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이념을 화두로 삼는 것이 불경스런 시절이 있었다
나 또한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꺽고 희생 되다시피 살아오신 아버지를 둔 사람의 하나로서 늘 피해가고 싶은 예민한 소재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퇴폐적인 성향과 그동안 지배해 온 편향적 이데올로기가 물러 가는가 싶더니 이념적인 소재를 피해 간 문학가들의 사회적 책무 부분까지 비약해서 비난하는 예가 종종 있다
언젠가는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어제 신문에서 기자가 언급한 것을 읽곤 김춘수에 관한 의문이 풀린 것 같아서 아침부터 글을 쓸려고 작정을 했다
비록 과거보다 자유로와졌지만 이념이란 아직도 흑백 논리의 족쇄를 벗어나지 못할 뿐더러 이념의 청산이란 이유로 단죄하는 것이 기준도 애매모호 하기에 언급하기가 좀 껄끄럽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주지하고 읽어 주었으면 하는 노파심이 먼저 든다
주말 신문은 문화와 레져 신간 소개등 읽을 거리가 다양하다
블록질을 하면서 텍스트를 멀리해서 좀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보는 신문은 좋은 정보를 주는 유일한 매채이기도 하다
맨 얼굴의 김춘수...
일단은 제목이 마음을 확 끓어 잡아 당겼다
지난번 김춘수 시인의 타계를 계기로 그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김춘수의 맨 얼굴이란 남진우 시인이 김춘수 시인의 칼럼과 에세이를 골라 엮은 신간인데 기자의 생각이나 남진우 시인의 생각이나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신간 소개치고는 본인의 비평적 관점이라든가 김춘수에 늘 따라 붙는 무의미의 시와 이념과의 관계등을 알기 쉽게 취재를 했는데 그동안 나의 의문이 풀린 계기가 되어서 이 글도 쓰게 되었다
그의 시 세계는 실존적인 관념시라고도 말하고 무의미의 시라고도 말한다
한마디로 단어에 내재된 의미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인식하는 것으로서 인식의 시가 곧 무의미의 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꽃이라는 시에서 그런 시풍을 짐작할 수 있는데 실존적인 관계성을 꽃을 매개체로 한 대표적인 관념시로 세간에 알려져 왔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그의 이런 시풍을 가지고 무책임한 지식인 자기 도피라고 혹독한 매를 든다
특히 전쟁후의 이념의 소요돌이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이념적인 소재를 일부러 회피해 간 무책임한 지식인이라고 잔인한 비평을 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진우 시인의 맨얼굴의 김춘수를 보면 그가 어찌해서 이념을 무시(?)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김춘수 시인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된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을 피해 무의미의 시를 쓰게 되었는지 무릎을 치며 읽어 내려갔다
다음은 발췌부분이다
<그는 공산주의 사상범이었다..조금있자 사환이 쟁반에 갓 구운 빵을 서너개 얹어 들고 왔다..갓 구운 빵 따위는 특권층이 아니면 얻어 먹을 수가 없다 노인은 빵을 자연스레 받아 들었다. 그것은 노인이 자기 사상과는 아랑곳 없이 인민 중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모순을 그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을 텐데 그는 그 빵을 태연히 받아 먹고 있었다 김이 오르는 빵 냄새때문에 김춘수의 시선은 줄곧 노인에게 쏠렸다 그러나 노인은 그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빵을 모두 먹어 치웠다고 한다.그러면서 시인의 단상은 이어진다.."교단에서의 그는 한 사람의 휴머니스트요 식민지나 민족을 무시하는 진보적인 사상가임에 틀림이 없다..대학 내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빵 세개를 나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을지 모른다..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취조실이다
그러면서 남진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어쩌다 그 때의 장면을 떠올렸으면 올마나 견디기 어려운 자기혐오의 역겨움에 빠지게 될까?..사람이 참으로 하나의 이념을 감당할 수 있는가?...>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자기의 견해를 피력한다
"나는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시인이다 내재적 접근이니 경계이니 그런 알쏭달쏭한 말, 즉 궤변으로 사태를 호도하려는 사이비 지식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난 시인이며 허세나 쇼맨쉽을 부리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리고 함량미달이기 때문에 지성인임을 고백하지 못하겠다고 자인하고 자백하기에 시인이다"
그의 이런 고백이나 산문뿐 아니라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철학 문학 경제 등등 다방면의 연구를 시도하는 그를 보면 정말 성실한 문학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자신의 성향을 굳히고 이념과의 고독때문에 괴로워하는 한 사람의 소박한 시인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가 정치에 입문했던 전력을 보더라도 공인으로서 현실을 감당하라고 굳이 현장으로 끌고 오기도 하고 또한 끌려간 시인의 모습에 대해서 항간의 비판은 더욱더 잔인하다
현실에 부적응하는 시인이 자기 연민에 빠지면 나약한 지식인이라고 매도하고 스스로 자괴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사회적인 이슈를 형성할려고 한다
소심하고도 어느 이념적 성향도 가지지 않을려는 소박한 문학가의 존재 자체를 말살할려고 하는 분위기는 정권이나 대중의 쌍방으로부터 비난받는 아주 불쌍한 처지가 되기도 한다
슬픈 일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지몽매한 일이라 해야 할까?
