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부모님, 은혜의 통로 Date 2011. 5. 8
Text 2Tmth 1,3-5
(3)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 요즘 제일 인기 있는 건배 구호가 9988234라고 합니다. 한 번 해 보실까요? ‘9988234!’ 그 뜻은 처음에는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앓고 4(死)하자!’였는데, 요즘은 ‘99세까지 88한 몸과, 2-30대의 마음으로, 4(死)할 때까지!’로 바뀌었답니다. 오늘이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과 웃어른들을 공경하고 살자는 날이지요. 그리스 속담에는 "집에 노인이 한 분도 안 계시면 어디 가서 빌려라도 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효와 부모공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강조하고 있는 공통적인 윤리입니다.
그런데 이 어버이날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교회에서 시작된 날입니다. 9988234도 좋지만 목숨 붙어 있는 날까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인생은 모두가 나고 죽는데 자식 노릇 제대로 하며 살고, 부모 내지는 어른 노릇 제대로 하며 살다가 다들 내 죽는 것을 아쉬워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효도 받으며 사는 비결을 깨닫게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나이가 드신 노 사도 바울께서 젊은 제자 디모데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존경 받는 어른으로 사는 법, 혹은 효도 받는 부모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효도 받는 부모로 사는 법이란 거꾸로 말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배운 대로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효도, 보고 배우게 해야 하고, 배울 기회를 자꾸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보고 배운 대로 하고 살면 틀림없이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부모는 그 가정 자녀들을 위한 은혜의 통로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게 해야 하고 배우게 해야 하겠습니까?
2. 바울 사도께서는 제자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면 늘 하나님께 감사가 된다고 했습니다.(3절)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인생을 살려면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사도께서 생각만 하면 감사하게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아는 분들, 특히 부모님이나 어른들께서 나를 생각하면 감사하게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보나마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일 것이요, 나에게도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나 제자들에게서 늘 감사를 받으며 산다면 나 또한 사는 날들이 늘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하는지 그 방법을 저절로 배우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효 교육법입니다. 내가 자식을 원수처럼 여기고 혹처럼 생각하여 짜증내며 살면서 자식이 나에게 감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콩 심어놓고 팥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감사할 줄 알기를 바라십니까? 내가 내 부모와 내 자식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감사한 분이잖습니까? 그렇다면 언제나 좋으신 그분께 감사하는 것은 감사의 기본입니다. 두 번째로 한 가지 불쾌한 것 때문에 다른 모든 감사한 것까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불쾌한 것은 불쾌한 것이고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거나 무조건 미화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아쉬운 대로 인정하고 과거를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절대 감사의 자세'를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남과 비교를 많이 합니다. 남보다 조금 나으면 감사요, 그렇지 않으면 긴 한숨입니다. 방금 전까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감사하다가도 더 좋은 집에 더 좋은 차를 가진 더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감사가 무색해지며, 어느새 자신의 처지를 초라하게 생각하게 되어 지금까지 감사했던 것도 접어버리고 한숨을 쉽니다.
세상에 설움 중에 제일 큰 설움이 늙는 설움이라고 합니다. 서럽고 자존심 상하고 섭섭한 것이 한 둘이 아니겠습니다만 아쉬운 것 한 가지 때문에 더 많은 좋은 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살면 행복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좀더 젊었을 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습니다만 이제부터라도 그 잘못을 청산하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녀들에게 감사하며, 이웃과 나라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다른 누구보다 내가 행복해집니다. 그렇게 사는 나를 지켜보는 내 자녀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사는 내 자녀들의 가정에도 행복의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나는 한층 더 행복하겠지요.
여러분, 꼭 감사하며 사는 도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그러셔야 합니다. 바라기는 기도하시다가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나 사회, 교회가 감사의 조건이 되고 이유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3. 다음,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를 생각만 하면 감사가 되고 기쁨이 일어나는 이유를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원어는 ‘위선이 아닌 믿음’, ‘외식적이거나 겉치레가 없는 믿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에 매여 있는 믿음이 아니라 복음으로 충만한 믿음’을 말합니다.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눈물을 흘리는 디모데의 순수하고 청결한 모습이 사도 바울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도 조상적부터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하였습니다.(3절)
어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할까요?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자녀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효도를 받을까요? 청결하고 순수한 삶을 사는 부모입니다. 청결하고 순수한 양심을 가진 자녀는 누가 만드나요? 부모가 만듭니다. 혹 더럽고 추한 양심을 가진 부모와 자식이 더럽고 추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잘 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단언하건대 절대로 그들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따로 살고 있고 가르치고 보여줄 방법이 없으시다고요? 그런 경우라면 너무 늦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파락호처럼 막 사는 자녀, 말 안 듣는 자녀, 잘 찾아오지도 않는 자녀라 할지라도 내가 진실하게 사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여준다면 내 자녀 틀림없이 변합니다. 설령 내 자녀가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 스스로만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변화된 성결의 삶을 사는 것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들을 하나님 앞에서의 청결한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키웠더니 요게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한나의 청결한 신앙양심의 품에서 자라난 사무엘은 만고에 뛰어난 인물이 되었고, 한나는 그런 아들에게 효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는 청결한 신앙양심의 어머니 수산나가 평생의 스승이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아이를 불러 사람들 앞에 세우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5)고 하셨습니다. 말라기 예언자는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말3,5)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혈통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십시오. 그 자녀의 나이가 많던 적던 상관 없습니다. 적어도 그 자녀들 머리와 가슴에 내 어머니 내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는 깨끗한 믿음’으로 사신 분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게 하십시오. 디모데에게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은 그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고 외조모 로이스에게 있었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네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5절)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지 못하셨다면 오늘이 마음에 변화를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회개하시고 스스로 행복한 어버이가 되십시오. 순수한 효도를 받는 어버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녀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는 은혜를 흘러가게 하는 통로인 어버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구의 자녀이며 동시에 누구의 어버이입니다. 나는 효도하지 않으면서 효도 받기를 바랍니다. 만일 효도도 하지 않으면서 착한 아들 딸을 두어 효도 받고 있다면 좋아할 것이 아니라 후일 하나님 앞에서 들을 책망을 생각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웃사람을 공경하여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십계명 중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그 부모가 훌륭하거나 존경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공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의 질서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질서는 장유유서입니다. ‘존경하라.’ ‘숭배하라.’라고 하지 않고 ‘공경하라.’라고 하신 뜻을 아셔야 합니다. 나와 아무 친분도 없고 연고도 없으며 무슨 본을 보일만한 행동을 하신 분이 아니라 하더라도 웃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갖추고 공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두 말 할 것 없고, 직장 상사, 연세 드신 어르신, 선배와 조상 등은 무조건 예우를 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따라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버릇없이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연세가 드셨다고 내 어머니 아버지라고 그 분들이 하시는 일이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일도 많이 있겠지요. 혹 악질적인 시어머니처럼 못되게 행동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웃사람을 공경하는 기본자세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도리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명령이냐구요? 레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하였고, 딤전5,1에서는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웃사람을 공경하는 삶을 통해 복 받는 은혜를 자녀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십시다.
5. 여러분, 인생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 후회되는 일도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을 것입니다. 이게 아니다 싶은 데도 자포자기한 채로 그 상처, 그 부끄러움을 그냥 안고 사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그냥 잘못된 길을 고집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남은 인생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가 새로 무엇을 이루기가 어렵게 느껴지실지라도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라도 새로워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깨어지고 부서지며 녹아지고 새로워지자고 결심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