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7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산타클로스를 믿는 사람과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사람.
사람은 누구나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유년기를 지난다.(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이들이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으면 부모들은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이번에는 또 무슨 선물을 사고 어디에 숨길 것인가. 설렘과 짜릿한 긴장감마저 인다.
아이들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산타 할아버지가 하늘을 나는 썰매를 타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준다는 사실이. 그래서 부모한테 꼬치꼬치 캐묻는다. 산타클로스는 어디에 살아? 그 많은 집들을 어떻게 다 찾아다녀? 굴뚝도 없는데 어디로 들어와?
부모는 착한 거짓말을 한다. 아이들은 미심쩍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믿어야 선물이 생기니까. 방문이나 일기장에 받고 싶은 선물을 적어 놓는다. 하나만 적을 때도 있고 순위를 매겨 세 개를 적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이번에는 산타클로스가 오는 현장을 두 눈으로 보고야 말겠노라. 반드시! 부모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아이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다.
▲ 산타클로스 / 위키피디아
'제발 빨리 자라, 제발~'
그런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자정을 지나서도 아이의 눈은 똘망똘망 빛난다. 아이는 악착같이 버틴다. 자정을 지나···. 어느 순간 고개를 떨구고 새근거린다. 엄마는 아이가 확실히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때부터 부모의 산타클로스 작전이 시작된다. 선물을 숨겨놓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선물을 꺼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어둠 속에서 새끼고양이처럼 움직인다. 어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크리스마스트리 아래나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다. 미션 클리어!
성탄절 이른 아침, 아이가 엄마·아빠를 흔들어 깨운다.
"엄마 아빠, 산타클로스가 다녀갔어요! 내가 원하는 선물도 주셨어요."
"(왜 이렇게 일찍 깨웠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래, 잘됐다. 네가 착한 일을 한 걸 알고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셨네."
아이가 흥분해 어쩔 줄 모른다. 신기한 표정의 아이를 보면서 부모는 흐뭇한 눈빛을 교환한다. 산타클로스에 설레는 아이들을 보는 시기가 부모가 자식을 키우며 행복을 느끼는 순간 중의 하나다.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다. 누군가에게 "그 선물은 엄마 아빠가 주는 거야, 산타클로스는 없어"라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한다. 눈물을 주르륵 쏟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는 어린이를 졸업한다.
네덜란드인의 신터클라스
성인 중에 니콜라오스가 있다. 성 니콜라오스는 현재의 터키인 소아시아 지방에서 사교(司敎)를 수행한 인물이다.
성 니콜라오스에 관련해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 성 니콜라오스가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찬사받게 된 배경이다.
성 니콜라오스는 세계인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의 어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성 니콜라오스가 변형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산타클로스다.
성 니콜라오스 축일(祝日)은 12월6일이다. 성 니콜라오스 축일 전야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관습이 전해져 내려왔다.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북유럽 신화와 결합되어서다.
그런데 성 니콜라오스가 어떻게 산타클로스가 되었을까. 성 니콜라오스의 라틴어 표기는 상투스 니콜라우스(Santus Nicolaus).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라틴어는 나라마다 표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 1660년의 뉴암스텔담 지도. 현재의 맨해튼 남단이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네덜란드에서는 신터클라스(SinterKlaas)가 되었다. 니콜라오스의 네덜란드어 줄임말이 클라스(Klaas). 여기에 성인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신터(sinter) 붙어 신터클라스가 되었다.
뉴욕에 가장 먼저 정착한 이들은 앵글로색슨이 아니었다. 17세기에 이미 해양강국을 건설한 네덜란드는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남아프리카로, 동남아로, 신대륙으로.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은 강과 강이 만나고 바다에 면한 신대륙의 새로운 도시를 뉴암스테르담으로 명명했다. 1664년에 이르러 인구가 9000명에 육박해 정점을 찍었다. 지금도 뉴욕 맨해튼 남단에는 뉴암스테르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863년 1월 3일자 ‘하퍼스 위클리’ 표지 속 산타클로스. 1902년 미국 유머잡지 ‘퍽’ 표지에 등장한 산타클로스. 1909년 미국 크리스마스 엽서 속 초록 의상의 산타. 1918년 미국 정부기관의 포스터 속 산타클로스(왼쪽부터). / The Ferret, 미주리역사박물관
이역만리 뉴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인들은 고국에서보다 더 완벽하게 신터클라스 축일의 전통을 지켰다. 이것을 앵글로색슨들이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앵글로색슨들이 신터클라스 축일을 모방하고 따라 하면서 산타클로스(SantaClaus)가 창조되었다. 소설가 워싱턴 어빙은 저서 '뉴욕의 역사'에서 신터클라스가 산타클로스가 되는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
19세기 초반 뉴잉글랜드에서 크게 유행한 시가 '세인트 니콜라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이다. 시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19세기 후반 이 시에 당대의 삽화가 토마스 나스트가 빨간 옷을 입고 흰 수염을 기른 남자의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이런 모습은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체코에서 통용되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컸다. 이들 나라에서 성 니콜라스의 이미지는 주교 모자에 정통 사제 복장을 한 인물로 묘사되어 왔다. 어딘가 권위적이고 딱딱한 모습이다.
