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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행복한 하루
전창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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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눈물값.
식당은 오늘따라 몹시 분주했다. 주문이 밀려, 늦게 나오는 음식 때문에 때로는 짜증을 내는 손님도 있었다. 영수는 오늘도 그 식당에서 써빙을 하느라 몹시도 지쳐 있었지만,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비록,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집에서는 학교에 갈 등록금만 대줄 뿐, 밥값과 차비는 온전히 그가 벌어야만 했다. 식당에는 영수가 주로 써빙을 보고, 아주머니 두분이서 음식과 설거지를 담당했다. 아주 바쁠 때는 가끔, 여학생 알바가 오기도 했으나, 그녀는 바쁜 시간에만 가끔 와서 한두 시간 하다가 갈 뿐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자기 손님이 오는 경우에는 영수가 온전히 그 몫을 다해야 했다.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나르다 보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사달이 나지. 그런데,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몹시도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다, 그만 넘어지고 만 것이다. 밥그릇이 떨어지고, 국물이 손님의 옷 여기저기에 튀어버렸다. 순간, 영수는 악몽이 시작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 난 이제 손님의 엄청난 욕설과 주인아주머니의 심한 질책에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앞이 아득했다. 그런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웬걸, 손님은 화를 내기는커녕,
“학생, 괜찮으세요?”
하고 오히려 그를 걱정해주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영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어, 많이 아픈가 보네? 다쳤어요? 병원 가봐야겠어요!”
그러자, 영수는 엉엉 울면서 그 사람의 말에 어물쩡거리면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너무 고마워서요……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를 걱정해주셔서…… 그래서…… 너무 고마워서요…… 그래서…… 그래서요……”
이제 영수는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울먹이고 있는 영수를 바라보던 그 손님은 오히려 별것도 아닌데 너무 감동받은 것 같다며, 영수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다친 데 없으면 됐다고 하며, 음식값까지 계산하고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영수는 제발 그냥 가시라고 말리고 싶었지만, 주인아주머니는 그 손님에게
“5000원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수는 이제 주인아주머니에게 얼마나 핀잔을 들을까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곧이어 이 말을 덧붙여 버렸다.
“5000원은 오늘, 영수의 눈물값으로 다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눈물값?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영수를 보면서, 주인아주머니는 슬며시 웃음을 짓더니, 그 손님에 이런 말을 흘려보낸다.
“제가 너무 영수를 못되게 대했었나 봐요! 손님한테 감동을 엄청나게 받은 걸 보면!”
손님은 그 말에 또 맞장구를 쳐준다.
“하하하. 그런가 봅니다!”
“5000원은 미래의 영수에게 받겠습니다. 저 눈물을 보면, 옛날의 제가 떠올라요. 아무것도 모르고 음식을 만들 때, 주방장님한테 혼나면서 많은 걸 배웠거든요. 나태하고, 제대로 못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늘 엄격하셨는데, 제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면서 저를 이해해 주셨죠.”
“저 친구 이름이 영수인가요? 그럼, 저도 미래의 영수에게 세탁비는 변상받겠습니다. 지금 받는 것보다 그때 받는 것이 훨씬 더 많이 받을 거 같아요!”
“하하하, 그러세요~”
한참을 울던 영수는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서, 눈에는 눈물이, 입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하하하, 엉엉엉. 그런 영수를 본 가게의 사람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영수였다.
(신다의 감동-01)
글을 다시 쓰겠다고 다짐하면서, 꼭 쓰고 싶은 글이 생겼습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를 쓰면 더 좋겠지만, 제가 겪은 것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는 사실 별로 재미가 없거든요.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가 아닐까요 아니, 이게 무슨 판타지에요? 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이도 하지만, 사실 요즘 세상에는 없을 법한 이야기 같기도 하지 않나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에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위기 때만 되면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위대한 힘이지요. 영수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영수의 여자친구 수희와의 이야기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눈물값”이 제 이야기냐구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제가 넘어질 때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기에, 저는 오늘날 “눈물값”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요.
