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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山堂印譜抄釋文序 - 朴齊家
今之聦明不開者。患在淡看古人書。夫古人絶不作凡語。何淡之有。獨不見夫學山堂張氏之印譜乎。人知其爲印譜而已。不知其天下之奇文也。知其印譜之文而已。曾不知古人之語之無一不如是者也。夫張氏之爲此也。當明末朋黨之世。値陰盛陽衰之運。懷忠抱憤。獨行無偶。不平之氣。無處發洩。於是襍取經史子集,百家之韻語。摘爲印藪。假托譏刺之末。摩乎篆刻之間。反言之則激人也易。直言之則入人也深。文短而意長。采博而旨嚴。國風之比興也。離騷之怨慕也。里巷歌謠之咨嗟詠歎也。雖嬉笑怒罵。反復百出。恩怨炎凉。情態互殊。而其砭骨之聲。刺眼之色。千載愈新。不可得以終泯。則泠然而癡者可慧。森然而姸者可毅。小人足以平其忮心。君子足以扶其正氣。誠名理之奧府。辭命之鑰匙。闒茸之金箆。頹俗之砥柱者矣。讀者於此苟得其欲哭欲泣之心。可驚可愕之狀。則天下之奇文。不過如是。古人之千言萬語。不過如是。吐詞則霏霏而可聽。摛翰則翩翩而可樂。聦明開而悟解來矣。又豈特今日之印譜而已哉。吾友懋官爲之釋文手抄而索余序。嗚呼。鴨水以東。不淡看書者幾人。則宜余言之不見信也夫。噫。
『학산당인보』 풀이글에 붙인 서문, 박제가
오늘날 총명하지 못한 자는 옛사람의 책을 무덤덤하게 보는 것이 문제다. 옛사람은 결코 범상한 말을 하지 않았으니 어찌 무심코 보겠는가? 유독 저 학산당 장씨의 인보를 보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그것이 인보인 줄로만 알 뿐 천하의 기이한 문장인 줄은 모른다. 인보의 글인 줄만 알지 일찍이 옛사람의 말이 한 마디도 이와 같지 않음이 없는 줄은 알지 못한다.
대저 장씨가 이 작업을 한 것은 명나라 말엽 붕당의 시대에 음이 설치고 양이 쇠퇴한 운수를 만나, 충정과 울분을 품고 홀로 가며 함께할 사람이 없고 보니, 불평한 기운을 펼 곳이 없었다. 이에 경사자집經史子集과 백가百家의 운치 있는 말을 뽑아 인보로 만들어 풍자의 끝자락에 가탁하고 새겨 파는 사이에 갈다듬었다.
뒤집어 말한 것은 사람을 격동시키기 쉽고, 곧장 말한 것은 사람에게 깊이 파고든다. 글은 짧지만 의미는 길고, 널리 채집했어도 담긴 뜻은 엄정하다. 『시경』 국풍國風의 비흥比興과 「이소離騷」의 원망과 그리움, 뒷골목에서 부르는 노랫가락의 탄식하고 영탄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비록 즐겨 웃고 성내 나무라는 것이 수없이 되풀이되고, 은혜와 원망, 뜨겁고 찬 정태情態가 서로 달라도, 뼈에 사무치는 소리와 눈을 찌르는 빛깔만큼은 천년 세월에도 더욱 새로워 끝내 없어질 수가 없다.
그럴진대 시원스럽기는 멍청한 자를 지혜롭게 할 수가 있고, 우뚝함은 여린 자를 굳세게 할 수가 있다. 소인은 원망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하고, 군자가 바른 기운을 붙들어 세우기에 넉넉하다. 진실로 명리의 심오한 곳집이요, 글쓰기의 열쇠이며, 용렬한 자의 눈에 낀 백태를 긁어내는 쇠칼이요, 무너지는 풍속의 버팀돌인 셈이다.
읽는 사람이 이 책에서 진실로 통곡하고 울고 싶은 마음과 놀라 경악할 만한 형상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천하의 기이한 문장도 이 같은 데 지나지 않고, 옛사람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도 이 같은 데 불과할 것이다. 말을 토해내면 조곤조곤 들을 만하고 종이를 붙들면 훨훨 날아 즐길 만하여, 총명이 열리고 깨달음이 이를 것이니 또 어찌 오늘날의 인보에 그칠 뿐이겠는가?
나의 벗 이덕무가 풀이글을 직접 베껴써서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아! 압록강 동쪽에서 무덤덤하지 않게 책을 보는 자가 몇이나 되랴. 결국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
夕佳軒
저녁이 아름다운 집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젊은 날의 명성을 뒤로하고
늙어 추한 그 모습은 보는 이를
민망(憫惘)하게 한다.
저녁이란 늘그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늙음을 견디지 못하면 많이 챙겨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노탐(老貪)이라는 말도 있고 노욕(老慾)이라고도 한다. 탐하고 욕심을 낸다고 챙겨둘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버리고 떠나기!
好學者雖死若存
不學者雖存行尸走肉耳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산 것과 같고,
배우지 않는 자는 비록 살아 있어도
걸어다니는 시체요 달리는 고깃덩어리일 뿐.
배우지 않는 삶, 향상이 없는 생활, 꿈꾸지 않는 나날.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배워서 변화하지 않는 삶은 밥벌레의 하루일 뿐이다.
배우고 익힘은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는 행동으로 될 때 올바른 일이 된다. 배우고 익히고 실행하는 삶이라야!
仰面問天天亦苦
고개를 들어 하늘에 물으니
하늘도 또한 괴롭다 허더라.
혼자 끙끙 앓다가
세상이 어찌 이리 불공평하냐고 따져 물었다.
하늘이 대답한다.
“나도 괴로워 죽겠다, 이 녀석아!”
누구도 거저 살아가는 게 아니다. 보이는 것만 볼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것까지도 보려고 해야 보인다.
贈人以言
重於金石珠玉
남에게 말을 해주는 것은
금석이나 주옥을 주는 것보다 무겁다.
몸에 약이 되는 말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이
재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정문(頂門)에 일침이 되는 말 한 마디는
흐리멍덩하던 정신을 깨우니 그렇다.
재물을 싫어할 까닭은 없다. 그렇다고 재물을 좇을 일은 아니다. 좇는다고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리는 일이 먼저다. 재물은 그 다음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越不聰明越快活
멍청할수록 더 쾌활해지네.
나는 바보가 되고 싶다.
나날이 어리숙하게 그렇게 살고 싶다.
그 자리에 쾌활한 마음 하나 들여두고
기쁘게 사물과 만나는 삶을 살고 싶다.
우즉현(愚卽賢)이라고 했고 곡이직(曲而直)이라는 말도 있다. 귀도 밝고 눈도 맑으면 좋기도 하겠지만 입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렇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낮추고 낮추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 그러니 그러려고 애를 써야지.
寂寞深山何堪久著
曰多情花鳥不肯放人
“적막한 깊은 산에 어찌 오래 견디고 있는가?”
“다정한 꽃과 새가 놓아주지 않으니…….”
왜 사람 없는 적막한 산중에 깃들어 사느냐고?
산속이 적막한 것은 자네 마음이 적막한 것일세.
피고 지고 또 피는 꽃들,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새들.
저 정다운 것들을 두고 어찌 여길 떠날 수 있을까?
어디나 깃들면 거기가 곧 극락이 아닌가? 극락은 사람마다 다르리니, 스스로 극락을 찾아야 한다. 산이 좋으면 산에서 살고, 물이 좋으면 물가에서 살면 된다. 사는 데 거기가 극락이면 어디서나 행복리라.
讀書不多膽不大
造理不精心不卑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담이 크지 못하나조리는 자세하지 않아도 마음은 낮지 않네.
독서의 온축(蘊蓄)이 옶고 보니
판단하고 결행해야 할 때 자꾸 미적거린다.겁도 나고 주눅이 든다.
비록 이치가 정밀하지 않아도 마음은 떳떳하고자 한다.
책에 길이 있어도 그 길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비겁해지고 말지니!
白石淸泉冷笑人
흰 돌 맑은 샘, 씩 웃는 사람
겨울 시내엔 물이 줄어 흰 돌이 다 솟았다.
막힘이 없구나, 차고 맑은 샘물!
멍하던 정신이 번쩍 든다.
차고 시린 세상에서 겼은 일들.
흰 바위에서 솟는 맑은 샘처럼, 그냥 씩 웃자.
단단하고 차가운 돌 틈에서도 맑은 샘은 솟아난다. 거기라서 그렇게 맑을지도 모른다.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맑게 꾸준히 솟아나야 하는 삶이다.
志士惜浪死
뜻을 세운 선비는 헛되이 죽지 않는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곧게 내려 그은
스물세 개 곧은 필획 속에서
세사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다짐을 본다.
값없는 죽음을 두고 개죽음이라고 한다.
한낱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함이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고 했다. 죽은 뒤에야 사람의 참다운 평가가 내려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헛되이 함부로 죽어서는 아니 된다. 죽음으로 삶이 사라지지 않으니 더욱 그러하다.
有耳不聽無味語
有手不揖無意人
귀가 있어도 맛이 없는 말은 듣지 않고
손이 있어도 뜻이 없는 이에게는 읍하지 않는다.
여운이 없는 말, 울림이 없는 이야기는 소음일 뿐.
귀로는 그런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없는 사람, 주견 없이 사는 삶 앞에서는
결코 두 손을 맞잡아 예를 표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러해야 하리라.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은 많이 다르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야 한다. 생각을 가지면 주견이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 그렇게 소통하고 사귀면서 살자!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나라 안에 알아주는 벗이 있으니
하늘가에 있어도 이웃과 같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 벗이 있어
이 차가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말도 있고 지음(知音)이라는 말도 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어떤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사람은 친구이다. 평생을 함께 갈 사람은 친구뿐이다. 보약 같은 친구!
莫嫌山木無人用
大勝櫳禽不自由
산속 나무 쓰는 이 없다고 싫어하지 말지니
조롱 속 자유 없는 새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
못생긴 산속 나무는 거들떠보는 이 없어도
제 생김새대로 잘 살아간다.
어여쁜 새는 조롱 속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 사랑에 무엇이 있는가?
자유 없는 사랑과 사랑 없는 자유 가운데 어느 것을 좇아야 할까? 그 답을 알 수 있겠다. 사랑도 넘치면 구속이 되는 것! 그냥 그대로 두고보는 사람이라야 참사랑이 아닌가?
帝言女仙才努力不自輕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신선의 재질이 있으니
노력하여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라.”
천상에 죄를 지어 잠시 인간에 귀양 온 것이다.
그러니 세상 고초는 마땅히 겪어야 할 시련일 뿐.
고통에 짓눌려 몸을 망치지 말고 자중자애 하여라.
자신을 지키는 일은 삶에 있어서 하나이면서 마지막이다. 그러나 잊고 지내는 순간이 많다. 누구에게라도 신선이 될 재질은 있을 것이다. 다만 찾지 않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행복은 거기에!
