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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8. 19
트레이드. 말 그대로 구단 간의 ‘선수 교환’이다. 가끔은 선수와 ‘돈’을 바꿀 때도 있다. 목적은 당연히 전력 강화. 각 구단은 프로야구 선수 시장에서 생산자이자 구매자가 된다.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가치를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흥정을 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290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그 사이 선수 633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연 평균 8.3건의 트레이드를 통해 18명의 선수가 팀을 옮겼다는 의미다. 올해는 트레이드 마감 기한인 7월 31일까지 총 7건의 트레이드가 발표됐고, 12명이 이적했다. 둘 다 전체 평균에는 못 미치지만, 2~3년 전에 비해 껑충 뛰어오른 수치다.
# 더 이상 ‘날벼락’이 아니다
한때는 트레이드를 날벼락으로 여기는 선수들이 많았다. 트레이드 특성상 발표 직전까지는 절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을 지키는 게 필수. 당사자에게도 모든 과정이 끝나야 통보를 한다. 당연히 선수들은 놀랐고, 좌절했다. ‘팀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 소속팀에서 나를 선택했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선수층이 너무 두꺼운 팀에서 뛰어서 좀처럼 자리가 없거나 팀 내 불화에 시달리는 일부 선수들은 스스로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트레이드 시장은 점점 살아나고 있다. 2013년 3건, 2014년 2건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6건, 올해 7건으로 다시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여러 선수들을 동시에 바꾸는 대규모 트레이드가 많았다. 6번의 트레이드로 무려 31명이 새 팀을 찾았다. 1건 평균 5명이 넘는 선수들이 이동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해 가장 규모가 컸던 트레이드는 선수 9명이 이동한 롯데와 kt의 4 대 5 트레이드였다. 롯데는 kt에 포수 장성우와 윤여운, 투수 최대성, 내야수 이창진, 외야수 하준호를 보냈다. kt는 투수 박세웅과 이성민, 조현우, 포수 안중열을 내줬다. 이 트레이드 4일 후에는 한화와 KIA가 4 대 3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한화는 투수 유창식과 김광수, 외야수 오준혁과 노수광을 KIA에 보냈고, KIA는 투수 임준섭과 박성호, 외야수 이종환을 내줬다. 두 달 후에는 LG와 SK가 3 대 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LG 외야수 정의윤, 투수 신재웅과 신동훈이 SK로 가고, SK 투수 진해수와 여건욱, 외야수 임훈이 LG로 향했다. 이적한 선수의 이름을 다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인원이 많았다.
# 명암, 시간이 지나야 갈린다
▲ 한화가 지난해 유창식의 ‘보너스’ 격으로 트레이드 보낸 김광수가 KIA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고 있다. 반면 유창식은 한화 시절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전력을 자수하면서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 연합뉴스
트레이드 이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명’과 ‘암’이다. 어느 쪽이 이익을 받는지 모두가 끊임없이 손익계산서를 따진다. 그러나 승부는 쉽게 갈리지 않는다. 당장은 한 팀이 이득을 본 것 같아도, 이듬해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트레이드 전면에 나섰던 ‘1번 카드’들보다 이들에 가려졌던 2번, 3번 카드들이 훗날 진짜 주인공이 되는 일도 있다. 앞서 언급된 트레이드들도 그랬다.
롯데와 kt의 트레이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kt의 승리로 보였다. 장성우 때문이다. 롯데에서 강민호의 백업 포수였던 장성우는 그전까지 수많은 팀에서 트레이드를 타진했지만 롯데가 ‘트레이드 절대 불가’ 자원으로 분류했던 선수였다. 부산 연고인 경북고 출신에 포수 수비능력과 타격 잠재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아서다. 실제로 장성우는 kt 이적 후 공수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포수 출신인 조범현 kt 감독도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곧 승자와 패자는 바뀌었다. 역시 장성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난 뒤 장성우의 전 여자친구는 전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했던 갖가지 ‘뒷담화’를 인터넷에 폭로했다. 장성우는 한 유명 치어리더를 모함했다가 명예 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했다. 신생구단 kt의 명예에 먹칠을 했고, 징계 탓에 경기도 오래 뛰지 못했다. 반면 박세웅은 지난해보다 올해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애초에 kt가 10년 에이스 감으로 키우고 싶어했던 투수다. 장성우라는 ‘현재’와 맞바꾸기 위해 ‘미래’를 내줬다. 박세웅은 kt가 아닌 롯데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올해 롯데는 기대했던 외국인 원투펀치가 부진하고, 3선발 송승준이 장기 이탈하면서 고전했다. 박세웅이 없었다면 선발 로테이션을 제대로 꾸리지도 못할 뻔했다.