02) 연애의 시험
영수와 수희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영수는 수희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끌린 것이다. 그런데, 수희의 마음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영수는 수희의 마음을 한 번 떠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들은 가끔 만나 데이트를 하기는 하지만, 사귄다고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수희도 영수를 보면서 이성적으로 끌리기는 하지만, 영수가 수희에게 사귀잔 말을 하지 않아서, 속만 애태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희는 자신이 먼저 사귀자고 해야 하나, 이 쑥맥같은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는 수희와 데이트를 하는 도중, 일부러 못난 척 굴기로 해 보았다. 조금 이상한 방법이긴 하지만, 연애를 도통 해 본 적이 없는 영수로서는 그것밖에는 수희의 마음을 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희 앞에서 영수는 코딱지를 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코딱지를 바지에 닦아버렸다. 그러자, 수희는
“웩~”
하면서 그냥 장난을 거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지? 영수는 수희의 마음을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수희도 코딱지를 후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후빈 코딱지를 영수가 묻힌 코딱지가 있는 바지에다 닦아버리는 것이었다.
“크크크크”
수희의 웃음소리. 도대체 수희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영수의 마음을 알 수 없기는 수희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그렇담, 한 번 더 해 보자!’
영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같이 식사를 하던 도중, 자신이 먹던 반찬 중의 하나를 골라, 수희의 숟가락에 얹었다. 그러자 수희는 또
“웩~”
하면서, 그 반찬을 그냥 먹는 것이었다. 슬슬, 영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 하자는 거지?’
“뭐야, 더럽다면서 그냥 먹는 거야?”
“응.”
“왜?”
“음…그냥…!”
영수는 그 그냥이라는 말이, 왠지 우리 이렇게 만나는 거 그만하자는 말처럼 들려왔다. 안 되는데…… 그래서, 어차피 다시 못 볼 거, 솔직하게 영수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말하기라도 해야지, 그만 만나더라도 뒤탈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원래 그런 남자는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사실은… 고백할 게 있어…”
‘지금 이 타이밍에 날 좋아하겠다고 고백을 하려는 거야? 오, 안돼! 이런 지저분한 타임에.’
수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고백이 뭔지 궁금해졌다.
“사실은, 너 시험해 봤어.”
“왜?”
“그게……”
“그럼, 코딱지 후비고 내 숟가락에 반찬 올린 거 다 연기였단 거지?”
“응……”
“나도 고백할 게 있어.”
순간, 영수는 일침을 맞은 듯 뜨끔했다.
‘혹시, 그만 만나자는 말을 지금 하려는 걸까. 안 되는데…… 아직 좋아한단 말도 못 했는데……’
“나도 날 시험해 보는 거 알고 있었어.”
“뭐, 알고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모른 척 연기했던 거야?”
“그럼 어떻게 해? 알고 있으니까, 나 시험해 보는 거 그만하라 그래? 그러지 말라고 화라도 내?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응? 뭐가 달라지냐고?”
“오빤 나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렇게 떠본 거 아니었어? 안 좋아하니까?”
“아니야, 그게 아니야. 네 마음을 몰라서…… 어떻게 네 마음을 알아야 할지 몰라서……. 만약 내가 먼저 널 좋아한다고 말하면, 네가 부담될까봐…….그래서 다 시 못 만날까봐……”
“지금 그 이야기는 나를 좋아해서 그랬단 얘기네?”
“응……”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진 그녀의 웃음보에 영수는 놀라 수희를 쳐다보았다.
“나, 지금 고백받은 거 맞지? 그럼 우리 오늘부터 첫날로 치고, 데이트 하는 거야!”
영수는 잠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백을 하긴 했는데, 영 어색한 상황에서 해 버렸다. 그냥, 솔직하게 처음부터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괜한 후회도 된다.
수희가 갑자기 코딱지를 판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아닌, 휴지로. 영수는 다행이다 싶었다. 다시는 코딱지를 후비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나 고백받은 김에 조건이 두가지 있어.”
“뭔데?”
“다시는 코딱지 후비지 말 것.”
“알았어”
“두번째는?”
“예상대로야.”
“다시는 먹던 반찬 숟가락에 올리지 말 것?”
“잘 알고 있군. 흐흐흐. 그런데, 부록 조건이 하나 더 있어.”