君子有不幸而無有幸
군자에게는
불행함은 있을지라도
다행함은 없으니.
옳은 길을 의심 없이 갔더니 불행만 남았다.
그러나 그 불행이 내 정신을 앗아가지는 못하리.
바른 길을 걷다 만나는 고통은 자랑스럽다.
운 좋게 요행으로 잘되는 일은 경계하리라.
사람은 무엇을 통해 성정하는가? 요행인가, 불행인가? 기쁨인가, 괴로움인가? 무엇이든 올바른 마음이라야 할 터이다. 삶에는 기쁨보다 괴로움이 더 많다는 걸 알아야 괴로움을 이길 수 있다.
勿言大小異
隨分有風波
크고 작음을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분수에 따른 풍파가 있을 뿐이라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덮어놓고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지닌 것이 많다 보면풍파 또한 잠잠할 때가 없는 것.
그릇이 크고 작음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에 따라 작은 그릇도 크게 쓰는 이가 있고, 큰 그릇도 작게 쓰는 이가 있다.
安往而不得貧賤哉
어디 간들 빈천이야 얻지 못하랴.
밑바닥까지 내려갈 작정을 하면
어디로 가더라도 겁날 것이 없다.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 때문에
알량한 부귀에 제 명예를 팔고 만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했다. 안빈이 먼저인가, 낙도가 먼저인가? 가리기가 쉽지 않다. 안빈이 앞서 있으니 안빈이 먼저라고 본다. 안빈하지 않은 낙도를 낙도라고 보아야 할까? 가난하지만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사람을 존경하고 기억한다.
不爲俗情所染
方能說法度人
속된 정리에 물들지 않아야
바야흐로 법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법도는 마음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이를 일러 줏대라고 한다.
줏대가 있으면 자질구레한
속된 정리에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갈피를 잡고 줏대를 세워야 한다.
사사로운 정이 없어도 사람들과 사귈 수 있을까? 안 된다. 그렇다고 그 정에만 매여 있어서도 안 된다. 사사로운 정을 여럿이와 나눌 수 있으면 사사로운 정을 넘어서는 일이다.
功成身不退
自古多愆尤
공을 이루고도 물러나지 않으매
자고로 허물이 많아지는 것이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물러나야 할 때는 머뭇거리지 말라.
자리를 지키고 있는다 하여
허물어지는 공을 지키지 못한다.
물러나야 할 때는 지체 없이 떠나거라!
언제 물러나야 하는가? 밖에서 답을 구할 일이 아니다. 조금 더 해야겠다 싶을 때가 곧 물러나야 할 때이다. 거기에는 어떤 계산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人齩得菜根
則百事可作
사람으로서 풀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초근목피로 연연하는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못할까? 그래도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풀뿌리 쓴맛을 보았다고 하여 못할 일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사람도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손잡고 함께 가야 할 사람이다.
洞口鳥呼鳥
山頭花戴花
골짜기 새들을 새를 부르고
산꼭대기 꽃들은 꽃을 꽂았네.
새들은 새들끼리 꽃들은 꽃들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그렇게 서로 부르고 어울리며 한세상 건너간다.
유유상종(類類相從)도 좋지만 이류상종(異類相從)도 좋겠다. 같은 것끼리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다름을 물리쳐서는 안 되리라.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어울리는 모습이 더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傲骨俠骨
媚骨賤骨
總成枯骨
오만한 사람도 의협심 강한 사람도
아첨하던 사람도 천한 사람도
모두 다 마른 뼈가 된다.
땅에 묻혀 마른 뼈가 되고 나면
생전에 일들은 다 덧없다.
다섯 번 나오는 ‘골(骨)’자가 그 모양이 다 다르다.
마치 그대들 삶이 다 달랐던 것처럼.
사람은 다 다르다. 그래서 다르게 산다. 그래도 같은 데를 본다.
誰能買仁義
令我無寒飢
누구에게 능히 인과 의를 사게하여
나로 하여금 추위와 굶주림을 없게 할까?
인의로 길을 잡으면 득의 대신
추위와 주림을 동무 삼아야 한다.
의롭고 어진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
내 삶의 누추한 그늘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부를 이루고 이름을 날리려고 하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청부(淸富)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恨古人不見我
옛사람이 날 보지 모하니 한스럽구나.
책을 열면 옛사람과 만날 수 있다.
그때는 옛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로부터 받은 배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아! 나는 그를 벗으로 여기는데
그는 나를 벗하지 않는구나.
현재는 과거를 볼 수 있어도 과거는 현재를 보지 못한다. 현재에서 보는 과거는 과거 그대로는 아니다. 그러니 과거가 현재를 보지 못하는 걸 탓할 수 없다. 탓해서도 안 된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喜極勿多言
怒極勿多言
너무 즐거워도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노여움이 지극해도 말을 많이 하지 말지라.
많은 말은 언제나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
하는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다. 그래도 말은 하고 산다.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감정이 지나치게 요동칠 때에는 말을 삼가야겠다. 감정을 다스리는 길이기도 하다, 말 하지 않음은.
學然後知不足
배운 뒤라야 모자람을 안다.
평생 모자람을 모르고
자족하는 인생은 참 슬프다.
배움이 없이는 스스로 모자란다는
뼈저린 자각도 쉽지 않다.
부끄러움도 없다.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용감하면 무식하게 살아도 되고, 무식하면 용감하게 살 수 있을까? 무엇이 무식이고, 어떤 행동이 용감일까? 사람의 길은 누구도 잘 알 수 없다.
生無一日懽
死有萬世名
살아서는 하루도 기쁜 날이 없었어도
죽어서는 만세토록 이름을 날리네.
죽은 뒤 만세에 이름을 날리는 일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랴.
관계가 없을 리 없다, 내 이름이니까.
쓰디쓴 날들이 남기고 간 희미한 위로!
세상은 안다. 세월은 기억한다. 그러니 오늘 지금 기쁨도 있어야지만 내일 남아 있을 이름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냐?
人有異我心
我無異人意
남들이야 내 마음과 같지 않아도
나는야 남들의 뜻과 다름이 없다.
나는 꿍꿍이속을 따로 갖지 않으련다.
끊임없이 눈치 살피고 잔머리 굴리고
남을 이용해 먹을 생각이나 하며
그렇게 살아서 무엇 하랴.
내 마음도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데 남의 마음까지 알고 살아야 할까? 내 마음도 스스로 좌우하지 못하는데 남의 마음까지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함께 어울리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재어 보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 삶이 아닌가?
君子直而不挻
曲而不詘
군자는 곧아도 뻗대지 않고
굽히더라도 양보하지 않는다.
빛나되 번쩍거리지 마라.
예리하되 남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곧아도 남을 업신여기지 마라.
포용하되 다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만이불일(滿而不溢)이라는 말이 있다. 가득 차는 것은 괜찮지만 넘침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참된 물은 향기가 없고, 진광불휘(眞光不輝) 참된 빛은 반짝거리지 않는다고 했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야 하리라.
少年多失
改之爲貴
젊어서 실수가 많더라도
이를 고치면 귀하게 된다.
젊은 날 잘못 많았던 것도 부끄럽지만
나이 들어서도 고치지 못한다면 어디에 서겠는가?
잘못을 고쳐 새로 시작한다면
지난날의 허물이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실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실수를 실수로 알지 못하고, 실수를 고치지 못하는 것이 탈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된 사람은 실수를 실수로 알고 곧 바로 잡는다.
실수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施人謹勿念
受施謹勿忘
남에게 베풀었으면 생각하지 말고
베풂을 받았으면 잊지를 마라.
베풀고 나서 생각을 낼 양이면
애초 베풀지 않는 게 좋다.
베풂을 받았으면 잊지 마라.
세상살이에는 주고받는 일이 이어진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좋은 사람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를 닮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주는 것을 좋아해도 그것을 잊지 못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주고받다’는 있어도 ‘받고주다’는 없다, 사전에는.
野鶴雖飢
飮啄閒
들에 있는 학은 비록 주려도
마시고 쪼는 것은 한가롭다.
굶주려도 기품을 잃지 않는다.
허겁지급 모이를 향해 달려드는
참새 떼의 경멸함을 나무라듯이
그 주림과 목마름을 마치 음미하듯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먼저라야 하리라. 그럼에도 쉽지 않은 것은 왤까? 남보다 먼저라야 하고 하나라도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어쩌면 인지상정일지 몰라도….
품위를 지키는 일과 거들먹거리는 것은 다르다. 위선은 말할 것도 없다.
心無度者
其所爲不可知矣
마음에 법도가 없는 자는
그 하는 바를 알 수가 없다.
중심이 바로 서지 않으면 못할 짓이 없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제멋대로 한다.
스스로 올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더욱 참담할 뿐이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사람들과 함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사람고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법도를 지녀야 하고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끝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보기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世上眞正
讀得十三經卄一史者
幾人
세상에서 진정으로
십삼 경과 이십일 사를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슴으로 밁지 않고 머리로만 읽는
독서는 죽은 독서일 뿐이다.
그 많은 경전의 말씀, 역사의 가르침은
어찌하여 삶 속에서 의미를 갖지 못하고
관념으로만 떠돌고 있는가?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했다. 책은 오죽할까? 눈으로는 읽을 수 없다.
上士閉心
中士閉口
下士閉門
으뜸가는 선비는 마음을 닫고
중간 가는 선비는 입을 닫으며
못난 선비는 문을 닫는다.
스스로 닫은 것이 무엇인가?
마음인가 입인가 대문인가?
마음의 문을 닫아거니
남들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
혼자 가만 웃을 뿐이다.
마음을 닫는다는 말을 다시 새겨야겠다. 사귐을 접는 일은 아니다. 다만 신중함을 지키는 일일 뿐이다.
不實心不成事
不虛心不知事
마음이 실답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텅 비지 않으면
일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알차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을 텅 비워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마음을 채울 줄도 알아야 하고마음을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알차게 하는 일은 무엇이며, 마음을 텅 비우는 일은 또 무엇일까? 채워야 할 때 비우고, 비워야 할 때 채우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나 어려운 욕심인지….
路窄處留一步與人行
味濃處減三分讓人嗜
길이 좁은 곳에서 한 걸음 남겨
남과 더불어 가고
맛이 깊은 곳에서 삼 분을 덜어
남이 즐기도록 양보해야 한다.
모두 다 즐겨 끝장을 보는 일은 좋지 않다.
남을 위해 남겨두는 여백, 가지 않고 남겨둔 길,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이렇게 해야 삶이 훈훈해지는 법이다.
여백이 더 필요한 오늘날이 아닌가? 빈틈없이 들어앉은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할까? 모으고 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제는 펼치고 나누어야 한다.
不飮濁泉水
不息曲木陰
흐린 샘물은 마시지 않고
굽은 나무 그늘에선 쉬지 않는다.
목이 말라 혀가 타도
흐린 물로 목을 축이지 않겠다.