한화와 KIA의 트레이드도 마찬가지다. 그 트레이드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인물은 단연 유창식이었다. 한화가 계약금 7억 원을 들여 영입했던 특급 좌완 유망주. KIA에서 광주 출신인 유창식이 고향에서 잠재력을 폭발시켜주기를 기대했다. 실제로 김기태 KIA 감독이 유창식에게 기회도 많이 줬다. 그러나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올해는 한화 시절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전력을 자수하면서 참가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렇다고 KIA가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정작 유창식이 아닌 다른 선수에게 덕을 봤다. 투수 김광수였다. 한 야구 관계자는 “사실 김광수는 이 트레이드의 ‘보너스’와도 같았다. 원래는 3 대 3 트레이드로 끝날 예정이었지만, 당시 한화 고위 관계자가 은퇴 위기에 놓인 김광수에게 새 길을 열어주기 위해 KIA 측에 영입을 요청했다. 다른 선수를 받지 않고 사실상 그냥 보내준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화에서 2군에만 머물던 김광수는 이적 후 흔들리고 있던 KIA 불펜에 큰 힘을 보탰다.
올해 역시 비슷한 사례가 있다. 넥센의 토종 에이스로 떠오른 신재영은 2013년 4월 NC와 넥센의 2 대 3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한 선수였다. 그러나 신재영의 이름을 듣고 그 사실을 떠올린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그 트레이드의 ‘얼굴’은 돌고 돌아 친정팀 넥센으로 복귀하던 송신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신재영은 당시 이장석 넥센 대표이사가 특별히 점찍은 자원이었다. 이 대표는 트레이드 규모를 1 대 1에서 2 대 3으로 늘리면서까지 신재영을 데려오고 싶어 했다. 결국 신재영은 3년 만에 불쑥 1군에 데뷔해 10승을 넘게 올렸다. 올해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다. 그 트레이드의 진짜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 어떻게 성사되고 왜 무산되나
트레이드는 목적이 확실해야 한다. 5강을 노리는 팀들은 ‘즉시 전력’을 찾고, 하위권에 처진 팀들은 ‘리빌딩’의 초석을 발굴하려 한다. 물론 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선수층이 두꺼운 팀들에게는 전력 밖의 선수를 내주면서 평소 눈여겨봤던 유망주들을 데려오는 기회가 된다. 두산이 좋은 예다. 지난 5월 14일 내야수 유민상을 kt로 보내면서 kt가 지난해 2차 지명 9라운드에서 뽑은 오른손 투수 노유성을 데려왔다.
유민상은 두산에서 1군과 2군을 오갔지만, 신생 구단 kt에선 1군 즉시 전력으로 뛸 수 있는 선수였다. 최하위 탈출이 절실했던 kt가 ‘한 방’이 있는 유민상을 영입했다. 반면 노유성은 트레이드 시점에 육성 선수 신분이었다. 2013년 3월 육성 선수였던 삼성 투수 길태곤이 한화 외야수 이상훈과 맞트레이드된 이후 사상 두 번째 육성 선수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두산으로서는 사실상 신인 한 명을 더 뽑은 것과 마찬가지다. 노유성은 두산에서도 아직 정식 선수로 등록되지 않았다. 두산은 노유성을 멀리 보고 키울 생각이다.
이렇게 트레이드는 점점 늘어나고, 방향성도 다양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와 같은 ‘빅 딜’은 흔치 않다. 팀의 간판급 선수를 과감하게 내놓는 구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팬들의 입김이 거세진 터라 점점 트레이드로 모험을 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LG처럼 트레이드 상대팀에 ‘좋은 일’을 많이 했던 구단은 더 그렇다. ‘탈쥐(G)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비아냥인 놀림을 많이 받았다. 남들에게는 우스갯소리지만, 구단 관계자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트레이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비단 LG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들도 트레이드 ‘시도’에 비해 ‘성사’ 빈도가 높지 않다. 한 야구 관계자는 “예전에는 트레이드가 선수들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됐다면, 요즘에는 구단 간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좌우된다”고 했다. 실무자들끼리 트레이드 카드를 어렵게 맞춰 합의까지 하더라도, 감독과 프런트 고위 관계자들과의 최종 결정 과정에서 의견 차가 생겨 무산되는 일이 적지 않다. 한 프로야구 감독은 “트레이드가 쉽지 않은 이유는 서로 너무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마음에 드는 선수를 데려오고 싶다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안전하게 하려다가 흐지부지된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각종 루머들이다. 99%까지 성사됐던 트레이드도 기사가 먼저 나오거나 소문이 퍼지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순간, 그대로 없던 일이 된다. 트레이드 대상에 올랐던 선수들이 마음에 생채기를 입고 경기력에 악영향을 받는 일도 생긴다. 실제로 올해 팀을 옮긴 한 선수는 지난 시즌부터 끊임없이 ‘여러 구단과의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고 있다’는 소문의 중심에 섰다. 당사자 역시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야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1년이 흐른 올 시즌에야 ‘진짜로’ 새 팀을 찾았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일요신문 [제1267호]