“부록 조건?”
“다시는 나 시험해 보지 말 것!”
“아, 알았어, 미안해……”
“흐흐흐. 우리 차 마시러 가자!”
(신다의 감동-02)
실제로 이런 짓을 했다면, 둘의 관계는 분명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더러운 상황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둘은 너무나 연애에 서툽니다.
실제로 저도 연애에는 서툴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애란 걸 해 본 적은 있지요. 너무도 서툰 연애라 몇 달 되지 않아 그 관계는 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제가 왜 헤어져야 했는지, 무엇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게 한 건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압니다. 사랑은 개인의 감정에 함몰된 집착이 아니라는 걸요. 그때 저는 저의 감정에 집착했고, 그녀가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하고, 원하지도 않는 편지를 하고, 원하지도 않는 만남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조용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배려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아껴주어야 하는 것인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때를 놓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 사랑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굳이 다가온 인연을 놓으려 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저는 어떤 연애의 시험에 들게 될까요.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어서, 수많은 시험이 있는데, 그 중 연애의 시험도 참 중요한 시험 중 하나라는 생각을 품어 봅니다.
03) 이상하게 행복한 하루
오늘은 날씨도 참 좋다. 이런 날, 수희랑 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오늘은 수강신청을 하러 가는 날. 뭘 수강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면 가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영수를 빤히 본다. 어디선가 본 듯하긴 한데, 영수는 그만 눈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엄마가 그 아이를 보며, 물었다.
“환희야, 왜 그래?”
“저 아저씨가 내 눈 피해!”
영수는 당황스러웠다. 단지, 눈을 피했다고 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라니. 그것도 모르는 아이 아닌가? 어디선가 본 듯하긴 해도, 분명 아는 아이는 아니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아이 엄마의 반응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우리 한번 저 아저씨한테 왜 피했느냐고 물어볼까?”
“응!”
울음을 뚝 그친 아이. 엄마의 말만 멀뚱멀뚱 바라보며 영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 죄송한데, 제 아이와 눈을 피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제 눈...”
얼떨결에 대답하는 영수의 눈을 바라보는 아주머니가 탄성을 질렀다.
“아...!”
그 아주머니는 이유를 알겠다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우리 환희한테 눈병 옮길까봐 그런 거야. 아저씨 눈 봐, 눈 빨갛지? 너 생각하는 마음에 그런 거야…”
“그런 거야? 히히힛.”
아이는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
영수는 이번엔 아이에게 그렇게 알려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주머니, 근데…”
“예, 말씀하세요~”
“제게 그런 걸 물어보는 이유가 뭐죠? 기분 나쁜 건 아닌데, 좀 궁금해서요…”
“자라나는 아이에게 세상은 온통 호기심 투성이죠. 때로는 아이가 이유없이 좋아하는 어른이 있기도 하구요. 그 좋아하는 어른이 나쁜 사람만 아니라면, 그 사람의 말투, 행동이 아이에겐 온통 호기심의 대상이에요. 그래서 아이는 그 어른과 친해지고 싶어하기도 하구요. 그 마음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나쁜 어른이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 하겠지만, 좋은 어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좋은 어른이란 말씀인가요? 저를 아세요?”
“식당에서 몇 번 봤어요.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구요. 우리 환희가 아저씨가 자기 한 번도 안 쳐다본다고 섭섭해했어요. 제가 ‘바빠서 그런 거야,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꼭 봐주실 거야’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우연히 마주치니까, 너무 좋아했었던 거에요.”
“아…”
영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얼른 눈병 나으세요~. 그리고 나중에 식당가서 마주치면 우리 아이랑 인사도 하고 눈도 마주치고 그래 주세요~ ”
영수한테 살짝 미소를 짓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묻는다.
“근데 엄마, 저 아저씨 왜 울어?”
“우리 환희가 아저씨 좋아한다는 말에 감동받았나 봐!”
“히힛, 정말?”
“응, 정말!”
갑자기, 아이가 뒤돌아보더니 영수를 부르며 손을 흔든다.
“아저씨야, 안녕!”