지치고 힘들어도
곧은 나무 그늘에만 깃들겠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양금택목(良禽擇木)이라고 했다. 가리기 위해서 가리는 게 아니라 가려야 하니까 가리는 것이다. 가리는 것은 무엇을 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치 않는 것을 버리는 일이다. 버려야 할 것을 지니는 것은 근심을 키우고 걱정을 사서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지치고 목이 말라도 가릴 것은 가려야 한다.
人情太密反成疏
인정이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멀어진다.
거리가 필요하다.
두고 볼 수 있는 거리!
서로 구분할 수 없어서는 안 된다.
가까울수록 예의를 갖추고
오래될수록 서로 공경하라.
적절한 거리는 얼마?
고슴도치는 서로 얼마나 거리를 유지할까? 너무 가까우면 따끔거릴 것이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온기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고슴도치는 적당한 거리를 알고 있다. 본능에 따른 거리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고슴도치에게서 배워야 한다.
信言不美
믿음성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
교언영색에 현혹되자 마라.
믿을 만한 말은 말 수가 적다.
무뚝뚝하고 거칠다.
번드르르한 말, 입에 단 말,
꿀 같은 말은 위험하다.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 그럴듯하게 꾸민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듯이 꾸민 반질한 얼굴에는 인이 적다고 했다.
양약고어구이이어병(良藥苦於口而利於病) 충언역어이이어행(忠言逆於耳而利於行),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을 고치는 데에는 이롭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올바른 행실에는 이롭다고 했다. 입에 달다고 몸에도 이로운 것이 아니다.
將壽補蹉跎
오래 살려거든
역경을 보태라.
역경으로 단련되지 않으면
오래도록 갈 수 없다.
시련을 겁내지 마라.
보약이 따로 없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다. 오래만 산다고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고, 욕먹지 않고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잘 사는 삶이다.
그러려면 젊어서 사거 하는 고생이 보약이 될 터이다. 그런데 보약은 쓰디쓰다. 먹고 싶지 않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먹어 두어야 제대로 된 보약 구실을 한다.
알게 된 지금은 보약도 보약이 아니다. 입에 쓰기만 하다.
心淸聞妙香
마음이 맑으니
묘한 향기가 끼쳐오네.
내 지닌 마음 이리도 해맑으니
들숨 날숨에 향기가 끼쳐온다.
언제나 바깥은 그대로 있는데 안이 그대로 있지 못한다. 아름다운 꽃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데도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평정이란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어려울수록 애써 익혀야 한다.
습정(習靜), 고요함을 익히라고 했다. 익히고 실천해야 한다.
“거품처럼 허망한 바쁨보다, 내면에 평온한 고요를 깃들여라”
“종일 말도 없이 좌망에 들었자니 이렇게 지내는 일 홀로 즐김 넉넉하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고요함을 익히니[習靜] 담백하게 어디서건 참나가 드러나네.” _ 이수광의 〈무제(無題)〉
貪心似海
何時足
탐하는 마음 바다와 같으니
언제나 넉넉해하리.
끝을 모르는 탐욕 안에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온통 똘똘 뭉쳐
탐욕만 가득하구나.
옛말에,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사람 욕심은 채울 수 없다고 했다. 바다를 메우는 일도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 욕심을 채우는 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앞날이 불안할수록 더 많은 것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앞날은 불안해지기만 한다. 성장은 불안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높이 쌓아올릴수록 불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當斷不斷
反受其亂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그 어지러움을 받는다.
발본색원(拔本塞源)!
옳지 않은 것은 싹부터 싹둑 잘라야 한다.
미적거리다 보면 뿌리를 내리게 된다.
끊기가 어려워진다.
곤경이 기다린다.끊을 것은 끊어라.
뿌리는 서서히 내린다. 모르는 사이게 깊이 내린다. 자르는 일이 어려워진다. 어지러움을 감내하더라도 잘라야 할 것은 잘라야!
不貴不富不賤貧
귀하지도 않게
부유하지도 않게
천하거나 가난하지도 않게.
꿈도 야무지구나.
그런 게 있으면
누가 마다하리!
귀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고 천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은 삶을 누리겠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삶일까? 그렇게 뜻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그런 삶은 몰라도 마음은 먹을 수 있을 터이다.
※子曰 飯疏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如浮雲이니라.(“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뚝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이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며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 뜬 구름과 같으니라”)
出山雲滿衣
산을 나서니
구름이 옷깃에 가득하네.
산속에서 놀다가 산에서 나오니
아직도 내 옷에 구름 기운이 가득하다.
스스로 산이 된 듯하다.
몸이 가뜬하다.
산이 좋아서 산에 살면 산이 되고 말아야 한다. 산이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냥 산이 되고 만다. 그렇게 주변과 어울리는 삶이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종이에 향을 싸면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싸면 비린내가 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산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해가 산에서 뜨는 걸 보고, 바다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서 뜨는 걸 본다.
寧爲直折劍
不作曲全鉤
곧아서 부러지는 칼이 될망정
굽어서 온전한 갈고리는 되지 않으리라.
곧아 부러질지언정 칼이 되겠다.
곧이곧대로 찌르고 힘이 부치면
차라리 부러지겠다.
불의에 낚아채는 갈고리는 되지 않겠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되겠다.
와전옥쇄(瓦全玉碎), 아무 하는 것 없이 목숨만 보전하는 것을 ‘와전’이라 하고, 부서져 옥이 됨을 일러 ‘옥쇄’라 한다. 기와는 온전히 남을 수 있지만 옥이라서 부서질 수밖에 없다. 하찮은 것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굽은 갈고리의 쓰임이 그러리라.
輕諾者
必寡信
쉽게 승낙하는 이는
필시 믿을 만하지 못하다.
가벼운 대답을 믿지 마라.
신뢰할 수 있는 말은 무게가 있다.
경솔하게 대답하지 마라.
사람도 경망해진다.
몸짓이 가벼운 이를 보는 것은 더러 편하기도 하다. 가벼우면서 날래면 더 그렇다. 그러나 말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왜 몸짓과 말이 이렇게 다를까?
몸짓보다 말에 마음이 더 많이 담기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말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信言不美라는 말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交情片語中
한 마디 말 속에
사귀는 정이 드러난다.
무심히 던지는 한 마디 말,
그 안제 진정이 묻어 있다.
웃음 속에 감춘 칼날.
차지만 따뜻한 한 마디!
오늘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 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
말과 관련된 속담들이 참으로 많다. 그것은 말이 그만큼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말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 더러 잘 새겨야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드러난 웃음에도 날카로운 칼날이 들어 있는가 하면 차가운 말에도 따뜻한 정이 담기니 말이다.
不如意事
十常八九
뜻과 같지 않은 일이
늘 열에 여덟아홉이다.
세상사 뜻 같은 일이 어디 있으랴.
어그러지기만 하고, 되는 일이 없다.
열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그 득의의 순간을 기다리며
수굿이 견딘다.
뜻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에 대한 기억이 더 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안 되는 일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삶을 고해(苦海)라고 했던가?
迫生不如死
아등바등 사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다.
허겁지겁 숨이 차는 삶은 싫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사는 삶은 싫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지 않고
손님이 되는 나날은 싫다.
입을 위한 삶은 더 싫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아등바등 허겁지겁, 이렇게 나날을 지내왔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얼마나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세상은 아닌데….
사는 것처럼 사는 삶,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으로 나아가자.
書不求甚解
琴聊以自娛
글은 깊은 이해를 구하지 않고
거문고는 애오라지 홀로 즐긴다.
마음에 따라 손길 가는 대로책을 뽑아 읽다가
흥이 다하면 책을 덮는다.
옛사람의 정신과 더불어 노닐 뿐
굳이 뜻을 덧붙이지 않겠다.
책을 읽다가 싫증이 나면
거문고를 꺼내들고 마음을 부친다.
글을 잘못 읽는 것에도 즐거움이 있다. 그렇게 해서 새것이 나올 수도 있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글에 있고 줄絃에 흐른다.
世上事多半
是有名無實
세상일은 대부분
유명무실하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사람.
세상에는 이런 이들이 참으로 많다.
알찬 사람은 겉보기에는 보잘것없다.
겉만 보고 판단하니 속을 볼 수 없다.
껍데기만 보고 찾으려 드니 늘 속는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다. 겉만 보고 속단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겉은 쉽지만 속까지 보기는 쉽지가 않다. 쉽지 않은 일이라서 재미를 붙여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하나가 있다면 세월 보내는 것….
業
精於勤
荒於嬉
학업은
근면함에서 정밀해지고
노는 것에서 거칠어진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근면과 성실이 바탕이 되지 않는,
재주만을 믿고 날뛰는 사람은
날로 그 바탕이 거칠어지는 걸 모를 뿐이다.
공은 닦는 대로 가고 덕은 쌓은 대로 가기 마련이다. 공부는 부지런히 노력하는 길만 있을 뿐이다.
人生須觀結局
인생은 모름지기
그 마지막을 보아야 한다.
평생 쌓은 덕을 마지막에 가서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 뚜껑을 덮은 다음 이뤄진다.
면전에서 하는 말에 현혹되지 마라.
곱게 늙는 삶이 아름답다.
수즉다욕(壽則多辱)-늙을수록 기력이 떨어지니 앞날이 불안하다. 그러니 챙기고 쌓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이라고도 했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도 있다. 정승 죽은 데는 가지 않아도 그가 타는 말이 죽으면 정성껏 조문을 한다. 무엇이 중한지 생각보아야 한다. 욕심을 낼수록 허물어지는 게 더 많다.
寧人負我
毋我負人
남이 나를 저버릴망정
내가 남을 저버리진 않는다.
서로 생각이 같을 수야 없다.
둘 사이에 틈이 벌어져
설령 누가 나를 등지더라도
내가 먼저 등을 돌리지는 않겠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앙갚음이 얼마나 필요할까? 받은 대로 되돌려주는 일은 언제나 가능한 일인가? 손가락질하다가 손가락질 당하는 꼴이 되면 갚음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다름이 빠져 있다. 사람이 다르니 처신도 달라야 한다. 그런데 같이 되려고만 한다.
같아져도 같지 않으니 다름을 즐기는 삶이라야 편안하리라.
人勝我何害
我勝人非福
남이 나보다 나으니 해될 게 무어랴?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은 복이 아니다.
남이 나보다 낫다면 기쁜 일이다.
그를 축복해 주어야 한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은 거시기하다.
뒤에서 보는 눈빛들이 어떨까?
삼가 몸을 더 낮출 줄 알자!
불행은 비교함에 뿌리가 있다. 끝없이 견주고 재고 하니 불행 또한 끝이 없다. 반드시 나라야 한다는 생각도 불행을 부른다. 경쟁과 불안으로는 사람다운 삶을 살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그래서 더 날뛰고 있다. 猖獗!
有一物
沾一纍
한 물건이 있으면
한 가지 얽매임이 더해진다.
애초에 지니지 않았더라면
있지도 않았을 근심덩어리!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고
고달프게 사는 삶이구나!
모두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원망하리.