최동원-김시진 맞교환 ‘쌍팔년도니까 가능했지’
▲ 1988년 롯데 최동원, 삼성 김시진의 트레이드가 이뤄진 한 달 후 장효조마저 롯데로 건너갔다. / 연합뉴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트레이드는 첫 시즌이 끝난 뒤인 1982년 12월 7일에 처음 이뤄졌다. 삼성 서정환이 해태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당시 삼성 내야에는 배대웅, 천보성, 오대석과 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서정환이 뛸 자리가 없었다. 서정환은 구단에 줄기차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선수가 부족했던 해태는 현금 1500만 원을 삼성에 주고 서정환을 데려왔다. 서정환은 이듬해인 1983년부터 해태의 주전 유격수로 뛰면서 우승 신화에 한몫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수많은 트레이드가 야구팬들과 각 구단을 울리고 웃겼다. 그 가운데서도 야구계가 가장 큰 충격에 빠졌던 트레이드는 1988년 롯데와 삼성의 3 대 4 트레이드다. 시즌이 끝난 11월 22일 롯데가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을 삼성으로 보내고 삼성이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을 롯데에 내주는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최동원과 김시진은 각각 롯데와 삼성을 상징해온 프랜차이즈 스타들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2000년대 이후였다면, 팬들의 반발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게다가 롯데와 삼성은 한 달 후에도 다시 한 번 블록버스터급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롯데가 내야수 김용철과 투수 이문한, 삼성이 외야수 장효조와 투수 장태수를 맞바꿨다. ‘타격 기계’로 명성을 날린 장효조마저 삼성을 떠난 것이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선수 노동조합 결성과 연봉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큰 마찰을 빚었던 선수들이다. 구단은 본보기 삼아 칼을 빼들고 말을 듣지 않는 베테랑 선수들을 정리했다. 1980년대여서 가능했던 ‘사건’이다.
1993년 성사된 해태 한대화와 신동수, LG 김상훈과 이병훈의 2 대 2 트레이드도 ‘빅딜’로 꼽힌다. 해태의 우승을 6번이나 함께한 중심 타자 한대화와 미스터 LG 김상훈의 이적이 놀라움을 안겼다. 1998시즌이 끝난 뒤에는 삼성 양준혁과 해태 임창용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번도 못 해봤던 삼성은 마운드 강화를 위해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을 내주고 해태의 사이드암 임창용을 영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블록버스터급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트레이드도 있다. 넥센과 LG가 2011년 트레이드 마감일에 극적으로 성사시킨 2 대 2 트레이드였다. 넥센은 베테랑 불펜 요원 송신영과 선발 유망주 김성현을 LG에 내주고 ‘미완의 거포’ 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데려왔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오히려 넥센이 손해라는 평가가 나왔다.
불펜 불안에 시달리던 LG가 수준급 불펜 요원을 수혈한 반면, 박병호는 LG에서 수없이 많은 기회를 얻고도 늘 별다른 결과물을 보여 주지 못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이후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박병호는 이적 직후 붙박이 주전으로 뛰기 시작하면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듬해인 2012년부터 메이저리그로 떠나기 전까지 4년 연속 홈런왕과 타점왕을 석권했다.
역대 최초의 ‘무상 트레이드’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LG는 1992시즌을 앞두고 간판스타 김재박을 태평양으로 보내면서 선수도, 돈도 받지 않았다. LG는 38세의 베테랑 김재박이 은퇴하기를 바랐지만, 김재박은 300도루와 1000안타 기록에 미련이 남아 선수 생활 연장을 요청했다. LG는 결국 김재박을 조건 없이 태평양으로 보내기로 했다. 김재박은 태평양에서 1년을 더 뛰고 코치로 자리 잡은 뒤 후신인 현대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 후 단 한 차례도 없었던 무상 트레이드는 올해 다시 한 번 나왔다. 넥센이 내야수 서동욱을 조건 없이 KIA에 보냈다. 서동욱은 2003년 KIA에 입단했다가 2007년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LG로 이적했다. 2013년 다시 포수 최경철과 트레이드돼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8년 만에 데뷔 시절 몸담았던 친정팀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넥센은 팀 내에 자리가 없는 서동욱이 KIA에서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바랐다. 결과적으로 서동욱은 KIA에서 1군 붙박이 멤버로 힘을 보태고 있다. KIA는 ‘공짜로’ 얻은 선수의 활약에 함박웃음을 지었고, 넥센은 선수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구단이라는 ‘명분’을 챙겼다. 이것도 이른바 ‘윈윈 트레이드’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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