문을 외우지 못해도 괜찮다고 다독거려주셨다. 신부님도 수녀님으로부터 전해들으셨는지 나에게는 질문을 하지 않고 부드러운 눈길과 미소를 보여주시며 옆 사람으로 이동하셨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그 분들 덕분에 나는 마침내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불편한 점은 신부님이 신랑에게 시종일관 반말을 하신 점이다. 신부님과 신랑 가족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엄연히 결혼식을 치르는 성인이고 많은 하객들이 있는데 왜 반말을 하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었다. 무심코 튀오나온 신부님의 어투로 짐작컨데 젊은 층이나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반말을 하시는 듯 했다. 누구보다 타인을 존중하는 직업이 성직자라고 생각하는데 하대하듯 반말을 해도 될까?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에게 해주신 말씀을 듣다보니 마치 결혼 생활을 해 보신 분처럼 단언적으로 얘기를 하셔서 불편했다. 물론, 결혼 후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해도 결혼 생활은 칼로 무자르듯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은데 사랑만으로 극복하라는 것이 나에게는 공허하게 들렸다. 마치 학자가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이론만 강조하며 사람들에게 이론에 따른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혼의 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결혼 생활에 대해 타인에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결혼이란 이런 것이다 혹은 배우자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단언적인 말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배우자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음을 말이다. 결혼 생활에서 사랑만으로 문제가 극복되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차라리 신부님이 신랑신부에게 앞으로 서로 다툴 일이 많을 것이라고 얘기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으니 부딪히는 일이 많을 것이므로 갈등을 회피하지말고 언제든 대화를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만이 아니라 인간사 어디든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존재하므로 무조건 사랑으로 이해하고 감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배우자를 사랑하라고 신부님이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엄연히 다른 사랑이다. 자식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하지만 배우자에게는 쉽지 않다. 심지어 나를 낳아준 부모님에게도 쉽지 않다. 자식에게도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는 없다. 성경에서 믿음, 희망, 사랑 중 사랑이 으뜸인 이유를 말씀하신 신부님 설명에는 공감하지만 결혼 생활에서 사랑만을 강조하는 말씀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내 생각을 말했더니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신랑신부에게는 와 닿았으려나. 그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신부님이 내가 아닌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으니. 그래도 솔직히 아쉽다. 그 곳에 모인 신도들과 비신도들 모두가 "역시 신부님 말씀은 일반 사람들과 뭐가 달라도 다르네.'라는 생각을 갖길 바랬기 때문이었나보다. 신부님마다 설교 성향이 다름을 안다. 영국에서 만났던 신부님 같은 분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