가진 만큼 근심이 늘고 걱정이 더해진다는 걸 언제쯤 깨우치게 될까? 오죽하면 죽어도 좋으니 돈벼락을 부를까? 어리석은 삶이로다. 어쩌면 그 어리석음에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一棺戢身
萬事都已
관에 몸을 누이고 나면
만사가 끝난다.
관 뚜껑에 못을 박고 나면
평생 애태웠던 일들
영위했던 학문과 사업
미움과 기쁨도 모두 끝이다.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것을
왜 그리 아등바등했던가?
삶은 그런 것이다. 지나고 나면 모두 물거품이다. 지나지 않으니 매달리는 나날이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그러다 보면 삶은 지워지고 만다. 한없이 영원할 것 같은 삶도 하루아침 풀잎 이슬이다.
世上事越作越不了
세상일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일은 벌이면 끝이 없다.
바빠 죽겠다고 하면서
자꾸 일을 만든다.
스스로 놓지 않으면
결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끝도 없는 세상길에서 놓여나는
열쇠는 스스로에게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면서 산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일을 하는 게 일인 사람도 있고, 노는 게 일인 사람도 있다. 노는 일이 더 어렵다는 이도 많다. 그래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閉門卽是深山
문을 닫아거니
거기가 바로 깊은 신이로다.
속세를 떠나려고
깊은 산을 찾을 것 없다.
문을 닫아걸고 마음을 안으로 거두면
바로 거기가 깊은 산중이다.
태곳적 고요가 거기에 있다.
사바세계와 깊은 산중은 어디서 갈리는 것일까?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은 또 어디일까?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다. 산중에 들어도 사바세계보다 더 착잡할 수 있다. 저잣거리를 누벼도 더없는 고요와 함께할 수 있다. 그러니 숨는다고 숨는 게 아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일만 있다.
苦衆口之鑠金
뭇사람의 입이
쇠를 녹이는 것을
괴로워한다.
떠드는 말이 쇠를 녹인다.
말 때문에 말이 많고
말 때문에 탈도 많다.
말 때문에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뭇사람의 입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그 뭇사람의 입은 대체로 사실과 가까이 있다. 그 입을 막으려는 것이 더 큰 탈을 부를 뿐이다. 화해(和諧)!
雲作心
月爲性
구름으로 마음을 삼고
달로 성품을 삼자.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이 마음이다.
얽매임 없는 자유로움이 정신이다.
천 개의 강물 위에 하나같이
비치는 달빛이 곧 성품이고 싶다.
우왕좌왕 갈팡질팡하지 않으리라.
채웠다가 비울 줄 아는 달이고 싶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胸中多是非
가슴속에는
시비가 많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상념을 따라가다 보면
지난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옳았던 일 잘못된 일 다 생각난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러지 않았을까?
사람이라서 그렇다.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수를 거듭하고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왜 미리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자존심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그런다고 하여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閱盡交情好閉門
사귀는 정리를 두루 겪고 보니
문을 닫아거는 것이 좋게구나.
세상 사귐은
내게 쓰디쓴 냉소만 나오게 한다.
편리할 때 이용해 먹고
돌아서서는 헐뜯고
단맛 빠지면 싸늘히 등 돌린다.
그런 사귐에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다.
문을 닫아걸겠다.
사람을 사귀는 일은 참 귀하고 중하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등을 돌리는 건 왜일까?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胸中無奇字莫吟詩
가슴속에
‘기奇’란 글자가 없으면
시를 읊조리지 말라.
남들 하는 대로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할 양이면 시를 쓰지 마라.
남들이 매양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사실
나에게만 들리는 사물들의 이야기 없이는
시를 쓴다고 하지마라.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보는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르게 보고도 아주 자연스러우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움이라야 시가 된다. 억지로 시를 쓸 수는 없다. 그래서는 읽어주는 이가 없을 터이다. 다르고 자연스러움을 지녀야 한다.
爲天下谷
천하의 골짜기가 되리라.
온 산에 흐르는 물이
골짜기로 모여든다.
그런 골짜기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그 앙가슴에
다 받아들이고 포용하리라.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 거기에 골짜기가 있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을 담는 골짜기는 얼마나 깊어야 할까? 그렇게 깊은 골짜기를 닮고 싶다.
欲人勿知莫若勿爲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남이 몰았으면 싶은 일은
하지 마라.
하지 않으면 걱정할 일이 없다.
공연히 일을 만들어놓고
안절부절못하니
그것이 안쓰럽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는 기준이 있어야겠다. 남이 몰랐으면 싶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남이 알아도 되는 일은 해도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人之相知
貴在知心
사람이 서로를 앎에 있어서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데 있다.
알고 지낸 햇수가 중요하지 않다.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을 알아주어야 귀한 사귐이다. 세월도 흘러야 하지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상대도 마음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귐이라야 벗이다.
世短意常多
세상은 짧고
생각은 늘 많다.
잠깐 살다 가는 세상에
스쳐가는 생각들
어이 이리 많으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끝도 없다. 시작도 모른다. 잠도 안 온다. 그러다가 까무룩 꿈으로 이어진다. 잠에서 깨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렇게 세월은 간다. 지나고 보면 물거품이다.
懷人首徒搔
그대를 그리워하니
공연히 머리만 긁적이네.
보고 싶어도
만날 길 없으니
괜스레 머리만 긁적이고….
그립다 말을 하니 더 그리워진다. 그리워만 할 뿐 말날 수 없으니 이런 난감한 일도 있는가? 그러니 더 그리울 수밖에 없다. 마음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리고 더 그리워진다. 이런 낭패를 어쩌면 좋은가?
머리만 긁적일 뿐이다.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道義無今古
도의에는
옛날과 지금이 없다.
가슴 펴고 떳떳이 가는 길에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길 하나
마음속에 두어야 한다.
세상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세월이 쌓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진다고 해도 달라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런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한다. 몰라서 품지 못하지는 않는다.
幽居不用名
숨어 지내는 거처에는
이름을 달지 않는다.
이름을 다투는 사바세계가 싫어
깊은 삼에 들어와서 산다.
또 이름의 부림을 당하면
부끄럽지 않은가?
숨어 사는 거처엔
간판이 필요치 않다.
이름이 없어도 된다.
이름은 여럿이 있을 때 필요하다. 혼자서 지내는데 무슨 이름이 필요한가? 간판을 달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름을 걸고 다투는 세상을 떠났으면 이름을 잊고 사는 게 마땅하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洗心去欲
마음을 씻고
욕심을 버려라.
인면印綿 음양의
향배가 교묘하다.
스스로 마음밭을 깨끗이 하고
더러운 욕심을 걷어야 한다.
마음을 씻고 욕심을 버려야 하기도 하겠지만, 마음을 씻어야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씻을 수 있을까?
욕심을 버리면, 욕심을 버려야 마음을 씻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사람이 욕심을 버리고 살 수 있을까?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욕심이 아닌가?
虛室有餘閒
빈 방에
남는 한가함이 있다.
텅 빈 방에는 무엇이 있나?
세간 하나 없는 방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마음만은 하나 가득 충만하다.
아, 한가롭구나!
방에는 무엇을 두어야 할까? 많기도 하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게 참 많다. 그런데 과연 그것들이 얼마나 꼭 있어야 할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면 없는 게 더 좋다. 그런데 없으면 안 돌 것 같은 마음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없어도 된다. 없어도 된다? 없어도 된다!
達人妙如水
깨달은 사람은
묘하기가 물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얽매이지 않는다.
평지를 만나면
넓고 잔잔히 흐르다가
여울을 만나면 급류가 되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된다.
늘 가장 낮은 곳에서 스스로를 낮추면서
모든 사물을 받들어 생명을 가꾼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가장 큰 물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그를 두고 바다라고 한다. 그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준다. 영과후진(盈科後進), 물이 흐를 때 오목한 곳이 있으면 우선 그곳을 가득 채우고 나서 아래로 흘러간다!
爲忠甚易
得宜實難
충성하기는
참으로 쉬운 일이나
마땅하긴 참으로 어렵다네.
충성하기는 어렵지 않다.
맹목적인 충성은 개도 소도 할 수 있다.
제 앞으로 돌아올 몫을 생각하는
충성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총성이 마땅함을 얻기란 쉽지 않다.
마땅함을 얻지 못하는 충성은
손가락질만 당하고 만다.
마땅함이 없는 충성은 충성이 아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
直言時多忌
곧은 말은 때에 꺼림이 많다.
곧은 말에는 늘 비방이 따른다.
말하기도 어렵지만
받아들여지기는 더 어렵다.
곧은 말에는 늘 손해가 따른다.
정작 말하는 사람에게는 생기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그 길이 가야 할 길이기에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들어오는 게 있으니 해야 하고 나가는 걸 감수해야 하니 참아야 하는가? 이해(利害)가 기준이 아니라 시비(是非)를 가려야 한다. 곧은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찌르는 말이 아니라 부드러우면서 곧은 말!
禍生於得意
재앙은
뜻을 얻으면서 생겨난다.
득의하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이제는 됐다 싶어 안심하는
순간부터 추락은 시작된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제멋대로 날뛰면 안 된다.
뜻을 얻을수록 몸은 삼가야 한다.
득의양양(得意揚揚), 뜻한 바를 이루어 우쭐거리며 뽐낸다는 말이다. 뜻한 바를 이루어도 우쭐거리며 뽐내지 말라는 말이다. 말이 있다는 건 말대로 잘 안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은 결핍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입장을 바꾸는 게 잘 안 되기 때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뜻을 이루어도 그렇지만 뜻을 세우고도 그래야 한다, 신독(愼獨)!
何但忘世兼忘吾
어떻게 다만
세상을 잊고 나를 잊을까.
어지러운 세상살이는 쓴 시련만 남기는구나.
차라리 세상을 잊고
나만의 세계 속에 빠지고 싶다.
혼자 있고 보니 잡된 생각만 끝이 없다.
아! 스스로를 잊어야겠다.
누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분별하는 생각 따지는 마음을
남김없이 걷어내야겠구나.
잊고 사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잊으려고 하면 더 야물게 자리를 잡는다. 잊으려고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지내면 잊히게 된다. 그렇게 잊고 살자.
怕見惡人
翻羨瞽
악인을 볼까 겁나
장님을 선망하네.
세상에 꼴같잖은 꼴이
하도 많다 보니
차라리 장님이
부러울 때가 있다.
두 눈을 질끈 꽉 감고서
그렇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보고 싶지 않은 게 많고 듣고 싶지 않은 게 많으니 그렇다. 보여도 안 보고 살고 들려도 안 듣고 살면 된다.
口銳者
多誕而寡信
입이 재빠른 자는
허탄함이 많고 믿음성은 적다.
입이 재빠를 자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말로는 안 될 일이 없지만
실제로는 되는 일도 없다.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해야!
화(化)는 입에서 나오고 병(病)은 입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少思保眞
渻事寡過
생각을 줄여 참됨을 보전하고
일을 덜어 허물을 적게 하라.
잡생각을 몰아내니
참된 기운으로 채워진다.