▲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2009). / 위키피디아
산타클로스 신화의 탄생
토마스 나스트가 창조한 산타클로스 이미지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대중화된 계기는 1902년 미국에서 출간된 아동소설 '산타클로스의 삶과 모험'이다. 이 아동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산타클로스 신화는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산타클로스는 북극에 산다, 루돌프 사슴이 끄는 날아다니는 썰매를 타고 다닌다,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지만 나쁜 일을 한 아이들에게는 시커먼 석탄을 준다, 산타클로스는 모두가 잠든 밤 창문이 닫혀 있을 때 굴뚝을 통해 드나든다···. 이것은 모두 '산타클로스의 삶과 모험'에서 그려진 모습이다.
산타클로스가 한밤중에 굴뚝을 통해 선물 꾸러미를 메고 집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북구(北歐) 신화에 나오는 오딘이 굴뚝으로 드나들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오딘'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도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 1881년 1월 1일자 ‘하퍼스 위클리’ 표지 그림 속 산타. 토마스 내스트가 그린 이 그림이 현대적 산타의 원형이다. / 위키미디어
이런 산타클로스 신화를 비기독교 문명권까지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의 산업자본주의다. 1930년대 코카콜라는 크리스마스 광고를 하면서 산타클로스 복장의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산타클로스 이미지의 붉은색과 흰색이 코카콜라의 브랜드 색과 일치한다는 데서 착안한 홍보 전략이었다. 이 광고 마케팅은 대성공했고, 추운 크리스마스 시즌에 오히려 코카콜라 매출이 급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 속 산타클로스. 해돈 선드블롬의 작품이다. / 코카콜라
세상의 모든 부모는 "근데, 산타할아버지는 어디에 살아?"라는 아이의 질문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답은 "북극에 산다"였다. 눈썰매가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은 북극밖에 없다.
북극은 영어로 노스 폴(North Pole)이다. 북위 66도30분 북극권 안에 포함된 나라들은 미국,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다.
산타클로스 신화를 관광상품으로 특화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핀란드 3개국이다. 캐나다와 미국에는 산타클로스 하우스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산타클로스 하우스에 편지를 쓰곤 한다. 캐나다 북극의 산타클로스 하우스의 우편번호는 HOH OHO다. 산타클로스의 웃음이 "ho, ho, ho"로 표기되는 데서 착안한 우편번호다.
▲ 핀란드 로바니에미 지도 / 구글지도
이들 3개국 중에서 산타클로스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성공한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 최북단의 주가 라프랜드다. 북위 66도32분인 이곳의 로바니에미(Rovaniemi)에 1985년 '산타클로스 빌리지'가 문을 열었다.
헬싱키에서 기차를 타고 13시간 북으로, 북으로 달려야만 도착하는 곳이다. 해가 오전 11시에 떴다가 오후 2시가 되면 다시 캄캄해지는 로바니에미. 매년 수만 명이 찾아오는 로바니에미는 산타클로스의 '공식 주거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온통 눈 천지이고 썰매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실제로 거대한 뿔을 단 순록이 끄는 썰매도 탈 수 있다. 산타 마을에서는 모든 게 핀란드어로 표기되어 있다.
▲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 / 위키피디아
산타 마을의 우체국에는 매년 겨울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온 사연이 수북하게 쌓인다. 아이들의 소원은 출신지 별로 제각각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강타한 올해 산타 우체국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게 해주세요'라는 삐뚤빼뚤한 편지가 가장 많을 것 같다.
조성관 / 작가 auth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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