영수의 등뒤로 들리는 그 목소리에 영수는 얼른 뒤돌아보고 손을 흔든다.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못한다. 아이는 발랄한 웃음을 영수에게 보내고는 엄마의 손을 잡고 사라진다. 영수는 그들이 사라져간 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이상하게 행복한 하루였다.
(신다의 감동-03)
아이들을 보면 이상하게 잘 웃는 아이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아는 아이죠. 저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해주는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학습지교사로 일을 할 때 특히 더 그랬죠. 대부분은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반가워 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요. 학습지교사를 그만두면서 그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 이젠 그 아이들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월이 지났네요. 문득, 제가 어느 날 길거리에 그 아이들을 마주치고 그 아이들을 못 알아본 채 그저 피하기만 한다면 그 아이들은 과연 섭섭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기분 좋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현재를 즐길 뿐이니까요. 섭섭하면 섭섭해하고 즐거우면 즐거워하는 그런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미래가 밝기를 바라봅니다.
04) 웃음이었다
물건을 포장해주는 곳에서, 지금 한창 바쁜 철이라고 해서 일일 알바를 하는 곳에서 퇴근하는데, 어떤 여자가 영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영수는 그 여자의 웃음에 섬찟함을 느겼다. 마치, 아들인 영수를 자신의 소유물로만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 여자에게서 보았다. 그 여자는 영수가 갈 때가지 계속 웃고 있었다. 영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고, 재빨리 그곳을 나왔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았다. 스토커를 당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사실, 그 여자는 오전부터 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자꾸 바라보는 건지 몰랐는데,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이 영수한테 그 여자가 영수한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며 킥킥 웃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수더러 잘해 보라고 한다. 영수는 다른 무엇보다 이미 그 여자와 뭔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불쾌해졌다. 더더군다나, 영수에겐 이미 사귀기로 약속한 여자친구도 있는데도. 그래서 영수는 그 이후부터 그 여자에게 일부러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영수의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계속해서 실실댔으며,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일 알바라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영수는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서 수희에게 그 얘기를 털어놓았다. 수희가 웃으며 말한다.
“내가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썼다면, 나는 오빠 만나기도 전에 자살했을 거 같아.”
“뭐라고?”
“오빠, 누군가 오빠를 좋아한다는 말 들은 거 처음이지?”
“응.”
“어라? 내가 좋아한다고 한 건 뭐야?”
“응...그게...”
“흐흐. 농담이야.”
“나, 대게 당황스러워.”
“오빠, 어차피 그 여자가 오빠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도 아니잖아. 고백하게 되면, 그때 단호하게 거절하면 돼. 그 여자가 상처받을까 봐, 그 여자가 무서워서, 그 여자에게서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런 거 지금은 아무 의미 없어. 그 여자가 고백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인 거고, 그 여자가 고백하게 되면, 그때는 의사를 분명히 해야지. 그 여자가 고백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일일이 마음 쓰게 되면, 세상엔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그런데 내가 볼 때 그 여자가 문제가 아닌 거 같아. 오빠의 마음에 자리 잡은 아빠와의 관계가 문제지. 그 끔찍한 기억, 치료해야겠는데?”
“어? 그...그런가...?”
“오빠, 나랑 약속해. 어떤 경우에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버리지 않을 거라고. 오빠에게 일어날 많은 일들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낼 수 있을 거라고.”
영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러나 맞는 말이다. 영수에겐 마음의 상처가 많았다. 그것을 치료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약속할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약속했으면, 손가락도 걸어야지!”