세속 잡사를 치우고 나자
피할 수 없었던 허물이 사라진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삶
영위營爲 함이 없는 생활
그렇게 살고 싶다.
하는 일이 없음에도 안 되는 일이 없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일을 벌이고 일에 쫓기고 하면서 사는 사람은 왜?
口可以飮
不可以言
입으로는 다만 마실 뿐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입은
음식을 먹으라고
만들어 둔 구멍이라.
되는 대로 떠들어서는 안 된다.
넣기는 하되 꺼내지는 마라.
사람에게 입은 언제나 고민거리이다. 입이 있으니 먹어야 한다. 입이 있으니 말해야 한다. 입이 있으니 웃기도 한다. 먹는 것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웃고 떠드는 일도 그렇다. 제대로 하면 더없이 좋다. 그러나 그만큼 뒤탈도 있다.
士貪以死祿
선비는
죽은 뒤의 녹을 탐한다.
살아서 배를 불리는 녹,
그런 녹은 원치 않는다.
살아생전 주리고 추웠어도
죽은 뒤에 죽지 않고 따라오는 녹,
임금이 주지 않고
후세 사람들이 주는 녹,
떳떳하고 의롭게 살다간 삶에만 주어지는 녹,
그런 녹을 받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 이름 앞에 놓이는 녹이 진정한 녹이고 복이다.
名爲錮身鎖
명예는
몸을 얽어매는
자물쇠이다.
고작 이름 때문에
몸을 망친다.
속에 차고 넘치는
절로 드러난 이름이 아니라면
남더러 날 알아달라고
아등바등 애를 써서
얻는 이름이라면
그 이름 어디다 쓸까?
이름이 아니라 사람이라야 한다, 사람을 기억하는 세상!
外物不可必
바깥 사물은
기필할 수 없다.
세상에 뜻 같은 일이 없다.
다 된 밥인데 코 빠진다.
외물에 혹하지 말고
스스로 마음을 밝히라.
내 마음 나도 모르게 ….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은 하나부터 열가지이다. 그럼에도 사람이란 존재는 남을 넘보려고 한다. 스스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닌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남에게로 나아가야 함에도 그게 쉽지 않은 게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이다. 그러니 사바세계 사람이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짐승이 아니다.
忠臣去國
不潔其名
충신은 나라를 더날 때
그 이름을 깨끗이 하지 않는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겠다.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
구차한 변명 공연한 엄살
꺼내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겠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야
그냥 접어두리라.
혼자 지고 가겠다.
다 내 탓이로다. 큰 내 탓이로구나! 돌은 내가 맞겠다.
今日殘花
昨日開
오늘 시든 꽃
어제 피어난 것.
어제 피어난 꽃이
오늘 진창에 떨어진다.
한나절 뽐내고자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까?
인간 세상 부귀공명이
저 꽃과 같으니.
지금 피어나는 꽃을 만나기는 어렵다. 피어 있는 꽃은 다 어제 핀 것이다. 사람 사는 것도 그렇다. 눈앞에 있는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가 멀어지면 보인다.
養不必豐
要於孝
봉양함에 있어
반드시 풍요할 것은 없다.
요점은 효에 있다.
좋은 집에 맛있는 반찬으로
어버이를 모시는 것이
효가 아니다.
마음은 없이 돈만 드린다고
효가 되지 않는다.
육신의 봉양이 효가 아니다.
이게 있으면 저게 없고, 이게 되면 저게 안 되는 게 사람 일이 아닌가? 살아서 효자 없고 죽어서 불효자 없다고 했으니….
醫俗莫如書
속됨을 고치는 데는
책만 한 것이 없다.
책을 읽지 않고는
결코 속됨을 면할 수 없다.
속됨에서 벗어나는
가장 올바른 처방은 독서다.
그저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는
그런 독서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
거울에 비춰보는 그런
독서라야 한다.
무엇이 속된 것이고, 어째야 속됨에서 벗어난 것인가?
士不識廉恥
衣冠狗彘
선비가 염치를 알지 못하면
옷 입고 갓 쓴 개돼지다.
염치를 모르는 인간은
어찌해볼 수가 없다.
개돼지에 옷을 입히고 갓을 씌운 꼴이다.
염치를 모르면 못하는 짓이 없다.
앉을 자리 안 앉을 자리를
가릴 줄 모르게 된다.
아무데서나 꼬리를 흔들고,
어디에나 주둥이를 박아댄다.
사람과 짐승은 어디에서 구별되는가? 부끄러움!
寧捨己人利
勿因人利己
자기를 버려
남을 이롭게 할망정
남으로 인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지 마라.
제 이익을 위해 남을 해롭게 하면
그 해는 꼭 자기에게 되돌아온다.
남을 위해 무엇을 베풀면
자기에게는 배로 졸아온다.
손해가 손해가 아니고
이익이 이익이 아니다.
당장의 손익은 잠깐 접어두어도 된다.
奔走未到我
在城如在邨
바삐 내닫느라
나에게 도달하지 못하면
성에 있어도
시골에 있는 것과 같다.
성취를 위하여 성시城市로 달려왔다.
명예와 권세를 잡으려다가
정작 나를 놓치고 말았다.
무지렁이 촌사람으로
살기 싫어 떠나왔는데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이름을 얻는 것이나 무지렁이나 다른 게 무엇인가? 다 같다!
淸福上帝所吝
淸名上帝所忌
맑은 복은
조물주도 아끼는 바이고
맑은 이름은
조물주도 꺼리는 바다.
뜨겁고 화끈한 열복熱福은
누리는 이가 많아도
해맑은 청복은 아무나 누리지 못한다.
거창한 명성은 저마다 탐내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맑고 깨끗한 이름이다.
맑은 복에다가 맑은 이름을 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莫作心上過不去事
莫萌事上行不去心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일은
마음으로 짓지 말고
행하고 나서도 떠나지 않을 마음은
아예 먹지도 마라.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
마음이 쓰이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고 나서도 켕기는
마음이 생기는 일은
아예 근처에도 가지 마라.
해도 되는 일이 있고 마음도 먹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마음도 일도 다 사람에 달려 있다.
笑讀古人書
웃으며
옛사람의 책을 읽는다.
옛사람의 책을 읽다 말고
자꾸 미소가 번진다.
그와 생각이 같은 게
신통하기만 하다.
본 적도 없는 그가
마음이 통하는 벗처럼 여겨진다.
그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가 울면 나도 운다.
누구와 마음이 통해야 할까? 누구라도 마음이 통하면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통하는 게 더없이 좋은 일!
自重者然後人重
人輕者繇于自輕
스스로를 무겁게 대접해야
남이 무겁게 대한다.
남이 가볍게 대하는 것은
스스로 가볍게 했기 때문이다.
자기 대접은 순전히 자기 할 탓이다.
내 행동이 내 대접을 만든다.
내가 나를 우습게 보는데 남이 나를 무겁게 볼까?
경박한 행동을 하고
묵직한 대접을 바랄 수 있나?
내 대접 점수는 내 행동 점수다.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남도 업신여기게 된다. 自侮人侮之!
立榮名不如種隱德
尙奇節不如謹庸行
영예로운 이름을 세움은
숨은 공덕을 심음만 못하다.
기이한 절개를 숭상함은
용렬한 행동을 삼감만 못하다.
세상이 알아주는 이름과 절개를 세우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게 선행을 베풀고
못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한층 더 낫다.
근사하고 폼나는 것만 찾아서는 안 된다.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튀지 않게 가리는 것이 맞다.
하고 싶은 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던가?
毋以新怨而忘舊恩
새 원망을 가지고
묵은 은혜를 잊지 말아라.
그때는 고마웠지만 지금은 원망스럽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지옥을 짓는다.
그때 고마웠으니 이번 일은 내가 참자.
그때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으니
분명 무슨 사정이 있겠지.
고마움은 기억해야 하고 원망스러운 일은 잊어도 되는데, 거꾸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도 그렇다. 갚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원망스러움은 갚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 세상에 원한만 가득해지리라.
사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더 필요한 요즈음이다.
寄愁天上
薶憂地下
근심은 하늘로 날려보내고
걱정은 땅에다 묻어버리자.
근심 걱정 없는 사람 어디 있겠나.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다운다.
걱정이나 근심은 마음이 짓는 법.
그 근심 하늘로 훌훌 날려버리고
그 걱정 땅에다 꽁꽁 묻어버리자.
근심과 걱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치는 각기 다르다. 근심도 필요한 게 있고 걱정도 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것도 근심이고 걱정일까? 모르겠다!
한 바닥 넘겨보면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한 게 우리들 삶이다.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
젊어 임이 좋을 때
노력하지 않으면
다 늙어서는
한갓 슬픔뿐이다.
힘이 있을 때 힘을 아껴두면
힘을 써야 할 때에는
이미 힘이 빠지고 없다.
젊은 날 흘리는 땀방울은 옥구슬이다.
후회하는 눈물은 맺힐 힘도 없이
추하게 번진다.
힘을 쓰는 것에도 총량이 있다. 지랄만 총량이 있는 게 아니다.
人當以不知足之念
用之讀書
사람은 마땅히
족함을 모르는 마음을
독서에다 쏟아야 한다.
독서에는 자족이 없다.
욕심 사나워야 한다.
책은 책을 부른다.
정신의 욕구는 끝이 없다.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은 사나우나
공부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 제자리에 머문다.
욕심을 부려도 괜찮은 일이 있다. 책을 펴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펼치는 일까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胸無三斗墨
何以運管城
가슴속에
서 말 먹물도 없으면서
무엇으로 붓대를 놀린단 말인가.
든 것 없이 뽑아 쓰려고만 한다.
글쓰기가 기술로 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든 것이 있어야 한다.
가슴속에 찬 것이 있어야 꺼낼 것이 있다.
말단 기교로 문장이 될 리가 있나.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다. 그 비율을 100 : 1이라고 한다. 들어 있는 게 없으니 글이 참되지 못하다. 그런 글을 쓰는 일도 괴롭지만 읽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道高益安
勢高益危
도는 높을수록 더욱 편안하고
권세는 높을수록 한층 위태롭다.
공부가 높아지면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풍파가 닥쳐도 끄떡없다.
지위는 높을수록
사람을 좌불안석하게 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전전긍긍하게 된다.
넓게 파면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넓게 놓아야 높이 쌓아올릴 수 있다. 높이 올라가는 게 불안해지는 데는 까닭이 있다.
上志而下求
뜻은 높게
구하는 것은 낮게.
뜻은 하늘 높이 두고
몸은 낮은 곳에 둔다.
사람들은 자꾸 반대로 하려 든다.
구하는 것은 늘 저 높은 데 두고
품은 뜻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이를 천하게 본다.
눈은 하늘을 보고 발은 땅에 붙이고 살아야 한다. 뜻은 높은 데로 향하고 실행은 낮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뜻을 펼치는 일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발로 해야 한다. 발은 거짓이 없다.
今者所養非所用
所用非所養
오늘날
사람들이 기르는 것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고
쓰는 것은 길러야 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참 이상하다.