아님 쇠귀신같이 따라 붙는 이념의 굴레에 대한 희생자라고 동정해야 할까?
정말 착잡하다
문학가들이란 그들의 본질적인 특성에 항상 사회적인 책무성을 덤으로 지고 사는 달팽이 같은 존재이다
순수 미술이나 순수 음악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암묵적인 분위기이면서 순수문학에 대해선 가차없는 단두대를 내리치는 것은 왜일까?
문학이 정신적으로 가장 근접한 예술이기에?
나로선 설명할 도리가 없다
한 때 반정부 입장에서 서 본 적이 있다
친정아버님이 골수 야당이셨으므로 늘 집 주변엔 형사들이 어슬렁거렸기에 이념에 끌리는 것에 엄마는 진저리를 쳤지만 청년기의 호기심은 사회적인 분위기를 건너뛰지 않았다
많은 운동권 선배들을 만나고 사회적인 책임을 공감하며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려고 청춘을 불사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에 혈기왕성한 청춘을 산제사로 드린 그 선배들이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면서 환골탈퇴라는 명목으로 추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모습은 그 후로도 운동권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편협한 위선을 품게 되었다
실망과 상실감때문에 사람을 두려워 하는 비참한 정서속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또 다른 부류는 현란한 학문적 배경, 대중을 선동하는 말솜씨 글솜씨는 연기같은 허상의 존재로서 그 선배들은 자본주의 현실에 적응을 못하고 가족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나 시쳇말로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것을 눈물겹게 보아왔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분명 민중을 위해 존재했다고 열변을 토하던 그들이 민중 사이에 적응을 못하고 그저 자신은 피해자라는 의식속에서 벗어 나지 못해 가족의 생계조차 감당 못하는 경우를 보면서 동정보단 환멸이 치밀어 올랐다
그들에게 이념이란 한낮 허상과 같은 관념적인 존재라 성향을 가르는 기준은 되었을지언정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면 그들이 그렇게 이념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야만 했을지 싶다
그래서 주관심사가 이념이었던 386세대엔 진정 필요한 경제통이나 전문통이 없다는 속설이 나돌 정도이다 그렇다고 이념의 논쟁으로 인해 고차원의 철학이 발전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룰이나 상식이 생긴 것도 아니다 피해의식과 보상심리만 남았다고 한다면 괴변이라고 할 게 뻔하다
제도권으로 진입해야 민중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늘 말하던 그들이 한 번 제도권 안에 들어가면 기존 세력보다 더 타락하는 모습은 늘상 대하는 기사거리이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다름 아닌 "나쁜 놈하구 싸우면 같이 나쁜 놈이 되는구나" 였다...
그렇다고 좋은 놈이랑은 싸울 일이 없는데 나쁜 놈이랑 싸우면서 자기의 기본 취지와 도덕성을 잃지 않을 수는 없을까?
깝깝하다.....
이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피폐하게 하는지는 역사가 말해 준다
소심한 건지 꿋꿋한 건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의미의 시를 추구해 온 시인을 시대적 감각이 없다고 매도한다면 인간성은 누가 지킬 것인가?
왜냐하면 인간은 너무도 불완전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이념에서 자유롭거나 아님 희생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200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