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이달의 평 - 시조
팬데믹 시대에 시조 엿보기
김정
우리가 살아가는 한 세기에 대혁신을 가져온 것이 컴퓨터라면, 대 이변을 안긴 것이 '코로나19' 라는 달갑지 않은 질병이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 단계에선 여느 질병처럼 잔뜩 겁을 주다 꼬리를 내리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가도 한참이나 방향을 틀어 버렸다. 시나브로 삶의 양상이 급속도로 바뀌었고, 알게 모르게 인성이 무너지고 죽음마저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했다. 어쩌면 이는 무분별한 인간의 이기 앞에 경종을 울려 각성하는 계기를 던졌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장르든 간에 문학은 그 세대의 산물이자 인간의 존엄을 일깨우고 교만을 질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떤 계기로 인해 큰 사건이 도래하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것이 또한 문학 작품이다. 우리의 전통 가락국시인 시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학도시》 2021년 7월호에서부터 2022년 8월호에까지 발표된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숙독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19로 인한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 주를 이뤘다. 더구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작품이 많았다. 다소 거칠고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시절가조時節歌調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시조시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념적인 시어들로 인해 간혹 이미지 결여라는 불충도 느껴졌지만 한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박수 를 보냈다. 그럼 세부적으로 단락을 지어 짚어 보기로 한다.
1. 뜻하지 않은 불청객의 기침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삶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질병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 너머로 본 세상에 서 스스로 뒤를 돌아보기로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수신처가 빽빽하다
빌딩에 잘려버린 달빛을 짊어지고
싸늘한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늦봄을 배 달하다 꽃그늘에도 허리 숙여
헛디딘 시간들이 지문을 지워간 다
불끈 쥔 낡은 주먹을 들었다 다시 놓고
아파트 불빛들이 따로 홀로 벽을 쳐도
숨 한 번 고를 새 없이 삭은 몸을 지피다
입 벌린 밑창을 끌며 발의 설움 달랜다
- 김덕남 「실버 택배」 전문
노령화사회를 살아가는 현시대를 잘 반영한 작품이다. 통계에 따 르면 지난해 기준 노인 월 평균 생활비는 130만원 정도이고 은퇴를 앞둔 51-60세 국민연금 가입자 중 향후 130만원 이상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00명 중 8명꼴이라고 한다. 이러하기에 정년퇴직을 하고도 생활이 어려워진 어른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만 한다.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어깨는 쉴 겨를이 없고,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 꽃구경 가볼 겨를도 없이 일해야 하는 현실과 "입 벌린 밑창을 끌며 발의 설움 달랜다"는 세째 수 의 종장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디에 눈길 한번 돌릴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한 증표가 입 벌린 밑창이기 때문이다. 공감각적인 표현으로 실버 택배의 애환을 담은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절창이다.
수영교 어귀에서 바람을 맞고 있다
잠시 멈춘 자전거도 붉어지 는 이른 아침
앞섶에 바닷바람이 풍선처럼 부푼다
다리만 넘어서면 재취업 첫 출근길
함께 흐른 수영강도 숨 고르는 길목에서
자전거 녹슨 바퀴가 바람 따라 구른다
달려야 해 강물처럼 뛰어야 해 파도처럼
바다를 마주하고 바람에 맞선 남자
중년의 물결을 딛고 저벅저벅 길이 온다
- 정희경 「바람을 맞는 남자」 전문
코로나 19로 인해 뜻하지 않게 가장이 실직을 당하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거리 두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9시면 문을 닫아야만 했기에 폐업하는 자영업자들도 많이 늘어났다. 이 시의 화자는 광안대교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을 보며 자전거 를 멈추고 자동차로 광안대교를 달릴 날을 상상하였을 것이다. “앞섶에 바닷바람이 풍선처럼 부푼"에서 저 다리만 건너면 재취업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녹슨 자전거도 덩달아 구르고 있다. 재 취업을 위해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하루에 도 수천 번을 뛰어오르는 파도의 속성을 "달려야 해 강물처럼 뛰어 야 해 파도처럼"이라는 역동적인 표현을 통해 반드시 재취업을 할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드디어 “중년의 물결을 딛 고 저벅저벅 길이 온다"로 표현하여 강물→ 파도→ 물결 → 길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숲길에 가로누운 메마른 나뭇등걸
젖줄 끊긴 곁가지 위 새순 몇 올려놓고
뻐꾹새 울음 들이면 둥지라도 생겨날까
갈증을 적셔 주는 빗줄기 소식 없어
여린 순 햇살아래 환하게 숨 쉴는지
바람의 잔등에 업혀 지워지는 그림자
이 시대 도전장 낸 젊은 이 몸 둘 곳에
꽃자리 주지 않는 황소바람 불어오니
길섶을 에돌아 들다 돌 하나 걷어찬다
- 신진경 「바람의 잔등」 전문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갈증을 적셔 주는 빗줄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간절함이 잘 나타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아르바이트 자리도 끊기고 취업을 위해 도전장을 내 보지만 쉽게 되지 않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화자는 "꽃자리 주지 않는 황소바람 불어오니"에서 꽃자리와 황소바람이라는 대조적인 시어를 사용 하여 취업의 간절함을 더해주고 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돌에 감정 이입시켜 돌 하나 걷어찬다"로 표현하여 안타까움과 속 상한 마음을 돌을 통해 내보이고 있다.
하략......
- 《문학도시》 2022.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