쓸데없는 일에만 힘을 쏟는다.
해야 할 일은 외면하고 있다.
열심히 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
부지런히 가서 보니 엉뚱한 데다.
사람들이 참 이상하다.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는 것은 세상이 이상하다는 말이다.
太高則無用
太廣則無功
너무 높으면 쓸모가 없고
너무 넓으면 보람이 없다.
저 혼자 고상하면 외톨이가 된다.
함께 가려면 조금 낮춰야 한다.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아무것도 못 이루고 만다.
팔방미인, 재주 있다는 소리만 듣다가 끝난다.
조금 낮춰 한 모서리에 집중하는 게 맞다.
獨不將軍!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너무 높이 오르고 나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子孫非我有
委蛻而已矣
자손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내맡겨둘 뿐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 어디 있나?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니
그 스스로 인생을 사는 게 맞다.
나도 나대로 내 삶을 살아왔으니
내 자식도 그 삶을 살면 된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켜본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디딤돌? 걸림돌!
處世若大夢
胡爲勞其生
세상살이
한바탕 꿈 같은데
어이해 삶을 힘들게 하나.
긴 꿈 한바탕 꾸고 나면
인생은 지나가고 없다.
꿈같은 인생이
꿈을 좇아 달리다가
꿈속에 간다.
그 꿈을 잡으려고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꿈이었구나! 꿈이었다. 때는 늦었다. 꿈같은 삶, 一場春夢이로다.
固孤是求
국세고 외롭게,
이것을 추구한다.
혼자이고 싶다.
늘 함께하는 삶은
이제 좀 지쳤다.
나는 남보다
내가 더 궁금하다.
알아봤자 그리 재미도 없는 남.
나는 나와 맞대면 하고 싶다.
함께 어울리는 삶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를 만나야 하는 까닭은 많고도 많다.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알아야 한다. 남보다 먼저 나를 챙겨야 한다.
百求百得不以爲恩
一求不得卽以爲怨
백 번 구해 백 번 얻으면
은혜로 여기지 않다가
한 번 구해 못 얻으면
원수가 된다.
달라고 할 때마다 주니
주어도 고마운 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안 줬더니
원수로 보고 으르렁거린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삶은 이 주고 안 주는 것으로 꼬인다.
주어도 탈이고 안 줘도 탈이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언제나 여기서 일이 틀어진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계산은 어둡다.
此人不可無一
이런 사람 하나쯤
없을 수 없다.
하나쯤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둘이어선 좀 곤란한 사람.
거침이 없고 서슴지 않는 사람.
꼴같잖은 꼴은
눈뜨고 못 보는 사람.
그런 사람 어디에나 있다.
이런 사람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여럿이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 이들끼리 서로 부닥치다보면 모서리가 닳아 부드럽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이는 절대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지도 않거니와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게 우리들 삶이다. 없으면 많이 싱거워진다.
林泉容我靜
名利使他忙
자연은 나를 고요하게 해주고
명리는 저들을 바쁘게 만든다.
명리를 다투는 사람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
자연 속에서 나는
하나하나 비워간다.
오늘 하나 내려놓고
내일 하나 내려놓는다.
말은 줄어들고 생각은 깊어진다.
조용함을 몸에 익힌다.
언제부턴가 바쁜 게 좋은 세상이 됐다. 참 안 좋은 세상이다.
汲古得修綆
옛것을 길어올리려면
긴 두레박줄이 있어야 한다.
긴 두레박주이 있어야
깊은 샘물을 마실 수 있다.
두레박줄이 짧으면
달고 찬 샘물도 그림의 떡이다.
고전의 참 샘물이 거기에 있는데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면
두레박줄을 더 길게 늘여라.
공부가 더 필요하다.
혀는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 싶다. 가죽은 탐이 나지만 호랑이는 무섭다. 능력은 모자라고 욕심이 앞서면 안 된다. 힘을 기르자!
讀十年書
天下無不可醫之病
십 년 책을 읽으면
고칠 수 없는 병이 없다.
두문불출 뜻을 세워
십 년 책을 읽으니
세상일을 앉아서도
손금 보듯 훤히 알겠다.
지난날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들이
자꾸만 떠올라
낯을 들 수 없다.
책에 길이 있다는 말도 맞지만 책으로 안 되는 일도 적지 않다.
世無洗耳翁
誰知堯與跖
세상에 귀 씻는 늙은이가 없으니
누가 요임금과 도척을 알겠는가.
천하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는
오늘날 세상에선 볼 수가 없다.
시비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리를 가리지도 못하는 세상.
이익을 앞에 두고
못할 짓이 없다.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어야 거문고를 뜯고, 거문고를 뜯어도 알아주는 친구가 없으면 줄을 끊는다. 千里馬常有 白樂不常有!
當歌欲一放
淚下恐莫收
한바탕 노래라도 불러보고 싶지만
눈물이 쏟아지면 걷잡을 수 없다.
노래와 눈물은 함께 간다.
마음속에 눌린 회포를
목청껏 한 곡조
불러도 보고 싶지만
정작 그때 스스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까 염려한다.
노래하는 마음은 노래하는 사람이 안다. 함께 박수치는 사람도 알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거기까지다. 보이는 것까지이다. 속은 그 누구도 모른다. 흥겨운 노랫가락에 눈물이 흘러도 모르는 이는….
閉門讀奇書
開門延高客
出門尋山水
문을 닫고 기이한 책을 읽고
문을 열어 고상한 손님을 맞으며
문을 나서 산수를 찾는다.
여느 때에는 문을 닫고
깊이 들어앉아 책을 읽는다.
손님이 오면 문을 열고 그를 맞는다.
답답하면 밖으로 나가 산수를 즐긴다.
삶에 아무 구김이 없다.
개운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도 좋다. 그렇게 안 돼도 괜찮다.
孤琴在幽匣
時迸斷弦聲
거문고를 갑 속에 넣어뒀더니
이따금
줄 끊기는 소리가 들리누나.
갑 속에 든 거문고가
제 서슬에 줄을 끊는다.
저도 무슨 강개한 맘이 있었던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걸까?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언제라도 그 끄트머리를 내미는 법이다. 거문고라고 그리 다를까? 스스로 울기 전에 튕겨야 하리라.
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인생,
백 년을 못 채우건만
언제나 천 년 근심을 품고 살구나.
잠시 왔다 가는 인생인데
근심 걱정은 이다지도 끝이 없는가?
근심에 짓눌려
삶의 향기는 날로 시들해지니
이것을 슬퍼하노라.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이 없듯이 근심 걱정 없는 사람도 없다. 가까운 데 걱정부터 저 멀리 우주에까지 다다르는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근심 걱정이 곧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더라.
不風之波
開眼之夢
皆能增進道心
바람이 없이도 일렁이는 물결
눈을 뻔히 뜨고도 꾸는 꿈
이 모두가 도를 향하는 마음을 증진시킨다.
바람이 없는데도 물결이 인다.
한낮 길을 가면서도 꿈을 꾼다.
잦아들지 않는 파도, 깨지 않는 꿈
도를 향해 가다가 만나는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이라.
바람이 업어도 물결이 일고, 바람이 불어도 물결이 없으면 도가 깊어질까?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일을 언제 겪어볼 수 있을까?
少年登高科
一不幸
어린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불행일 뿐이다.
젊은 날의 출세는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시련과 역경을 경험하지 않았으니
좌절도 빠르다.
지금은 높이 우뚝 서 있지만
조그만 환난에도 꺾이어
무너지기 쉬우니.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이유가 한둘이 아닐 터이다.
心事如波濤中坐
時時驚
마음속에 있는 일
파도 가운데 앉아 있음과 같아
때때로 화들짝 놀란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속에서는 파도가 일렁인다.
해일이 인다.
집채처럼 덮쳐와
깜짝 놀라 눈을 뜨면
빈방에 나 혼자다.
어쩌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몸서리를 치고 마는 때가 있다. 이를 두고 무의식이라고 하는가? 가위눌리는 것과 같은 것!
愛名之世
忘名客
명예를
좋아하는 세상에서
이름을 잊은 나그네.
명예를 얻기 위해
온통 혈안이 된 세상이다.
모든 가치 판단과
행동의 준거가
여기에 말미암는다.
그러고 싶지 않다.
이름도 던져버리고
스스로를 잊고 살자.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살 수 있으면 있기를 바라는 이 몇이나?
不薄今人愛古人
지금 사람 가벼이 보지 않고
옛사람도 사랑하네.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다.
내가 사모하는 옛사람도
그때엔 지금 사람이었을 뿐이다.
지금 내 곁에도 옛사람이 있다.
아득한 옛날에도 지금 사람이 있다.
그러니 지금 사람 가벼이 보고
옛사람이라고 높일 수 없다.
다만 마땅함을 취할 뿐이다.
가까이 있으면 잘 안 보이고 멀리 있는 게 더 잘 보인다. 잘못된 시선이다. 가까이 있는 걸 더 잘 보아야 하고 멀리 있는 것도 보려고 해야 한다.
聞人善則疑
聞人惡則信
此滿腔殺機也
남의 선함을 들으면 의심하고
남의 악함을 들으면 믿는다.
이것은 마음속 가득한 살기다.
남의 선행을 들으면“그럴 리가 있나?” 하다가
남의 악행을 들으면
“그러면 그렇지!” 한다.
구제불능!
못된 심보일 뿐이다.
見善如渴 聞惡如聾, 이러지는 못해도 있는 그대로는 봐야 하리라.
煎茶取折氷
찻물을 다리려고
얼음을 깨어오네.
꽁꽁 언 얼음을 깨어
찻물을 끓인다.
나른하던 정신이
깨어난다.
后皇嘉樹配橘德 황천후토가 좋은 차나무에 귤 같은 덕 내렸으니
受命不遷生南國 천명을 받아 옮겨갈 줄 모르고 남쪽에서 산다네.
密葉鬪霰貫冬靑 촘촘한 잎은 추위를 이겨 겨우내 푸르고
素花濯霜發秋榮 흰 꽃은 서리 무릅쓰고 가을에야 곱게 핀다네.
-<東茶頌> 其中一
차나 한 잔 하시게. 喫茶去!
夢中亦有鼓門客
報道莊周騎蝶來
꿈속에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더니
장자가 나비를 타고 찾아왔다네.
한잠 잘 시간인데
누가 자꾸 문을 두드린다.
누군가 나가보니
장자가 제 꿈속 나비를 잡아타고
꿈에 나를 찾아왔구나.
싱거워서 그만 짐이 깨고 말았다.
是非愛惡銷除盡
惟寄空身在世間
시비와 애오를
죄 녹여 없애버리고
텅 빈 몸 세간에 부치어두네.
옳으니 그르니 하는 분별은
더 이상 간여할 일이 아니다.
미워하고 아끼는 마음도
이제는 없다.
무덤덤하게 목석과도 같이
텅 빈 몸을
이 티끌 세상에
잠시 맡겨둘 뿐이다.