수희는 영수의 손을 잡았다. 처음엔 차가웠던 손이 조금 지나니, 따뜻한 온도로 채워지고 있었다. 채워지는 온도만큼 그들의 마음도, 그들의 사랑도 깊어갔다. 영수는 수희를 사랑하는 마음을 절대로 놓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수희는 그런 영수를 따듯한 눈길, 따뜻한 손길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눈길과 손길은 영수의 진심을 알아보았고, 누구에서도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영수의 진정한 내면을 볼 수 있었다. 그 내면에서 영수의 앞날이 출렁이고 있었고, 포근한 마음으로 일구어진 앞날이 보였다. 희수는 그런 영수의 앞날이 보이는 것이 뿌듯했다. 사랑하는 마음, 있다. 그거면 된 거다. 희수와 영수는 따뜻해진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신다의 감동-04)
상처가 많은 사람은 세상에 많이 있고 그 상처는 치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들의 결혼은 상처를 받은 자와 치유하는 자의 치열한 싸움이었고, 그 치열한 싸움에서 남은 결과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저 역시 제 상처와 치열한 싸움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둡고 음침하기만 저였지만, 지금은 많이 밝아졌고 상처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상처의 완전한 치유란 쉬운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벗어나려 애쓰지만, 그 상처들을 부여잡고 어떤 특정한 순간이 오면 끊임없이 올라오는 게 상처라는 거 아닐까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을 통해서, 또 상담을 통해서, 때로는 극히 드물긴 하지만, 배우자의 사랑을 통해서 치유되기도 하죠. 그러나 배우자의 사랑을 통해서 치유되는 경우에도 상담의 병행을 통해서 치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상처를 치유해 나갔냐고요? 저에겐 독서의 힘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저의 신앙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찾았다면, 독서를 통해서 제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갔지요. 책은 저에게 많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라고도 해주고, 때로는 울분을 쏟아내는 현명한 방법을 제시해 주기도 했지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일깨운 글쓰기를 통해 제 마음을 정화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서 저는 인생을 바꿔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죠. 소설과 에세이를 결합한 이 한 권의 글이 그 결과물이겠네요.
05) 문자
밤새 날린 문자 공세에 수희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사랑해, 네가 보낸 문자들도”
영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미안해.”
“근데, 왜 그랬어? 어련히 나중에 연락할 텐데.”
“그냥, 걱정이 되어서.”
“걱정?”
“어제 네가 집에 들어가는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혹시라도 헤어질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빠!”
“미안.”
“설마 오빠가 헤어지려고 마음 먹은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거. 너에게 나는 너무 못난 사람이고 그래서.”
“흠”
수희는 영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고 쳐다 봐…? 무서워질라 그래…”
“귀여워서.”
“응?”
“못났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만큼 내가 좋다는 말이잖아? 흠. 내가 그리 잘 났었구나.”
영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수희가 영수를 빤히 쳐다보았듯이, 수희를 쳐다보았다. 수희가 배시시 하면서도 시큼하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영수의 가슴에 불이 일었다. 영수의 마음속에서 그녀를 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영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상대에게 신체 접촉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성교육 시간에 배웠다. 나는 나쁜 놈이 아니므로 반드시 허락을 받은 후에 손도 잡기도 하고, 뽀뽀도 할 것이다. 나는 수희를 사랑하므로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다.’
영수가 이런 생각에 한참 빠져 있자, 수희가 영수의 팔을 잡았다.
“오빠, 왜 안드로메다에 가서 있어? 난, 여기 있는데!”
영수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얼떨결에 수희에게 물었다.
“손 잡아도… 헉!”
수희가 그런 영수의 모습을 쳐다보며, 까르르 웃었다.
“오빠, 그 다음 말은 왜 안해?”
“어… 그, 그게…”
“말 안 할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말 하라니까…”
“어…그러니까…”
영수와 수희는 그렇게 한동안 그렇게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버리다가 수희가 박장대소를 하며, 영수의 팔을 잡아 끌어 당기면서,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두 손을 서로 바라보면서, 영수도 그냥 웃음을 짓는다.
(신다의 감동-05)
폭탄 문자는 분명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나도 한량없이 넓은 마음을 지녔다면? 이런 판타지 같은 일은 가능한 것은 아마도 꾸며낸 이야기라서일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마음이 과연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같은 것도 든다. 한량없이 넓은 마음은 아마도 예수님 같은 마음이 아닐까.
오늘도 일상 너머의 삶들이 내게 웃으며 손짓할 때, 나는 비로소 내 삶을 잘 살아왔다고 내 삶이 아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손짓이 없더라도, 나는 어쩌면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매일 느끼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폭탄공세에도 여유로울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있다면 나는 오늘도 내일도 너무나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