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2.
- 정권의 두 번째 부총리 역할은 경제 논리 숨쉴 구멍 뚫어내는 것
- 청와대 下命 대신 경제 현실 직시하며 정책 내고 職 걸어야
"현장에서 뛰는 야전(野戰)사령관이 되겠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한 말이다. 무역 전쟁, R&D 전쟁부터 취업 전쟁, 골목길 서민들의 창업 전쟁까지 어느 것 하나 '전쟁'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우리 경제 현실이 야전 사령관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그 '야전'이라는 단어를 청와대가 정해준 모양이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경제팀 개편 인사를 발표한 날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포용 국가의 설계자이고, 경제는 야전 사령탑으로 경제부총리가 총괄한다"고 했다. 야전 사령관의 임무는 청와대 설계와 하명(下命)을 전장(戰場)에 잘 전달하는 것이라는 뜻인가. 야전 사령관이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 세종시출장소장'에 그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이 대패한 전투 가운데 1944년 인도와 미얀마 국경 일대에서 벌어진 '임팔 전투'가 있다. 1991년 시청률 58.4%라는 기록을 세운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도 등장하는 전투다. 무다구치 렌야 중장이 지휘하는 미얀마 주둔 15군 산하 3개 사단 등 6만5000여 명이 투입됐는데, 1만5000명만 살아왔다. 희생된 군인 대부분은 굶주림과 풍토병, 자살 등으로 죽었다.
태평양에서 패색이 짙었던 일본은 인도 점령이라는 꿈을 꿨다. 인도 북부 임팔을 공략하고, 미국이 중국 국민당군에게 보내는 보급을 차단해 중국 전세(戰勢)도 호전시키겠다고 했다. 임팔까지는 험준한 산악 지대라 보급이 문제였다. 4만 마리가 넘는 소·말·노새 등에 보급품을 싣고 가다 식량으로 쓰겠다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짰다. 전례가 없고, 참모들이 모두 반대하는 작전에 6만명이 넘는 병력의 생사를 걸었다.
이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성장 전략인 소득 주도 성장도 다를 게 없다. 올해 우리 경제는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감소, 외환 위기 이후 최장 기간 설비투자 감소를 겪었다. 실업자가 9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어선 것도 외환 위기 이후 처음이다. 2개월짜리 단기 알바라는 손바닥으로는 가릴 수 없는 일이다. 수출의 20%를 넘게 차지하는 한국 경제 '외발 자전거'인 반도체 산업이 내리막 조짐을 보이고, 자동차 산업은 구조조정 벼랑으로 내몰렸다. 공단마다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늘어간다.
역대 정부 초대 경제 사령탑은 재임 중 성장률이 그 정부 평균보다 못했다. 두 번째 사령탑들이 더 나았다. 집권 초반 의기양양하던 청와대와 여당이 한풀 꺾이고, 집권 전 도상(圖上) 계획이 현실에 가로막히면서 경제 논리가 숨 쉴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구멍을 뚫고 넓히는 것이 두 번째 부총리의 역할이다.
무다구치 중장은 보급이 끊어진 부대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다.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는 지시까지 했다고 한다. "단연코 행하면 마귀라도 피한다"고 육탄 공격을 재촉했지만, 3개 사단 가운데 31사단 사토 고토쿠 사단장은 병사들의 참상을 보고 "이를 보고 울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라면서 항명죄 논란에도 독단적으로 퇴각했다. 야전 사령관이라면 이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야전 사령관은 바지 다려 입고 모자 반듯한 국방부 참모들과는 달라야 한다.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고, 숨 쉬어야 한다. "매주 또는 격주로 의무적으로 기업인과 점심을 하겠다"고 한 것은 아마 그런 뜻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청와대 지시보다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보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그 정책을 건의하고, 직(職)을 걸 수 있어야 한다. 홍남기 후보자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조선일보