그렇게 살다 가겠다.
我本薄德人
宜行積德事
我本薄福人
宜行惜福事
본래 박덕한 사람이라
마땅히 덕을 쌓는 일을 해야 하고
본래 박복한 사람이라
마땅히 복을 아끼는 일을 해야 하네.
덕을 쌓는 일도 어렵지만
복을 아끼는 일도 어렵다.
모자라는 덕은 쌓아서 보태고
모자라는 복은 아끼고 아껴야지.
덕이 모자란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복이 모자란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복을 스스로 흘려버리지 않는지 돌아볼 뿐이다.
萬言椽筆今無用
好向林泉紀逸民
만언 큰 붓도 이제는 쓸데없어
임천을 향해 가서 숨은 백성 되리라.
한번 잡으면 만언 열변을 토하던
서까래같이 장하던 붓도
이제는 쓸모없이 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애써도
되지 않을 일에 마음을 다치기보다
자연 속에 들어가
익힌 백성으로 살다 가련다.
誰肯艱難際
豁達露心肝
그 누가
이 어렵고 힘든 시절에
시원스레 속내를 털어놓을까?
오늘 한 말이
내일 화살이 되어
나에게로 날아온다.
혀끝은 칼끝이다.
조심하고 삼가라.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
權重持難久
位高勢敡窮
권세가 무거우면
오래 지니기 어렵고
지위가 높으면
그 세가 쉬 다한다.
열흘 붉은 꽃이 없거늘
하물며 덧없는 권세랴.
잠시 거품처럼 스러질 지위를 믿고
자꾸만 제 발등을 찍고 있구나.
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 그물 드넓어서
성글어도 새지 않는다.
하늘 그물은
코가 너무 커서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큰 그물코를
벗어날 사람은
하나도 없다.
藥裏關心詩總廢
花枝照眼句還成
약을 먹으며 마음 닫고
시를 모두 폐했는데
꽃가지 눈에 들자
시가 도리어 이뤄지네.
병든 몸,
마음 창마저 닫아걸고
시 지을 흥조차 일지 않았다.
재처럼 싸늘히 식은 마음.
그러다 문득
창밖에 눈을 두니
화사한 봄꽃이 눈에 든다.
목석같던 마음에 생기가 돈다.
물기를 길어 올린다.
進亦憂
退亦憂
何時而樂乎
나아가도 근심이요
물러나도 근심이니
언제나 즐거우랴.
세상 길은 근심 길이다.
도처에 그물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보니
내려올까 근심이요,
무엇을 손에 넣고 보면
잃을까 걱정이다.
손에 넣으려는 욕심,
출세하겠다는 집착을 걷어내면
안에서 즐거움이 샘솟겠지?
苟有利焉
不顧親戚兄弟
진실로
이로움이 있다면
친척이나 형제도
돌아보지 않는다.
재물 이익 앞에서는
친척도 형제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아! 슬프다.
손에 쥔 모래 같은
재물 앞에서
목숨을 건 아귀다툼이
끊일 날이 없으니.
富貴者安敢驕人
부귀한 사람이
어찌 감히 남에게 교만하랴?
더 내려갈 데가 없는 사람만이
교만할 수 있다.
부귀한 사람은 교만을 떨 여유가 없다.
제 것 잃지 않으려고
오히려 눈치를 살핀다.
그러나 빈천한 사람이 굽실거리는 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
속이 허한 사람에게 가난은
비참할 뿐이다.
속이 빈 사람의 부귀도
단지 허세와 파멸을 가져다준다.
往事勿追思
思思多悲愴
지난 일일랑 생각지 말자.
생각하면 자꾸 슬퍼질 뿐이니.
지난 일 돌이켜
무엇하리.
아쉬운 대로
서운한 대로
그렇게 흘려
떠나보내야지.
多費則多營
多營則多求
多求則多辱
허비가 많으면
도모가 많아지고
도모가 많으면
구함이 많아지며
구함이 많으면 욕됨이 많다.
공을 들이는 것은
속셈이 있어서다.
그러다 재물에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들인 공이 무색해진다.
信命者亡壽夭
信理者亡是非
천명을 믿는 자는
수요가 없고
이치를 믿는 자는
시비가 없다.
천명에 마음을 맡기니
오래 살고 일찍 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이치를 믿고
의심치 않으니
옳으니 그르니
다툴 일이 없다.
마음은 닦아놓은
거울이 된다.
但願老死花酒間
不願鞠躬車馬前
다만
꽃과 술 사이에서
늙어 죽기 원할 뿐
수레와 말 앞에서
수그리고 싶진 않네.
권력 앞에 비굴하게
몸을 굽히기보다는
꽃 보며 술 마시고
삶을 즐기며
늙어가는 그런 삶이라야지.
入吾室者
但有淸風
對吾飮者
惟當皓月
내 방에 들어오는 것은
다만 맑은 바람뿐이고
나와 마주하고 술 마시는 것은
오직 하얀 달만이다.
나를 찾는 손님은
맑은 바람뿐이다.
함께하는 술친구는
하이얀 달밖에 없다.
어서 오게나!
한잔 받으시라!
무수한 세월
싦없을 일이나
주고받으세.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천지가
넓고 넓음을
생각하니
홀로
구슬퍼져
눈물 흘린다.
이 땅, 이 하늘,
변함없이 되풀이 되는
일상.
유정한 자연
무정한 세월.
천지에 안긴 인간은
위대한 고독자인가?
德業常看
勝於我者
福祿常看
不如我者
덕업은 언제나
나보다 나은 이를 보고
복록은 늘
나만 못한 이를 보리라.
마음의 수양은 늘 모자란 듯이
재물은 모자라도 넘치는 듯이
만족할 것에 만족하고
만족해서 안 될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大道平開無人走
獄門深閉有人敲
큰길은 활짝 열려 있어도
그리로 가는 이가 없고
옥문은 굳게 닫혀 있건만
두드리는 사람이 있구나.
그 마음을 알 길이 없다.
가야 할 길은
저리도 분명한데
가서는 안 될 길만
골라서 가는구나.
宇宙雖寬
世塗渺於鳥道
우주는 비록 넓어도
세상길은
새의 길보다 좁다.
이 넓은 천지 아래
한 몸 편히 눕힐 데가 없다.
그 많은 길 가운데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아!
답답하다.
泉石膏盲
煙雲痼疾
시내와 바위를 사랑해
병이 되었고
구름과 안개를 아껴서
고질이 되었네.
시냇가 돌이 폐부에 들러붙어
몸의 한 부분이 되었다.
저것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구름과 안개를
사랑하는 나날이
고칠 수 없는 고질이 되었다.
자연을 벗어날 길이 없다.
難將一人手
掩盡天下目
한 사람 손으로
천하의 눈을
가리기는 어렵다.
손바닥 둘로
가릴 수 있는 것은
제 얼굴뿐이다.
제 낯을 가려놓고
아무도 못 보았겠지 한다.
불쌍한 사람이로다.
觀書悟昨非
把酒知今是
책을 보다가
지난날 잘못을 깨닫고
술잔을 잡고
지금이 옳음을 아네.
책을 보니
부끄러운 지난날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 왜 그랬을까?
갈 길은 이리도 분명한데.
그래서
술잔을 들고
지금 가는 길을
축복하고자 한다.
昔爲意氣郞
今作寂寞翁
그 옛날에는
의기에 찬 젊은이더니
이제는
적막한 늙은이일세.
어디로 갔을까?
그 빛나는 젊음.
의기에 찬
야망의 시간들.
거울을 보면
외로이 저물어가는
한 늙은이
물끄러미
거기에 있네.
君子處域內
何異蝨之處褌乎
군자가
세상에 사는 것은
이가
고쟁이 속에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훌쩍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벗어날 길이 없다.
고쟁이만 걸려 있고
더운 살과 피도 없다면
다른 얘기겠지만…….
呑舟之魚
陸處則不勝螻蟻螘
배를 삼킬 만큼
큰 고기도
뭍에 있으면
땅강아지나 개미를
이기지 못한다.
뻗을 자리를 보고 뻗어라.
설치지 마라.
물속에선 펄펄 뛰던
큰 고기도
뭍에서는 개미 밥이 된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行輕招辜
貌輕招辱
행실이 가벼우면
허물을 부르고
모습이 가벼우면
욕을 부른다.
가벼운 행동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 된다.
경박한 몸가짐으로 인해
남으로부터 모욕을 당한다.
다 자초한 것이다.
半隖白雲耕不盡
一潭明月釣無痕
언덕 저편 구름은
갈아도 끝이 없고
연못 위 밝은 달은
낚아도 흔적이 없네.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름밭을 갈고 있다.
갈고 또 갈아도
끝이 없다.
연못 위 달빛이
도장을 하나 찍어놓았다.
아무리 낚아 올려도
연못에는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無事而憂
對景不樂
便是活地獄
일이 없는데도 근심겹고
경치를 마주해도 즐겁지 않다면
이게 바로 산지옥이다.
공연히 가슴이 짓눌리고
평소에는 즐겁던 일이
조금도 재미가 없다.
모든 게 시큰둥하고
남의 일만 같고
나와는 상관없게만 보인다.
답답하다.
지옥이 따로 없구나!
幽境雖目前
不因閒不見
그윽한 경치가
눈앞에 있어도
한가함을 인하지 않고는
보지 못한다.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그림의 떡이다.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
한가하면 엉뚱한
궁리만 한다.
能食人亦當爲人所食
남을 먹으면
또한 마땅히
남에게 먹히는 바가 된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이긴다.
그러니 반드시 어딘가에는
나를
밟고 올라서려는
발길이 있으리라.
알량한 득의를 뽐내지 마라.
근신하고 또 낮추어라.
無德而富貴
謂之不幸
쌓은 덕도 없이
부구한 것을 일러
불행이라 말한다.
남에게
베푼 것도 없이
부귀에 이르니
이는 행운이 아니라
재앙의 씨앗이다.
삼가고 삼가지 않으면
제 발등을 찍게 되리라.
天下皆好諛之徒
世間盡善毁之輩
천하에는 모두
아첨을 좋아하는
무리뿐이고
세간에는 온통
남 헐뜯기를 잘하는
인간들뿐이다.
제 한 몸
잘되는 일이라면
남을 헐뜯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 잘되는 꼴은
그저 두고 보지 못한다.
입만 열면 험담이로다.
當今之世
貪得而寡羞
지금 세상은
얻기만 탐하고
부끄러움은 적다.
제 손에 넣을 궁리
남을 꺾을 생각으로
가득 차서
정작 하는 일이
옳고 그른지는
가리지 않는다.
부끄러움이 없어진 세상,
아!
부끄럽다.
時倩松風掃石床
때로
솔바람을 청해
돌상을 쓰노라.
늘
혼자 앉아
노는 바위 위로
이따금
솔바람이 건너와서
비질을 해준다.
티끌을 쓸어간다.
마음에 먼지 앉을 날이 없다.
禮豈爲我輩設
예가 어찌
우리 같은 무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겠는가?
