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지 못할 인연 (단편소설)
상헌이는 군에서 제대를 하고 군용열차에서 내려 용산역을 나가고 있었다.
용산역을 막 나가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갑자기 종숙이가 보이는 것이다.
“종숙아 이게 웬일이니? 반갑다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구나.”
"이 아이는 조카인가? 예쁘게 잘생겼네."
종숙이는 가슴이 덜컹 무너져 내린다.
"어머머 상헌씨 어쩐 일이예요, 제대를 했나보죠"
"응 나 지금 막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가는 중이야"
"종숙아 어디 커피숍으로 가서 차나 한잔하며 이야기 좀 하자."
그들은 역 앞의 용궁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종숙이가 그렇게 반가워해야 할 텐데,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마치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풀 죽은 우거지상이다.
"종숙아 진짜 꿈만 같다. 그동안 어디서 있었니?"
"응, 나 서울에 올라와서 그럭저럭 잘 지내, 군대 생활하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군대 생활인데 뭐”
상헌이 앞에서 마냥 좋아해야 할 종숙이는 한없는 죄책감에 떨고 있었다.
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상헌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3년 전 그때 그 시절에 빠져들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한 그때 그 시절, 상헌이와 종숙은 같은 마을에서 살던 고향의 선 후 배였다.
언제인가부터 연인으로 변해가며 사랑을 속삭이며 달콤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은모래가 반짝이는 모래 백사장을 거닐면서 소근 거리기도 했고,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캄캄한 밤에 우산을 쓰고 냇가의 둑을 밤이 새도록 거닐면서 꿈과 같은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었다.
어느 때는 저녁에 원두막에 가서 수박을 먹기도 했고, 은하수가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세며 속삭거리기도 하였었다.
어느 날인가?
그날은 눈이 펑펑 쏟아져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운동장을 걸어가며 둘만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추억을 쌓기도 하였었지.
그때 상헌이는 세상에 너 없으면 못산다고 사랑을 고백했고, 종숙이는 죽어도 변치 않는다고 내 가슴에 안기어 굳은 맹세를 했었지. 사나이 벌판 같은 나의 가슴에 착 달라붙어 참새 가슴처럼 두근거리며 떨면서 마냥 행복하다고 하였었다.
상헌이는 천지가 개벽을 하고 하늘이 두 쪽이 난다고 하더라도 종숙이와 함께 한평생을 같이한다고 굳게굳게 다짐했고, 종숙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과 환희에 젖어 펑펑 울기도 하였었다.
상헌이가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하는 날, 그들 둘은 하늘이 무너져도 변치 말고 영원토록 헤어지지 말자고 굳은 약속을 하고 헤어졌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은숙이네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오빠가 사업이 잘되어 가족 모두들 서울로 데려갔다.
서울로 이사를 가자마자 은숙이 한테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쫓아다니는 한 남자가 생긴 것이다.
그는 바로 종숙이 오빠의 친구였던 것이다.
한사코 매몰차게 싫다고 뿌리치고, 쌀쌀맞게 굴었었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고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짓궂다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그 남자가 서울에서 그렇게 비싼 아파트를 한 채나 가지고 있고, 직장도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쇠귀신마냥 달려드는 바람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종숙은 그와 결혼을 하게 되었던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연락이 끈기 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상헌이를 만난단 말인가?
“종숙아, 이 아이는 조카인가? 참 예쁘게 잘생겼다. 너 몇 살이니?”
“얘 세살이야”
“종숙아, 너 잊었니? 우린 그때 결혼하기로 맹세를 했잖아”
“우리 이제 만났으니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자.”
“밤하늘의 별들을 모두 따다가 너한테 줄께”
종숙이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중동에 간 남편 몰래 춤바람 난 여편네처럼 얼굴은 서리 맞은 고구마 잎처럼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다.
"너 왜 말이 없니?"
"말 좀 해봐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은숙이가 흐느껴 울면서 실토를 한다.
"상헌씨, 용서하세요, 저 결혼했어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 아이는 우리 남편의 아이예요.”
“진짜로 우리 남편의 애기예요”
은은하게 들려오던 추억의 소야곡 경음악이 볼륨이 커지는가? 그들의 가슴을 후며 파고 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종숙이를 뒤로 한 체 상헌이는 힘없는 워커 발을 뚜벅뚜벅 걸으며 커피숍을 나가고 있었다.
저 아이가 꼭 나를 닮은 것 같은데,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가?
상헌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찢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