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즈워드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원'이라는 학생잡지르를 통해서 제일 먼저 만났던
외국의 시인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히 이런 시인도 있었구나. 정도로만 알고 넘어갔는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구를 쓴 분으로 알고
하여간에 내게는 의미 있는 분이었으므로, 여기서 소개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임은 시인이 많으셔서, 그냥 올려봅니다.
윌리엄 워즈워드(1770 – 1850)
영국의 낭만주의는 그가 콜리지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민요를 모아서 1798년 ‘서정민요집’을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잡는다.
이 서정시집에서 말하기를
“시란 감력한 감정이 넘쳐 흐르는 것이다.”
이 말이 낭만주의의 뜻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지위가 낮고, 학대받는 민중(민요를 불렀던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감정을 놀랍도록 잘 표현해내어서 시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청년 때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프랑스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을 함으로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시작은 꾸준히 하였으나, 점차 빛을 잃었다. 나중에는 우체부로 생활하면서 시를 썼으나 끝내 영광을 되돌리지 못했다.
그의 대표시 ‘무지개’를 보자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라
나 어려서도 그랬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고
나 늙어서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네
만약 그러하지 아니하면
신이시여
지금이라도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생애 하루하루
타고난, 그대로 경건한 마음 이어지기를
빌고 바라네
*그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시구는 아래의 두 구이다.
1)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라.
2)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시인은 이 시에서 어른이 되더라도 어린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할 줄 아는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Th child is father of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그가 민요를 수집하여 서정민요집을 내면서 낭만주의를 열었다는 해석은
낭만주의는 자국 언어로, 서민 층에 뿌리를 두었다는 뜻이어서
낭만주의 특성을 잘 설명한다고 하였습니다.
첫댓글 왕실의 계관시인이 말년에는 우체부로 생을 마감했군요...
시를 배울 때 참 많이 읽고 외웠던 우상 같은 시인이셨는데... 휴... ~*~...
"시란 강력한 감정이 흐르는 것이다"
이런 문구를 흘린 워즈워스는 사랑을 겪을 때나 겪었을때
창조력이 왕성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21,2세때 아넷트 발롱이라는 연상인 카톨릭교도여인과
연애하여 사생아를 낳았다는 자료를 보았습니다.
하버트 리드가 말하더군요.워즈워스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때 고민하는
내면의 갈등에서 창조력이 왕성했다고요.
점잖은 집 규수와 결혼한 후부터 도덕군자가 되고 그의 시제는 고갈되기시작했다는 하버트리드의 분석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점잖은 인격자가 되려는 심리가 있으면 ,본능이 억압 당해
창조적무의식이 출구를 폐쇄당한다는 이론을 받아들입니다.
선생님덕택에 워즈워드에 대해 더 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연애
육체적 욕구가 시발점이지만 유럽 문명에서는 고도로 정신화 했다.
(낭만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놀고 먹는 지배층의 인생철학은 기분 좋고, 유쾌한 인생을 선호했다.
귀족 계급의 청년이 선호하는 삶은 향략적이고, 나태함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을
프티 메트로(=멋쟁이)라 했다.(내가 보기로는 룸펜이고, 사회의 식충이들이구마는)
인생에 쾌락을 주는 것으로는 연애의 방법을 선택했다.(문학작품에 많이 다룬다.)
연애를 고상한 정신활동으로 미화하였다. 프랑스 문인 상포르는 ‘연애란 피부와 피부의 접촉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햇다.(고상한 연애를 조롱하는 뜻으로)
---> 이때 벌써 아이를 만들지 않는 방법(피임법)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 로코코 시대는 작고, 예쁘장하며, 어린이 같은 미숙함을 좋아했다.
이러한 선호는 변태성욕적인 요소가 있었다.
귀부인은 미소년적인 남자를 애인으로 가지기도 했다.
--->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는 바뀐다(건장한 육체미로).(그때 가서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