얽매임 없이
활달하게 법도에 구애 받지 않으며
한세상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살다 가겠다.
구질구질
주눅들어 눈치나 보며
살고 싶지 않다.
傲骨終然
遭白眼
뻣뻣하게 굴면
끝내는
무시당하게 된다.
든 것도 없이
거만을 떨면
결국 혼자만 남는다.
뼈를 부드럽게 하라.
잘난 체하지 마라.
혼자 놀지 않으려면.
다급해져서
굽실거리지 않으려면.
閒庭除鶴迹
半是杖頭痕
한가로이 뜰에서
학 발자국을 쓸다보니
반쯤은
지팡이 자국이로구나.
마당을 쓴다.마음을 쓴다.
학 자국이 어지러워
비질로 지우려고 했다.
학 발자국 옆에
뚜렷이 찍혀 있는 지팡이 자국.
주인이 학과 함께 노닌 흔적.
비질을 멈춘다.
老去靑山信有情
늙어가니
청산이 더욱 유정하구나!
언제나 보던 산인데
나이 들수록 더 정답다.
피가 돌고
살이 더운 사람처럼
자꾸만 말을 건네고,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준다.
그 품에서 놀다 오면
기운이 난다.
白雲如故人
흰 구름이
옛 친구 같다.
흰 구름 한 점
두둥실 떠간다.
어디로 가는가, 흰 구름?
어디로 갔을까, 옛 친구?
다 떠나 보내고 혼자 서서
저 구름을 본다.
구름이 옛 친구 같다.
位極人臣者身危
신하 된 자로
지위가 극히 높으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지위가 높으니
더 올라갈 데가 없다.
아!
내려갈 준비를 해야겠구나.
천년만년 갈 부귀영화가
어디 있으랴.
가을 풀벌레!
松鶴認名呼得下
소나무에 앉은 학이
제 이름을 알아듣고
부르니 내려오네.
마음이 통하니
미물도
말귀를 알아듣는다.
차고 시린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깃든 삶이
적막함을 잊게 한다.
過分求福
不如安分遠禍
분수에 넘치는
복을 구함은
분수를 편히 여기고
화를 멀리함만
같지 못하다.
분수에 넘치는 복은
재앙의 빌미가 된다.
도를 지켜
외람된 생각을
품지 않으며,
복을 구하기보다
덕 쌓기를 힘쓰리라.
疑生爭
爭生亂
의심이 다툼을 낳고
다툼이 어지러움을 낳는다.
의심하는 마음속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싸우다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의심을 걷어내니
평화가 왔다.
평화가 오니
제자리를 찾는다.
마음이 곧 그릇이다.
通則和
固則信
통하면 화기롭고
굳으면 신의롭다.
피가 잘 통하니
살갗이 윤이 나고
마음이 잘 통하니
일이 순조롭다.
몸이 굳으면
근육이 뭉치지만
의지가 굳으면
하는 일에
믿음이 생긴다.
人至察則無徒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
너무 까다로우면
사람들은 떠나간다.
품이 넉넉해야 한다.
맘이 너그러워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閉門長勝得千金
문을
닫아거는 것이
천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
천금을 부러워 마라.
재앙이 비롯될 뿐이다.
차라리 문을 걸고
스스로를 정면으로
만나는 것이
큰 기쁨을 주리라.
儻所謂天道是耶非耶
저 이른바
하늘의 도란 것은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세상에는
참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정의는 고통을 당하고
공도公道는 행해지지 않는다.
소인배는 득세하고
군자는 핍박당한다.
하늘이 어디 있는가?
도가 과연 있기는 한가?
痛飮讀離騷
아프게 술 마시고
「이소」를 읽노라.
속이 아프도록
술을 마시니
비분강개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
낭랑하게
「이소」를 읽다보니
공도가 무너지고
불의가 횡행하던
세상에 절망해
돌을 안고 상강에 뛰어들었던
굴원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歸眞反樸
終身不辱
참되고 질박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몸이 다하도록
욕되지 않으리라.
참된 마음을 되찾고
질박한 생활을 즐기라.
교언영색은 싫다.
입에 달콤한 말은 싫다.
번잡한 일상에
내 삶을 파묻고 싶지 않다.
욕되지 않은
맑은 삶을
살고 싶다.
辱莫大於不知恥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큰 욕됨은 없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니
그 욕됨은 끝이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욕됨조차 알지 못하니
그것이 문제로다.
멀리 있지 않다.
見山如得隣
산을 보니
이웃을 얻은 듯하네.
눈앞에 있는 푸른 산은
좋은 이웃이다.
마음씨 고운 이웃처럼
늘 저만치서
바라보고 있네.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 알겠다.
此鳥安可籠哉
이 새를
어찌
조롱에 가두랴!
조롱에 가둘 수 없는 새.
형식으로 묶을 수 없는 사람.
대붕大鵬을 가둘 조롱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자꾸 기준에 따라
구겨 넣으려고 한다.
획일화하려고 한다.
길들일 수 없는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幽鳥見貧
留好語
산새가
가난한 살림을 보고
좋은 소릴 남기네.
초라한 살림살이
부끄러워했더니
산새 한 마리
놀러 왔다가
조잘조잘
예쁜 노래를
불러주고 간다.
부끄러워 말라고,
고생스럽겠다고,
힘을 내라고.
煙霞鑄瘦容
안개와 노을이
여윈 얼굴 만드네.
안개와 노을을
벗 삼아 산다.
남길 것 없는
조촐한 삶이다.
서산을 넘어가는 노을에도
숲을 감싸 안은 안개에도
자꾸 얼굴이 수척해진다.
지닌 욕심 조금씩 덜고
가을 산을 닮아간다.
自謂無他腸
다른 마음 안 먹었다말을 한다네.
비록 보잘것없지만
마음속에
딴생각은 없다.
남을 해하려는 생각,
남 잘되는데 배 아픈 마음,
시기하고 질투하는
집착이 없다.
텅 비웠다.
美好者不祥之器
아름답고 좋은 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다.
겉보기에 좋고
첫입에 달콤한 것을
조심하라.
그 안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
덥석 잡지 마라.
냉큼 삼키지 마라.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온다.
撫己愧前賢
제 몸을 어루만지며
앞선 어진 이를
부끄러워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앞서간 선인들의
어진 발자취에
부끄러워진다.
낯을 들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爲誰辛苦
爲誰甛
누구를 위해 애를 쓰고
누구를 위해 즐거울꼬?
세상일이
어째
모두 시큰둥하다.
정열을 쏟아 몰두할
대상이 없다.
누구인가,
세상을 향한
흥미를 거두어간
사람은?
湖山長
호수와 산들,
유장하구나!
길게 내려 그은
산들의 중첩 속에
빈틈없이 들어선
호수와 산들.
마음속에
꽉 차오네.
見善若驚
疾惡若仇
착한 사람 보기를
놀란 것처럼
악한 사람 미워하기를
원수와 같이.
착한 일을 볼 때마다
두근거린다.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설레도록 고맙다.
악한 짓 하는 자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원수를 미워하듯
의분이 싹튼다.
千人所指
無病而死
천 사람이
손가락질하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
손가락질 받을
일을 하지 마라.
아무 일 없는 것이 아니다.
끄떡없지가 않다.
천 사람 손가락질이
멀쩡하던 사람을
죽인다.
천토天討,
하늘의 토벌이라고 한다.
一鳥不鳴
山更幽
새 한 마리
울지 않으니
산은 더욱 그윽해라.
어쩌면
새 한 마리도
울지 않는구나.
적막한 산속을
혼자 거니노라.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태초의 적막에
깃드는 것만 같다.
名山如藥可輕身
좋은 산이
약과 같아
몸을 가볍게 해준다.
산에 오르면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띵하던 머리가 맑게 갠다.
신선을 만날 수야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삶의 경지도 그렇게 높아지고
가벼워지기를 기원한다.
산이 보약이다.
未老得閒方是閒
아직 늙기 전
한가로움이라야
한가로움이다.
다 늙어 한가로운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지
한가로움이 아니다.
석양에 한가로움은
싫다.
바쁜 중에도 문득 만나는
한가로움.
일부러 찾아내는
한가로움.
그런 한가로움을
누리고 싶다.
搔首問靑天
머리를 긁적이며
푸른 하늘에 묻는다.
푸른 하늘을 우러르니
계면쩍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묻는다.
어찌 된 일이냐고.
漱齒作泉聲
양치질을 하니
이에서
샘물 소리가 난다.
우걱우걱
양치질을 하니
이 사이에서
샘물 소리가 인다.
입냄새가
말끔히
가시네.
濯足弄滄海
발을 씻으며
푸른 바다를
희롱하노라.
물에 발을 담그고
휘휘 저으니
발아래서
물결이 인다.
발가락 사이에 찌든
고린내도
말끔히
씻겨 가리라.
心中無崎嶇波浪
眼前皆綠水靑山
마음에는
거센 풍파가 없고
눈앞에는
온통 녹수청산뿐이다.
마음이 잔잔해
일렁거림이
없고 보니
녹수와
청산만
눈에 든다.
딴 데
마음 둘
틈이 없다.
以愛妻子之心
愛親則孝
以保爵位之策
保國則忠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면 효이고
지위를
보전하려는 계책으로
나라를 위하면 충이다.
처자식은 끔찍이 위하면서
부모에게는 함부로 대한다.
지위는 한껏 누리려고 들면서
나라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하면 그게 효자다.
거꾸로 하면 그것이 충이다.
感事憂國
空餘悲
일 생각
나라 근심에
공연히 슬픔만 남는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걱정하고,
나라 되어가는 꼴을
근심하노라니
마음에 슬픔이 남는다.
아려온다.
早知半路應相失
不若從來本獨飛
도중에 놓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애초에 혼자서
나서는 것만 못했으리.
끝까지 갈 줄 알았다.
놓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이렇게
중간에서
너를 잃고
괴로우니
애초에
혼자서
나설 걸.
居榮在知足
영예로운
자리에 머묾은
족함을
아는 데 있다.
영화는 족함에 있다.
족함을 모르면
영화는 없다.
탐욕은
눈앞에 누리는 걸
다 하찮게 보도록 한다.
끝까지 가는 영화는 없다.
모자라도 넉넉하게 여기면
그것이 곧 영화라네.
我若未忘世
雖閒心亦忙
만약 세상을
잊지 못했다면
비록 한가해도
마음은 또한 바쁘리라.
한가함은
내려놓는 데서 생겨난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한가하지 않을 수 있다.
궁리가 차고 넘치면
마음이 부산스러워
하루 스물네 시간도
모자란다.
내려놓아야
한가하다.
著書在南窓
門館常肅肅
남창에 앉아
책을 쓰노라
대문간은
언제나 조용하네.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걸고
마음의 창을
활짝 열었다.
샘솟는 생각을
받아 적느라
바깥일에 마음 둘 틈이 없다.
일상이 부산스러운가?
문을 닫아걸어라.
마음이 허전한가?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